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민이 세운 또 다른 발해 “키리키스”/ 정기철
내가 키리키스 공화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9년 10월 초순이었다.
나는 선교사님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한 아름다운 동양의 스위스
키리키스를 찾기 위하여 중앙아시아 지도를 펼쳐 보았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중국 서쪽에 붙은 소국 키리키스를 찾아냈다.
엘에이 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여
다음날 새벽에 한국에 도착한 후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공항에 도착한 것은 깜깜한 밤이었다.
아직도 소련군 제복을 입고 있는 공항직원들은 얼음처럼 쌀쌀 맞았다.
나는 영어도 한국어도 통하지 않은 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급행료 50불을 주고 쥐어주고 통관 수속을 마쳤다.
선교사님은 모슬렘 땅에서 혹시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며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새벽 두시쯤 알마티를 떠난 우리는 사막 길을 쉬지 않고 달려
동이 틀 무렵이 되서야 겨우 목적지인
키리키스 공화국의 수도인 비쉬켁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슴푸레한 도시에 허름한 기와집과 시민 아파트들이 보이고
거리엔 소련에서 만들었다는 구형 피아트 자동차들이 굴러다닌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 전주시에 들어섰다는 착각이 들었다.
눈이 덮인 산정아래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초원이 있고
그곳에서 양을 치는 순진한 목동과 아리따운 주인집 아가씨가
수채화 같은 사랑을 꽃피우는 알프스 산을 기대했었는데…….
나는 밤낮이 두 번 바뀌도록 긴 여행 동안 내내 부풀었던 기대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한순간에 빠져 나갔다.
1주일의 선교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이스쿨 호수로 로 향하였다.
고물 도요타 미니밴을 빌려서 털털거리며 국도를 달리는 동안
길가에 늘어선 포플러 가로수들이 노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긴다.
개천에서 고기를 잡던 아이들이 손바닥만 한 안드레 고기를
몇 마리씩 들고 서서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사라고 유혹을 한다.
노란 들판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이 보이고
횡단하여 가는 소떼들로 인하여 차들이 모두 멈추기도 한다.
중국과 국경을 하고 있는 천산의 이스쿨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거울처럼 맑은 이스쿨 호수에는 만년설이 덮인 하얀 천산이 잠겨있고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 숲 사이로 예쁜 빨간 지붕의 별장들이 보인다.
브레즈네프가 묵었다는 별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아 활짝 피어있는 장미꽃 화원을 바라보며
목장에서 방금 짜온 우유를 끊여 만든 수프에
쇠꼬챙이에 찔러서 구운 양고기 요리 맛이 그만이다.
키르키스 공화국은 남북한을 합친 것 만한 면적에
전체 인구는 500만을 조금 넘고 수도인 비쉬켁시에
150만 명의 인구가 몰려 살고 있다.
김지하 시인은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 에서
키리키스인은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들의 얼굴과 생김새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풍물과 풍습도 우리와 많이 비슷함을 알았다.
사서에는 서기 668년에 신라와의 협공으로 평양성이 함락시킨 후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만주에서 시베리아 까지 호령하였던
강성대국 고구려의 재등장을 두려워하여 고구려 유민들을 모두
중앙아시아 키리키스와 카스피 해 지역 등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다한다.
키리키스의 "키리"는 고구려의 "고리" "커리"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또 졸본부족의 졸본에서 유래했다는"촐본"이라는 이름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우리처럼 대가족 제도를 지키고 있으며
어른들을 공경하고 정이 많으며 손님접대를 즐기는 민족 이다.
또 젊은 총각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보자기로 싸서
훔쳐와 결혼을 하는 보쌈풍습과 비슷한 칼림이라는 결혼 제도도 있다.
귀국 전날 밤 고려인인 교회 할머니의 회갑 잔치에 참석을 하였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연해주에서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한다.
그런데 갑자기 시작한 스탈린의 이민족 이주정책으로
들판에 누런 곡식들을 추수하지도 못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강제로 기차 화물칸에 실리어서 소 돼지처럼 먹고 자고 용변도 보며
중앙아시아 키리키스까지 끌려오게 되었다 한다.
