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모르고 민족을 논하지 말며 습진(習陳)이라는 것은 무좀과 같은 피부병(濕疹)의 일종이 아니라 군대의 연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피액수(是疲厄愁--곧 피곤하고 재수없고 근심스러운 일)가 걸린 셈이었지요. 병조의 판서는 이후백(李後白)이었다. 상감의 친열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오위도총부와 병조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으며 특히 병조의 판서인 이후백 대감은 손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빴다. 이번엔 보통 때와 다르다고 늙다리 정승들이 제의해서 정이품 병조판서인 이후백이 직접 임명되었던 것이다. 종사관이라 함은 오날날의 비서관을 뜻하는 것으로 당대의 최고 인재가 선발되는 것이 관례이며 여기에 뽑히게 되면 그 유능함이 천하에 인정되어 출세가 보장됨은 물론 훗날의 정승판서감의 1순위로 지목되는 것이다. 병판 이후백 대감은 이조에서 관리들의 인사기록부를 넘겨 받아가지고 인물들을 점검하여 다음 세 사람을 지명하였다. 정언신(鄭彦信), 류성룡(柳成龍), 권율(權栗). 권율은 현임 우의정인 권철의 아들인데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으나 아버지의 줄이 워낙 튼튼한고로 남행(南行-과거없는 벼슬살이)으로 벼슬길에 올라 있었다. 하고 안심팍팍 근심뚝뚝하였으나 그러한 예측은 첫날부터 여지없이 개박살나고 말았다. 세 종사관이 하루종일 다니면서 해놓은 일이라는 게 보통 사람의 겨우 반 사람 몫이 될까말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후백은 혀를 끌끌 차면서 탄식하였다. 이래서 먹물 먹은 것들한텐 뭔 일을 제대로 못 맡긴다니까! 오위의 어느 위를 보아도 결원이 많아서 편성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임시로 잡색군(雜色軍-집단적으로 관영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반당(伴堂-고급관리의 시중드는 사람들)들을 몽땅 오위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하였으나 실제로 이에 응해 주는 고급관리들이 없었다. 강직하고 명철하며 결기가 강한 이후백 대감은 울화통이 터져서 세 사람의 종사관을 불러다 놓고 숨을 씩씩거리며 째려보다가 하인을 이후백은 세 사람에게 담박 호통을 쳤다. 좀 더 창조적으로 적극적으로 일 좀 할 수 없겠냐 말이다. 내일 퇴청 때까지 이천명으로 만들어 놓지 못하면 모두다 결곤(決棍-곤장)을 면치 못하리라. 닝기미(吝氣米)란 양기가 많이 흡수되어 있다는 신품종 벼로 안남(베트남)에서 개발한 것이고, 조또(早稻)란 일찍 수확한다는 조생품종으로 게다국에서 대한 수출용으로 와세다(早稻田)대학 농대에 의뢰 개발하였기에 조도라 이름한 것이다. 자기네들이 그토록 사정하여도 듣잖던 관리들이 아무리 병판대감이라지만 서찰 한 통에 고분고분해진 건 이상하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상대가 대장의 말을 들을 때하고 종사관의 말을 들을 때하고 이렇게 업무추진에 차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된기라. 여기에 생각이 미친 대감은 신임하는 군관 하나를 은밀히 불렀다. 변씨 문중에서는 검사직을 시켜준 대도 한사코 마다하지. 자네는 내일부터 세 종사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나한테 보고하도록 하게. 눈치채지 않도록 은밀히 하여야 하네. 결정적인 공훈을 세우게 되는 바, 이 당시엔 병조의 일개 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군관은 다음날 세 종사관의 행동거지를 등청할 때부터 퇴청할 때까지 예의 감시하였다가 와서 보고하였다. 또 정종사와 류종사는 아무리 동년(同年 - 같은 해 과거급제)이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십여세나 틀리옵는 만큼 피차 간에 언어수작은 별로 없어서 하루종일 주고받는 말이 열 마디를 넘기지 못하옵니다. 특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지런히 책장들을 뒤적이는 품이 마치 그 책 속에서 그 일을 해결할 묘리라도 찾는 것 같습니다. 