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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마라톤대회'라는 알듯 모를 듯한 마라톤대회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서 내가 그 용어를 설명하게 되었을까?
지금도 생각해보면 알송달송한 일인데...
역에서 역으로 이어지는, 즉 전달되는 마라톤대회가 아닐까 한다.
사전상의 풀이로는 다음과 같다.
"먼 거리를 몇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몇 사람이 한편이 되어 그 구간을 이어 달려서, 달린 시간으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어느날 저녁 천변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받은 전화 한통이 나를 역전(逆轉)시킨 계기가 되었다.
"아니?제가 어떻게 그런 경기를 뛸 자격이나 되겠습니까?"
"아~ 예! 일단 가능한 사람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날인가 사진을 두장 제출하고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다 주긴했지만 대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올때까지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다른 시군에선 진즉에 미팅을 가졌고 합동으로 훈련을 한다고들 난리속인데...
정식형님을 만난 자리에서 뻔하니 얼굴만 바라다보면서 낙심섞인 안심을 했다.
그런데 바로 대회전날 아침에 연락이 오고 그날(20일) 저녁에 미팅을 갖고...
전주시 선수들과 첫 대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음식점으로 들어오는 예닐곱의 선수들이 어리디 어려 보이는 중고등학생들이었기 때문인데...
'아! 전주시가 이 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었다더니 과연~'
'이번에도 나같은 사람까지 부른 것은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고 ...'
'... ...'
'그럼 좀 안심이 되는구나!'
다음날 아침 주섬주섬 개인물품을 챙겨서 경기장 앞으로 나갔다.
전주시 선수단 수송용 봉고차에 올라 첫번째 주자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철수형님이 배웅을 나오시고 인성형님도 작년 참가자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14개 시군에서 각10명씩 선발된 선수들이 첫날 전주~군산간을 6개소구로 나뉘어 뛰고 둘째날은 남원에서 전주까지 구간을 8개 소구로 이어달리는 것인데 첫날 뛴 사람6명은 실력이 나은 사람들이고 다음날도 별일이 없으면 뛰는 것이 일반적이란다.
그러니까 선수단은 10명이지만 두명은 예비 선수가 되는 셈인데...
오늘의 출전명단에 들어있지 않으니까 일단은 마음이 편하게 경기진행을 지켜보며 선수들 뒤를 챙겨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소구에서 전주시가 3위로 들어오고 이어진 11km짜리 긴코스에서 1위로 올라섰다.
춘포사거리를 지난 3소구 출발점에 골인한 전주시 두번째 주자는 전주시에 희망을 넣어주었다.
골인한 뒤 곧바로 실신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달리던 방향으로 계속 몸풀면서 달린다며 차타고 지나가다가 태워달라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만 보니 어제 미팅에서 볼 수 없었던 한국체육대선수 '송하민'이었다.
참으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전주에서 익산시내로~ 또다시 군산으로 향하는 건각들의 레이스를 차량을 타고 지켜보며 다니는 것이 보통 재미있는게 아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경주가 또 있을까?'
더구나 매 소구의 골인과 출발점에는 각 시군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미리 이동해 와서 다음선수들에게 지시와 격려를 하고 골인하는 선수들을 챙겨서 또 이동하고 ...
그러는 중간에 주로코치차량과 연락해서 현재 레이스 진행상황을 판단하고...
첫날 전주시는 너무도 선전했다.
특히 군산으로 골인하는 6소구 마지막 주자에선 익산이나 군산을 큰 차이로 앞질러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뜻밖의 성과에 너무도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날벼락 같은 오더가 떨어졌다.
"낼은 두분이 모두다 투입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죠.... "
불과 십여분 전까지만 해도 군산에서 남원 숙소로 이동하는데는 운전을 맡겨달라며 뛰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밥값은 해야겠다고 실실 웃고 다녔었는데...
