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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의 일반현황 ★ 1. 국명 - 네팔(Kingdom of Nepal) 2. 면적 - 14만7천18㎢(남한의 1.5배) 3. 수도 - 카트만두(Katmandu) 4. 정체 - 입헌군주국 5. 인구 - 천756만7천명(1987년) - 2천4백만명. 27개 부족(1997년) 6. 도시화 - 8%(1985년) 7. 종교상황 - 불교(7%), 모슬렘(3.5%), 흰두교(89%), 개신교(0.3%) 97년 4월 3일 조선일보 = 힌두교(95%), 불교 및 이슬람(5%) 8. 시차 -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단위:루피(Rs·$1=Rs56 Rs1=16원). 재환전은 전체 환전액 15%까 지 가능. 입국:주한네팔대사관과 카트만두 공항에서 비자 발급. 여권용 사진 1장 필요. 발급비는 체류 15일까지 $15, 30일까지 $30. 출국 세는 Rs700($13). 날씨:4∼5월 12∼30℃. 6∼7월은 우기. 여행 적기는 10월∼이듬해 3월. 일교차 심한 고지대 여행은 두꺼운 옷이 필수. 택시: 공항∼타멜(Thamel)거리 Rs150선. 파탄,부다나트 편도Rs200, 박타푸르 Rs400선. 하루 Rs1,000면 택시 대절 가능. 전화 및 우편:한국 전화 1분 Rs170. 우편엽서 우표 Rs12. 숙소:[타멜(Thamel) 거리]는 여행객들 천국. 하루 $2∼30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집중. 공항에서 호객꾼들이 많다. 식사:한끼 Rs90∼120. 한식은 Rs350∼450. ▲한국관(T:471396) ▲빌 라에베레스트(T:413471·서울 278-3994·93년 에베레스트 무산 소등정 박영석씨운영) ▲서울아리랑(T:232105) ▲스노우하우스 (T:413897·서울 319-4850·네팔왕족집 개조.노래방도 있다.밥 먹으면 잠은 [공짜]. 숙소는 기숙사 형식이다) 등. ▲타멜하우 스(Thamel house·T:410388) 전통 네팔식. Rs450선. 40도짜리 네팔 독주 [록시(Raksi)]도 나온다. 치안:안전 쇼핑:카트만두 구왕궁(하누만 도카)앞 노천시장에서 공예품 판매.네 팔 전통의상과 울 의류 저렴. 3분의2 이하로 깎을 것. 가는길:홍콩이나 방콕에서 로얄네팔항공(02-756-2161∼3)으로 갈아 탄다.홍콩 주3회(화-목-토·$865), 방콕은 주4회(월-화-목- 금·$850). 방콕은 카트만두행, 홍콩은 서울행에서 각각 현 지 1박을 해야 한다. 귀국편은 홍콩 경유 화-목-토, 방콕경 유 화-수-금-일. 카트만두행은 오른쪽 창가 좌석을 확보할 것.히말라야가 보인다. 주요 여행사:▲한덕여행사 02(566)5177 ▲사랑산 02(553)5730 ▲빌 라에베레스트 02(278)3994 ▲스노우하우스02(319)4850등. 5 박6일 일정 120만원대. 주의사항:▲사원은 출입은 시계방향으로. 힌두사원은 힌두교도만 출입. 불교사원 내부는 가죽신을 신을 수 없다 ▲어린이 머리를 쓰다듬지 말 것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물건을 가리키지 말 것. 인사말:{나마스테(namaste·안녕하세요?)} {단야밧(dannyabad·감사합니다.)}..
자료원 : 조선일보 발행일 : 97년 04월 03일
제목 : 네팔 1. 일반현황 자료원 : 강신찬 기성해외선교부 국가명 : 네팔 발행일 : 94년 08월 18일 |
네팔은 아시아 문화군의 나라이며, 이슬람이나 공산국가도 아니면 서 개종의 자유가 없는 나라이다. 17-18세기에 이미 로마 카톨릭수도 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됐다.(1914) 그러나 흰두교 문화와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복음을 거부하고 1950년까지 쇄국정치로 닫혀있던 나라 이다. 1951년 문호가 개방되면서부터 구체적인 선교가 시작되어 현재 약 6만여명의 기독교인이 존재한다. (정부통계 3891명) 생활상은 아직도 신석기 시대를 면하지 못했으며 정치적으로 중세의 암흑시대이 다. 종교적으로는 복음의 참의미를 모르고 인과응보적으로 윤회하는 삶 속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1,800만 영혼들이 숨쉬는 힌두교 국가이며 그리고 왕정으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국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네팔 정부는 공식적으로 몇몇 선교단체를 인정하고 허 락하여, 히말라야의 깊은 골짜기에서도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 므로 한국교회도 네팔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확장 하여, 인접국이면서도 동일한 문화권인 인도나 티벳, 부탄은 물론 중 곡까지 선교 전초기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목회자의 신분으 로는 입국이 불가능하고 전도하다가 발각되면 감옥에 투옥되오 박해 가 따르며 추방을 당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네팔 선교가 어렵고 힘들 며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업이 여의치 않다고 할 지 모르나, 하나님께 서는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그리고 복음 확장사업을 위 하여 여러 가지고 선교의 문을 활자가 열으시고 일꾼을 부르고 계시 는 곳임을 밝히고 싶다.
