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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 설교
마음도 경건하고 입도 경건하고 또한 말도 경건하여야 하나니 이는 경건의 실천이다.십자가를 자랑해야 할 강단에서 공공연히 자기를 자랑하며 성도가 모인 좌석에서 불결한 농담을 토하는 것은 불경 천만이요
무례 막심한 일이다. -1936년-
◆ 주기철 목사의 마지막 설교 "一死 각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 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간 그 기도내용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 '5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도)
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번에야말로 순교의 영광을 허락하시는가 싶더니, 또 풀어주시어 이렇게 강단에 다시 서게 되었나이다.
아직까지 제가 받은 핍박과 고난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 이르지 못한 걸 알고 있사오나, 할 수만 있다면 이 고통스런 육신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옵나이다.
사랑하옵는 주님이시여!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간악한 마귀의 흑암권세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주님의 강하신 손으로 붙잡아 주시옵소서!
빛 되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저 어두움의 사망권세를 물리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불쌍한 어린양들을 천국 가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이제 이 종이 선포하는 주님의 말씀에 은혜 받고 힘을 얻어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이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첫 번째 저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으로 내 가까이에 뻗어오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즉음 앞에서 탄식하며, 숨쉬는 인생은 모두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사망의 권세는 마귀가 사람을 위협하는 최대의 무기인 것입니다. 죽기가 무서워 의를 버리고 죽음을 피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의 우두머리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서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도 세 번이나 맹세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제왕(帝王), 장상(將相), 才士), 가인(佳人)도 다 죽었고 성현(聖賢), 군자(君子), 위인(偉人), 걸사(傑士)도 다 북망산(北邙山)에 가 묻혔습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는 약자도 불쌍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죽는 사람, 가엾은 아이를 두고 가는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도 허다합니다.
폐결핵 환자로 요양원에 눕지 아니하고 예수의 종으로 감옥에 갇히우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수백 번의 죽음을 당한들 무슨 후회가 있으리오만은, 주님을 버리고 천 년 살고 만 년 산다한들 그 무슨 저주스런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을 욕되게 마옵소서! 주님은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다만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이올시다.
(기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여!
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에게 부활의 믿음을 굳게 하사
나도 부활을 믿고 사망의 권세를 내 발 아래 밟게 하소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 하리로다!
(청중 - 아멘! 할렐루아!!!)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이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얻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주님 밖의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 수는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의 주님을 따라서 가는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요한은 33세, 스데반도 창장년에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나의 두 번째 기원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가지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고문이 끈질긴 만큼 나는 더욱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웬만한 믿음 가지고는 오래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을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단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하는 고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 준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 마디만 타협하면 살려 주는 데는 용감한 신자들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이 연약한 약졸(弱卒)이 어떻게 장기간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마24:14)고 신신부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도 십자가를 직면하자 그 받으실 고난을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십자가상에서 그 혹독한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두 손과 두발이 쇠못에 찢어질 때, 그 고통이 어떠하였으리요! 나와 여러분의 피, 억만! 죄인의 죄짐을 대신지실 때,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엘리 엘리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를 우주도 감당하지 못하여 태양도 빛을 잃고, 그 고통의 핏방울은 땅도 감당할 수 없어, 지축이 흔들리어 지진이 터졌던 것입니다. 내 주 예수 날 위하여 이렇게 고난을 참으셨는데 내 당하는 고난이야 그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지어줍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제 받는 고난, 길어야 70년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천 년 만 년 영원무궁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은 어차피 한 번 죽어 썩을 몸이 죽는 것 뿐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생불사의 몸이며 영원 영화의 몸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참으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며, 우리 앞에는 천국 가는 밝은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羞辱)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나의 세 번째 기원은 '노모(老母)와 처자(妻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저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지중하고 남의 가장, 아비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이 키우고 가르치신 은혜가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은 금지옥엽(金枝玉葉)욿 키우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춘풍추우(春風秋雨)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에,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에 어머니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재차 요한에게 부탁하실 때의 심정 어떠하셨을까요?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셨을까요?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 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어머님을 80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인생을 내게 바치었거늘 나는 남편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 다니는 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 되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경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不肖) 이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에 제 자식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4명의 아들이 있어, 어린 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 것을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한정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의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든, 어린 자식을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내 마음 끝없이 처절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 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십자가에 달이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 하셨으리이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저의 자식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저의 자식들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시여! 저에게는 주님께서 맡시신 양떼,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 내 양떼를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의 이리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맡기나이다. 대목자장이신 예수님 손에 이들을 맡기옵니다.
