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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파평윤씨태위공파 원문보기 글쓴이: 윤종범
坡平尹氏 尙書臺 追遠壇
이곳은 우리 始祖 太師公의 玄孫이신 高麗拓地鎭國功臣守太保門下侍中 文肅公 諱 瓘께서 尙書時節에 書院과 亭子를 지어 놓고 餘閑을 틈타 高朋賢友와 더불어 詩文과 休養을 즐기시던 別邸로 尙書臺라 불러 왔으며 그 후로 屢代에 걸쳐 學問을 硏磨하며 忠君報國하신 列先祖의 靈魂이 서린 곳이며 또한 忠孝傳家로 後學의 標本이 되었으니 後世에 와서도 坡州儒生 李集秀 辛師魯 等 많은 선비들이 聯名하여 判書 金相休의 撰으로 文肅公書院을 세우려고 請願한 上疏文은 句句節節이 公의 偉 業을 明明羅列하였으니 後孫으로써 感歎不己며 이곳을 元體復古하여 聖址로 永久保存하여야 될 일이다 애석하게도 六世 文康公 諱 彦頤 七世 侍郞公 諱 惇信 八世 留守公 諱 啇季 九世 綠事公 諱 復元 十世 御使公 諱 純의 五位 墳墓를 失傳하여 寓慕하지 못하매 一八三八年 戊戌에 鈴原君行直과 楊州宗人 之豊이 相議 끝에 列先祖의 靈魂이 서린 이곳을 擇하여 臺址를 改修하고 古禮追遠儀로 壇을 모아 五位를 奉享하다가 後에 羲培秉軾이 臺上에 立石하고 禮判 滋承의 撰과 德一의 序文 및 各 宗中의 獻誠으로 齊室과 豊碑 및 諸般器物을 구비하였으며 之豊秀植外 諸宗人이 奉先稧를 設立하여 惇의 序文과 規約을 遵守 位土를 마련 漸次 盛大히 奉享하였다 壇邊에 文肅公께서 手植하신 四生四死의 千霜槐木 數株中 一株를 朴慶善의 伐採와 誣告로 起訟되어 判書 定鉉 叅判 敎成襸 承旨 行福 堉行模 秉昇 等 公人 五十六人과 其外 多數宗人 및 坡州 儒生들의 總蹶起로 八年만인 一八五八年 戊午에 勝訴하여 慶善은 黑山島에 其子元中은 慶興으로 流配했으니 참으로 近祖의 心靈까지 結集된 由緖깊은 곳이다 6․25動亂으로 壇所와 齋室이 파괴된 후 宇景 奭勳 周旋下에 齋室을 再建하고 壇所를 擴張하여 五位外에 尙書公 諱 宗諤과 忠簡公 諱 承順을 立碑하였으며 後에 尙書公은 移碑하고 落花岩 碑竪하여 招慰熊靈하였으며 後에 南儀 準模 熙炳의 주선으로 齋室 重修와 壇墻을 改築하였으며 太尉公 上護軍公 忠景公 派宗과 中央親睦會의 祭器奉納 等 其外 協力 宗人이 不可勝數다 歲月이 흐름에 風雨로 字刻이 磨滅되었으므로 中央親睦會에서 前封位碑 改竪와 同時에 墳墓在北하여 望祭로 모시던 十一世 文顯公 諱 珤 十二世 良簡公 諱 安淑 十三世 鈴平君 諱 陟과 烈婦熊碑도 亦竪하고 壇外에 立石하여 上書臺와 追遠壇의 由來를 略記하여 願永世不忘하노라
始祖誕降 一0九九 西紀一九九一 辛未 後孫 坡平尹氏大宗會副會長 都有司 太尉公派會長 璇基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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