권종사는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 보옵기 때문에 무슨 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그가 혼자 책을 보고 있을 때 소인이 넌지시 앞으로 가서 보려니까 족제비 병아리채듯 후다닥 치우는데 얼핏보니 겉장에 삼국(三國)이라는 두자가 씌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언신은 현임 영의정 이준경 대감이 쌍피(정승감이자 장수감)라고 극구 칭찬하니 병서에 미친다고 하지만 그래 권율은 소설 삼국지 나부랭이나 읽고 있으면서 나라도 다스리고 외적도 막아낼 셈인가? 쯧쯧쯧… 요사이 젊은 것들이라는 것이 모두 세 종사관과도 같아서 우리의 것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외국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지경이니 나라의 앞일이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도다. 조만간 개리포니아(開里浦尼亞)쌀로 튀밥 튀겨 먹을 놈들 아닌가?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저희들은 배우려고 안하겠지만 내라도 억지로 갈쳐야겠다. 많은 사람은 못 가르친다 할지라도 우선 한둘이라도 갈쳐야겠다.
내일 새벽에 자기가 좌기(坐起=관리의 공식 집무)하기 이전에 반드시 먼저 와서 대령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세 사람은 왜 먼저 와서 대령하라는지 영문도 모를 뿐만 아니라 또 좀 늦기로서니 그까짓거 대수냐 소수냐 잘못되야 분수 맨 꼴찌의 권율이 도착한 때는 홍영조의 뜀박질로 시오리는 족히 다녀올 시간이었다. 어디 내일은 꼭 내가 좌기하기 이전에 와서 대령하도록 하게. 습의는 내일로 물려서 시행하겠네. 그 이튿날 세 종사관은 완죤히 쫄아가지고 한만(閑漫)히 방심하였다가는 예기치 못한 액을 당할지도 모르겠다고 잔뜩 켕겨서 일찍 일어났다. 닭이 세 홰를 칠 때였다. 그러나 이미 대장은 벌써 좌기하고 앉았다가 노기등등한 눈으로 그들을 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간담이 녹는 듯 하고 콩알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디 하루 더 여유를 주는 것이니 내일은 어떤 일이 있든지 나보다 먼저 오렷다. 습의는 다시 하루 연기하겠네. 하루 종일 어떻게 보냈는지 얼얼한 가운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청하자마자 집으로 정신없이 직행하였다. 초한지(楚漢誌)에 보면 박랑사에서 창해군 범발장사와 더불어 진시황 암살에 실패한 장량이 하비로 도망가서 지낼 때 다리에서 이상한 노인을 만나지요. 주워다 주면 떨어뜨리고, 주워다 주면 떨어뜨리고, 이거 누구 똥개 훈련시키는 건가. 암만해도 싸이코 영감을 잘못 만난 모양이군.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꾹꾹 참고 무려 다섯번을 그러고 나니, 그 노인 한다는 야그가… 천하라는 건 한 사람을 죽인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흔들어야 얻어지는 거란다. 라는 묘한 말을 남기고 시장쪽으로 걸어가는 겁니다. 여기서 장량의 머리에 쵸쿠전구가 번쩍하면서 이 노인이야말로 보칠산과 같은 난세를 구할 이인(異人)임에 틀림없다. 라는 생각이 든 거지요. 얼른 쫓아가서 그 노인의 가랑이를 붙잡고 사부님! 한 수 갈쳐 주십시오. 하고 매달렸죠. 이때 장량이 속에 입고 있던 팬티가 노팬티였다죠. 자연산 통가죽색으로 누리끼리 빛나는... 고놈! 강(强) 장(壯) 대(大)의 3박자를 골고루 갖추었으니 장갈들면 계집들이 홀라당할 것이요, 군왕을 모시면 현신이 될 것이고, 선도를 닦으면 신선도 될 수 있으리로다. 모름지기 사내란 양물도 잘 흔들어야겠지만 천하를 흔드는 비법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를 진정 배우고자 한다면 닷새후 해뜨기 전 다리 건너편 오동나무 밑으로 오라 고 말하곤 사라지죠. 신기한 점은 양물도 다리 사이에 있지만 고목(오동나무)도 다리근처에 있다는 겁니다. 아이가 어른을 기다리게 한다고 벌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야단만 직사하게 맞지요. 다음날 꼭두새벽같이 나갔으나 역시 노인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노인은 장량을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이렇게 야단쳤다죠. 자넨 틀림없이 앞으로 큰 인물이 될거야. 인재 하나 키운다는 게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 앞으로 이 땅에 큰 난리가 있을 것이고 그때를 대비하여 지금 인재를 길러 놓지 않으면 종묘사직을 온전히 보전하기가 어려워. 이번에 단단히 깎아놓지 않으면 기둥은커녕 이쑤시개도 못 될 것이여. 