저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저의 병든 아내도 주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은 줄 압니다. 저의 어린 자식들도 자비하신 주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한 자를 주님 보혈로 사유하여 주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로 가는 이 마음 차마 못할 일이올시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옵소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재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떨리는 목소리, 깊은 흐느낌, 흐르는 눈물, 흐느끼는 회중, 감시하던 일본 형사들도 슬금슬금 교회당 밖으로 나가버림)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께 짐 지울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목메어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우리 주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네 번째 기원은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정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무너지는 한(韓)나라를 붙잡고 오장원(五丈原)에서 죽기까지 국궁진쇄(鞠躬盡鎖) 사이후이 (死而後而), 즉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의도 이럴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주를 위하고 도 그 교회와 그 의를 뿥들고, "국궁진쇄 사이후이", 죽도록 충성하여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백이 (伯夷) 숙제(叔齊) 두 형제는 은(銀)나라의 신민으로서 주(周)나라에서 살 수가 없어 수양산에 숨어 서산(西山)의 고사리를 뜯어먹다가 굶어 죽으니 백세청풍(百世淸風) 모두 그 고상한 인격에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나라를 위해서 선죽교에다 피를 뿌리니 대(竹)야 났으랴마는 그 절개 대보다 청청창창 시푸르도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이와 같은 시를 읊은 그의 절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귀한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이 땅, 이 나라에 대한 의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가 있으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지키느라 풀무불에도 뛰어들었고,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 속에도 들어갔습니다. 이 모두가 오직 예수를 사랑하는 까닭에 믿음으로 행한 일들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니 용광로 같은 풀무불이 두려우랴! 예수를 사랑하니 굶주린 사자굴도 두렵지 않도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습니다.
백제나라의 도미 부인은 개루왕의 협박과 부귀의 유혹도 물리치고 두 눈 뽑힌 남편 도미를 찾아 일엽편주 조각배로 만경창파 서해 바다에 떠서 황주 마을 뫼 아래서 한 평생 그 남편을 섬겼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의 딸들이 정절을 지키던 피눈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주후 2백년 카르타고의 벨빼추어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젖먹이와 늙은 아버지의 우는 소리를 뒤에 두고 형장에 나가서 사나운 소뿔에 찔려 죽었습니다. 천고(千古)우ㅏ 욜뇨(烈女) 벨빼추어는 지금 주님의 나라에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으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수부너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에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에수의 이름이 땅에 떨아지게 되는 오늘, 이 몸 구구도생이 어찌 말이 됩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 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항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몸 죽고 죽어 열백 번 다시 죽어도 주님 향한 대의정절 변치 아니하겠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이 몸 드립니다. 우리 초로 인생 살면 며칠입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살으십시다! 의를 버리고 더구나 예수께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개짐승의 삶만 같지 못합니다. 여러분! 예수는 살아 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십시다.
(흐느끼는 교우들을 바라보다가, 찬송가를 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 ……
나의 다섯 번째 기원은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입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혹여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나라가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 길을 걷게 하시옵시고,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주여, 영광 받으옵소서!
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기쁨을 주신 주님께 모두 감사의 박수로 영광 돌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친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길선주 목사님 설교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어떤 설교가 행하여지고 있는가?
현하의 웅변을 들을 수가 있다.
흥미 본위의 야담과 만담적인 것을 들을 수가 있다.청중의 심리를
격동시키는 사상적 정치적 강연은 들을 수 있다.그러나 순 복음적인 신령한 설교는 듣기가 매우 드물다.