군산에서 남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내가 뛰게 될 4소구를 유심히 살펴보는데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둘째날 코스중에서 가장 험한 코스가 아닌가?
오수육교에서 임실역까지의 구간인데 구간의 70%이상이 무지막지한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남원콘도에 여장을 풀고 아래쪽 천변에서 몸을 푸는데 어제 아침에 수요합동훈련에 이어서 오후에 런닝머신 인터벌을 한 것이 덜풀려서 몸이 천근이나 나가는듯 무겁기만 하다.
첫날 뛴 6명은 따로 몸을 풀지 않는 듯 하고 체육고생 한명이 외롭게 몸을 풀고 있는데 나보다는 훨씬 몸이 가벼워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친구를 투입하지 않고 나를 넣었다는 것인데 더욱더 부담스럽게 되었다.
사우나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함께 이동해서 저녁을 먹는데 도무지 밥이 들어가질 않는다.
'이 밥을 한 술 더 먹으면 몸이 더 무거워질텐데...'
날은 어두워지고 숙소에는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단 명단을 들고 분주하다.
"저기! 성찬이가 나보다 훨씬 낫지 않아요?"
"저는 5Km 기록이19분대인데..."
"명단은 이미 제출되었습니다!"
별로 게으치 않다는 듯한 대답을 들으며 마지막으로 걸었던 실낫같은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오늘 하루 동안 전주가 2위팀 익산과 벌여 놓은 시간이 '2분 41초'
내일 출전 명단을 보니 부상중인 '오미자 선수'와 경부역전대회에 참가중인 '이우택 선수'가 출전한단다.
누가 누구를 날리고 또 누가 누구에게 얼마가 까지고...
복잡한 계산을 수차례씩 해보고 또 해보면서 예상치가 좁혀지는데
어렵기만한 이 승부를 1위로 굳히기 위해선 아주 많은 조건이 한꺼번에 충족되어야 한다.
그중에 4소구에서 내가 익산에 30초에서 1분이내로 차이를 줄여주는 것과 마지막 구간에서 정식형님이 이전까지의 차이를 까먹지 않고 지켜내야 된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는데...
꿈만 같은 이야기 일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일등한 팀이 목표를 이등을 세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4소구 익산팀 주자가 16분대인데 19분대인 내가 얼마나 줄일 수 있을 것인가?
또 8소구 익산팀 주자가 10Km기록이 31분대인데 37분대인 정식형님이 얼마나 줄일 수 있을 것인가?
#$@%&
머리가 아프고 답답하지만 시간은 하염 없이 흘러만 간다.
정식형님이 8소구에서 뛸 나머지13명의 기록을 적어가며 머리를 싸메고 고민하고 있는 동안 나 또한 4소구에서 함께 뛸 13명의 명단을 죽~ 적어놓고 답이 안나오는 문제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예, 알겠습니다! 곧 올라갈께요."
진안군으로 출전한 유관장님이었다.
숙소로 놀러오라는...
정식형님도 이 머리 아프고 답 안나오는 고민에서 피하고 싶은지 얼른 가자고 한다.
콘도 7층에 가서 유관장님하고 신용비님을 만나니 마음이 그냥 편해진다.
타향에 와서 고향사람 만난 것 같은 그런~
진안은 분위기가 매우 고무적이었다.
작년에 꼴찌에 가깝게 머물렀다가 중위권으로 도약을 했으니 마음이 편한 것들 같아 보였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있다가 잠시라도 웃고 떠들어 보니 기분은 좀 나아지는 듯 했지만...
숙소에 내려와서 온돌방에서 정식형님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해본다.
'내일은 과연... 내일은....'
새벽에 선잠이 깬 뒤 계속 뒤척이다가 7시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어제 저녁처럼 여전히 밥맛이 없다.
9시부터 배치가 시작된다.
남원시청에서 출발한 구간별 배치용 대형버스는 흡사 훈련소에 입소하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뒷자리에 빈자리가 하나 있는데
임실털보로 알려져 있는 '이서구'님의 바로 옆자리이다.
