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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靈岩) 월출산(月出山:808.7M)을 종주 하다.
글쓴이 고 학영
4월27일, 화려한 봄 날씨다. 차에 오르니 참가 인원(28명)은 많지 않으나, 처음 오신분도 많이 보이신다. 3,4월 긴 긴 해라! 6시 20분에 출발하니 새벽 잠이 모자라서 인가? 차내가 조용 하다.
월출산 까지는 왕복 거리가 멀어 있어, 장거리 여행에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휴식과 달리는 시간에 많은 시간을 쓰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대지에 프르럼을 더 하여 녹색으로 갈아 입으니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하다.
오늘 산행에는 부부가 함께 오신 분이 많으시다. 필자를 비롯하여 영남에 유사장님 부부, 최유순 도우님 부부, 조덕현 회원님 부부, 정상조 회원님 부부 등 등 산행도 넓은 범주에서 보면 여행 문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니...
건전한 산행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산행 할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 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달리니 어느덧 남해 고속도로 접어들어 남강 휴게소에서 조식을 드시다.
휴게소 뒤편의 남강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지리산 동쪽에서 경호강과 덕천강으로 수 많은 지류들이 흘러들어, 진양호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동북간 방향으로 흘러 남강을 지나 의령 군민들의 농업 용수로 활용되며, 남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하여 부산시민의 생명수가 돼고 있어라...!
진주와 하동을 거쳐 순천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낙안 민속촌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니, 수년전의 금전산을 산행했던 기억이 새롭고, 벌교를 지나니 고흥에 영취산이 아련히 떠 오른다.
녹차 밭으로 유명한 보성을 지나 영암군 개신리 근처에 이르니... 대지에 솟은 연화봉인가? 그 신령 스러움에 압도되어 소름이 다 끼친다. 반도의 남쪽에 금강, 설악을 옮겨 놓은 듯한 산이 있기에 신령 스러운 영암(靈岩)으로 지어 졌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출산의 소 공원에 이르니, 주차장은 차들로 만원이고, 공원내는 상춘객들로 붐비니 인산 인해 라 함이 더 좋겠다.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오르니 등산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다. 20 여분을 더 오르니 천황사(天皇寺)는 화재로 전소 되고, 빈 터만 남아 있어 보기에도 황량 하다.
저만큼 구석 한자리에 비닐 하우스로 임시 거처(토굴)를 마련하여, 복구를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작은 정성을 올리고 산 오르니 경사가 가파르다. 봄날씨 라고는 하나 하도 포근해 등산 하기에는 덥다.
윗도리를 벗어 가방에 챙기고 오르니 한결 시원하다. 4~50 여분을 더 오르니 구름다리가 저만큼 보인다. 암벽으로 벌어진 계곡을 가로 질러 인공미를 가해 놓은 다리가 보기에도 시원하고, 주위의 바위봉들과 어울어져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형처럼 보인다.
계곡쪽으로 약간 내려가 구름다리를 올려다 보니, 산행객의 수 가 너무 많아 양 방향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를 가시는고...?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하더니... 하늘에 떠 있는 다리위를 걷는 모습이 진정 나그네라는 실감이 든다.
원하는 회원님들 에게 기념 촬영을 해 드리고 다시 걸어 오르니, 조망되는 주위 산들이 모두 암봉으로 덮여 있어, 눈으로 보는 경치는 아름다우나 만물이 깃들어 살기는 힘 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를 수록 시야는 넓게 조망되고, 봄날 이라고는 하나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한다.
오를 수록 바람골은 멀어지고, 매봉과 사자봉을 오르나 이름에 걸맞는 바위는 쉽게 찾지 못 하겠다. 다만 기이한 형상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인져...! 월출산이 영암의 얼굴 이라드니 과연 허언이 아님을 알겠도다...!
1 시간 여를 걸어서 통천문을 통과 하니, 하늘에 이르는 관문인가? 10 여분을 더 걸어 천황봉(808.7M) 정상에 이르니, 정상 바위봉에 하도 사람이 많아 기념촬영을 하자면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점심 시간도 많이 늦어있어 가져온 중식을 드시니, 따사로운 햇살에 밥맛이 절로 난다. 맛 좋은 반찬들을 나눠 드시니... 맛 자랑! 솜씨 자랑! 인심도 좋을 시고... 맛있게들 드시는데 불청객(파리)은 웬일인고? 이 높은 봉우리에 까지 중생(파리)이 따라 드니... 산행객들의 오염이 얼마 만 한지를 짐작이 간다.
