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여기는 제주도? 덕천 하학리 상학마을인데요~~ |
|
정읍에 순 돌로만 담장을 쌓은 돌담장으로 둘러싸여 제주도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 있다. 덕천 하학리 상학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상학마을은 치재를 넘어 다니며 장터를 오고가던 사람들이 한번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던 그 고개길 아래 마을이다.
마을전체가 돌담길인 덕천 하학리 상학마을
이 마을에 아주 색다른 풍경이 있었으니 마을 입구의 나란히 서 있는 입석도 아니요. 연륜을 알 수 없는 왕버들의 운치도 아니다. 두승산 바로 아래 자리한 마을의 입지도 볼만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잡는 것은 마을 전체가 돌담길로 되어있다.
다른 곳도 돌담길은 많지만 상학마을은 특별하다. 진흙과 자갈을 섞어 쌓은 돌담길이 아닌 완전한 석축이다. 마치 옛 고성(古城)을 보는 듯.... 이리 꼬불 저리로 틀어지고 완만한 곡선미가 누구의 허리를 닮은 듯 하고, 쌓인 돌들의 틈바구니에 촘촘히 파고 든 담쟁이 넝쿨이 몇잎 남은 채 가을햇살을 목말라 하고 있다.
정읍과 부안을 오가던 옛길 아래 상학마을
|
|
|
|
▲ 두승산 아래 덕천 하학리 상학마을 |
|
덕천면 하학리 상학마을은 본래 고부군 우덕면 구역인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에 중학리 하학리 장문리 신덕리 가정리와 답내면 신장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심마을 이름을 따서 하학리라 하고 정읍군 덕천면에 편입하였다.
상학마을은 두승산 동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과거 부안과 정읍을 오고 갈 때면 치재를 넘어 자라고개를 지났는데, 그 중간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입석 두 기가 서 있으니 수구맥이 입석으로 보인다.
상학마을 인근 지명은 온통 '학(鶴)'...관군이 동학농민군에게 패한 곳
상학마을의 비아골에는 비학상천혈(飛鶴上天穴)이 있다고 전해져 오는데, 인근에는 상학 중학하학 학전 학림 등 학(鶴) 字 의 이름이 보인다.
또한 연화봉과 옥녀봉의 봉우리에 연화도수혈(蓮花到水穴)과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이 있다고 한다. 쇠스랑골등성이 옆에는 병풍바위가 있으며 여망평은 이곳에 있는 들이며 이곳에서 동학농민혁명 때 관군이 농민군에게 패한 곳이라고 한다. 가마골정지새암과 용소(龍沼)는 두승산 소(沼)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 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두승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기와를 굽던 자리가 있다는데, 2년전 보았던 산너머 음지마을의 와요지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은 벌써 그 곳으로 향하지만 오늘은 이 돌담장이 내 발길을 옭아맨다.
정읍장날 구입한 돼지새끼 2마리 머리에 이고 치재넘어 사십리길 오신 어머니!
몇 십년 전 어느날 우리 어머님이 정읍장날 돼지새끼 두 마리를 사서 사과 궤짝에 넣어 머리에 이고 오는 길에, 갓점 고모 집에서 점심 얻어먹고 40리길 걸어 영원으로 오던 때 돼지 새끼가 오줌을 싸서 돼지 소변이 머리부터 온몸으로 흘러내렸다며 지금도 회상하던 그 길에 있는 마을이다.
아마도 마을이 발전하면서 대지를 다듬을 때 마다 나오는 돌들을 바로 담으로 쌓은 듯 집집마다의 채전의 밭두렁도 돌로 석축되어 있다.
"우리 동네가 제주도여~" 이구동성 돌담자랑
|
|
|
|
▲ 돌로 만든 한 농가의 창고건물이 이채롭다 |
|
언제부터 이렇게 쌓은 지 알 수는 없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우리동네가 제주도여~~~ 이구동성으로 돌담장을 자랑한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벽돌담장이 많아졌지만 새마을사업 이전만 해도 전체가 돌 담장길이었다고 어른들은 전한다. 고풍스럽고 점잖게 자리잡은 기와집은 과거에는 최진사가 살았던 집이라고 전하지만 구전은 거기서 끝이다.
마을의 고풍스러운 기와집은 최진사댁?
혹시 두승산 말봉의 되와 말(升, 斗)의 모형을 새긴 분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 그분은 최태환이여~~ 벌써 돌아가셨지~~ 그양반이 일자봉에 뭘 만들었다고 허든디~~고생도 많이 하셨고, 정읍약국 앞에서 씨앗장사해서 자식들 교육 잘 시켜 다들 훌륭하게 키웠어~~~ 아마도 진사양반 후손일거여~~" 거기서 끝이다.
자료에는 두승 모형을 조각한 사람은 거사 최석학인데, 최태환으로 알고 있으니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돌담장 쌓는 일도 내공이 필요했고 그 바탕 아래 두승의 모형도 탄생했으리라 생각된다.
축산농가 투성이 주변 여건 아랑곳없이 마을안은 한적
|
|
|
|
▲ 멋진 마을의 상징은 노거수, 마을 입구 왕버들 노거수 |
|
이 마을 주변은 축산 농가가 많은 지역의 영향으로 이 마을도 한편으로는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마을 가운데 들어서면 참으로 정겹기만 하다.
저절로 시 한수, 노래 한 자락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내 재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아쉽다. 누군가 조용히 글 쓰고 창작 활동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마음주면 좋을 듯 하다.
담장의 돌 틈바구니 사이로 시 한 수 흘러나오고 육자배기 한자락 흥겨워도 그저 돌담장 틈바구니로 훔쳐보는 그 맛이나 즐겨야 할까? 혹시나 이 글보고 이 마을에 터 닦을 사람들 그 아름다운 날에 이 몸 한번 청해주소~~
수없이 지나던 길에 모처럼 스치는 '필'에 발길 던져 본 멋진 마을이 있었음에 더 행복한 가을날이다.
첫댓글 나만 사진이 안나오나? 어찌해야 되는지 알려주세요.
답글로 올리겠습니다
이 글로인해 세계일보에 보도되었고 전라도닷컴 등 메스컴에 많이 나오다가
이젠 마을 전체가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아스팔트로 도로를 포장하고...에이~~~
광주에 사는 중학동창이 소문 듣고 이 동네 돌담장이랑 보러 와서 안내했던 추억이...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 황토현전투 관련해서 나오는 지명 손소락등이 혹시 이 글에 나오는 쇠스랑골등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