-제21회 장로회 총회 개회 설교-
길선주 목사의 설교
- 한국교회의 아버지가 남겨준 설교 교과서 - 1. 길선주의 이교도 생활과 회심 사건
길선주는 1869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으로서 고려 말 유학자 야은 길재의 19대손으로 어렸을 적부터 영성과 감성이 예민하여 12세 때 벌써 주위를 놀라게 할 만한 한시를 지었고, 청소년기에 인생의 깊은 고뇌에 빠져서 구도자적인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그는 젊은 시절 근 10년의 세월을 삼국지의 관우(關羽)를 모시는 관성교(關聖敎)에 입문하여 창일도사라 부르는 김순호(金舜昊)에게서 받은 산신차력주문(山神借力呪文)을 외워가면서 차력에 도통하였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평양의 도사(道士)로 알려진 장득한(張得漢)의 문하생으로 선도(仙道)를 수련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는 끝까지 도를 닦는 일에 게으름이 없었고 마침내 도통하게 되었다.
이러던 길선주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평양의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t) 선교사의 전도로 먼저 개종한 그의 친구 김종섭의 권유 때문이었다. 김종섭은 길선주와 같이 도를 닦던 의형제였는데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와 가장 가까운 길선주를 전도하였던 것이다. 김종섭은 그의 친구를 전도하려고 ‘장원양우상론’(張元兩友相論)과 ‘천로역정’(天路歷程) 같은 여러 가지 신앙 서적을 그에게 주었는데 예수교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던 길선주를 감동시킨 책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었다.
길선주는 1896년 그의 나이 28세였을 때 하나님을 상제님이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상제님이시여, 저는 번민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참 구세주인지 알려 주십시오.”라는 생사를 건 야곱의 씨름처럼 죽기 살기로 기도하던 중 그가 도통했을 때처럼 방안에 청아한 옥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소리 같은 것이 나면서 진동하더니 하늘에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하고 부르는 음성을 듣고 너무 놀라 “아버지여 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라는 기도와 함께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10년 동안의 이교도 생활을 청산하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2.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
이렇게 예수를 믿은 길선주는 그리스도에게 귀의 한다는 표시로 상투를 잘랐다. 그리고 그의 가족을 모두 전도하였고 그의 의형제인 김찬성을 전도하여 예수 믿게 하였다. 길선주는 1897년 8월 15일 세례를 받았고, 이듬해인 1898년 나이 30세에 평양 널다리골(판동)교회(장대현교회의 전신)의 영수(領袖)가 되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목회하는 동안 교회가 급성장하여 장소를 널다리골(板洞)에서 장대현(章臺峴)으로 옮겨서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72칸 기와집 건물을 새로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평양 최대의 건물이었고 교회당의 종소리는 10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길선주는 33세에 장로가 되었고 전국적으로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 마포삼열 선교사에 의하여 평양신학교가 개교하자마자 입학하여 제1회로 졸업하였고 서경조, 이기풍, 한석진, 송인서, 방기창, 양전백 등과 함께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길선주 목사는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회개운동과 부흥의 불길의 시작인 1907년 장대현교회의 영적대각성운동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는 십자가의 예수만을 전하였고,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하면서 설교했다. 그는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여 기도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1926년에 장대현교회 목사직을 사퇴한 후부터는 전문 부흥사로 나서서 1년에 30주 이상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돌면서 종횡무진으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그는 2만회 이상 설교하였고 38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3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당시 쓰러져가는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울 사회운동가를 배출하였고, 1899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독립협회 평양지회를 설립하기도 하였고, 삼일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옥고를 치렀던 민족지도자였다. 그는 집안에만 갇혀 있던 여성을 교회로 나오게 하여 여성해방의 문을 열었고, 문맹퇴치를 위하여 야간학교를 만들고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과 부녀들과 성인들의 한글교육에 힘쓴 민족지도자였다.
