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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인간은 물리적 재산이 누적된 형태로 자연을 변모시켰고, 하나님이 처음 창조했던 자연에 가공된 유품을 쌓아둔채 자기만의 오붓한 에덴동산을 돌보면서 각자가 작은 신처럼 살아가기에 이르렀다.”1)
자신의 정신을 최대한 확장하여 보편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산업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2)
접속의 시대에는 이기심, 탐욕, 착취가 똑같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가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디어를 지배하는 것은 공간이나 물리적 자본을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상업권에서 아이디어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 없는 思惟는 어떻게 되는가?......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온갖 유형의 아이디어가 거대 기업들이 관리하는 지적재산권의 형태로 얽혀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회적 담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3)
2. 소유란?
가. 개념의 소유
- 체인가맹점은 유형자산에 대한 제한된 권리를 제외하고는 무형자산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권리를 갖지 않는다.
- 체인의 경우 경제적 지배력은 사업에 필요한 물리적 자산을 직접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표, 아이디어, 체제 같은 무형자산의 사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사된다.
나. 발견자의 소유
- 아득한 옛날부터 소유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로 여겨졌던 농부의 종자보관은 다가오는 생명과학시대에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 법적으로는 특허동물의 공급자가 동일한 유전형을 가진 모든 후손을 소유한다. 따라서 복제동물을 만들어 특허를 따놓으면 특허소유자는 그 동물의 모든 후손에 대해서까지 지적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새끼가 태어날 때 마다 로열티를 내어야 한다.
- 농부나 연구자는 동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를 받은 복제동물에 대한 접속권을 구입하는 셈이며 새끼가 태어날 때마다 로열티 형태로 추가접속료를 내어야 한다.
- 앞으로는 DNA, 세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믿기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다.(인체 섬유 안에 들어있는 유형자산은 재산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같은 인체에서 나온 세포계열에 대한 특허 형태의 무형자산은 존중되고 법의 보호를 받는다.- 이 세포계열을 이용한 치료를 받아야 할 경우 그들은 접속료를 물어야 한다)
- 유전자군을 특허라는 형태로 독점한 소수의 생명과학 기업은 보건서비스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심지어는 보건시스템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유전자 특허는 필연적으로 보험료인상을 유발한다.4)
다. 중세의 소유개념
- 모든 창조물의 주인은 신이었으므로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신의 소유물이었다. 하나님이 명한 위계질서에 따라 타인과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는 임무를 다하는 의로운 인간은 그 재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는다.
- 중세사회에서 사유재산은 아주 복잡한 것이었고 소유관계와 긴밀히 얽혀있는 관념이었다. 그것은 엄격한 상호의무의 규범이 정해 놓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될 뿐이었다.
- 결과적으로 역사가 리처드 슐래터의 말처럼 ‘누구도 땅을 소유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위로는 왕에서 밑으로는 점유인, 그 밑의 점유인,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사용권은 조금씩 가지고 있었지만, 절대적 지배권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인클로저
- 소유관계와 시장 자본주의가 주축을 이루는 근대는 일찍이 경제사가 칼 폴라니가 ‘대변혁’이라 불렀던 사회관계의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튜더왕조가 지배하던 1500년대의 영국에서 일어난 인클로우저운동이었다. 인클로우저법은 처음으로 땅이 사람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발상을 받아들였다.(이전에는 사람이 땅의 일부분)
- 의회가 인클로저를 명문화한 법령으로 만든 의도는 부동산을 개별사유지로 나누어서 팔 수 있도록, 다시 말해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있었다. 토지는 사유재산이 되었고, 그리스도교의 위계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하던 복속관계는 소유관계로 바뀌었다.
- 이로 인하여 사회생활도 바뀌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난 구조변화의 밑바탕.
- 공유지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유지로 바뀌면서 수백만명의 농민이 의무와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살 수 있는 천부의 권리 또한 빼앗기고 말았다.
