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초중등 교육을 받고 한국 대학을 나온 서지영씨(25)는 기자가 건넨 초등학교 4학년 영어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랬다. “embroidery(자수)? 이 단어는 나도 처음 보는 단어!”
프리랜서 통역가로 활동 중인 그에게도 낯선 단어가 나올 정도로 교과서의 내용은 어려웠다.
“실제 이 책으로 미국학생들은 교육을 받지만 우리나라학생들에게는 어려워요..보통은 고1정도가 적당해 보이네요.”
책 곳곳에는 미국 지리, 역사 등과 관련된 단어, 또는 미국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인디언 부족 이름인 호피족(Hopi), 신 이름 카치나(Kachina)와 같은 생소한 고유 명사도 즐비했다.
그리고 이런 단어나 더 어려운 전문용어에 대해 다음날 암기시험을 본다는 것이 더 문제다. 따라서 일부 학생들은 영어실력이 좋은 편 인데도 학원을 포기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한 학부모는 아빠와 엄마가 달라붙어 학원수업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도 벅차다고 한다.
경제위기 이후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미국 교과서를 교재로 사용하는 학원이 늘고 있다. 원어민 교사와 미국의 커리큘럼으로 어학연수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들 학원의 수강료는 다른 곳에 비해 비싼 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은 역사와 문화가 다른 만큼,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는 것이 모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서울 강남의 A 영어 유치원. 6,7세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인 교실에서는 멕시코에 관한 수업이 한창이다.
이들이 보고 있는 교재는 미국 초등 국정 교과서, 2학년 2학기 과정. Reading(읽기), science(과학), math(수학) 등 과목별로 선행 학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학원의 수강료는 월 86만원. 각종 부대비용과 권당 10만원이 넘는 수입 교재를 포함하면 매달 100만원이 넘는다.
학부모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지역에서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비용은 1년에 1000만원 이상 심지어 2000 만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는 2009년 기준 국립대 평균 등록금의 4.3배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초등학교 단과 수업도 마찬가지. 초등학교 4학년 기준, 일반 교재로 수업하는 C학원은 12만원이었던데 반해
미국교과서를 사용하는 D학원은 38만원으로 가격이 3배 이상 비쌌다.
학원들은 미국에 가지 않고도 그 나라의 언어, 문화, 역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D학원 관계자는“그만큼 수준 높은 강의를 통해 어학연수의 효과를 대체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자녀 두 명을 모두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박채연(34)씨는 "공교육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영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킬 계획이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 이후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교과서, 과연 비싼 만큼 모두에게 효과적인 것일까? 전문가들은 "미국 교과서는 그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만든 것이다"며 "미국의 문화 사회 제도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우기 쉽지 않고 생소하다"고 지적한다. 채수환 홍익대학교 영문과 교수는 "미국에서 만든 교과서는 쇼핑, 건강, 인터넷 등 실생활에 관계된 정보가 많고 어휘도 생소한 것이 많다"며 "일반적인 학생들에게 미국 교과서와 원어민 수업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실용 영어 중심인 미국 교과서에 익숙해지면 읽기 중심인 공교육 체제에 적응을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미취학아동, 초등학생과 같은 어린 학생들에겐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더 필요하며 중요한 것은, 교재 자체가 아닌 교사의 역량과, 활용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