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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봉(頭老峯)을 넘어서 만월봉으로
20210606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얼을 기리는 제66회 현충일, 임들의 숭고한 뜻을 머리 숙여 추념하였다. 백두대간 산행은 국토사랑의 마음으로 우리 국토의 등줄기를 걸으며 우리 국토와 역사를 배우는 일이다. 현충일에 백두대간을 산행하는 일도, 숭고한 임들의 자취를 기리는 일이며 결국은 애국애족의 마음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위로한다.
강릉과 평창의 경계인 해발 960m 진고개에 일주일만에 다시 왔다. 오늘은 진고개에서 오대산 동쪽 산줄기를 타고 동대산을 거쳐 두로봉으로 진행한다. 가장 최근의 진고개-동대산-두로봉 산행은 2018년 10월 7일,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날이었다. 그때 가슴이 빠개질 듯한 통증이 몹시 심하여 어렵게 산행을 마친 뒤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니 협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심장 관상동맥에 2cm 스텐트 2개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다. 그 1개월 뒤 산행을 재개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살아서, 산행을 즐기고 술을 마실 수 있음에 행복하다. 이 행복을 누림에 가족과 벗, 주변의 지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9시 30분이 못 되어서 둥두렷한 동대산을 올려보며 진고개 들머리 덱(deck) 계단을 올라선다. 계단을 올라서서 진고개정상 휴게소를 내려보고 노인봉에서 내리벋는 능선을 바라보니 산행의 여러 추억들이 솟아오른다. 메밀꽃이 피어나는 밭 가장자리를 지나니 나무다리가 나온다. 나무다리를 건너 숲 속으로 들어가니 층층나무 하얀 꽃들이 출렁이고 길 가장자리에 노란 감자란 꽃이 반짝인다. 오랜만에 감자란 꽃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공들여 사진에 담으며 감자란과의 옛 추억을 떠올렸다. 설악의 마산봉 가는 길에서 감자란 꽃을 처음 보았었는데, 이름을 몰랐었지. 이후 이름을 배웠고 그때의 첫 만남을 언제나 기억한다.
두로봉 산행의 첫 어려운 관문, 동대산 급경사를 오른다. 중력을 역행하는 오름은 언제나 힘들다. 특히 급경사에서는 더더욱 고통스럽다. 동대산 오르는 급경사를 허위적허위적, 산죽밭에 이르면 잠시 평탄한 길, 숨을 돌리며 걷는다. 산죽들이 병이 들었는지 누렇게 시들어 있다. 공중에서는 활엽수 교목들의 넓은 잎들이 푸르게 녹음을 짙는데 땅에서는 산죽들이 그 푸름을 잃고 시름시름하다. 그 풍경을 보니 마음이 우울해진다. 동대산 100m 지점까지가 마지막 고비, 휴~ 숨을 돌리며 고통을 넘어서 해발 1443m 동대산 정상에 올랐다. 진고개에서 1.7km, 51분이 걸렸으니, 이 산행속도에 만족한다.
오대산(五臺山)은 상원사(上院寺)를 화심(花心)에 두고 비로봉(毘盧峯), 호령봉(虎嶺峰), 동대산(東臺山), 두로봉(頭老峯), 상왕봉(象王峰)의 다섯 봉우리가 5개의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국으로, 산봉 사이사이에 동대·서대·남대·북대·중대의 5臺가 있어 오대산(五臺山)이라 불린다. 동대산은 오대산 동남쪽의 산봉이며, 백두대간 오대산 구간은 오대산의 동쪽 산줄기 동대산에서 북쪽의 두로봉(頭老峯)으로 이어지고 북동쪽 신배령으로 향한다.
