화진포초상6
손주- “시계부랄 땍각땍각!“
”할아버지 ? ? 땍각땍각“
할아버지- “이-노옴 ,,,”
손주- (시침뚝떼고) “아니, 시계 ? ?, 땍각땍각”
아이들- 왁자지껄 웃음바다.
여섯 살때의 나의 별명은 “시계부랄 땍각땍각”이 였었다.
초저녁 사랑방에 조부와 외손주가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잠들기전 벽시계를 바라보던 손주의 입에서 느닷없는 위의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의 민망함이란 어린 가슴에도 쥐 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는데,--하여 어린 손주는 능청스레 “아니, 시계부랄 땍각땍각”으로 그 궁지를 모면하려고 발버둥치는 순간 이게 웬일입니까. 사랑방 밖에서 초겨울 아궁이의 불을 쪼이던 아이들이 이 숨기고 싶은, 지워 버려야만 하는 사건의 도청자들이 되어버렸으니. 이후의 내 처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자.
“이제 삼황,,,”한 밤중 자다가 깨이보면 외 조부는 여전히 청아한 목소리로 글을 읽으신다. “ 창호지 문살에 하얗게 달빛이 쏱아지고 뒷산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 나는 인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오줌을 쌋다. 바람에 부서지는 댓 잎 소리 밤 새 소리 무서움에 떨면서 잠들어선 참은 오줌이 시원이 뉘어질 때면 아풀사! 그대로 옷 입은 체로인 것을, 소금을 얻으려 키를 쓰고 앞집 뒷집을 순회하기를 그얼마나 했던가, 부지깽이로 키를 두드리던 병한이 아저씨 졸도할것마냥 무서웠는데, 지금도 가끔은 외조부의 글읽는 소리가 이명처럼 영혼의 소리로 나를 깨워 아득한 유년으로 이끌어 간다.
돌구치에서 보내는 겨울 편지>>
박씨 아저씨는 심장 보조 장치를 가슴에 달고 사는 어른이시다. 지난 주에도 독감까탄에 병원에 입원하여 문병을 다녀왔다. “보라,초롱이 때문이라도 오래 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래 맞아,,,”말끝을 여미지 못하고 흐리신다.
보라와 초롱의 아버지가 지난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집 나간 아내를 찾아 떠돌다 서울에서 끝내 좌절하고야 말았다. 고등학교 일 학년과 중학교 일 학년인 두 어린 딸과 늙고 병든 늙은 어버이를 두고 말이다.
화는 겹으로 온다던가 초롱이 할머니도 아들을 잃고난 여름부터 강릉의 아산병원에 입원하여 성탄의 계절되어도 이제껕 병원에 있다. 오롯이 남겨진 어린 손녀들을 곁에 둔 그 무너짐을 누군들 짐작이나 할수있으랴. 우리 마을엔 이런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다섯 가정이나 된다. 병든 이 시대의 가정의 윤리가 겨울 산의 눈 사태처럼 우리의 가슴을 밑 바닥으로 부터 균열지으며 무너지고 뻐개진다.
40여 세대. 백여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 “돌구지”.
일터(직장)가 있는 집 열, 막노동에 공익 근로가 몇집,
끝남이 없는 진폐의 고통과 더불어 사는 가정들,,
60년대 한창 연탄이 불티 나던 때에 세워진 마을 돌구지,
산 자락을 비집고 지어진 세평 짜리집, 세월과 함께 구차스런 삶이 눌러않아 있는곳, .. 폐광의 단절을 겪고도 떠나지 못한 늙고 병듦의 그리고 주변머리 없읍의 가난하고 순박한 붙박이 삶이 남고,
푸랭카드가 그의 언어를 겨울의 찬바람을 속에 날려보낸다.
“장성 철암을 살려내라. 태백시는” 스산한 겨울을 더욱 삭막하게하는 소외와 끝이 보이지 않는 무 기력이 주민의 가슴을 더욱 욱죄며 저들의 가엾슴의 끝없어라.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하리라.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계란은 큰쪽으로 깨어서 먹어야합니다. 이것은 왕의 신성한 법이요.바꿀수 없는 전통입니다.