오늘이야 설마 자기네가 먼저 왔거니 하고 염려없이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었다. 그러나 대청 한가운데는 등불이 휘황하게 대낮같이 걸리고 그 아래로는 군관들이 왔다리갔다리 하는 게 아닌가! 장령을 알기를 조까치 아는 저런 무엄한 죄인들을 당장 잡아 엎으라. 너희는 연 사흘을 계속해서 장령을 어겼다. 막중한 습의를 이제는 연기할 수 없는 바 내일은 바로 친열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친열이 끝나는 대로 군문에서 참하여 저자에 효수하겠노라. 그 동안은 옥에 가두어 두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체 면회를 금한다. 장차 효수당할 사람이 하나도 아니며 셋인데다가 그것도 보통 사람 노가리상같은 인물이 아니라 당대의 한다하는 명사로서 하나는 현임 영상의 애제자요 또 하나는 퇴계 선생의 수제자이고 마지막 하나는 현임 우상의 맏아들이 아닌가. 종사관들의 가족들이 애를 태우는 것은 물론 그의 절친한 친구들까지 모두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셋을 살려야 한다고 자담하고 나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며 이리 청을 넣고 저리 청을 넣고 싸돌아다니는 사람이 수십명이나 되는 통에 모든 관청의 업무가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 주막마다 장거리마다 두사람만 모이는 곳이면 이것이 화제가 되고 주제가 되어서 야단법석이었다. 그래서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군법이란 게 얼매나 무서운가 하면 앉으라고 하는 것을 섰기만 하였어도 장령을 어긴 죄라고죽일 수가 있는 것이여. 막말로 조지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하는 게 군법인겨. 게다 이 판서가 어떤 사람이여.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닌가. 그러니께 그 사람 자손이 400년 뒤에 사헌부 대사헌 겸 의정부 영의정 감이 나올끼여. 이름하여 창회라고. 그때 세상 사람들이 그럴꺼여. 와! 자기 선대 할아버질 닮아 못말리는 사람이라고. 또 현임대왕에게도 법과 권한을 존중 안한다고 사직상소를 올리고 미련없이 떠나갔다가 대왕이 몸소 사과를 하자 돌아온 사나이 아닌가. 에구봐쥼쇼 하고 사정해도 못 살아날 거여. (에구봐쥼쇼라는 말의 어원이 이렇게 생기게 됨). 군법으로 세사람을 죽이기야 할 수 있겠지만 그 뒤를 어찌 감당할려고 뒤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그래 남의 막하에 있으면서 장령을 세 번씩이나 어기다니.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해! 영의정 이준경 우의정 권철 이하의 모든 고위관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로지 병판 이후백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안 보는 척 시선을 깔고 코끝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남의 심중을 파악한다는 말에 코치(=꼬끝)보다 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 말이 멋지다고 아무러케국놈들이 나중에 허락도 없이 훔쳐가서 coach… 라고 표기했다는 낭설이 있다. 오직 이후백의 눈치만을 살폈다. 주장(主將)이 제 막하를 군법으로 다스린다는 데는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하고 나설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법대로만 집행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영의정 이준경 대감은 슬그머니 서찰을 써서 이후백에게 보내었다. 강직하고 청렴하기로 소문난 영상이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었다. 우의정 권철 대감은 더구나 자기의 맏아들이 관련된 사건이라 공적 사리와 사적 정리를 담은 꽤 긴긴 서찰을 보냈다. 그 사연이 얼마나 긴지 지금까지 조선조 역사에서 가장 긴 서신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비수(瑞備手)가 개떡같기로 악명이 자자한 로우텔(LOWTEL)의 롱래타(籠來打) 배수토 5(排秀討五)에 선정되었더라. 그러나 이후백은 단 한통도 뜯어보지 아니하고 방석 밑에 다 쓸어 넣어버렸다. 그런데 서찰 속에는 뇌물로 돈도 들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덮은 방석이라는 뜻의 돈방석 이라는 말이 이때 생겨났다는 미확인 고향의 전설도 있더라. 