1) 자연
네팔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로 잘 알려진 중앙 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산악의 나라이다. 동서길이 880㎞. 남북길이 192㎞의 국토이며, 면적은 145,305㎢로 남한의 1/2정도의 크기이다. 가장 가까운 항구까 지는 640㎞로 인도의 캘커타 항구이다. 북쪽은 중공의 티벳, 남쪽은 인도와 접하고 있는 완충국가이다. 세계 10대 고봉중 8개가 네팔에 있으며, 50개의 봉우리가 7,650m이상으로 지구의 지붕인 곳이다. 그 리고 대부분의 국토는 만년설과 정글 등으로 덮혀 황무지이다. 네팔 은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인 까닭에 많은 등산가들과 종교 순례자, 여행자들을 손짓하여 부르지만 이것이 경제발전의 저해요소와 선교확장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네팔의 지형은 크게 3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고산지대인 히말라 야(Himalayas), 중간지대인 계곡과 구릉지대(Hills), 남족의 잘정리된 평지 타라이(Terai)로 구분된다. 히말라야는 만년설이 존재하는 고산 지역으로 중생대에 형성되었으며, 지금도 매년 5-8㎝씩 높아지고 있 다고 한다. 이곳은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만년설이 존재하는 공봉들로 해발 4,877m까지를 말한다. 해발 6,400m까지 소 수의 산족들이 드문드문 살고 있다. 중간지대인 구릉 지대는 해발 610m이상 4,877m에 속하는 잎역으로 전 면적의 60%에 해당한다. 인 구의 56%가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아열대와 온대성 기후 분포지역으 로 수도 카투만두 등 대도시가 이 지대에 속해 있으며 현대화의 물 결이 이 지역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지인 타라이 지역은 네팔 남쪽의 땅으로 인도와 접하고 있다. 전 국토의 2/3에 해당되는 지역이 농토 이다. 열대성 기후 분포지역으로 전 인구의 44%가 이곳에서 거주한 다. 네팔의 기후는 열대, 아열대, 고산성, 한대성 지역에 따라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여름은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4,899㎜까지의 비가 내 리며, 겨울에는 건조한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냉 건조하다. 4 월부터 6월초까지는 숨막힐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6월부터 3-4개월 은 몬순기간으로 폭풍우에 의한 피해가 대단히 크다. 10월부터는 한 국과 비슷한 날시가 계속되며 건조기에 들어간다.
2) 인종과 언어
약 1,800만명의 인구를 성별로 구분하면 남자가 51.5%, 여자가 48.5%이다. 인종별로구분하면 인도아라안계가 80%이고, 몽고리안계 가 20%이다. 이들은 지형, 종교, 문화, 언어 등의 관계로 다른 족속들 의 영향을 받거나 혼합되지 않고, 자기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생활습 과, 언어, 종교들을 유지하기에 다양한 종족들으 집합소이다. 지형적 으로 구분하면 고산족, 산지족, 타라이족으로 분류한다.
(1) 고산족 ① 셀파족 : 에베레스트산의 솔두륨 지역 중심으로 산다. 등산안내, 상업, 농업, 목축업에 종사 일부다처제(동족과 결혼) 아주 강한 족속. 술, 음악, 춤 좋아함 티벳불교, 티벳방언 ② 로마족, 오랑창족, 투단 도게골라족, 로파족, 바라가은족, 돌 포족, 마낭족, 라르 케시아르족 등도 고산지대에 산다. (2) 산지족 ① 카란타족 : 가장 오래된 족속. 전설에 의하면 주전 7-8세기 경 구약의 바벨론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이라 한다. ② 라이족, 림부족, 말갈족, 네와르족, 구릉족, 판추가운족, 순 와그족, 지렬족, 타망족, 타갈족, 체팡족, 쿠순다족 등도 산 지족에 해당된다. (3) 타라이족 : 인도 국경 근처에 사는 인도 계열이다. 다양한 방 언을 사용하고 종교적 사회적으로 엄격한 카스트 속에서 산다. (4) 기타 ① 브라만 : 브라만은 인종적 언어적 그룹이 아니며 여러 세기 에 걸쳐 인도로부터 이주해 온 인도아라안계 승 례계급이다. 네팔 전역에 흩어져 살며 언어는 네 팔어리고 그들은 정착 장소에 따라 다시 여러 그 룹으로 구분된다. 네팔 역사에 사회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주고 고위 계급으로 종교지도자 및 성자가 되고 직업은 계승되는 승려이다. 자기들의 카스트 안에 서만 결혼과 식사가 가능하며 조혼을 하고(11-12 세) 복잡한 종교예식을 수행한다. 죽은 시체를 강 가에서 화장하며 강물에 띄우는데 어머니인 갠지 즈강과 연합을 의미한다. 남아 선호사상이 강하 다. 승려 계급으로 정부와의 유리한 조건에서 교 육과 상업에 종사하고 자기의 문화와 언어를 네 팔화 하였다. ② 체트리 : 제2의 정치 무사계급으로 네팔 전역에 존재한다. 인도아리안계통으로 브라만과 함께 정통 힌두교이 다. 12-15세기 인도 북쪽의 라지스탄에서 이주해 왔으며 모든 부문에서 가장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③ 고르카 : 19세기부터 용맹한 군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족속 이다. 구릉, 마갈, 라이, 림부족 등이 여기에 속한 다. 영국 군내의 용병으로 1차 대전에 25만명, 2차 대전에 8천명이 출전하였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인도와 영국의 고용 군대로 외화 획득에 대단한 공헌을 하고 있다. ④ 티벳탄 : 1959년 종교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중공을 피해 티 벳에 망명한 후 이주해 온 난민들로 지금은 이방 인의 모습으로 네팔에 살고 있다. 자기들의 문화, 의상, 종교, 언어를 고수하고 있다.
