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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국어생활 11-1호>
김창섭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어에서 합성어에 관한 이해는 순수 학문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단어 단위로 하는 여러 가지 작업들, 즉 사전 편찬의 표제어 선정을 비롯한 여러 응용 분야의 목록화 작업과 컴퓨터를 이용한 언어 분석을 위한 태깅(tagging) 작업에서 선결 조건이 되며, 일반인에게는 주로 띄어쓰기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성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합성어의 개념을 소개하고, 국어 합성어의 유형 분류를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합성어와 구의 구별에 관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보기로 한다. 1. 합성어의 개념 복합적인 내부 구조를 가지는 단어는 '복합어'라고 하는데, 복합어를 직접구성요소(IC. immediate constituent)로 분석했을 때 그 중의 하나가 접사이면 그 복합어를 파생어라고 하고(잡-+-히-, 새-+파랗-, 손+-질), IC가 모두 어근이거나 그보다 큰 단위이면 합성어라고 한다(부슬+비, 이슬+비, 햇+빛, 높-+푸르-, 잡아+먹-, 으로+부터, 우물+쭈물, 큰+집, 도둑놈의+지팡이). 반복 합성어 즉 첩어는 따로 분류하는 수도 있다. '구형 어휘소(phrasal lexeme)'란 구이면서 한 어휘소가 되는 관용어를 가리킨다(손이 크다, 새빨간 거짓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 '담墻(장), 淵(연)못, 굳健(건)하다'와 같은 것들도 원래는 합성어이었으나, 지금은 어원에 관한 지식을 동원하지 않으면 분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시적으로 단일어가 되었다고 한다. (단, '굳건하다'는 '-하다' 때문에 파생어임). (2)에서 '왕-, 엿-, 집, 하-'가 단어 형성에 참여할 때의 자격은 각각 접두사/명사, 접두사/동사, 접미사/명사, 접미사/동사로 달리 인정될 수 있어서 (2)의 예들은 파생어로 인정되기도 하고 합성어로 인정되기도 한다. (3)의 예들은 예컨대 '해+[돋+이]'와 같이 분석해서 합성어라고 하는 견해와 '[해+돋]+이'와 같이 분석해서 파생어라고 하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샘솟-'은 '샘'과 '솟-'이 조사로 분리될 수 없으므로 합성어이지만, '폭넓-'은 판단하기 어렵다. 합성어로서의 '폭넓-'과 구로서의 '폭 넓-'을 다 인정하든지, 언제나 구로만 인정할 수 있는데 아직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2. 합성어의 유형 분류 위에서 가장 생산적인 것은 'N1+N2' 형의 합성 명사, 'V1-어+V2' 형의 합성 동사, 그리고 반복 합성어로서의 합성 부사일 것이다. 주의할 것은 '막내+까지+를'의 '까지를'처럼 단순히 두 조사가 연속된 것은 합성조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째부터 막내까지를'은 '[첫째+부터 막내+까지]+를'과 같이 분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의 다른 품사들에서도 합성어가 인정될 수 있다('하나둘', '한두'의 합성 수사와 합성 관형사 등). 합성 조사에 대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아 예측하기 어려우나 관점에 따라 많은 합성 조사가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사적 합성어는 어기들의 결합 방식이 두 단어가 구를 이룰 때의 결합 방식과 같은 것이고 비통사적 합성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통사적 합성어들은 과연 합성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구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복합 명사에서 종합 합성어라는 부류를 따로 두기도 한다. 일반적인 '명사+명사' 합성어는 단순히 두 어기가 나열됨으로써 이루어진 합성어인 데 반해 종합 합성어는 이미 앞의 예 (3)으로 본 바와 같이 앞뒤 요소 사이에 '주어+동사', '목적어+동사'와 같은 관계가 성립하는 합성어이다. '명사+명사' 합성어는 앞뒤 요소 사이의 의미 관계가 일정치 않아서, '목티'는 목까지 올라가 목을 가리는 티(티셔츠)이고 '배꼽티'는 배꼽까지 못 내려가 배꼽을 드러내는 티이며, '얼음집'은 얼음을 파는 집일 수도 있고 얼음으로 지은 집일 수도 있으며 얼음 속처럼 추운 집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종합 합성어의 의미는 '주어+동사'나 '목적어+동사'의 통사적 구성처럼 의미 해석이 규칙적이다. 여기에서는 명사의 반복, 부사의 반복, 의성의태어 또는 어근의 반복, '-디'나 '-나'를 매개로 한 반복 등 여러 유형을 볼 수 있다. '-디', '-나'를 매개로 한 형용사 어간의 반복은 여전히 형용사 어간이 되나, 그 외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부사 혹은 부사성의 어근('걱정걱정')이 된다. 의성의태어의 반복에는 '쿵쿠궁, 탁타닥, 팡파방'에서 보이는 반복 등 흥미로운 규칙성을 보여 주는 것들이 많다. '돌아가다[歸]'로부터 '돌아가다[死]'가 가지쳐 나오는 일은 한 단어가 또 하나의 뜻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큰 손'이라는 구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면서 '큰손'으로 단어화한 것은 새 단어의 탄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경우는 의미의 재분석이 새 단어를 낳았다 하겠다. 