그는 교회학교의 체계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1901년 장대현 교회의 장로가 된 길선주는 마포삼열 목사와 의논하여 주일 아침 성경공부 반을 만들고 장년부, 청년부, 아동부로 나누어서 실시하였다. 그리고 매번 성경공부 시간에는, ‘성경을 읽는가’, ‘기도를 하는가’, ‘전도를 하는 가’, ‘매 주일 예배에 헌금을 하는 가’를 표시하게 하고 성경공부의 요절을 외우게 하였다.
그는 가정예배와 심방목회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었는데, 기억력이 출중하여 한번 듣고 본 일은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고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를 깨닫는 총명함이 있어서 그의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목회와 부흥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는 1912년 제1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 부회장 겸 전도국장이 되어 국내외의 선교에 크게 공헌하였고 교회를 60여 군데나 개척하였다.
유불선(儒佛仙)의 3교를 모두 거쳐서 기독교의 지도자가 된 그는 한국교회의 토착적 문화를 사랑하였고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기독교 예배를 지향하였다. 그는 한국의 고유 가락인 국악을 찬송에 도입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의 사람이었고, 한국문화와 예술이 기독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선각자였다. 그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저술활동도 끊임없이 하였는데 ‘말세학’ 등의 그가 남긴 책은 아직도 주목받고 있다.
3. 설교자 길선주 목사
길선주 목사의 설교는 한 알의 씨앗과 같아서 장성한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해야 할 모든 설교형태의 유전자를 다 가지고 있다.
1) 성경에 기초한 설교 - 강해설교의 개척자
길선주 목사의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설교는 성경구절 암송에서 시작하여 암송으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그는 이미 개종 이전의 독경 습관으로 성경을 수없이 읽고 암송하였는데, 구약을 30번, 신약을 1백 번 읽었다고 하며, 구약 중에 창세기와 에스더서는 540 번을 읽었고, 신약 중에 요한 서신은 500 번, 묵시록은 무려 1만 번이나 통독하고 통째로 외워버렸다고 한다. 그가 새벽에 기도를 마친 후에 묵시록을 20분간 암송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설교할 때 성경을 자유자제로 인용하면서 설교를 하였고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강해설교의 개척자였다. 그의 설교는 성경을 떠나지 않았으며 성경의 기초 위에서 전개되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많은 설교법이 소개되고 있으나 설교자는 모름지기 성경을 다독하고 성경에 통달하여 그 말씀으로 설교해야 함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최상의 설교법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2) 기도에 기초한 설교 - 큐티식 설교의 개척자
길선주 목사의 설교는 성경말씀과 더불어 기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가 새벽기도회를 제도화 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유불선의 토속 종교에서의 기도를 기독교의 기도로 연결시켜 그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버렸다. 따라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요, 이것이 한국교회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1906년 가을 당회의 결의를 얻은 후에 교회의 새벽기도회를 공식화했다. 이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의 영성은 그 이듬해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의 촉발 원인이 되었다.
길선주 목사가 잠을 자지 않고 기도에 몰입하다가 졸린 눈에 얼음물을 부어 각막이 파괴되는 일이 있었고 평생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다. 그는 매일 한 시간의 보통기도와 매주 3일씩 금식기도와 매년 1주일간의 금식 대(大)기도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오늘 설교가 기도에 기초하지 않고 얄팍한 기교에서 나오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고행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설교자들이 기도에 힘쓰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통이 있다면 메시지는 자연스레 얻어질 것이고, 그 설교는 감동으로 전달될 것이 분명하다. 매일같이 기도와 성경일기를 병행하면서 설교했다는 점에서 길선주 목사의 설교는 요즘 유행하는 큐티(Q.T.)식 설교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3) 실물에 의한 설교 - 시청각 설교의 개척자
아직 목사가 되기 이전에 길선주 장로가 설교자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1907년 1월13일 장대현교회의 남자 사경회 주일집회에서 일어났다. 그는 설교 도중에 죄로부터의 회개와 미움으로부터의 화해를 설명하면서 시청각적인 효과를 노리고 단막극을 연출한 것이다. 그는 끈으로 자기 허리를 묶고 교인 한 사람을 나오라고 한 다음 뒤에서 끈을 꽉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끈에 묶인 상태로 그는 강단 저쪽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맥큔(G.S. McCune) 선교사에게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이 마치 죄책감에 사로 잡혀 괴로워하는 사람 같았는데, 마침내 끈이 풀어지고 길 장로는 맥큔에게 달려가 얼싸안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회중은 순간 울음을 터뜨리고 바닥에 쓰러졌고 그 중 여러 명이 남을 미워했던 죄를 자백하겠노라며 손을 들고 일어섰다. 두 사람의 포옹은 영적으로는 죄로부터의 해방의 상징이었고 육적으로는 한국교인들과 서양선교사들 사이의 갈등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화해의 상징이었다.