3) 역사
많은 전설과 신화들로 시작된 왕국이기에 역사적인 사실들이 불분 명하다. 주전 7,8세기 구약시대의 바벨론 왕국의 키리아트(Kiriath)족 이 동쪽으로 이주해 오면서 카투만두 근방에 정착하여 키라티(Kirati) 왕국을 세우며, 얄람버(Yalamber)가 최초의 왕이 된다. 주전 6세기 네팔 서쪽의 룸비니(Lumbini)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나며, 주전 272-232년 인도의 아쇼카 왕국에 의하여 불교가 네팔에 전해진다. 그 당시 카투만두 부근에 건축된 사원들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주후 3세기 중엽에는 인도 파트나 부근에서 이주해온 베나레(Benares)족 에 의해 리차비(Licchavis)왕국이 세워진다. 8세기 중엽에는 타구리 (Takuri)왕조가 세워지고 인도와 티벳을 통한 상업이 성행한다. 13세기 인도로부터 이슬람문화가 들어오고 고르카 지방에서는 샤 (Shah)와조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12-18세기까지는 말라 왕조가 번성하며, 1662년 최초로 로마 카톨릭 신부들의 방문을 받는다. 18세 기 중엽 고르카 왕국의 프리비티 나라얀사 왕에 의해 네팔의 80여개 의 소왕국이 통일되기 시작하며, 1768년 그가 왕위에 오른 후에 모든 외국인들을 국외로 추방한다. 고르카 왕국은 그후 1814-1816년까지 2 년간 인도에 주둔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전쟁을 하여 남쪽 국토의 일부를 주고 협정을 맺으며, 극소수의 영국인을 제외하고는 어느 외 국인도 네팔에 저주할 수 없었다.
1946년 라가나에 의한 수상정치가 시작도어 1950년까지 계속되면 서 철저한 쇄국정책으로 500-600만명의 백성을 잠재웠던 시기이다. 1950년 11월 유명무실하게 존재했던 왕 트리부반이 인도로 망명하며, 인도와 서방세력의 도움으로 왕정은 다시 복구된다. 1851년 트리부만 왕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고 국민들에게 자유가 주어진다. 이때부터 선교의 문이 열려지고 국경 근방에 존재했던 많은 선교부들이 입국 을 한다.
4) 정치와 외교
네팔은 유일한 힌두교 왕국이고 통치형태 역시 왕정이다. 왕은 힌 두교 비누스신의 화산으로 입법, 사법, 행정부의 수반이며, 군대의 총 사령관이다.
그 동안 국회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1990년 4월 폭동 이후 처음으 로 선거를 실시하여 국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절대 권한이 왕에게 있다. 전국을 5개 지방과 14개 구역, 75개 군으로 구분하여 지역발전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외교정책은 인도와 중공 사이에 있는 나라로 비동맹국가이다. 두강 대국 사이에서 지역의 평화(peace of zone)를 주장하며, 모든 나라와 개방적인 국교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남북한 대사관이 모두 수도 카투 만두에 있다. 문호개방과 더불어 서서히 개혁의 바람이 불어와 네팔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왕의 주도하에 중세 의 함흑시대를 탈피하려 노력하며 새나라 건설을 위하여 모든 자원 을 투자한다. 때문에 외국선교부들이 국가발전 명목으로 의료사업이 나 사회사업 명목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5) 경제
네팔은 세계 10대 빈곤국중의 하나이다. 국민 총생산량(1986/87)은 33억불로 1인당 국민소득은 160뷸이다. 1951년 이후 교육, 보건, 전 기, 교통 등에 놀라운 발전을 하였으며, 이것이 질과 양에서는 보잘 것 없지만, 잠자는 이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든 무역의 1/3 이상이 인도와의 교역이다. 주로 원자재를 수출하고, 석유, 철강, 공 산품 등을 수입한다. 때문에 무역적자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공산 업인구 1%에 중공업은 전무한 상태이다. 약간의 중소기업이 타라이 지역에 존재하나 현대화되지 못했으며, 75,000개 정도의 가내 수공업 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전 국토의 16%가 경작지인데 농업인구는 94%이다. 농산품이 국민 총생산량의 61%를 차지하며, 총수출량의 3/4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63%, 옥수수 18.5%, 밀 15.5%, 조 3% 등이다. 주요 성장사업은 관광사업으로 연간 미화 5백만불의 수입을 올리 며, 외화 수입의 다른 부분은 인도와 영국군의 고용군대로 받는 월급 인 것이다.