만물 중에 무릇 인간의 손때가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은 신령한 곳이라, 그 옛날 신라 때 부터 천제(天祭)를 모시던 곳 이라는 것을... 모든님들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식후에 천하를 조망(眺望) 하니 천황봉 주위로는 암봉(岩峰)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서쪽 방향에는 내장산(764M) 부근에서 갈라진 영산기맥과 호남정맥의 사이로 무수한 지류의 샛 강들이 모여, 영산강으로 흘러들어 목포에서 바다로 이르시니... 월출산은 영암천의 발원지가 되도다.
북동쪽 방향으로는 백두대간상의 남덕유산 조금 아래 영취산 부근에서 천리를 이어 달리는 호남정맥상의 화순군 청풍면의 국사봉(449.1M) 근처에서 선왕산(414M), 궁성산(482M), 활성산(498M)을 거쳐 이곳 월출산에서 크게 일으키니... 그 기운이 하늘에 닿아 있고, 다시 두륜산(700M)을 거쳐 땅끝(土末) 사자봉(110M)에서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전체를 일러 땅끝 기맥이라 명명되어 있으며, 동남 방향에는 강진, 장흥 방향으로 무수한 연봉들이 이어져 인걸(人傑)들의 보금자리가 돼고 있어라.
봉우리 마다 바위로 덮여 있어 양(陽)의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 하니...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하여 월출산(月出山) 이라 지었는가? 물도 귀하고, 나무 숲들도 드물고 하니... 음(陰)의 기운을 살리고져 달님을 모셨는가 보다...!
그 옛날 신라때는 월나산(月奈山), 고려때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조에 와서부터 월출산(月出山)으로 불렀으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알겠도다...! 옛 선현(先賢)들의 지혜에 감탄하면서 다시 몸을 가다 듬는다.
천황봉 바위봉에 매달린 열매들이 얼마큼 떨어 졌는가? 기다리던 회원님들을 기념 촬영 해 드리고는, 다시 구정봉으로 향한다. 선돌고개(665M)를 오르니 바람재에서 불어 오는 바람인가...? 흐르던 땀이 다 식는다.
얼마간의 휴식과 과일들을 나누며 에너지가 재 충전되니, 다시 힘이 솟는다. 힘들여 바람재를 올라 금수굴 부근에 이르니, 구정봉(九井峰:738M)의 암봉(岩峰)들이 웅장하여 월출산의 진수를 보는것 같으다.
이쯤이면 산행도 반 고비를 넘겨 몸도 유연하고, 산기운도 충분히 받아 기분은 절정에 이른다. 천왕봉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정기(精氣)가 발봉(555M)으로 이어져 노적봉(500M)에서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서북방향에는 그 너른 품속으로 천하의 도인을 길러내시는 도갑사(道甲寺)가 진좌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구림리(鳩林里)에는 태조 왕건의 탄생 비밀을 예견한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웃한 곳에 백제 왕인(王仁)박사의 유허지가 있으니...
아울러, 동쪽방향에 경포대 계곡에는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어, 보물 제298호로 지정되어 있는 3층석탑이 있어 1000 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남쪽 방향으로 무위사가 고즈넉이 자리하여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보전을 비롯 여러 보물들을 간직 하시니...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는데, 천하의 영기(靈氣)를 품은 월출산이 어찌 하늘의 뜻이 없으리요...!
저 아름다운 구정봉에서 500 여미터 떨어진 곳 에는 국보 제144호로 지정 돼 있는 거대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고 하나, 가 볼 수 없음이 아쉽고 아쉽구나...! 향로봉(743.1M)을 힘겹게 올라 계속 이어지는 700 여 고지의 무명봉(無名峰)을 두 개나 더 넘으니...
눈에 보기도 신비한 여근(女根) 바위가 있어, 최연식 산대장을 모델로 머리 넣는 자세로 사진을 찍으니 영원한 작품이 하나 남는구나...! 세상 만물이 다 천지(天地)의 교합(交合)에서 만들어 지니... 어찌 대지(大地)의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이 이상 하리요...!