회개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당시의 청중에게 시청각적 설교를 통하여 회개의 울음바다를 만든 이 설교는 후에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씨로 작용하였다. 오늘날 설교는 들려줄 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설교가 유행이다. 그러나 이런 설교도 벌써 길선주 목사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설교자는 들려줄 뿐만 아니라 보여줘야 한다. 길선주 목사 보여준 회개와 화해라는 설교 주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설교의 화두가 아닌가?
4) 영성에서 나오는 설교 - 오순절식 성령 설교의 개척자
길선주 목사는 장로로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리고 이 운동은 한국의 오순절 사건이었고,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의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의 설교는 한국교회 전체를 성령체험으로 몰아넣었고 폭발적인 교회부흥을 가져왔고 회개운동을 촉발시키면서 교회개혁의 문을 열었다. 교인들은 그의 설교에 흐느껴 울고 마룻바닥에 뒹굴고 죄를 고백하고 가슴을 치면서 기도하였다. 일본 순사가 범인을 잡으러 왔다고 회개하고 예수 믿기도 하였고, 불교의 중이 회심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교회는 그의 설교로 인하여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몰아쳤던 성령의 불길을 경험하였고, 회개가 생활로 이어져서 교인들은 잘못된 습관을 청산하고 금전적 잘못에 대한 배상을 스스로 하는 삶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부흥설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성령설교는 길선주 목사가 영적인 설교자였기에 가능하였다. 그의 지나친 영성의 갈급함 때문에 선도(仙道)에서 10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었지만 그 영적인 열심히 그대로 복음의 영성으로 이어져서 대부흥을 이끌어 내었다. 모름지기 설교자는 영성이 메마르면 안 된다. 설교는 말이 아니라 설교자의 인격과 존재가 영성의 충만함 속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 영성이 있는가? 성령에 이끌리는 설교만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
5) 민족을 품는 설교 - 사회참여와 토착화 설교의 개척자
이밖에도 길선주 목사의 설교는 민족독립을 위해서 공헌하였고 한국교회를 토착신앙으로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였고 이 때문에 1년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한국에 서양 선교사의 영향이 강했던 시절에 교회의 한국화를 부르짖었고 한국인에 의한 민족교회를 만들었던 선각자였다. 그는 교회의 예배나 설교나 음악을 민족적인 분위기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의 설교는 우리 시대의 토착화 설교, 민중적 설교, 계몽적 설교의 효시였다.
길선주 목사는 한국교회의 아버지로서 손색이 없는 목회자요, 부흥사요, 설교가요, 민족독립운동가였다. 오늘날 교리적 색채로 말미암아 사분오열되어 있는 한국교회에 길선주 목사와 같은 통전적 신앙이 절실히 요구된다. 교리나 신앙의 어느 한 쪽을 자기 영역으로 삼고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는 한심한 세태를 극복하려면 설교자들이 길선주 목사가 가졌던 국이 크고 통이 넓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길선주 목사로 돌아가는 것만이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길이다. 오늘 한국교회에 길선주 목사가 아쉽다.
손양원 목사님 설교(고전6:1-20.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나의 생명까지도 바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이 몸이니 주 위해 살다가 주 위해 죽는다면 이 이상 더 성공이 있겠는가? 베드로 요한 등 11제자가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까지 사도 노릇을 했고 옛날 모든 성도가 다 그 같은 성결생활 축복생활을 달게 받았다.