네팔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은 자금, 기술 부족뿐만 아니라, 언어불 통, 도로사정,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 등에서 오는 문제들오 기술, 자 금 지원은 물론 예수님에 의하여 하루 속히 하나되는 통합작업이 더 욱 시급하기에 이를 위한 많은 전문직 기술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네팔의 문맹율은 여자 88%, 남자 66%이며, 개인당 연평균 교육비 가 미화 4불(한화 2,100원)이다. 1950년에 네팔에는 교육받는 자가 1%도 못되었다. 1961년에는 9%로 증가했고 1971년에는 13%, 현재에 는 25% 정도(국민학교 남자)로 증가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아직 도 많은 아동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기존 학교에서도 68%의 교사들이 정규과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기존 학교에서도 68%의 교 사들이 정규과정을 거치지 못한 선생님들이고, 어린이의 35%만이 국 민학교를 마치며, 79%으 학교 건물이 비만 오면 새는 열악한 형편이 다. 전혀 학교가 없는 지역이 부지기수이고, 있다 하여도 거눌 한 칸 에서 양쪽벽을 바라보며 교사 한 명이 지도하는 곳이 많다. 학생들은 과학과 영어, 음악, 체육에 대한 흥미가 대단하지만 교사진이 전적으 로 부족한 상황이다. 예능분야는 아예 과목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호가 개방되고 선교단체들의 공헌으로 문맹율은 대단히 줄었으며, 정부 역시 전예산의 12%를 교육비로 투자하고 있다. 때문에 교육선 교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으며,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선교이기에 선교의 열매는 클 것이다.
7) 의료와 보건(1989년 통계)
평균 수명 46세이고 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며, 가장 좋은 약은 음식이다. 가장 많은 질병으로는 결핵, 천영두, 위염, 뇌막 염, 갑성선염, 나병 등이며, 영양실조, 열병, 설사 등은 질병의 테두리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유아 사망율은 54%로 5세 이전에 사망하며, 그중 15%가 산모가 영양실조로 조산을 한다. 의료인력 부족으로 질 병시 의사보다 마법사나 힌두교 의사를 찾아간다. 8) 힌두교가 국교로 90%이고, 불교 7%, 이슬람 2%, 기타 1%로 기 독교는 0.3%이다. 카투만두에는 힌두교와 불교의 신전이나 사원이 대단히 많다. 우상의 수가 국민의 수보다 많다. (3억3천의 신이 있다) 종교와 정치는 깊이 혼합된 상태로 개종은 절대불가하다. 60여개의 종교행사와 축제로 연중 120일 소요된다.
1) 선교 역사의 시작
오랜 역사를 가진 네팔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닫혀진 나라였다. 1602년 티벳으로 향하던 로마 카톨릭 신부들에 의해 기독교를 접촉 한 흔적이 있지만 실제로 선교역사는 1715년부터 시작된다. 1704년 프란치스코와 카프친 수도사 6명은 로마에서 출발하여 4명은 기근, 질병으로 죽고 2명은 카투만두에 도착하여 4년반 동안 선교지를 개 척하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인도로 후진한다. 인도에 서 선교본부를 설치 정립한 뒤 한 팀이 1714년 카투만두 계곡에 도 착하게 된다. 처음의 사역은 왕의 허락하에서 시작되었고, 그후 박타 플 왕국으로 자리를 옮겨 의료사업, 사회사업, 복음전파사업을 한다. 1731년 후에 이들은 다시 인도로 후진하게 되며 1737년에는 두왕국 의 초청을 받아 입국하게 되며, 1744년에는 파탄 왕국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1737년부터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서화된 서약 서를 받았다.
티벳의 사역은 더욱 어려운 내륙의 상황에서도 계속되다가 결국 라마교의 심한 박해와 반대로 문을 닫고 1745년 네팔 사역과 연합하 게 된다. 외국의 지식과 기술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왕들은 선교사 들의 종교적인 활동에 대해 무관한 자세로 복음번파와 사회봉사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힌구교의 신들을 모욕했다는 이유 로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가야 했다. 힌두교의 신들은 선교사들이 싫어 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재앙이 온다고 생각하여 승려계급인 브라만 에 의해 거부되고 결국은 스파이 누명을 쓰게 된다. 1768년가지 3개 의 왕국에서 29명의 카프친 선교사들이 1-16년까지의 다양한 형태로 54년간 머물면서 생활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결국은 추방을 당한다. 선교사들의 생활은 가난과 독신 속에서 헌신하고 복종해야 하는 힘 든 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친구로, 교사로, 사회사업가와 의사로 일하면서 어느 곳에서나 누구 에게나 복음을 전했고 악습으로부터 구하였다. 1769년 소왕국을 통일 한 고르카 왕국은 선교사들에게 스파이 누명을 씌워 신자 60명과 함 께 네팔을 떠나게 한다.