동대산에 노인봉 전망안내도가 있지만 노인봉을 조망할 수 없다. 노인봉 방향을 조망하고자 하나 나무와 수풀 때문에 노인봉과 동남쪽 방향을 조망할 수 없어 아쉽다.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산에 인공물을 지나치게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한 시설물 설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대산 정상표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두로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차돌백이를 거쳐 신선목이까지의 산길은 큰 어려움이 없이 평탄하다. 마가목 나무의 하얀 꽃들이 공중에 넘실거리고 숲길에서는 박새의 넓은 초록잎, 풀솜대의 하얀 꽃, 벌깨덩굴의 자줏빛 꽃, 특히 눈개승마의 곧추선 아이보리색 꽃들이 산객을 맞아준다. 이 숲에는 상록수 소나무들이 많지 않다. 대관령 남쪽 골폭산-닭목령-삽당령지역에서는 노송들이 즐비한데 이 구간에서는 상록수 대신 낙엽수 수많은 種들이 계절의 은총을 받아 넓은 잎들을 더 짙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특히 오래된 참나무 종들이 꼬부라지거나 썩거나 구멍이 나있는 줄기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면서 푸른 잎들을 펄럭이는 모습은 상록수와는 다르게 생명의 활력감을 불어 넣는다. 산행 중 만난 낙엽수, 특히 참나무들의 싱싱한 푸른 잎들이 마음 속에서 펄럭인다. 그 생명력의 풍경이 생활현장에서 삶을 추동하는 힘이 되고, 이에 가슴 벅차다. 푸르른 잎들이여, 낙엽이 될 때까지 더 푸르게 살아가리라.
동쪽 강릉의 연곡계곡 방향을 조망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흐릿하다. 북쪽으로는 두로봉이 살짝 모습을 보인다. 능선의 숲에 참회나무들이 많다. 가을날의 앙증스럽게 예쁜 참회나무 열매들을 상상하며 길을 걷는다. 하얀 살결의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빤질빤질한 큰 차돌들이 박혀 있는 차돌백이에 이르렀다. 차돌백이 어름에는 차돌의 파편들이 땅에 박혀서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이곳이 동대산과 두로봉 사이의 석영암맥 지역으로, 마그마가 기반암벽을 파고 들어 석영암맥을 형성하고 1억 8천만 년의 세월 동안 풍화작용이 이루어졌다는 곳이다. 기반암벽이 풍화작용으로 부서져 없어지지만 상대적으로 더 단단한 석영암맥은 부서지지 않고 지표면으로 드러나는데 그 풍화작용을 꿋꿋이 견디고 차돌들이 저렇게 솟아있다. 특별히 도드라진 바위들이 없는 흙길을 걸으며 낙엽수 푸른 잎과 풀꽃 식물들을 보다가, 하얗게 단단한 광물(鑛物) 차돌을 보노라니 어떤 의지의 화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돌은 자연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저렇게 억 년의 세월을 살고 있지만, 인간의 몸은 기껏해야 100년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디다 흙으로 돌아가 풍화한다. 차돌의 단단한 의지 앞에서 내 몸이 풍화하는 듯 나는 쪼그라지지만 차돌 같은 단단한 의지로 삶을 사랑하며 산행하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자작나무 군락을 이룬 넓은 평지 해발 1127m 신선목이에 이른다. 신선목이에는 탐방안내도와 위치번호 표지목 02-16이 서있다. 두로봉 가는 두 번째 어려움이 신선목이에서 두로봉 남봉 오르는 된비탈길이다. 약 700m의 된비탈길을 힘겹게 올라섰다가 우회하면 위치번호 표지목 02-18, 해발 1376m로 적혀 있다. 해발 1127m 신선목이에서 고도 약 250m를 높이는데 30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두로봉 산행의 두 번의 큰 어려움(동대산 오르는 급경사, 두로봉 남봉 오르는 급경사)이 끝났다. 위치번호 표지목이 400m마다 일정하게 세워져 있다고 한다면 여기서 두로봉까지 1.2km가 남은 셈이다. 두로봉 위치번호 표지목 번호는 02-21이다.