오늘 우리들도 참으로 진리를 아는 기독자냐?
그렇다면 우리도 죽도록 충성하자. 우리를 사게 된 은인에게 죽도록 충성하자! 롬14:7-8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일분간이라도 자기를 위하거나 인간을 위해 살지 말고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우리를 사신 이를 위하여 살자! 그리고 주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자!
신앙인물-손양원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지 100년. 우리나라는 짧은 기독교의 역사를 가졌지만 너무나도 많은 훌륭한 믿음의 선조들을 둔 축복받은 나라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어떻게 보면 상관도 없는 이 나라에 발을 디디고 무수한 고난과 피를 흘리며 복음을 뿌리었고, 또 그 열매들로 많은 선조들이 신앙을 가지고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그 신앙을 지키고 전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일제의 강점기 동안은 더더욱 큰 시련이 불어닥쳤는데, 그 시련속에서도 꿋꿋이 믿음으로 버텨나온 이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손양원 목사님이시다.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 경남 함안에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1905년 을미사변후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기에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자랄 수가 있었다.
그는 후에 경남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생활을 하게되는데, 그가 처음으로 전도사 생활을 한 곳은 부산 감만동에 있는 나환자촌이었다. 후에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에 있는 애양원이라는 곳으로 부임해 그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여기서 손양원 목사님이 지은 시를 보면 그의 사람됨이 어떠한 지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을 당한 자들이옵고
부모와 형제의 사랑에서 떠난 자들이옵고
세상 모든 인간들이 다 싫어하여 꺼리는 자들이오나
오 주여, 그래도 나는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만약 저들과 같이 된다면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일생을 같이 넘기려 하오니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사 어루만지심같이 내가 참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생략)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몸이 문드러져 형태도 괴상한 문둥병자들을 그는 몸을 부비며, 진심으로 사랑할려고 노력하시고 또 사랑하셨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그 깊은신 사랑을 깨달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유하며, 차분하며, 진정 사람을 사랑할 줄 아셨던 분이셨다.
1938년 9월9일 제27회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열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기에 기독교인들도 해야한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모두가 완강히 거부하다가 폭력과 회유앞에서 굴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에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손양원 목사님이셨다.
그는 경남 지역을 돌아다니며 신사참배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설교하며 다니다가 1년 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르게 된다.
옥중에서 추위와 배고픔과 또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그의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옥중에서 쓴 수필의 대목을 살펴보면 이 투철한 신앙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에 어찌 두 해가 있을 수 있고, 일국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있으랴,
우주의 주인공이 어떻게 둘 되겠으며, 십자가의 도 외에 구원이 또 어디 있으랴 세상에는 주인도 많고 신도 많으나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 내게 없구나 석가도 유명하고 공자도 대성이나 오직 내 구주는 홀로 예수뿐이니 내 어찌 두 신을 섬길 수 있으며, 예수님 이외에 속죄가 어디 있으랴 이 신을 위하여는 아까울 것 무엇이며, 이 주를 버리고서 내가 어디로 가랴.
시종일관 그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다가 만5년의 옥고를 치르다가 결국은 종신형에 처해지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광복을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다시금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광복 후 신사참배거부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금 애양원으로 모이고,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게 되었다.
자녀들도 나이는 많았지만 이리저리 해서 모두들 학교에 편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순천에 자취방을 정하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고 전도에도 힘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이 가족에게 남은 시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었다.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좌익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1주일만에 진압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에서 손양원 목사의 첫째 아들 동신과 동인이 순교를 하게된다.
두 아들도 아버지와 같이 절개있는 신앙인으로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져버리지 않을뿐더러 그를 죽이려는 많은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전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접해들은 애양원 모든 가족들이 비통해 했으며, 손양원 목사 역시 충격과 고통에 싸여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때 당시 애양원에 부흥강사로 온 이인제 전도사가 손양원 목사의 어깨를 치며 호통을 쳤다.