이번엔 서종태님과 더불어 순창으로 출전했고 나하곤 같은 4소구로 배치되었다.
오수육교라는 곳에 덜렁 떨어뜨려진 14명의 선수들은 모두들 허탈한 표정이 역력하다.
앞으로 두시간 남짓 후에 이곳에서 벌어질 숨가쁜 레이스를 위해 지금은 무었을 해야하는가?
허허벌판 위에서 공동의 운명체이면서도 피튀기는 경쟁자인 14인은 그렇게들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0시가 좀 넘어서부터 일행들의 움직임이 점점 부산해진다.
이곳 저곳을 뱅뱅 돌면서 뛰어다니는 사람,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질주하는 사람,
혼자다니는 사람,
떼지어 다니는 사람...
어느덧 한적하던 벌판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로 달궈지고 있었다.
저 사람들 중에서 나보다 뒤에 들어올 사람이 몇일까?
아니, 내가 앞지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중에 알고 있던 사람은 김제로 출전한 우리클럽의 유정종하고 순창의 이서구님인데 그나마 나보다는 최고 기록이 앞선 사람들이고, 나머진 어느 정도인지 어제 뛴 기록으로 밖에는 파악을 할 수 없는데...
꼴지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가하게 꼴지를 면하는 것이 목표일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익산하고 차이를 얼마나 줄이느냐는 것인데....
하여간 중요한 것은 단 일초라도 기록을 줄여야 한다.
일초를 줄이면 팀에 일초의 보답을 하는 것이고 일초 늦으면 일초만큼의 부담을 주는 것이니까
11시를 넘어서자 갑자기 시끌벅적해지며 심판진을 비롯한 운영요원들과 각 시군의 스텝들이 모여든다.
시시각각 주로에서의 진행상황을 확인하던 심판장의 입에서 호출소리가 들린다.
"익산 대기"
"전주 대기"
"나머지 선수들 모두다 탈의"
"익산 먼저 보내고~"
"나머진 전주와 함께 동시 출발~"
팀에서 제일 키가 작은 이재황이가 헐레벌떡 눈앞에 나타난다.
내가 바톤띠를 넘겨받는 동시에 서로들 밀치기 달치기 몸싸움이 벌어지며 불똥튀는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이놈의 바톤띠가 목에다 두르니 펄럭거려서 목에 감기고 손에다 들자니 무게가 나가는 것만 같고...
참 별게 다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위치를 선점하려고 벌써 몇몇은 앞에서 실랑이를 하며 달리고 있다.
출발지점에서 500미터 정도 달렸을까?
경찰들이 함정단속을 많이 하던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곧이어 오른편에 주유소,
그 다음은 내리 오르막이다.
한없이 솟아오른 오르막길이 이번 코스의 특징이고 이 곳을 잘 파악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으로 레이스를 마칠 수가 없다.
예상은 했지만 초반부터 모두들 눈이 뒤집힌 듯이 치고 나간다.
세상의 빛이 모든 색상을 잃어 버린 듯 회색빛 일색으로 보이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 하수관을 통해 바라본 세상처럼 원형으로 모아지고 있다.
앞에가는 몇 사람에 신경을 쓰면 안된다.
지금 저들에게 무리하게 근접하려다가 나중에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라에 옆에 달라붙은 사람은 정종이였다.
이친구가 함께 간다면 좋을 수도 있겠는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시작되었나보다!
속도를 늦출 순 없다.
그렇다고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추월을 시켜줄 수는 없다.
그렇게 몇차례 옥신각신 경합을 벌이던 중 갑자기 옆자리가 허전해짐을 느꼈다.
정종이가 아마도 뒤로 날라갔나보다!
그 무렵 오른편 차선에서 주로코치차량이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전주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이전 구간에서 익산하고 차이가 줄어들은 것 같았다.