그런데 왕의 아들이 계란의 큰 쪽을 깨어 먹다가 그만 손가락을 상하였습니다.
나라의 왕은 새로운 칙령을 내렸습니다 계란은 작은 쪽을 깨어서 먹어야한다고,,,
만약에 이 법이 어겨지면 중한 벌이 주어진다는 부칙 조항이 첨부 되어서 말입니다.
숯한 사람들이 이 법에 저항하여 투옥되고 사형 되었습니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습관이 누적되어 타성이되고 타성의 익숙함이 편리함이되어 숲 속으로 난 오솔길 같은 것은 아닐까.
불순한 동기를 품고 다마스커스로 가던중에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그가 지녔던 가문이나 명예나 배움이 하잘것없는 쓰레기임을 발견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빌라도는 그 해답을 기다리지 아니한체로 죄없는 자로하여 어둠속 사형장으로 내 몰고는 손을 씻습니다.
어느날 아브라함은 아주 난감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사건 앞에 노출되었습니다. 친척 아비 형제와 삶의 익숙함이 있는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 하시는 여호와의 부름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름을 듣고 군 소리를 접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익숙함의 나를 청산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악함의 익숙함이있고, 죄 지음의 습성으로 부담이 없고 , 불순종의 패역으로 날랜 이웃이 있고, 분명 그 길과 삶은 편한
길이요 넓은 길임이 분명합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올 지니라”
이 길은 익숙하지 아니한 길입니다. 서툰 길입니다.
그것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고난을 감수해야 하며 익숙한 이웃과 가까웠던 방식들과 뒤 돌아서야만 합니다.
존재의 근원을 향한 끝없는 경모의 사랑을 그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야하는,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의 눈금으로 들어나야 합니다.
수양의 기름과 번제를 기뻐하는 신이 아닌 야훼는 내 백성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 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이사야 2장 3절)
지난 이년 동안 철암 남부교회의 표어로, 신앙의 지표로 살아온 애씀의 흔적을 담고자 했으나 부끄러움 뿐이다.
이제 새해로는 오랫동안 새기며 2003년의 교회 표어로 창세기 28장으로 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하리라.” 28장 15절로
고난과 시련 가운에서도 함께하셨던 야곱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사망의 올무에서 건지시고 죽음의 전쟁 속에서도 살려 주시고 , 가난과 방황의 시련을 이기게 하신 야훼, 우리 하나님을 철암남부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사랑하며 섬기며 속 깊이 의지 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의 방식은 옛 것일 수는 없습니다.
사랑에서, 섬김에서, 나눔에서, ,,,,낮아짐의 자리에 내려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베들레험 구유의 건초더미의 풀 냄새와 흙 냄새가 풍겨지를 기도합니다.
*************************************************************************
< 사랑의 바구니를 개설합니다>
,연탄 100장,23,000원, 쌀20KG, 46,000원, 외생활 필수품
우체국201178-02-018965, 임 건택
초대합니다. 태백산, 눈꽃 축제로
어디로, 강원도, 태백산 아렛 마을로,
언제즈음, 새해 일월십육일부터 스므엿새날가지,(1월16-26일)
산을 허물고 땅을 뒤집고 메꾸어 벌집을 짖고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깔아 길을 마들어 대지의 숨구멍을 막고
수초와 송사리의 물길을 헤집어 인조 수로를 내어 물고기의 터전을 뭉게버리고,
문명이라는 이름에 순치된 도심의 사람들에게 산은 아직도 우리속에 남아있는 고향의 모형입니다.