"손 목사. 정신차리시오. 우리는 과거에 감옥에서 순교하기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교를 허락하지 않으셨소.
오늘 젊고 아름다운 두아들을 순교의 제물로 바친 것이 그리도 아깝소? 슬퍼하기만 할 일이 아니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지요." 이 말을 듣고 손양원 목사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이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9가지의 감사문을 썼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여순 반란사건이 일어난지 1주일 후 반란세력은 우익세력에 모두 진압되었고,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을 살해한 학생도 잡히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는 아들의 영결식에서 기도했던 이 아홉가지의 감사문 중 일곱 번째의 감사를 이행하기 위해서 경찰과 군인측에 알렸고, 끝내는 사형당할 수 밖에 없었던 자를 살려내 아들을 삼고 예수 믿게 하려고 부흥회를 갈 때 마다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또 손양원 목사는 당시에 이름난 부흥강사였다고 한다.
그는 부흥회를 인도할 때 마다 먼저 이것을 읽었다고 한다.
나의 부흥회 시에 먼저 읽을 것
1. 하나님의 지능을 의지하고 나의 지(知)를 의지하지 말 것
2. 주님을 나타내지 않고 나를 나타낼까 삼가 조심할 것.
3. 성경 원리 잘 모르고 내 지식대로 거짓말하지 않게 할 것
4. 간증시에 침소봉대하여 거짓말되지 않게 할 것
5. 나도 못 행하는 것을 남에게 무거운 짐 지우게 말 것
6. 내 한마디의 말에 청중 생명의 생사 좌우 관계 있음을 깊이 알고 말에 조심도, 열심도, 충성도 다할 것
7. 이 한 시간에 성경 말씀 한 마디에 인령(사람의 영혼)이 생사 좌우되는 것을 잘 생각해야 된다(지옥에서 끌어올리게도 끌어내리게도 한다)
8. 음식과 물질에도 크게 주의할 것
1)주님 대신 받는 대접이니 대접 받을 자격 있나 살펴라
2)배 위해, 입맛에 취해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해 먹으라
3)물질, 선물에는 하등의 관심을 두지 말라
결론, 오 주여! 이 한 시간에 주 앞에 범죄되지 말게 하여 주시고 사람앞에 비 없는 구름처럼 은혜 못 끼치고 돌아갈까 주의하게 하소서, 또 내생에 유일한 참고서는 오직 성경66권이 되게 하소서, 아멘.
1950년 6·25가 발발 된지 3개월도 되지 않아서 공산군들이 애양원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대부분의 목자들이 공산군들을 피해 부산으로 이민을 많이 갔지만, 손양원 목사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목자가 양떼를 버리고 제 살려고 갈 수는 없다"고 하며 계속해서 애양원 가족들과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산군들에게 잡혀서 고문에 고문을 받고 끌려가다가 한적한 과수원 밭에서 총살 순교를 당하셨다. 그는 마지막까지 기도하며 함께 잡힌 자들에게 전도하고 공산군들에게 하나님을 얘기하였다고 한다. 시신을 거두어 왔을 때는 여러 군데 총상이 있었는데, 그 중에 손등을 관통 당한 총상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걸어가셨던 것이다.
믿음과 삶, 그 사이에 어찌 괴리감 없었겠는가 만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는 확실히 천양지차의 믿음을 발견한다. 고난 중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라는 믿음과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려 하지 않았던 손양원 목사.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았기에 가능했던 삶. 말씀과 부르짖는 것을,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던 믿음의 사람 손양원. 우리는 그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사랑의 원자탄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 장례식
(박형룡 목사님의 추모사)
1.손 목사님은 위대한 경건의 사람이었다.
2.손 목사님은 위대한 전도자였다.
3.손 목사님은 위대한 신앙의 용사다.
4.손 목사님은 나환자의 위대한 친구였다.
5.손 목사님은 원수를 사랑한 위대한 사람이었다.
6.손 목사님은 의의 면류관을 쓰신 위대한 순교자시다.
