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트레야(Maitreya,彌勒)를 기다리며…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김제평야이다.
때문에 주변에 산을 볼 수 없다 다만 평지의 끝자락에 돌출된 산이 모악산이다
이와 같이 광활한 평지에서 돌출되어 솟구친 산세는 그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삼국시대부터 미륵신앙이 크게 유행한 곳도 이곳이다.
넓은 평야의 곡창지대는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다.
이런 학정에 시달린 민초들은 저 멀리 솟구쳐 있는 모악산을 바라보며 미륵의
세상을 꿈꾸며 고통을 참아 왔는지 모른다. 그런 착취와 압제가 절정에 달한
조선말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봉기한 곳이 이곳이다.
이 지역에서 최초로 동학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그후 100년후에 일어난 광주항쟁도 폭압에 시달린 시민들이 견디다 못해 일어
났는데 모악산과 같이 평지에서 돌출된 무등산의 지세와도 무관 하지 않으리라
지평선이 보이는 지역의 성지인 모악산에 금산사(http://www.geumsansa.org/ )
가 있다. 금산사는 일반적으로 미륵신앙의 본산지로 알려져 있고 역사적으로는
후백제의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하여 감금된 비운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호남
제일의 미륵도량인 금산사는 이와같이 정치적 사건과 무관 하지않은 사찰이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금산사는 백제가 망한후에 자연스럽게 한맺힌 백제유민들의
미륵사상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
미륵의 원래 이름은 마이트레야(Maitreya)이다.
기독교의 메시아도 마이트레야로부터 유래 되었다고 하는 미륵신앙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56억년 후에 미륵부처님이 내려와서 인류를 구제 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전북지역은 기독교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지역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산이 없어서 사찰이 부족하기도 하겠지만 타력적인 요소가
강한 미륵하생신앙의 영향도 크지 않나 생각된다.
미륵신앙은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으로 크게 나뉜다.
상생신앙은 사회가 안정 되었을 때 주로 유행 하는데 선행을 닦아서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고 하생신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다.
하생신앙은 중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여 인류를 구제하고
후천개벽을 이룬다는 내용이 아니라 중생이 선업을 열심히 닦아 청정한 불국토가
되었을 때 미륵부처님이 하생하여 마지막 설법으로 모두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이다.
즉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스스로 깨우쳐서 미륵세계에 빨리 가는 중생이 있고
시간이 걸려서 미륵세계에 가는 중생도 있을 수 있다.
사실 중생의 개념은 사람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지옥에 있는 지옥중생도
있고 아귀중생도 있고 축생중생도 있고 아수라중생도 있다.
이들 모두가 깨달음 즉 성불 하기위한 시간인 56억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이들 모든 유정중생들이 미륵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을 듣고 하나도 빠짐없이 성불
하게 되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세상은 모조리 사라지고 모두 미륵부처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미륵세계가 아닐까.
2007-03-11
진흙속의 연꽃
금산사 일주문. 목재로 된 기둥의 두께가 엄청나게 크다.
일주문을 지나 금산사로 가는길. 오르막 길없이 평탄하다.
해탈교. 큰 사찰의 경우 이와 같이 다리가 있는 해탈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속세를 벗어나는 다리이다.
해탈교를 건너면 두번째 관문인 금강문.
세번째 관문인 천왕문. 한번씩 문을 거칠때 마다 천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보물28호인 당간지주가 나온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건립.
보제루로 가기전에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서있다. 세월의 무게를 더해 준다.
금산사 네번째 관문인 보제루. 개산 1400주년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제루를 통과 하면 좌측에 범종각이 보인다.
보제루를 통과 하면 운동장과 같이 넓직한 마당이 펼쳐지고 미륵신앙의 본산인
웅장한 미륵전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전은 766년에 진표율사가 건립하였으나 정유재란때 전소 되었다.
이후 1635년에 수본대사가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 하였다.
금산사 대적광전. 그림과 같이 아름답고 명품을 보는 것 같다.
원래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3불만 모셔졌던 법당은 1597년 정유재란때
전소되었다. 그후 1635년에 재건 되어 5여래6관음을 모신 보물476호 이었으나
1986년에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 되었음. 이후 1990년에 원형대로 복원 되었다.
보물828호 석등
대장전
지장보살이 모셔진 명부전. 1857년 건립.
대적광전 앞의 노주. 용도를 알수 없는 유물로서 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
육각다층석탑. 보물27호. 고려초기시대로 추정.
대적광전 뒤에 있는 나한전
나한전 좌측에 있는 조사전
사찰 제일 뒤에 위치한 삼성각
미륵전 북쪽의 석축위에 있는 방등계단 사리탑.
보물26호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짐.
통일신라시대 말기로 추정.
방등계단을 장엄하는 5층석탑.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물25호.
보제루를 통과하면 우측에 있는 원통전
미륵전 앞의 약수터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꽃 피우기를 기다리는 멋드러진 배롱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