켜켜이 울서 올라간 바위산,산. 어쩌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꿈의 땅 그 기상을 향해 줄 달음처 온 고구려인의 숨찬 맥박을 태백의 등성에서 잠시 엿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숯한 조립된 기계 언어와 외랫 말과 문명어들 속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캐는 강원도 산골 아낙네의 질박한 토착어, 어머니의 음성이 여기 울창한 원시림의 산 바람속에서 엿들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자동차의 핸들에 익숙하고, 컴퓨터 키를 두드리던 손,
텔레비죤의 주구가 되어진 우리의 눈, 화려한 인조 색갈에 세뇌 되어진 눈을 돌려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땅 하늘의 생기가 바람으로 살아 용솟음치는 곳.태백, 태백 눈꽃 축제로 님이여 오소서!!!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게 하자 ☜”
거기서 어쩌면 우리 하나님의 기척을 느낄 것입니다
바다를 그리며
-하나-
떠나 있어도 너는
설레인다, 내 안에
그루터기로 남아
하늘을 꿈꾸는 소년아
마른 솔씨하나 물고,
마른 삭정이로 집을 지어
스므천평 돌구치 하늘로
겨울 바람 저리 시린데
-두울-
해거름의 미시령
사람의 마을에서 문이 닫기고
이제 우리의 가슴팍에선 황톳불이 오른다.
물푸래,자작,상수리,조선소나무,
그가 우리를 불러 이 땅의
숨결로 살라하셨씀이여.
바다는 일어나 설레고
산은 일어나 춤춘다.
-셋-
하늘 궂는 날이면
너는 내게와 함께 밤을 묵었지
그리고 속속들이 서로가 되었지.
임 건택
겨울산을 오른다...
입엇던 옷들을 모두 벗어두고 맨 몸의 나무들이 거기 어깨를 비비고 깊은 무언(無言)의 시간에 들고 있었다. 나무 뿐인가. 돌들이 바위가 배면(背面)의 모습을 주저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자기 피알 시대를 사는 우리다 언어가 그러하고 문자가 그러하고 사고파는 문명의 그것이 감춤이 없이 벗겨내고 까발겨야 교환이 이루어지고 매매가 이루지는 인간 상품화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고 품질의 상품성이 내게 있는가.
합리적이고 효용 가치가 뛰어난 필요 충족의 가치가 오늘의 교회속에 있는가.
퍼즐을 맞추듯 다양한 언어의 직조술이 내게 있는가.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수 있나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목에 지켜섰던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절박한 병고침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 지기를 요구하고있었다.
이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의 깊은 통찰력을 우리는 만나게 된다.
드러난 것으로 값을 매기고, 쓸모와 필요 유익에 따라 호 불호가, 등가가 설정되는, 넓은 길이 선호되는 물질 생활에 세뇌 되어진 그 익숙한 길이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생명의 길인가를 새겨 보게 된다.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무들 사이에서면 가끔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기척에서도 그의 오심을 깨움받습니다.
-----미시령에 대설 경보. 127cm.,,의 눈.,
지난 12월의 미시령의 눈 소식입니다.
동서로 뚫린 길을 막는 눈 소식이 매시간을 전파를 타고 옵니다. 오르는 길 굽이굽이 눈 꽃 나무피어 장관이려니. 눈 끊힌 아침 그 화안한 빛살 빛 부심.
이런 겨울에 길떠남은 금물입니다.
길떠난 사람 귀가길이거나.
아니면 급한 소식있어 영을 넘는 일 예전엔 드물지 아니했습니다.
세 친구가 영을 넘었습니다.
피곤하고 허기진 눈 길이였습니다.
힘센 한 사람은 저 혼자 앞질러 눈 길을 갔습니다.
처진 두 사람 가다가다 눈길에 지치며 갑니다.
의지하며 갔습니다.
체온을 나누며 그 밤을 살아 냈습니다.
그런데
앞 서 간 힘쎈 이 길 잃고 눈 속에 동사(凍死)하였습니다.
불편한 이웃이, 미운 이웃이, 떠나고 싶은 이웃이 생명 길의 동반자요.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분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 한다구요. 사랑 하는 줄을 압니다.
예쁜 선물도 마음의 편지도 받으실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