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남과 북의 같음과 다름을 알아가는 ‘통일합시다’시간입니다.
오늘은 개성에 위치한 남측의 자산인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도 아무런 죄의식도 못 느끼는 무개념의 1호, 북한 김여정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을 총 정리해 봤습니다.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행방돌이 1호로 불리는 김여정,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평안남북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삔또라고도 불립니다.
북한에서 ‘행방돌이’는 동서남북 구분 못하며 여기저기 행방 없이, 즉 방향 없이 헤매며 돌아다는 사람을 뜻하며, ‘천방지축’ 급하게 허둥지둥 날뛰는 것과 매우 유사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나쁜 용어로 머리상태가 정상이 아닌 사람을 비웃는 말입니다.
삔또 또한 머리가 좀 이상하고 모자란다는 뜻의 평안도 지방 언어, 즉 방언입니다.
중앙에서 통제된 표현 외에 자율적 표현을 할 수 없는 일반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며 구언문화 즉 소문문화를 발전 시켜 왔는데요,
그 ‘장마당’ 소식통에 의하면 주민들 속에서 김여정은 ‘행방돌이 1호’로 불립니다.
‘행방돌이’든, ‘삔또’이든, 김여정에 대해 북한주민들은 그녀를 정상인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인듯 싶습니다.
그런 그녀가 두 달 채 북한선전매체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국내외 언론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해서, 이 시간을 통해 ‘행방돌이 1호’ 김여정에 대해 해부를 해봤습니다.
1989년 9월 26일 생인 김여정은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고영희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고영희는 귀국자, 즉 재일 조선인 동포 출신으로 독재자 김정일의 네 번째 여자입니다.
김여정의 생일에 대해 여러 포털 사이트들엔 87년생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88년생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여러 추측이 있지만,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 (OFAC)이 게시한 특별지정제재 대상, (SDN) 명단에 따르면 1989년 9월 26일생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김여정은 어린 시절 친 오빠이자 현 북한 최고 통치자인 김정은과 함께 스위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베른 주 쾨니츠 구의 큰 연립주택 단지에 속한 단아한 3층 플랏, 즉 벽돌집에서 두 남매가 함께 살았으며, 집에서 약 200m 떨어진 리베펠트 슈타인횔츨리 공립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를 다닐 당시 김정은, 김여정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다녔구요,
스위스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온 김여정은 2007년, 김일성 종합대학 물리학부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김일성종합대 법률대학 특설반에 학적을 옮겼습니다.
특설반은 정규 코스가 아닌 특별히 만든 학급을 의미합니다.
김대, 즉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의 탈북민들 증언에 따르면 원래 김대 법률대학엔 특설반이란 것이 없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 측이 없는 과정을 특별히 만들었다는 건 김여정 만을 위한 전형적인 공주양성과정이었습니다.
김대 법률대학 특설 과정은 김여정 혼자만 다닌 것은 아니고 총 20여명의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김여정을 위한 ‘공주’양성 과정이었다고는 하지만, 나머지 동기들도 하나같이 엄선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한 집안사람인 듯 대학을 다니던 김여정은 당시 김일성 종합대학 인문 계열에 재학 중이던 훤칠한 외모와 좋은 성품의 한 남자에게 반하게 되었고 본인이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쳐 결국 두 사람은 사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여러 대북 소식통들에 의하면 그 남자의 이름은 우인학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고모 김경희가 한눈에 반해 장성택에게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올인 했던 일화와 비슷한 러브스토리를 가집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김씨 일가도 극히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는 보통사람들이라는 검소함을 보여주기 위한 쇼, 일부러 만들어낸 선전 제스처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 하기도 했습니다.
1986년생인 우인학은 황해북도 린산군 출신으로 고등중학교 졸업 당시 당중앙위원회 간부부 5과 대상으로 특채 되었습니다.
그리고 5과 대상 의탁학제에 의해 김일성종합대학 혁명역사학부에 입학하였으며, 대학을 다니던 중 김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북한 최고의 대학을 다니는 엘리트지만, 집안 배경을 보면 아버지는 말단 당 간부 즉 군당 지도원 급 집안입니다.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은 여동생의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할아버지 김일성이가 고모 김경희의 남자 장성택을 반대했던 것처럼 김여정과 우인학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였는데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몇 차례 이별과 재회를 겪으며 순탄치 않은 러브 스토리를 어렵게 이어갔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힘이 되어 준건 과거 비슷한 러브스토리를 가진 고모 김경희였고, 김정은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써 결국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인학은 대학 졸업 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사로청) 조직부 간부와 호위총국을 거쳐 현재 당 조직지도부에 소속 돼 있다고 탈북민 단체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가 주장했습니다.
김여정은 지난 2014년쯤 결혼해 2015년 한 차례 유산하고 2016년 10월 첫째 아들을 출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2018년 2월 한국에서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특사자격으로 방한했을 때 유독 몸가짐을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 임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출산여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독재자와 그 일가의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로 하는 국가이기에, 북한의 핵심 인사들도 오히려 남한의 언론들을 통해 김여정의 결혼 및 임신, 그리고 출산 사실 정도를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이유로 2016년 4월 북한을 방문했던 김정일의 요리사 출신인 후지모토 겐지에게도 결혼 사실을 밝히지 않아 그가 ‘김여정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여정은 2014년 11월에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북한 정치사에 등극을 했고, 2018년 2월에는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2019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2020년 4월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거쳐 2021년 1월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자리까지 꿰차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현재, 김여정은 2021년 9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5차 회의에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 되었지만, 왕조 사회인 북한의 특성상 친오빠가 최고통치자라는 측면에서 김여정은 직책과 직위에 관계없이 권력 2인자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 헌법에 의하면 국무위원회는 “국가주권의 최고 정책 지도기관”이며, 내각을 지도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채널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