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은 어디인가!
국토는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 되어야 할 배타적 영역이라 하였다. 한자의 자구해석으로는 ‘나라의 땅’이지만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해, 영공을 포함한 국경선의 범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3조에 우리영토의 범위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란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큰 곶(串)이다. 흔히 우리국토를 한반도(韓半島)라 부르는데 이는 일재시대 때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사람을 비하하여 부른 데에서 기인한다. 즉 일본인 자기들은 완전한 섬인 본도(本島)이고 우리국토를 반도(半島), 우리민족을 반도인(半島人)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한(韓)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옛날 마한, 진한, 변한과 예맥을을 지칭하는 말로 삼한일통을 꿈꾸던 고구려의 옛 구토까지를 일컫는 영토의 범위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영토는 조선시대 세종 때 4군6진의 회복과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 압록강과 두만강이 그어 낸 경계를 한반도로 봐야 할 것이다.
대동여지전도 발문에 우리국토의 지세와 나라이름 유래를 ‘동사강목’에 이르기를 조선(朝鮮)의 음은 ‘조선(潮仙)’이니 ‘선수(仙水)’로 이름 하였다. ‘선(鮮)은 밝게 한다는 것이니 지역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해가 먼저 비추는 까닭에 조선이라’고 한다. ‘산경(山徑)에 이르기를 ’곤륜산의 한 자맥이 큰 사막(고비사막)의 남동쪽으로 향하여 구무려산(毆巫閭山)이 되고 여기서 크게 끊겨 요동평야가 되고 그 평야건너 다시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이 곧 조선산맥의 조산(祖山)이 된다‘고 했다. 백구산은 세층으로 되어 있으니 그 높이가 2백리요, 가로로 뻗쳐있는 것이 천리나 된다. 그 고갯마루에 연못이 있으니 이름하여 달문(達門;천지)
이라 하는데 둘레가 8백리(실재는 14km정도)이다. 이 연못의 물이 남으로 흘러내려 압록강이 되고 동으로 흘러 두만강이 된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땅의 경계는 역사상 명백하게 기록되어있고 남으로는 마라도 동으로는 독도로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민족의 혼과 더불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은 이란 ‘비단에 수놓은 듯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인데 사계절이 뚜렷하고 하늘이 한없이 맑고 푸른 우리의 국토, 우리나라의 강산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영토의 크기가 열강대국에 비해 좀 비좁은 것이 아쉬움이다. 그렇다. 광활한 대륙전체가 이렇게 금수강산이 돨 수는 없을 것이다. 반도국의 특성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화시기에는 대륙과 섬나라의 가교역할을 하고,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난리 통에 시달려 온 고단한 발판이었다.
인간은 창조적 동물로 쉬지 않고 건설을 한다. 좁은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국토에도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그 늘어난 사람들이 살아갈 기반을 만들기 위해 끊임 업이 건설 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땅에는 값이 붙기 시작하고 그것이 땅값이 되었다. 산업화와 더불어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급격한 도시화를 불러오고 도시의 땅값은 널뛰기로 오르는 작금의 현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땅값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서울 장안의 토지는 이조 개국과 함께 모두 국유지였다. 나랏님이 토지의 소유주다. 애초부터 서울 장안에는 민유지라고는 한 평도 없었다는 뜻이다. 개국 후 이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오면서 먼저 궁가(宮家), 종묘(宗廟), 관청의 부지를 확정하고 그 다음 도로, 시장으로 쓸 땅을 떼어 놓았다. 나머지 땅을 왕족(王族)이하 백성에 이르기 까지 그 신분에 따라 ‘정해진 넓이의 집터’을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사용권이지 소유권은 아니다. 