물론 믿으면 복받고 말면 벌받는 전설이기는 하지만… 답장을 초조히 기다리던 두 정승은 이렇게 간략한 내용을 읽고는 더욱 노심초사해진 바, 주변의 사람들이 무슨 내용이냐고 재우쳐 묻는 말에 맥없이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전해진다. 음! 노… 사… 연… 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기실 세 종사관은 조정 대신들의 중망을 한몸에 받고 있던 터수라 누구라도 구명의 방책을 생각하던 차이고 끈만 닿으면 이후백에게 청을 넣는 참인데 좌상으로서 오불관언하고 있는 오리 대감 좌상과 영상 우상의 사이가 어긋난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전혀 좌상 오리대감의 이때 생기게 되었다는 낭설이 파다했다. 오리 대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다시 한번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고 한다. 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여… 오위의 군사들은 물독에 빠진 생쥐들처럼 되고 관리들도 꼴사납게 되고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도 그렇게 많지 못하였다. 따라서 선조 임금의 흥심도 그만 깨져버려서 친열은 의외로 속히 끝났다. 친열이 끝난 후에도 군사들을 호궤(군사를 배불리 먹여 위로함)하느라고 또 며칠을 바쁘게 지낸 교열대장 이후백은 사흘째 되던 날 비로소 세 죄인을 불러냈다. 과연 국가에 유용한 인재라면 한번쯤 용서하여 살려주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재인지 아닌지 내가 똑똑히 확인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 책 한 질을 닷새에 능히 외우는 사람은 인재로 간주하여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을 것을 각오하라. 나이많은 정언신이나 총기없는 권율까지도 죽기 살기 까무라치기로 외웠다. 경국대전은 모두 여섯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첫권 첫줄부터 끝권 끝줄까지 닷새만에 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닷새 동안에 책 여섯 권도 못 외우는 것들이 무슨 인재랄 수가 있는가? 그러고도 너희들이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시(詩)나 문(文)은 빼뿔고 큰 대문만 외우도록하여라. 세 사람은 또 각각 책을 받아 가지고 옥 속으로 돌아갔다. 정언신과 권율이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 류성룡이야 얼음판 위에서 바가지 타듯이 쭈욱 외워 버렸다. 자네들이 지금은 날 무척 꼽게 생각할 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깨달을 날이 있을 걸세. 나의 처사가 뜰은 사람은 말하게. 뜰다니요, 지당합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승이 된데에는 열흘 동안 옥 속에서 집중적인 공부를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이후백 덕분이라고는 생각할 줄을 몰랐다. 이 때, 평소 주둥이로만 애국하고 조선 것은 혼자 다 아는 척 하던 선비와 관리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열받은 백성들은 이들을 비꼬는 다음과 같은 동요를 지어 불렀단다. 심지어 어느 고을에서 어느 고을로 빠져야 길이 가까운 지 하는 면단위 행정조차도 졸도 모르는 생판 깡무식쟁이들이었다. 그때 조정은 부랴부랴 류성룡을 도체찰사에 임명하고 권율을 도원수에 임명하여 게다군을 막아내게 함으로써 사직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전쟁 수행의 어려운 업무를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옥 속에서 읽었던 경국대전과 동국여지승람의 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진국으로 후진을 키울 줄 아는 아주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로 명사들이 감옥에 가게 될 때는 서책을 갖고 가서 열심히 독서하는 습속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는 모두 이때 부터라 한다. |
출처: 삼류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