2) 선교의 암흑기
통일된 고르카 왕국은 국력 강화에 전력했으며, 1814년에는 인도에 주둔하였던 영국군과의 전쟁에서 네팔 땅 1/3을 떼어주고 영국군과 협상을 맺으며, 외국인을 모두 추장하며,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쇄국 정책을 해나갔다. 1923년까지는 국빈, 상인들까지도 삼엄한 경 계속 에서 하루를 제대로 머물 수가 없었는데 이는 부라만 계급에 의하 여 더욱 강화되었다.
1870년 네팔의 국경 부근 다질링에서는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이 교 육사업을 시작하여 2,000명의 신자를 배출하였다. 네팔의 최초 개신 교 개종자는 강가 프라사드 프라단(Ganga Prasade Pradha)이다. 수 크만(Sukhman)은 다질링 칼리퐁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1892년 콜레 라로 세상을 떠났으며, 강가는 인도 여러 곳에서 가르치며 기독교 문 학을 번역한다. 네팔 국경 부근에서 기독교인이 된 네팔 사람들은 첫 세대의 그리스도인들로서 조국으로 돌아가지를 열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1892년에는 다질랑에서 고르타 선교부를 세우고 헌금을 모아 네팔에서 선교를 파송하였다. 1920년대 초 히말라야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다 싱(Sundah Singh)은 1914년 다질링을 통해 네팔에 들어 와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결국은 잉도로 추방을 당한다. 그 외에도 인도 국경에서 많은 선교부들이 네팔의 목음을 위 하여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네팔과 티벳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 다. 1900년부터 1950년까지 네팔 국경에 존재했던 선교부 수는 무려 25개나 되며, 이들을 통해 네팔인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자국 복음화에 힘쓰며, 밀알이 되었던 것이다.
3) 문호 개방시대
1950년 그 당시 왕이었던 트리브반 샤(Tribhuban Shah)왕이 인도 로 망명하여 인도, 영국, 미국 등의 도움을 받고, 1951년 2월 국민의 대단한 환영 속에서 입국한다. 그는 입국한 후 문호를 개방하고 왕구 건을 바로 잡으며, 인도의 도움으로 영국형태의 왕국 민주주의를 이 루어 나가는 것이다. 문호개방과 동시에 네팔 국경에 존재했던 많은 선교부들은 정부의 허락을 받아 또는 허락없이 네팔에 입국하여 의 료, 교육, 경제개발을 기본으로 한 선교전략을 세워 사역을 시작한다. 1950년 남인도의 성 도마교회에서 순례를 시작한 2명의 청년에 의 해 카투만두와 포카라 등에서 아쉬람 형식의 성격공부가 시작되고 신자들이 양육된다. 이것이 네팔교회의 초석이 되며, 1952년 포카라 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다.
1966년 위클리프 번역 선교회가 10개 부족어로 성경번역을 시작하 였다. 1963년 신약과 시편이 성공회에 의해 개역되고 1977년에는 신 구약 모두가 현대어로 개역되어 현재 사용하는 성경이 되었다. 1970 면 네와리 언오로 요한복음이 번역되었으며, 현재는 4개의 단체가 성 경을 번역 출판하고 있다.
1963년 국법에 의해 개종하는 것은 불법으로 되어 있다. 조상 대대 로 계승되는 종교를 따를 시에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종교를 남에게 전할 수도 없고, 자기의 종교로부터 다른 종교 로 개종할 수도 없다. 공산국가도 이슬람 국가도 아니면서 전도와 종 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로 선교사들이나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남 의 종교에 대하여 무관심히다. 국법에 의하면 기독교로 개종할시 1년 의 형을 받으며, 기독교를 전파하거나 기독교로 인해 그들의 전통의 식, 종교행사 등을 거부할시는 3년, 다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 시는 6년의 옥살이가 구형된다. 출옥 후에도 자신은 기독교인으로 존재할 수 있으나, 남에게 전도할 수도 없고, 직장과 카스트 속에서 축출당 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정부의 허락하에 존재하는 선교기관들은 정부와의 계약과 협의된 관계 속에서 활동해야 하고 전도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또 개인자격으로나 정부의 허락없이 활동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으며, 활동을 하다가 발각되면 감옥에 가거가 추방을 당하는 것이다.
네팔의 기독교와 교회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개종이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지 않으며, 기독교를 공개 하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 전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식 적인 집계를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O.M. 선교단체에 의하면 6만 명이 기독교인이요, 네팔기독교협회는 약 3만명으로 계산하는데 네팔 정부는 3,891명(남 2,113명, 여 1,778명)으로 집계함을 기독교 선교를 공식화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의도인 것으로 생각된다. 수도 카투만 두에는 현재 23개의 교회가 있고, 그중 4-5개는 400여명 이상 모이는 교회이다. 전국적으로 교회수가 200-300개로 집계 되고 있다.
