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발 하라리가 몰랐던 것 —미국 농무부 킹 국장의 '4천년의 농부'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Claude Sonnet 4.6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불렀다. "농업혁명은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을 늘렸지만, 그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단이나 더 많은 여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구 폭발과 특권층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그 대가로 더 나쁜 식단을 얻었다"는 것이다.
재치 있는 역발상이고, 일부는 맞다. 그러나 하라리는 결정적인 것을 빠뜨렸다. 그가 본 것은 농업의 일부였다. 밀과 목축을 중심으로 한 중동과 유럽의 농업. 지구 반대편에서 수천 년간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어 온 농업을 그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1909년, 한 미국인이 동아시아를 돌아봤다
1900년대 초, 미국 농무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하이럼 킹(Franklin Hiram King)은 중국·한국·일본을 직접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수천 년을 같은 땅에서 농사지으면서도 지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가 목격한 것에 그는 경탄했다. 버리는 것이 없었다. 인분·축분·볏짚·음식 찌꺼기 — 모든 유기물이 다시 논밭으로 돌아갔다. 대두·콩과 식물·피복작물을 활용한 윤작 체계, 그리고 물을 세심하게 다루는 관개 기술.
킹은 미국의 하수 처리 방식이 강과 바다로 귀중한 영양분을 흘려버리는 것을 개탄했다.
그의 목적은 극동의 엄청난 인구 밀도를 가진 지역이 어떻게 수백 년에 걸쳐 토양을 고갈시키지 않고 대량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킹은 이 관찰을 담은 책을 집필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1911년 《4천 년의 농부(Farmers of Forty Centuries)》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의 핵심 메시지 — 퇴비, 피복작물, 윤작, 혼작으로 지력을 유지하라 — 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라리가 놓친 것
하라리의 농업혁명 비판에서 '사기의 주범'은 밀·쌀·감자 같은 식물들이 인간을 가축화했다는 것이다. "밀은 돌과 자갈을 좋아하지 않아서 인간이 허리를 구부려 밭을 갈았고, 밀은 공간·물·영양분을 다른 식물과 나누기 싫어해서 인간이 뙤약볕 아래 잡초를 뽑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밀 이야기다. 그리고 밀 이야기는 맞다.
밀농사는 토양을 드러낸다. 연작 피해가 있어 1/3은 놀려야 한다. 새 땅이 필요하면 숲을 밀어낸다. 4대 문명발상지 —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 가 지금 사막이 된 것은 오랫동안 밀농사와 목축으로 영위된 결과다. 이 점에서 하라리의 비판은 타당하다.
그러나 벼농사는 다른 이야기다.
논에서 자란 것은 논으로 돌아간다. 볏짚은 지력을 보강하고, 물은 유기물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연작 피해가 없다. 같은 논에 수천 년을 벼를 심어도 지력이 유지된다. 논둑은 토양유실을 막고, 물을 담아 탄소를 저장하며, 숲을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 한국 농촌에 수백 년간 이어진 '송계(松契)' — 마을이 공동으로 소나무 숲을 관리하는 자치 조직 — 가 존재한 것도 벼농사가 물을 필요로 하고, 물은 숲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벼농사는 인간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인간·벼·물·숲이 하나의 생태 시스템으로 공진화했다. 이것이 킹이 동아시아에서 발견하고 경탄한 것이다.
농업혁명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라리의 가장 큰 오류는 농업혁명을 하나로 본 것이다.
중동의 밀농사·목축 혁명과 동아시아의 벼농사 혁명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문명을 만들었다. 전자는 토양을 소진하면서 새 땅을 찾아 팽창하는 문명을 낳았다. 후자는 같은 땅을 수천 년간 살리면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문명을 낳았다.
하라리는 전자를 보고 농업혁명 전체를 판단했다. 그것이 그의 결정적 편향이다.
벼농사 공동체에서 이앙농법은 집단적 협동을 요구했다. 모내기철에 마을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집단적 의사결정 능력이 공동체 문화의 토대가 됐다. 착취와 지배의 서사가 아니라 협동과 공생의 서사다. 이것이 두레·품앗이·계(契)를 낳은 문화적 토양이다.
지금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오늘날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농업은 하라리가 비판한 그 농업이다. 아마존에서 매년 수백만 헥타르의 숲이 불타는 것은 소를 키우기 위해서다. 열대 삼림파괴의 41%가 목축, 12%가 대두 재배(대부분 가축 사료)다. 이것이 밀농사·목축 문명이 지금도 반복하는 방식이다.
반면 킹이 100년 전 동아시아에서 발견한 농업 — 순환하고, 담수하고, 숲을 보전하는 벼농사 — 은 오늘 기후위기의 해법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다.
하라리가 몰랐던 것을 킹은 알았다. 그리고 그 지혜가 지금 가장 필요한 때다.
*"수천 년을 같은 땅에서 수확을 거두면서도 토양을 고갈시키지 않은 비결 —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지혜였다."*
*— F.H. 킹, 《4천 년의 농부》,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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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Yuval Noah Harari,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2011
- Franklin Hiram King, 《Farmers of Forty Centuries: Organic Farming in China, Korea and Japan》, 1911
- Our World in Data, Drivers of Deforestation,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