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다른 이름 '남'- 줌파 라히리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침착한 작가' 라는 평을 들은 라히리의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 라히리 자신은 미국에서 자랐지만, 영국으로 이민온 부모님은 인도 동쪽 지방인 벵골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동양(인도)의 가정교육을 받은 여성이 서양(주로 미국)의 문화와 관습의 괴리(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대립 등)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내용이 자연스레 배어 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관은 독특하다. 너무나 허약한 관계, 가족의 시작. 단편소설 <그저 좋은 사람> 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보자.     작품은 이렇게 관계의 순환을 시작한다.   "애초에 라훌에게 술을 가르친 건 수드하였다. 언젠가 주말에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수드하를 보러 온 라훌은 양철통에서 따른 맥주로 처음으로 술을 마셨고, 다음 날은 구내식당에서 처음으로 커피도 마셨다. 그러더니 두 음료 모두 불쾌하다고 선언했다. 맥주보단 쉬납스가 낫다고 했고 커피엔 각설탕을 열 개쯤 타서 마셨다. 그때가 라훌이 고등학교 11학년이었다. 다음 해 여름 수드하가 집에 갔을 때 라훌은 여섯 깨짜리 맥주 한 팩을 사달라고 했다. 부모님이 코네티컷으로 1박 여행을 간 사이 파티를 한다고 했다. 말이 동생이었지 키가 180센티미터나 됐고, 이젠 교정기도 뺀 데다 입가에 수염도 났고 뺨엔 진한 여드름이 돋았다. 수드하는 근처 주류 판매점에 가서 술을 사서는 라훌이 맥주를 그의 방과 자기 방에 나누어 숨기는 걸 도왔다. 물론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   이후엔 이들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결국 알콜중독자가 되는 동생 라훌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첫째 딸은 자식에게 간섭과 통제를 많이 하는 벵골의 관습을 강요하는 부모의 우려를 넘어 기대를 충족시켰다.   부모보다 영어를 빨리 익힌 딸은 서양사회에 가족이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기까지 한다.   둘째, 아들 라훌은 누나보다 더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무관심하더니 대학에 가면서부터는 학업을 게을리하고 술에 취하는 등 방황을 한다.   부모에게서 독립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 가족들의 약점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던 라훌은 수드하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사실조차 조금도 덮어두지 않았다. "...아빠는  부자가 되려고 인도를 떠났고, 엄마는 다른 할 일이 없었으니까 아빠와 결혼했고..."" 라며 불만투성이이다.   부모님은 라훌이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방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고 TV를 보며 집을 떠나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는 아들의 생활방식에 질렸다. 아이도 딸린 행실이 나쁜 여자와 사귀기도 한다.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지속된다. 반면 수드하는 반듯한 직장을 가지고 연애도 한다. 친절하고 잘 생긴 영국 남자였다. 로저는 수드하와의 결혼식에서 라훌이 한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신사였다. 라훌은 수드하의 결혼식 축사를 하겠다고 마이크를 잡느라 아버지를 밀치고 주정을 했다. "... 라훌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던 그 끔찍한 몇 분 동안이 피로연 사진을 보면 떠오르는 전부였..."을 정도로 수드라는 라훌이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었다.   누나의 결혼식 후에 라훌은 엄마의 예물을 몽땅 훔쳐서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친정 집에서 라훌을 보지 않고 지내는 평온한 나날이 흘렀다.  수드하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 10개월이 된 어느 날 라훌에게서 편지가 왔다. 로저와 사는 수드하의 집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라훌은 술을 끊었고 착한 삼촌 노릇을 했다. 수드하는 라훌을 믿을 수 없었다. 수드하는 라훌이 자신의 인생에서 걸어나가길 간절하게 바랐다. 하지만 그 진심을 남편에게 말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싫어도 남편에게 내보일 수 없는 자기 가족의 흠, 자기편에 대한 애착이었다. 집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라훌은 아이를 너무나 잘 돌봤다. 아슬아슬 불안하게 살피는 수드하의 눈길에도 불구하고 라훌은 조깅을 하고 미술관에 들르고 아이를 잘 다뤘다. 라훌이 떠나기 전 날 아이를 삼촌에게 맡기고 남편과 외출했다. 당연히 일이 터졌다. 라훌은 술을 마시고 침대에 뻗어 있고 아이는 혼자 욕조에 앉아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직 혼자 완전하게 앉지 못하는 아이였고 물도 식어 있었다. 로저는 이성이 있는 남편이었다. 라훌이 아이를 죽일 수 있었다는 걸 지적했다. 수드하는 남편과 싸웠다.   "... 수드하는 심하게 울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말을 했다. 라훌이 유펜에 처음 놀러 왔을 때 라훌은 맥주조차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몇 년 동안 둘이 몰래 술을 감춰놓고 마시던 것이 라훌에겐 놀이가 아니라 삶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 때문에 가족과 멀어지고 그의 인생을 망쳤다는 얘기였다. 로저는 서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수드하를 쳐다봤는데 그녀를 경멸하는 표정 또한 확연했다. "당신 거짓말을 했어.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 안 해, 수드하. 이런 사실을 숨기진 않았을 거라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저는 그녀의 팔에서 아들을 빼앗아 수드하를 라훌과 단둘이 남겨둔 채 방을 나가버렸다....."   수드하는 라훌의 흔적을 치웠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맺는다.   "...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른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내는 남편을 속였다, 자신의 동생을 감싸기 위해. 남편은 자신의 아이를 위험에 빠뜨린 아내를 믿지 못할 것이다.   누나는 동생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동생은 더 이상 용서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신을 대신할 만큼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그저 조금 좋은 사람일 뿐이다.   가족이란 공동체는 개인의 안위와 욕구 앞에서 얼마만큼의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특히 그것이 반사회적일 경우에....     조곤조곤 서술형으로 쓰인 라히리의 작품은 이야기 하기엔 어려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하고 신선한 에피소드가 없고 일상의 작은 균열, 작은 소망 들을 다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숨의 어떤 단편을 연상시키게도 하는 지겨운 면도 있다.   하지만 진정성을 깊숙이 드러내는 면에서 감상이 그저, 좀 좋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