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의 시작은?
<놀이판 큰들> 대학 1학년 때 시문학회 짱을 따라 갔던 큰들에서 장단, 탈춤 배웠으나 어렵고 낯설고 신기함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허심탄회하게 술마시고 어울리는게 좋았음 사회변혁과 민중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지식인은 당연히 복무 ->대학 1년생이 뭔 지식인? <풍물공동체 터을림> -1986년 터울림에서 풍물 시작 어울려 풍물 치는 맛,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중요하고 좋은 사람이 된 듯한 뒷맛을 주는 풍물과 뮌헨의 첫 생맥주 한모금, 한잔! -같이 고민하고 만들고 일하고 평가하고 풍물치고 술마시는게 풍물공동체이고 더 나아질 줄 알았다. -독립적인 첫 사회풍물단체인 터울림 -사회벽혁운동에 복무하는 풍물을 하는 것이 즐겁고 뿌듯 :풍물은 일하는 자의 것, 일하는 자에게 돌려주고 일하는 자가 즐기고 생산하고 그것을 피드백해서 예술로 승화해서 다시 일하는 자에게로 -노동자 강습, 임단투현장 지원 공연, 여타 지원공연, 불광시장 지신밟기, 1988년부터 시작한 터울림 가을굿 -전노협 건설의 초석인 1991년 첫 노래판굿 꽃다지 이후 본격 민주노조문화운동 -전노협 문화학교 풍물담당으로 파견, 노동자풍물교안 마련 -전국노동자대회 문선풍물 연출,지도 -단위별 사업장 풍물패 조직, 강습
풍물에서 보다 적극적인 사회변혁운동으로
<민주노조문화운동> -터울림에서 구로노동자문화회관으로 1990년 경 전문, 비전문인 구분이 없다가 10여명의 활동가모임이 꾸려지면서 더럽게 많이 싸움 ->전문가와 비전문가,현장활동과 회원활동, 사회참여풍물과 순수풍물 ->개인적으로 출산과,육아로 활동이 여의치 않았고 터울림에서 박희정이 나가자 찬밥신세인걸 나만 모름 박희정의 마누라 하애정로 대내외적으로 자존감 0인 자아인식 상태, 외로운 하애정 무시 당하는 것이 그때도 싫었고 지금도 싫다 풍물, 춤, 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난 속이 좀 없는 것 같다 나도 풍물을 잘하면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덜 외롭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잘하고 싶었다 -구로노동자문화회관(->노동자문예교육협회), -1995년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일하면서도 개인적인 공부를 병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박흥주와 굿강좌 기획, 진행 1995년 황재기고깔소고, 1996년 김경란 춤, 박문기의 역사학교, 개인스터디 등으로 공부 계속
사회가 변했다. 공공의 목표와 공공의 적의 구분이 사라지기 시작
<1999년 전취모, 선생님선생님 선생님> -사회변혁운동의 변화와 민주노동의 정착, 민주노조문화운동의 필요성 퇴색 -1999년 전취모 1999년 초에 고창에 박영희와 함께 대담, 대학생 전수에 꼽사리 1999년 여름에 고창전수 최초로 사회인들 전수 시작, 1988년에 처음 갔다가 몇년 다니다가 단절됐던 진도북놀이 전수도 시작 연 2회씩 총 4회의 전수 진행 전취모를 꾸리고 허기를 채우는 것처럼 이것저것 배우러 다님. 지금도 허기져 있음 -박흥주의 설장고 강습 꾸림, 한달에 한번 하루종일 설장고, 간헐적 설장고 합숙 진행 - 2001년 풍물굿학교 제안 기획 진행 2회까지 -2003년, 2005년 문정숙, 윤중임, 윤병하선생을 만남 -2016년 김선미선생님과 만남, 이별 그러나 김선미선생은 내 곁에.... *설장고학교 등의 주요 키워드는 풍물의 경쟁력 *전수의 키워드는 풍물의 맛, 현실도피? 혹은 재충전 <개인차원의 작업 위주> -2004년 황재기선생 1주기' 황재기를 생각하는 고깔소고놀이' 주관 -1998년경부터 시작한 노나메기와 2008년 결별 -2010 집짓고 지금의 김포들가락 풍물패 황금물결 꾸리기 시작 -2010년 프린지 참가작 삼삼한+3풍물, 2011년 프린지 맛난풍물클럽 -2012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프린지 풍물야인전 *올해는 성균에서 내년도 성균 예약 성균소극장의 이인무로 성균소극장과 인연, 이철진에게 승무도 한영숙류 춤도 배움 -2012년 풍물굿학교에 초청된 굿쟁이들과 굿쟁이전 결의 -2013년 팔도굿쟁이전
그리고 세월호와 그 이후