또 눈물과 한숨 속에 3개월씩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고 죽음의 여행 끝에
겨우 생명을 유지한 사람들은 눈이 하얗게 덮이고
사람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 내팽개쳐졌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언젠가 돌아갈 조국을 생각하며
꽁꽁 언 땅을 파서 움막을 짓고 겨울을 지내고
봄에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려 농사를 지었다한다.
구소련 시절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는 이 할머니는
우리가 장선교사님 만나 예수를 믿었더니만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하셔서 아들이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키리키스 군의관중 처음으로
미국의 의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을 한다.
아프간 전쟁으로 인하여 키르키스에
미군들이 주둔함으로 이젠 비쉬켁시도 많이 변하였다.
도시 전체가 공사를 하느라 중장비들의 소리로 요란하고
하루가 다르게 골목마다 새로운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백화점마다 가득한 서방 물품들이 손님들을 유혹하고
길거리엔 쭉쭉 빠진 아가씨들이 예쁜 몸매를 자랑하며 활보한다.
선교 센터에서 일하는 스텝이 친구가 금광을 불하 받았는데
합자로 개발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투자를 권한다.
KGB 국장이라는 사람이 고려인 식당에 우리를 초청하고
키리키스 정부는 서방세계에 자유롭게 투자를 개방하며
수익금의 환수를 보장한다며 유전 개발과 도시개발에
미국과 한국의 투자가들을 유치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미모의 키리키스 아가씨가
유창한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자신은 키리키스에 있는 캐나다 금광회사에서 일하는데
헬리콥터로 현장 출근을 한다고 자랑을 하며 명함을 건네어 준다.
망국의 한을 안고 수천 년의 세월을 말을 타며 양을 기르며 살던
키리키스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유민이 세웠다는 중앙아시아 소국 키리키스가
서방 세계에 문을 활짝 열고 아름다운 동양의 스위스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첫댓글 키르키즈란 나라 이름 안드레 물 고기 생소하네요..헬리콥터로 출근하는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키르키즈도 변모 하고 있군요..문화 풍습 그들의 삶 일상..엿 볼수 있는 기행 수필 감사 드려요 ..
성경에 보면은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고 나누어 주니까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기록이 나오거든요 그 때 안드레라는 제자가 물고기를 가진 아이를 찾아 왔어요. 그 때 가져온 물고기 이름을 안드레 고기라 했대요. 수도인 비쉬켁시에서 광산 까지 3시간 거리인데 너무 꼬불고불해서 본사직원들은 헬기로 출근해서 며칠 있다가 내려오곤 한대요..
그 곳에도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피었었군요... 온 세상 다니며 피운 꽃씨앗들이 어느 날엔가 훌륭한 열매를 맺겠지요... 바쁜 일정에 시간이 금같은 줄을 잘 알고 있는데~~~ 좋은 글 올리느라 빼앗기는 시간 만큼 우리들이 행복하답니다^*^
저도 요즘에 행복 카페덕에 글에 재미붙였답니다.그런데 다음주 부터는 좀 바빠서 .....하지만 종종 들를께요.
동양의 스위스 키리키즈... 뱡기타고 휘리릭 날아 가고 싶다. 금광회사에 다니면 천만원 벌 수 있나요? 천만원 꼭 벌어야 되는데요.^^*
그곳에 가면 개울애서 사금을 막 건져요.모래와 섞여 있거든요.한번 가보세요. 아니면 개구리 잡아서 닭키우는 재형이네 집에 가져다 주세요. 그럼 백마리에 십원줘요.ㅎㅎㅎㅎ
코스모스님 진즉에 소문 캭 내시지않구요,,, 온 산천 도토리줍는 양반들 떡메로 애꿎은 참나무만 패던 솜씨로 몽땅 사금을 거 머시냐 허루 다 갈틴디유....애석허다
ㅋㅋㅋ 개구리 잡아서 재형이 오빠네 집에 갔다줘야지 십원 받으러... ㅋㅋㅋ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어쩌면 말씀의 근원지로 다시인도 하심이 아닐까 싶네요???그분의 큰 뜻을 우리야 알리 없지만~~~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감솨*^^*
키리키즈가 비단길의 중심에 있어요.비단길을 따라 가면 우즈베케스탄 이란 을 거쳐 예루살렘 까지도 갈 수있답니다.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