어제 종일 타고 다니던 우리팀 봉고차가 곁을 스쳐 지나가며
"아저씨~ 화이팅!"을 외친다.
길고도 길게 이어진 오르막을 숨가쁘게 달리다보니 조금 페이스가 떨어진 듯한 주자가 한명 보인다.
무주를 잡고 잠시 뒤 진안하고 경합이 붙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수들과 일반의 차이는 경합이 벌어졌을때 바로 나타난다.
보통 뒤에서 잡은 경우는 앞에 가던 주자가 다시 따라 잡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죽지를 않는다.
찰거머리처럼 끝까지 따라 붙는 것이 ...
그렇게 길고 긴 오르막을 오르며 옥신각신 경합을 벌이는데 앞뒤가 여러번 바뀌었다.
드디어 그놈의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에 들어서며 주로코치의 주문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좋아요! 지금부턴 내리막이니까~ 다리를 길게 들어다가 멀리씩 놓아요"
"그렇지! 길게 길게~"
"내리막에선 퍼지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막달려도 됩니다!"
그래도 이놈의 찰거머리표는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
이번에는 낯설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온다.
"전주! 거~ 추월주자 막지마!"
"왜 자꾸 앞을 가로막는거야!"
진안의 주로코치인가 본데 기분이 나쁘다.
'이런 #팔 내가 막었나!, 지가 넓은 길 나두고 걸거치게 꼭 달라붙으면서'
다시 옆에서 김코치가 외친다.
"이제 다 와 갑니다"
"저기 임실역 보이죠?"
"자 다 왔어요"
온통 회색으로만 보이는 세상이 안개까지 끼었는지 희끄므레한 속에 꺾어진 길,
저 뒤가 임실역이란다.
'거리가 얼마나 될까?'
'쏴보자!'
'이 찰거머리도 떨어뜨리고 기록도 단 몇초라도 줄일 수 있을거야!'
하지만 이것은 큰 판단 착오였다.
내가 생각한 커브길 바로 다음엔 골인지점이 아니었고 마을 횡단보도였던 것이다.
'안경을 안쓴 것이...'
한 백여미터쯤 더 남은 골인지점을 허탈하게 바라보고 달리는데 잠시 뒤로 밀렸던 진안의 찰거머리가 마지막 스퍼트를 한다.
'아뿔사!'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시 탄력을 받기엔 기력이 너무나 쇠진해진 것 같았다.
어이없이 순위하나를 내어주며 기를 쓰고 골인~
이제 더 달리지 않아도 된다!
더 달리지 않아도 된다!
더 달리지 않아도...
차량에 올라타서 나이어린 선수들을 보니 여전히 표정이 없다.
익산에게 이 구간에서 1분 15초가 까졌다는데
아직까진 그나마 근소한 차이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의 5소구에서 박정권이 익산의 오미자선수에게 54초 까지고 6소구에선 이준완이 익산 박정숙에게 1분 32초 뒤져서 완전히 순위가 뒤바뀌었다.
그나마 7소구에서 조용이가 익산의 에이스 이우택을 뜻밖에 1분 11초 차이로 날리는 바람에 다시 근사하게 경합이 벌어졌으나 순위를 뒤집지는 못했다.
마지막주자가 대기하고 있는 대성리 주유소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유관장님하고 정식형님이 대쉬질주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먼저 달리고 난 나는 무거운 짊을 벗어버려 홀가분 했지만
정식형님을 보는 순간 얼마전 대기하고 있을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형님! 멀 더 바라 것수. 뛰고 난 다음 여한이 없도록 합시다"
"응! 그려, 이따가 보자고"
이렇게 달린 역전마라톤경주는 익산의 근소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여한은 없었다.
내가 언제 다시 이렇게 달려 볼 수 있을까?
피를 말리는 이틀간의 레이스를 끝낸 초보마라토너는 정말로 여한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