1) 카톨릭 선교부
카톨릭 선교부의 사역은 이미 1714년부터 시작되어 있다. 이들은 480여개의 교육기관을 인도에 세웠다. 그 외에도 네팔의 문화 연구조 사, 문서발행, 사회사업 등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한 사역을 하고 있다. 카톨릭 선교부는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며, 토착화된 교구나 사제, 수녀회도 없다. 외국 출신 예수회 신부들 13명과 외국 출신의 마리아회 수녀 15명이 주로 카투만두에서 사역하고 있다.
2) 개신교 선교부
약 55개의 선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부의 허락을 받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입국하여 의료, 교육, 경제발전 등에 투자하 면서 정부의 감사 속에서 사역하는 팀과 개인자격으로 허락없이 입 국하여 사역하는데 발각되면 감옥에 가거나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인정된 선교단체는 8개로 2개는 인도 선교부들이다. 비인정된 선교 단체들은 O.M, Y.W.A.M, NEW LIFE 등 40여 개가 존재하고 여기 에는 이단 종파인 신의 자녀들, 여로와의 증인, 몰몬교 등도 속해 있 다.
3) 성결교단의 선교
성결교단의 네팔선교는 1991년 6월에 백종윤, 이숙 선교사를 파송 함으로 시작되었다. 백 선교사 가족의 주된 목적은 네팔의 카투만두 에 있는 한 중고등학교를 인수하여 교육사업을 전개함으로 복음선교 의 접촉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백 선교사는 1991년 12월에 이 학교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인수하여 1992년 2월 23일부터 5가지 학과목을 더 신설하고 제2외국어 중에 영어, 네팔어, 한국어 과목을 포함시킨 가운데 개강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학교는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 는 것을 목표로 수준있는 미션계통의 학교로 성장시킬 방침을 가지 고 있다.
이처럼 교육사업을 전개해 나감과 동시에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가 능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느 일도 추진하여 1991년에는 백두산 높 이의 두배 정도되는 고산지대의 한 마을에 "고운니"교회를 개척하기 로 했다. "고운니"교회에서 동역하는 현지인 전도사는 사무엘과 미니 구말라이이다. 이처럼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 는 일은 계속 추진할 생각이다. 1992년 3월에도 카투만두 근교에 한 교회를 시작할 예정으로 있다.
1990년 4월 폭동(민주화 바람) 후 감옥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모두 풀려났다. 그리고 5월에는 선거도 실시되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허락한 것은 아니나 빠른 속도로 개방화되어 가는 것 을 볼 수 있다. 왕이 약간의 권한을 내각에 넘겨줬고 각료들은 외국 에서 신학문을 한 사람들이다. 앞으로 정치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수 도 카투만두에는 이른바 현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식층에 서는 맹목적인 힌두교 신앙이나 숙명적인 카스트 제도에 대해 회의 를 갖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서 기독교 선교도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된다. 작년 이후 선교사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볼 수 있다. 얼마 안가면 정식 신 학교도 생길 것 같고, 십자가를 부착한 예배당 건축도 허락될 것이 다. 현재도 학생 비자를 받아 입국해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이 많고, 사회사업이나 의료, 교육사업을 외국인도 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다.
또한 이 나라가 인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데 인도가 점 차 기독교가 왕성해져 가고 있고, 신학교가 각처에 생기고 있는 형편 이므로 그 영향이 미치게 될 것으로 본다. 현재 네팔에서 인도에 있 는 신학교에 유학하고 있는 자가 상당수에 이르고 싱가폴이나 한국 에도 신학공부를 위해 나가 있는 자가 있다. 만일 이 마라가 기독교 복음으로 정복되면 8억에 가까운 힌구교인 들에게 상징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힌두교의 5대 성지가 모두 다 네팔 땅에 있고, 힌두교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힌두교 왕국인 이 나라도 멀지 않아 한국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제목 : < 네팔 > 도티 수정병원 자료원 : 기성 국가명 : 네팔 발행일 : 94년 04월 29일 |
선교의 동역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기도와 사랑의 헌금 으로 후원해 주신 여러분을 늘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항상 기 도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빠르게만 지나가는 시간인지 일속에 묻혀 살다 보니 여러분께 소식 전하는 일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 의 개원식 준비관계로 한달 반이나 그 일에 매달렸습니다. 이번 기도편 지에는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리기 위해 그 소식을 자세히 전하 기로 하겠습니다.