이제 어려움은 끝났다. 헬기장을 지나면 북동쪽으로 두로봉이 눈에 들어오고, 동해바다와 해안길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부터 두로봉 가는 길은 어려운 게 아니라 지루하다. 곧 나올 듯 나타날 듯, 두로봉을 앞에 두고 꼬부랑꼬부랑 산길은 이어진다. 마가목 꽃들은 곳곳에서 하얗게 피어 절정을 이루고, 노인봉 넘어 매봉은 머리를 보이는데 강릉과 동해바다는 미세먼지 속에 숨어 흐릿하다. 오대산 두로봉 남쪽면 비탈에 자작나무는 군락을 이루는데, 가을날 하얀 살결을 반짝이는 자작나무 맨살의 이 풍경을 두로봉 풍경의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비탈을 돌아오르니 어디서 날아오는 향긋한 향내, 아그배나무 꽃향기였다. 오대산 두로봉 바로 아래서 아그배나무 꽃과 향기에 취하여 완만한 비탈을 오른다. 드디어 두로령 갈림목이자 두로봉 안전쉼터, 12시 41분에 도착했다. 위치번호 표지목에 02-21이 적혀 있으니, 진고개탐방지원센터에서 이곳까지 8.4km, 3시간 13분이 걸렸다.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내방리의 경계를 이룬다. 가운데 보이는 동대산을 향하여 오른다.
오대산국립공원 진고개탐방지원센터 위치번호 표지목은 400m마다 설치되어 있다. 앞 번호는 오대산 탐방로 지역, 뒷 번호는 탐방로에서의 위치를 가리킨다. 이 표지목의 앞 번호 02는 오대산의 진고개 탐방지원센터, 뒷 번호 01은 진고개 탐방지원센터에서 400m 거리에 있는 첫 표지목임을 나타낸다. 두로봉에는 02-21 표지목이 설치되어 있으니 진고개에서 두로봉까지 거리는 8.4km가 된다.
이곳까지 급경사 비탈길을 힘겹게 오른다. 이 지점에서 평탄해지다가 조금 더 가서 다시 급경사는 이어진다.
이 지점에 이르면 동대산 가파른 비탈길 오르는 고행은 끝난다.
오대산(五臺山)은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3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동쪽으로 따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1,338m)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리합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을 비롯해 온 산이 아름드리 전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수목군락의 절경을 보여주며, 병풍처럼 둘러선 봉우리를 잇는 능선의 완만한 곡선은 한국의 미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설명안내판)
동대산에서 조망안내도에 따라 이 풍경을 조망할 수 없다. 나무와 수풀이 앞을 가린다. 전망대 설치가 필요하다.
위치번호 표지목 번호가 02-05, 그렇다면 진고개에서 여기까지 2km 거리가 되는데, 이정목에는 1.7km로 표시되어 있다. 위치번호 표지목을 400m의 일정한 거리로 설치하지 않은 것일까?
차돌백이는 동대산과 두로봉 사이 능선부에 발달한 석영암맥(Quartz dyke)으로, 희고 두터운 차돌(석영)이 박혀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차돌백이 석영암맥은 중생대 쥐라기(약 1억 8,000만 년 전~1억 3,500만 년 전)에 마그마가 기반암을 관입하여 형성되었고, 이후 지표면과 기반암이 지속적으로 풍화를 받아 제거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차돌백이를 이루는 석영이라는 광물은 조직이 치밀하여 주변의 암석보다 풍화작용(암석을 부서트리는 작용)에 대한 저항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암맥(岩脈, dyke rock) : 마그마가 기존 지층이나 암석의 틈을 따라 파고들어 굳어진 판 모양의 화성암체
**마그마(magma) : 땅 속 깊은 열기에 의하여 암석이 녹아 반액체 상태로 된 물질
(설명안내판)
가운데 만월봉에서 뒤 왼쪽으로 응복산, 마늘봉, 약수산이 이어진다. 맨 뒤쪽에 희미하게 설악산이 보인다.
만월봉 왼쪽 뒤에 설악산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푸름이 늦게까지 지속되는 집이라는 뜻인가? 오래도록 푸름을 간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라고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