너털 웃음으로 피로를 풀고, 음담패설(淫談悖說)로 떠들썩 하니 오고 가는 나그네들의 구경거리가 돼는구나...! 구경거리가 돼 주는것도 공덕(功德)의 하나 인져...!
억새풀밭 지대에 이르니... 지난해 자란 억새풀이 마른채로 서 있으니, 을씨년 스럽고 반갑구나...! 오솔길로 얼마를 더 나아가니, 엄청난 바위 군락이 있는데... 그 옆으로는 벼랑끝이라 접근 하기가 쉽지 않아서, 멀리서 렌즈를 당겨 거북바위를 촬영하다.
조물의 작품인가? 물에 사는 거북이가 산에는 웬 말인가? 아무리 보아도 거북이라... 인공미(人工美)가 가미됀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럴리는 없을텐데...?
미왕재 갈림 길에서 바로 나아가면 무위사로 가는 길이요, 우로 가면 도갑사로 가는 하산 길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후미에 오시는 회원님들을 기다리니, 처음 동참하신 최유순 도우님 부부가 도착하셔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다시 하산 길로 접어든다.
홍계골을 따라 1 시간 여를 나려오니 도갑사가 가까워 졌는지,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가 비각안에 잘 보호되어 있으시다.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여의주를 문 거북이의 등위에 연잎을 새겨놓은 거대한 비석이다. 안내판에는 비석이 완성된 것은 효종4년(1653) 이었지만 만드는데 17년이나 걸렸다고 하며, 비문을 지은 이경석은 선조 28년(1595)에 나서 현종12년(1671)에 죽은 명재상이자 학자로, 문장에 뛰어나 삼전도의 비문을 짓기도 한 사람이라고 하신다.
400 여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비석은 깨끗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한국문화재의 70% 이상이 절집에서 지정돼고, 보호되어 있으니... 그 정성은 가히 국보급 이라 할 만 하도다. 도갑사 주위로는 동백나무 숲이 여기 저기 우거져 있어, 남도의 또 다른 문화를 보는 것 같으다.
도갑사는 전형적인 산지(山地)의 가람 형태를 지녔으며, 도선국사가 창건하시고, 고려때 크게 번창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하며, 조선 세조3년(1457) 수미(守眉)대사와 신미(信眉)대사가 중건했다 하신다.
대웅전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다포개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 졌으며, 뜰 아래에는 석등 1기와 5층석탑(전남 유형문화재 제151호)이 좌우 대칭으로 서 있으니, 석조물의 배치가 특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람드리 느티나무 옆에는 커다란 통나무 배 모양의 석조(전남 유형문화재 제150호)가 있어, 오 가는 중생들에게 물 공덕을 짓고 있으시다...
해탈문은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데 신라시대 통고(通高)스님이 처음 지었다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세조3년(1457)에 수미와 신미대사의 발원으로 중건되어 성종4년(1473)에 완공 되었다고 하니...
500 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도갑사를 수호하고 빛내고 있으며, 건축양식이 주심포 집에 다포집의 양식이 가미한 특이한 건물로,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청을 한지가 최근인지, 고색창연(古色蒼然) 한 멋은 느끼지 못 하겠으며, 국보로 지정됀 것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호남지방의 절집은 가람의 배치가 뛰엄 뛰엄 너무 넓어 있어, 영남지방의 오밀 조밀한 가람 배치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월출산 기슭에는 토산(土山)으로 둘러져 있어, 사방으로 절집과 인가(人家)들이 깃들어 자리하니... 고즈넉하고 풍요롭구나...! 산 마루에는 수 많은 암봉(岩峰)들이 하늘의 기운과 닿아 있어, 인걸(人傑)들의 기상이 넘쳐 나네...!
해는 서산에 노을 지고, 천년 도량의 도갑사는 중생들의 안식처가 돼고 있으며... 만고의 월출산은 푸르른 대지 위에 피어난 찬란한 연화봉(蓮花峰 ) 이어라...!
단기 4336년(서기2003년) 4월27일 영암(靈岩) 월출산(月出山:808.7M)을 종주 하다.
첫댓글 천왕봉, 구정봉, 도갑사로 가는 종주산행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구정봉 근처의 '마애불'을 답사치 못 해 아쉬움이 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