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보지 말고 이면을 보라
교수 신문이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꼽았다고 한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거두절미하고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원래 지니고 있는 깊은 뜻이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에 대하여 그 정확한 뜻을 학생들과 함께 익혀 본다.
이 사자성어의 출전은 논어이다. 논어는 다 아는 바와 같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어록이다. 글이 간결하면서도 함축된 의미가 넓어서 그 주해서가 수백을 넘는다. 그리고 그 시대와 말하는이의 상황을 잘 알아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봐서는 깊은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원문을 본다.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증자가 말하길 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세어야 한다. 맡은 바는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 자신의 소임을 삼았으니 무겁지 않겠는가? 죽을 때까지 가야 하니 또한 멀지 않겠는가?
이 글의 구조로 보아 주제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아니라 홍의(弘毅)이다. 선비는 임중도원하기 때문에 홍의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 소임은 중하고 길을 멀기 때문에 ‘생각을 깊고 넓게’ 하고 ‘뜻을 굳세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소임이어서 짐이 무겁다고 하는가? 그것은 인(仁)을 실천하여야 하기 때문에 무겁다고 한 것이다. 길이 멀다고 한 것은 그것을 죽을 때까지 평생 실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을 평생토록 실천하려 하면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인의 실천이 그만큼 힘든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아울러 선비는 그것이 힘이 들고 길이 멀더라도 회피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원문의 뜻이 그렇다면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사람들의 의중은 임중도원이 아니라 홍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구나 하는 탄식의 의미가 아니라, 생각을 ‘깊고 넓게’(弘)하고 뜻을 ‘굳세게’(毅)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길이 멀고 짐이 무거워도 그것은 우리가 평생 지고 가야 할 것이므로 포기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도“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이 남아 있는데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귀를 골랐다고 했다.
보족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의 학생 기숙사인 동재 서재 중 서재에 홍의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홍의하지 못하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한말 의병장인 기삼연과 정관원을 추모하는 사당인 용오정사(전북 고창)에도 홍의재가 있다. 그들의 뜻이 굳세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