네팔 14개도(Zone)중에서 가장 극서쪽에 위치한 "도티"지역은 도청, 시청 소재지가 있는 곳입니다. 대낮에도 호랑이와 표범이 나오는 지역으 로 아프리카 밀림과 같은 지극히 낙후된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인구가 32만명이나 되는데도 진료소가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매년 여름철엔 전 염병(장티푸스, 콜레라 등)으로 300명 죽는 곳입니다. 어떤 곳에는 마을 사람 전체가 다 죽어 마을 전체가 없어져 버린 곳도 있습니다. 네팔 전역 에서 의료와 교육, 교통, 경제 상황이 가장 뒤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얼마전 까지만 해도 여름철 우기가 되면 다른 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육 로가 차단되어 2개도가 고립되어 버림으로 네팔 사람들도 그곳은 네팔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선교 상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곳에 금번 수정성결교회(조일래목사님)의 후원으로 선교를 위한 도 티-수정병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삼부토건설회사의 도움으로 내부 건평 200평이 넘는 큼직한 건물 3동과 1,200평의 마당이 준비되었습니다. 건물 도 아름답고 내부도 종합병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됩니다. 네팔 의 달력으로 2051년이 새해인 지난 4월 13일에 감동적인 개원식을 하였 습니다. 제가 네팔에 3년 정도 있는 동안 다양한 종류의 행사를 치뤄보았 고, 국내에 있을 때에도 많은 행사를 주관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만 금번 도티-수정병원의 개원식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멋있었습니다. 지역의 위치 하고 있는 여건상 조그마한 일 하나 하기에도 쉽지 않고 악조건 뿐인 오 지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멋있는 개원식을 가졌습니다. 감사한 일들 이 너무 많았습니다. 특별히 개원식 전 병원 진찰실에서 우리 선교사와 한인 10여명이 모여 개원예배를 드렸고, 서울에서 오신 조일래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순간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리는 시 간 같았으며, 새로운 선교의 비젼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은 필요한 것도 많고, 의료 선교사 인력이나 의료 장비가 많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지만 그래도 매일 60여명씩 환자가 몰려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환자를 보고 있습니다. 우기 때가 되면 많은 환자들을 어떻게 해 야하나 하고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인이고, 네팔인이고, 심지 어 서양 선교사들까지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가장 필요한 지역에 가 장 적합한 일로 아름다운 선교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지인 전도자 1가정이 그곳으로 파송되어 정착하여 선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여 러분의 뜨거운 기도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호산나 재단에는 현재 8개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외에도 직접선교 를 하고 있는 교회 개척과 목회자 훈련원, 유지재단 등이 있습니다. 재 단 프로젝트 중에서는 1개 프로젝트만 선교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여러분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신 귀한 선교의 결정체 들입니다. 우리 가 늘 소지하고 다니며 기도하는 "기도제목"들을 동봉하오니 꼭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작고 큰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 님의 은혜로 모든 일들이 놀라웁도록 튼튼히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여 러분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고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해서 기 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주안에서 승리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1. 재단법인 호산나 :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선교가 활성화 되도록. 운영비를 위해 2. 따라분자 초.중.고등학교 : 영혼구원의 터전이 되도록 3. 가나안 초.중.고등학교 : 100% mission school 되도 록. 영재학 교, 후원문제 4. Joy House(C. W. C) : 아이들의 영혼, 건강을 위하 여. 한국인 선 교사를 보내주시도록 5. 경희 - 네팔 친선병원(선교의 기지가 되도록. 필요 한 선교사를 보내주시도록) 6. 교회 개척 프로젝트 : 고운리 교회, 반스바리교회, 고운리 제 1 교회, 힐레중부교회, 빼울리 개봉, 동네 팔 천호교회, 당쿠타교회, 둠레 이교회, 나라얀가드 교회, 동전주 제일, 마가르코트 길갈교회, 새생명교 회, 토피아교회, 소망교회, 전도처들을 위해 7. 목회자 훈련원(P.M.T.C) : 목회자들의 지적, 영적 성 장이 이루어 지도록. 후원문제 8. 유지재단(N.E.H.C) : 정부의 승인을 얻도록. 선교 재 산이 잘 보호 되도록 9. Nancy 프로젝트(장학사업) : 선교의 열매가 맺혀지도록 10. 네팔간지 프로젝트(고아원) : 아이들의 영혼과 건 강을 위해. 선교가 활성화 되도록. 후원문제 11. 도티 수정병원 : 의료 선교인력과 장비를 위하여 12. 목요모임을 위하여 13. 선교사들 : 성령 충만, 건강, 언어, 자녀. 필요한 선교장비. 후 원교회 위해 14. 기타 : 이곳에 와서 함께 일할 선교사를 보내 주 시도록 1994년 4월 29일 네팔에서 백 0 0 올림
제목 : <선교지에서 온 편지> 네팔 안아삥 선교사 자료원 : 기성 / 선교편지 제9호 국가명 : 네팔 발행일 : 94년 10월 21일 |
동역자님들께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좋은 우리 가 확신하노라"
- 빌립보서 1장 6절 -
기다리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만남의 장소에 나 가듯, 저는 네팔 카투만두 공항에 동일한 마음으로 도착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사라지고 정겹고 반가운 만남 이었습니다. 만남 뒤에는 사귐이 있고, 사귐 뒤에는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듯 앞으로의 만남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약품 한가지를 구입하기 위해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하루를 소비해야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데 익숙한 저는 너무도 답답했으나, 선배 선 교사님들이 이것 뿐 아니라 늘 모든 일들이 이와 같다는 말씀을 하실 때, 내가 정말 네팔 땅에 와 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Joy House의 어린이들이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공부를 마치고 오후엔 치료하기 위해 다니고 있습니다. 부스럼이나 상처들이 머리부터 온몸에 퍼져있고, 작은 질병들이 오랜기간 방치 되어 왔기 때문에 주사와 소독을 반복하 면서 조금씩 치료하고 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부터 학교까지 어른도 힘든 길을 어린아이들이 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르내리기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이 매 우 좋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이 육적이나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 네팔 땅에 복 음전파 사역에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하게 될 때를 기대하게 됩니다.