-1950.10.29.오후2시.서울 남대문 교회 빈터.
저는(박명호목사) 존경하는 스승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중에 앞으로 목회자가 되면 지도자로서 목회자로서 특히 강단에서 조심하라는 10가지 당부의 말씀이 특히 감동이 되어서 수록해 보았습니다.
지도자10훈
1.비단옷을 입지 말라.
지도자가 비단옷을 입으면 아랫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2.철학을 가지라.
철학은 인체의 척추와 같고 건물의 기둥과 같다.
3.고독을 이기라.
사람은 올라 갈수록 고독하다.
고독을 이기지 못하면 실패한다.
4.참으라.그리고 기다리라.
만사는 때가 있고 순서가 있다.
5.역사를 보는 눈을 가지라.
역사는 자연의 법칙과 같다.
6.홍해(난관) 앞에서는 무릎 꿇어 기도하라
인간의 불가능이 하나님은 가능하다.
7.칼을 쓰지 말라.
칼을 쓰는 자는 칼에 의해서 망한다.
8.결백하라.
부정은 족쇄와 같다.족쇄는 진로를 막는다.
9.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쓰라
선과 악은 다 갚음이 있다.
10.상은 후하게 주고 벌은 가볍게 하라
사랑은 최후 승리자이다.
강단 10훈
1.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
겸손 하라
2.수다를 떨지 말라
꼭 필요한 말만 하라.
3.다른 사람을 악평하지 말라
모든 사람을 좋게 이해하라.
4.저속한 언사를 사용하지 말라
고상한 말을 구사하라.
5.성난 마음으로 말을 하지 말라
따스한 마음으로 말을 하라.
6.사실 무근 한 말을 하지 말라
정직하라
7.세속적인 말을 하지 말라
항상 성경적인 말을 하라.
8.저주의 말을 하지 말라
용서와 희망의 말을 하라.
9.육의 생각으로 말을 하지 말라
성령으로 감화된 말을 하라.
10.속단하지 말라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라.
목회자 10훈
1.기도하라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2.참으라
참음이 없으면 이기지 못한다.
3.겸손 하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
4.예의를 지켜라
예의는 일만 행위의 기초이다.
5.성실하라
열성의 지렛대는 우주를 움직인다.
6.온화하라
뜨거운 불이 강철을 녹인다.
7.미리 준비하라
미리 준비하면 환난이 없다.
8.연구하라
땅을 깊이 팔수록 보화가 많다.
9.정직하라
하나님은 정직한 자와 함께 하신다.
10.희생하라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가장 기뻐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교회 오시는 것은 즐기려고 오십니까?
예배 드리려 오십니까?
예배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敬畏)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주기철 목사님과 길선주 목사님이 활동하던 일제 강점기는 분명히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활동하던 6.25동란 같은 뼈아픈 동족상잔의 암울한 시대도 아닙니다.
더구나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죄 때문에 혹시 죽을지 몰라서 방울 달린 긴 끈을 허리춤에 묶고 들어 갔던 시대는 더 더욱 아닙니다.지금은 은혜 시대입니다!
말로는 거룩한 예배,구별되고 성별된 예배를 드리자고 외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강단에서 코메디와 개그가 유치하게 판을 치고 유행가가 판을 치며 성직자는 세상 방법으로 웃기고 성도는 깔깔깔 박장 대소하며 웃는 것을 보면 이것은 도대체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인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쇼-오락장인지.......?
언제 부터인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 사상(敬畏思想)이나 경외 정신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미명(美名)하에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스트레스 해소의 장소로 거룩한 성전이 변화되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람은 모두가 다 행복해야 되고 건강해야 되고 즐거워야되고 기뻐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진리가 절대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모든 것(부귀.영화.명예.권세...)을 배설물로 여기며 순교의 각오로 복음을 전했고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초대 교회의 믿음의 선각자들은 순교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이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하여 목숨 바쳐 피를 뿌려 주셨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분들 앞에 아니 더 나아가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정말 잘하고 있는지 깊이 한번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