합성 명사 '밤낮'이 합성 부사가 된 것은 부사어가 부사로 재분석됨으로써 새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잘'+서술어' 구성의 부정형인 '잘+못+서술어'에서 '잘못'이 부사가 된 것도 역시 문법적인 재분석의 결과이고, 다시 그로부터 명사 '잘못'이 탄생한 것 역시 어떤 문법적인 재분석의 결과일 것이다. (10)의 예들이 형성된 기제는 합성이 아니라 재분석이기 때문에,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들의 성격은 다른 합성어보다는 차라리 재분석에 의한 파생어 및 다의어와 더 가깝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3. 합성어와 구의 구별 이 검증법들의 문제는 합성어임을 확인해 줄 기준은 없고 구임을 확인해 주는 기준만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쌀밥'의 A는 조사 '의'와 결합한다든가 관형어를 가지는 등의 통사적 행동을 할 수 없다. 또, '밥'도 '죽'과 함께 쌀을 공유할 수 없다(*쌀 [밥 및 죽]). 이 정도이면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쌀밥'을 하나의 합성어라고 판정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최종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쌀밥'이 다른 어떤 면에서 구적(句的)인 행위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달려오다', '깎아먹다'와 같은 'V1-어+V2'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V1-어'에 '서'가 붙을 수 있으면 그 때의 'V1-어+V2'는 구로 보고, 그럴 수 없으면 합성 동사 또는 보조 용언 구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판별법이다. 동일한 '달려오다'에 단어도 있고 구도 있을 터인데, (14a)의 '달려'에는 '서'가 붙을 수 있고, (14b)의 '달려'에는 '서'가 붙지 않는 쪽이 자연스러우므로 각각 구와 합성 동사로 판별할 수 있고, (14c)처럼 단어도 구도 다 쓰일 수 있는 자리도 있을 것이다.
'합성어'는 단어를 그 내부 구조에 따라 분류했을 때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 합성어는 이러한 분류 체계에서 다음과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용언의 어미는 주어진 단어의 활용형을 만드는 데 기여할 뿐이므로, 어미는 국어에서 조어법에 따라 단어를 분류할 때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용언의 경우 어간을 '단어'라고 부르기로 한다.)
합성어는 파생어와 동렬에 서는 개념이어서 다음과 같이 파생어와의 구별이 쉽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
위 (1)에서 보듯이 합성어는 또 한편으로는 구형 어휘소와 인접해 있다.
폭넓은 생각/*폭이 넓은 생각
합성어의 유형을 관찰하는 것은 합성어가 형성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합성어는 합성어 전체로서의 품사에 따라 분류된다.
<합성 동사> 돌아오-, 감싸-, 빛나-, 뺨치-, 앞서-, 잘나다 ...
<합성 형용사> 높푸르-, 차디차-, 색다르-, 못하다 ...
<합성 부사> 우물쭈물, 푸릇푸릇, 잘못, 죄다 ...
<합성 조사> 으로부터, 에게로 ...
합성어는 또 다음과 같이 결합 방식에 따라 분류되기도 한다.
<비통사적 합성어> 콧물, 넓적다리, 손수운전, 접칼, 굶주리다, 검붉다, 펄럭펄럭, 싱글벙글 ...
반복 합성어는 단어나 어근의 전체 또는 일부가 반복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이 안에서는 의성어, 의태어가 따로 큰 무리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재분석에 의한 합성어'라는 부류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A와 B가 각각 단어이거나 단어 이상의 형식일 때, 그 중에서 합성어인 A+B를 가려 내는 기준에는 무엇이 있는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은 의미론적인 것으로 A+B가 한 개념을 나타내면 그것은 한 단어(합성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의 적용에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또, 관용어 중에는 단일한 개념을 나타내면서 구 신분을 가지는 것들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문법론적 기준은 어떤 A+B가 단어라면 A나 B가 독자적으로 어떤 통사론적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A에 가외의 문법 요소가 결합한다든가, A, B 중의 하나라도 외부 요소의 수식을 받는다든가, 외부 요소와 대등하게 접속된다든가, 생략된다든가, 대명사로 받아질 수 있다면 그 'A+B'는 구로 판정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다음의 예들을 판정해 보면 괄호 안에 쓴 것처럼 될 것이다.
b. 선수들이 달려오고/?달려서 오고 있습니다. ('달려오다': 합성 동사)
c. 운동 삼아 달려왔어요/달려서 왔어요. ('달려+오다': 합성 동사 또는 구)
b.[껍질을 깎아/깎아서] 먹어야지. ('깎아+먹다': 구)
결국 우리는 어떤 A+B가 합성어임을 증명할 일반적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생산적인 합성어 형성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첫댓글 구형 어휘소--처음 듣는 단어네요..비통사로 헤맸던 적(<--이케 쉬운 것을..)이 엊그제 같은데...참..도움 많이 받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