기도제목
1. 2-3개월 짧은 언어공부 기간동안 많은 진보가 있기를
2. 지난주 도티-수정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삼부건설 이 9월에 철수하게되면, 전기와 약품, 식품 등의 운반이 어렵다고 합니다. 발전기, 차량문제를 위해
1994년 7월 31일 네 팔 안 아 삥 선교사
제목 : <선교지에서 온 편지> 네팔 김킹아선교사 자료원 : 기성 / 선교편지 제9호 국가명 : 네팔 발행일 : 94년 10월 21일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강권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기도의 동역자님 들께 기쁨으로 문안드립니다. 요즘 이곳 네팔 날씨는 우기 막바지에 이르러 이번 주간 내내 밤낮없이 연이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더싸인" 페스티벌
이제 약 20일 후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축제인 "더싸인"이 시작됩니다. 우리나 라의 추석과 흡사한 축제로서 귀향길을 위한 행렬이 줄을 잇고, 관공서나 직장인 모두 약 15일간의 휴가도 시작되고, 학교도 한달동안 방학에 들어가고, 이 한달 동안은 모든일이 마비되는 어마어마한 축제입니다. 일부 어떤 사람들은 이때 즐 기기 위한 여비및 오락비를 마련하고자 주로 외국인 집을 대상으로 도둑질을 합 니다. 얼마전에는 우리 호산나 재단의 디렉터인 백목사님댁에 4인조 도둑이 들었 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으나 우리모두 매우 놀랐습니 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축제가 거의 흰두교와 관련되어 있으며, 축제일로만 쉬는날 이 1년에 120일이나 된다고 합니다. 복음이 아니고는 이나라 사람들의 변화를 기 대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소천 소식
이곳 네팔 선교지로 파송된 지 한달만에 건강하시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소천 소 식을 전해 들어야 했습니다. 선교지에서 듣는 그 소식은 실로 심장이 멎는 듯한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구원받으셨다는 확신가운데 주님의 위로와 동 역자님들의 진정한 위로와 권면이 큰 용기가 되어 슬픔을 딛고 더 강하게 일어 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선교사로서의 길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칠 찌라도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주어진 사명 승리함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도티-수정병원 사역
저는 이곳 호산나 재단의 협력 선교사로서 의료분야의 전문인 선교사(간호사)로 파송받았습니다. 호산나
재단은 백종윤 목사님을 중심으로 하여 가족 선교사님 세 가정과 저를 포함한 세명의 싱글 선교사가 함께 협력하여 교회개척 및 목회자 훈련, 학교, 병원, 고아 원(죠이하우스) 등 사회사역을 통한 선교의 돌파구를 모색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호산나 재단의 이 많은 사역가운데 저는 도티-수정병원에서 안은숙 선교사와 함 께 간호사로 사역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나라 삼부토건에서 도로공사를 하면서 숙소로 지었던 건물을 네팔 정부의 요청에 의해 병원으로 용도를 변경하 여 수정병원이란 이름으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개원이래 지금까지는 삼부토건 의 차, 발전기 외에도 많은 도움으로 병원을 운영해 왔으나, 삼부토건이 철수하 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전기문제를 해결 해야 할 발전기와 병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X-ray기구와 비행기에서 내려서 병원까지의 먼길을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막막한 상태입니다. 기동력이 없어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습니다.
언어훈련
카투만두 백목사님 댁에 머물며 언어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언어훈련은 주로 오 전중에 마치고 오후에는 죠이하우스에 올라가 아이들 치료도 해주고, 머리도 깍 아주고, 페인트칠도 하면서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언어훈련을 마치 고 감당하게 될 의료사역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의 삶이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늘 승리하시길 저 또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994. 9. 20.
네팔에서 김 킹 아 드림
제목 : [네팔] 히말라야 산악비행 코스 자료원 : 조선일보 발행일 : 97년 04월 03일 |
네팔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름은 [세계의 지붕]. 해발 8,000m 이 상 거봉 14개 가운데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개가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 에 있다. 하도 거봉들이 많아 해발 6,000m 이하 산들은 산(mountain)이 아니라 언덕(hill)이라 부른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사는 곳]. 눈 역시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경원의 대상인 셈이다. 그 래서 고산 트레킹(trekking)은 네팔 여행의 필수코스다. 하지만 일기가 좋은 11∼2월에만 가능하는데다 최소 5박 이상이며 개인일 경우 카트만 두이민국 허가를 얻어야하는 등 준비가 만만치 않다.
[마운틴 플라이트(mountain flight)]는 지치고 바쁜 여행자가 장엄 한 히말라야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매일 아침 7시 24 인승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공항을 이륙해 7,000m 상공에서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옆 하늘을 왕복한다. [에베레스트 에어] [로열 네팔] 등 6개 항공사가 운영중이며 예약은 호텔이나 여행사에서 할 수 있다. 한시간 소요. 요금은 99달러. 구름이 끼면 전액 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