즉 사유지가 아니고 사용권을 허가 받은 것이다. 그 기준은 대군(大君),공주(公主)=30부(負), 왕자.옹주=25부, 1품(品)-2품(品)=15부, 3-4품=10부, 5-6품=8부, 7품 이하 양반의 자손=4부, 일반서민(一般庶民)=2부 로 집터를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집을 짓고 싶은 백성이 있으면 적당한 빈터를 찾아 한성부에 허가를 청원하면, 한성부에서는 그 땅이 2년간 연속해서 빈 터로 남아 있을 경우에는 허락 했던 것이다. 또한 2년 이상 남아 있는 터라 할지라도 지방에 나가있는 벼슬아치라든지, 부모상을 당하여 아직 집을 짓지 못하고 있는 상주 등에게 허락 되었던 땅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하락치 않고 기다려 주었다. 그렇다면, 전세대란과 평생 급여생활로 저축하여도 산술적인 계산상으로 제집 장만을 할 수 없는 요사이 현대인과 비교 해보면 그때 그 시절이 사람 살기에는 공평도와 행복도가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모든 것이 국유지였던 집터를 사고파는 소유권은 언제부터 생겨나게 된 것인가. 1883년 이후 서울로 외국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대지에 대한 소유권이 생겨나게 되었다. 서울 장안에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태리, 청국사라들이 들어와 우리백성들로부터 집을 사는 경우, 집과 함께 집에 딸린 집터도 산 것이라 간주하여 그 곳에 철조망을 치고 경계를 표시하였다. 자기들이 그 곳에 집을 지어 놓지 않은 빈터라 할지라도 외부인인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게 철조망을 치기 시작 하면서 500년 동안 내려오던 집터에 대한 관념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부동산, 즉 땅으로 떼 부자가 되어 팔자를 고친이가 수두룩하며, 부동산을 떠나서는 현대의 경제생활을 온전히 영위 할 수 없을 정도로 땅은 좋던 싫던 우리 경제 속에서 중요하게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토와 관련하여, 유독 요 근래에 우리의 독도에 뻔뻔하게 대어놓고 일본인들은 죽도라고 우긴다. 그들의 교과서에서 또는 정치적 이슈로 떠들고 소란스럽다. 온전히 국토의 막내로서 파도치는 동쪽 끝에 매달려 제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독도에 애정과 관심을 기우려야 한다. 우리의 국토의 한 조각인 독도에 대하여 우리는 더 많은 역사의식과 교육및 대외 홍보활동으로 확고한 영토수호를 위한 의지를 다지며, 독도의 안부를 다시 물어 본다.
독도의 안부
허공에 한줌 괭이갈매기 던져 날리고
동해 푸른 창랑에 몸 단정히 씻기우며
아득히 홀로 돌아 앉아 파아란풀, 돌이끼 키운 지 수 만년
내 한때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지구의 불덩어리였다
세상에 뜨겁게 몸 풀던 어느 날 나를 감추지 못해
해 뜨는 동쪽 언저리에 불쑥 몸 내밀어 울릉도의 아들되었다
물밑 손 내밀면 잡히는 울륭아비의 숨결 백의민족의 두근거림
바람 불고 폭우 치는 세월의 격랑 속에서도 울륭아비의 도포자락 부여잡으며
넘보는 자 눈길 꼬누어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리며
수많은 풍랑조차 다독이며 잠재우는 독도가 되었다
수상한 한시절가고, 누가 나를 그들의 수하라 하는가
음모의 두런거리는 소리들 맑은 바람에 귀 씻고
나 오늘도 서쪽 멀리 침침히 눈 주고 기다리고 있다
나를 찾아 밀려오는 한반도 백의민족의
낮은 소리에도 귀 기우리고 있다.
- 2006 대한민국 독도예술문화 축전 발표, 필자의 졸시 -
첫댓글 한반도라는 말에 그런 뜻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국유지였던 집터를 사고파는 소유권은 언제부터 생겨나게 된 것인가.
1883년 이후 서울로 외국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대지에 대한 소유권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또한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간만에 장마비와 함께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독도의 안부'時도
어엿한 대한민국의 영역인 독도에 대한 안부를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물어봐야 됨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순간에만 반짝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오늘도 독도를 지키기위해 애쓰고 있는 국군병사들과 독도를 사랑하는 님들이 있어서
그나마 독도는 덜 외로울거예요.
선생님의 글과 시를 통해서 남다른 국가관을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