<첫단추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것?> -내 딸도 나가는 미친소 시위를 보면서 그 현장에 풍물이 없음이 갑갑한 나는 소외된 라떼였다 주최측 초청으로 두어번 나감 -2014년 세월호:시민운동권에서도 소외된 풍물꾼들은 마음아팠고 미안했다 -2016년 탄핵풍물:광화문에 텐트촌 최초 제안자 채루가스와 경찰봉이 두려웠으나 구속을 각오하고 나간 광장은 겨우 걷을 줄 아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와 아이의 웃음으로 힘을 얻는 곳이었다. -세월호, 탄핵풍물에 결합하면서 거리의 투쟁을 지원하는 거리의 예술 굴뚝, 콜택, 쌍차, 전태일사업회, kt -2019년 만북울림과 나라풍물굿 -2020년 코로나와 저물어가는 전수체계와 떠오르는 나라풍물굿, 풍물야인전, 풍물학교 *세월호, 탄핵, 거리에서 풍물을 하면서 지칠 땐 시민운동권에서부터 풍물을 재생해야 풍물이 살고 풍물꾼으로서의 내 노후가 있을 것이란 전망으로 나를 달랬다
♣만북을 꾸리며 느꼈던 것을 또 다시 느끼고 있다 ♣나에게 무엇이 남았나? 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는 했을까? 8~90년대 민주노조문화운동의 성과는 어디로 갔을까? 중간자로서 쉼없이 달려온 나에게 남은 것은? ♣ 중간자들의 자성이 유행 중 - 나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풍물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공동체 : 핑크빛 약속이 없는 공동체 적당한 고립과 적당히 빈곤한 공동체, 생활형 요양시설, 해가 뜨면 일하고 해지면 풍물치고 밤이 깊으면 잔다 ♣나는 지금도 학습이 필요하다 우주변화의 원리(동양철학의 기본개념인 음양, 율려, 64계, 상수학 등) 마을풍물의 구체적으로 실행된 판-김주현의 당산굿, 제의와 회의와 일과 놀이가 공존하는 풍물
●나는 어떤 풍물을 치고 싶은가? -한국관광진흥공사, 네이버문화재단에 자료로 남는 풍물 -서로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임을 확인시켜주는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지 않는 풍물판 못해도 이래 좋을 수 있는 것은 풍물의 독보적인 특징일 것 -그러나 디테일도 살리고 싶다 오래된 오동나무, 거친 가죽으로 만든 장고로 내는 나의 소리, 살풀이 같은 진도북, 생활력 강한 그 여자 뺑덕의 소고, 지금 여기 여자들-도깨비난장, 나의 이야기가 타인과 공감되는 이야기가 있는 풍물 -주현씨가 제시한 미래생존가능한 시도로 탄생될 풍물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 생태적, 원초적, 원시적 춤을 추는 풍물꾼
●어떤 연행자이고 싶은가? - 미래가 보장되고 안정되고 인정받는 풍물꾼이자 갈옷을 입고 소박한 품위가 넘치는 연희로 공감받는 연희자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 :민예총 관련, 들가락 사무장, 쿱신 이사, 나라풍물굿 이사, 연희PRO소용 대표, 전취모 회장/ 풍물학교 준비자, 풍물강사, 공연 기획, 연출, 공연자. 하고 싶은 일: 책읽고 연습하고 전세기 타고 공연다님
● 학교라는 깔때기 -따뜻하고 격없이 우리를 반기던 할배, 할매들이 들려주는 것 같은 풍물의 이야기가 있고 풍물꾼들이 조우하는 풍물판 -쉽고 재미있는 풍물 이야기 - 실기 등 교육을 받은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매일이 축제였더라는 학교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풍물 창작, 풍물칠 곳을 찾아내고 학교에서 찾아낸 거리로 일년 내내 풍물을 즐기다 재충전하려 오는 학교 -풍물의 미래생존 전략과 이론 정립되는 구조를 제공하는 학교 *굳이 풍물, 풍물굿이란 말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 굿, 매구가 더 원초적 단어는 말은 의도를 반영하고 그것을 인식시키는 과정에서 의도가 현실로 정착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쉽고 단순한 것부터 세밀하고 복잡한 내용이 공존
*나라풍물굿 사업본부장의 제안
=>그러나 성공하는 사업은 단순, 명확해야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자 하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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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리를 보고 배웠음
말하다보면 빼먹고 까먹기 일쑤인데 컴으로 미리 정리하면 여러모로 편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