3. 소유의 개념 및 변화
가. 로크의 소유이론 (근대적 소유관념을 철학적으로 합리화.. 17세기)
로크의 이론
- ‘자기 육체의 노동과 손으로 하는 일은...오직 그 만의 것’
- ‘자연이 제공했고 허용한 상태로부터 그가 제거한 모든 것, 그가 자신의 노동을 투입한 것, 자신의 것을 추가한 것은 자연히 그의 재산이 된다’
- ‘그가 일구고 재배하고 활용하고 경작하고 생산품을 이용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는 얼마든지 그의 재산이 될 수 있다.’
- 이로 시작해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근대적 의식도 나타났다. 자아를 보는 눈이 새로워졌고, 개인의 영역이 만들어졌으며 국민국가와 입헌정부 같은 새로운 제도가 탄생했다.
근대의 재산개념
-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
나. 소유로부터 계급의 분화 시작
- 상속은 소유를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소유의 교환가치에 대한 인식을 정착시켰다. 상속이 일반화되면서 소유는 계급을 가르고 유지하는 데 요긴한 역할을 하는 권력의 한 형태가 되었다.
※ 경제
이코노미라는 단어는 ‘가정경제를 꾸려나간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왔다.
소유관계의 절정
- 1950년대와 60년대
- 인간의 존재이유는 물건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보유하는 데 있다는 인식이 비공산권 세계전체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다. 인간관계의 구조 변화
- 소유물의 생산과 상업적 교환에서, 상품화된 서비스의 관계로 탈바꿈.(본질적 변화)
- 우리의 행동규범, 우리의 시민적 가치관, 아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고 설정하는 방식, 강력한 제도적 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 오랫동안 소유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움직여왔기 때문에 손으로 잘 만져지지 않고 경계선도 모호할 뿐 아니라 찰나적이고 일회적인 서비스 상품의 세계에 내던져진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 소유보다는 접속에 기반을 둔 세계가 몰고올 충격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맺어온 사회적 계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짚어보아야 한다.
4. 판매의 종말
가. 제품에 대한 새로운 개념
-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품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그 성격이 달라졌다.
- 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관계에 들어간다.
- 제품이 수명을 다하는 동안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기업은 플랫폼을 싸게 공급한다.
- 결국 물리적 형체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독특한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 몬산토의 회장이며 대표이사인 로버트 샤피로
․소유보다는 접속을 중시하는 시장전략을 선택하면서 사업의 초점을 판매에서 사용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최초의 경영자에 속한다.
․소비자는 물건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갖는 기능을 사는 것이다 (카펫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카펫위에서 걷고 싶을 뿐)
캐리어 에어콘
- 캐리어는 에어콘을 팔기보다는 고객에게 에어콘서비스를 제공한다.
- 고객이 거주하는 곳에 에어콘을 설치하고 미리 약속한 온도로 에어콘기능을 유지하면서 서비스요금을 받는다. (판매중심시절에는 큰 용량의 에어컨을 팔려고 애썼다. 따라서 자연히 에너지 소비도 늘어났다. 그러나 접속에 바탕을 둔 서비스관계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에너지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 고객이 에너지를 적게쓰면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명시설의 교체, 방열 유리창 설치와 같은 부대서비스도 제공
절감분 공유계약
- 최종 제품 제작사와 이를 위한 부품공급사와의 관계 변화
- 제작사는 부품사로부터 부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접속권을 산다.
-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버-클라이언트의 관계로 바뀜
- 공급자는 업적계약을 맺고, 고객이 생산활동을 하는 현장에서 필요한 부품의 공급과 관리를 책임진다.
- 비용과 쓰레기가 절감되어 이익이 늘어난다.
- 일반적으로 공급자는 정액제로 요금을 받고 미리 합의한 수준의 품질로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
- 공급자는 부품의 사용을 줄여 생산원가를 떨어뜨리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되면 물류비도 줄어들게 된다.
클라이슬러
- 양측은 업적계약을 한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 “당신 회사 제품이 당신들이 자랑하는 대로 그런 탁월한 기능을 제공한다면 그 좋은 제품의 소유권은 당신네가 유지하고 나한테는 서비스만 제공하면 되지 않소? 나한테 물건을 팔겠다면서 유지비는 고스란히 나더러 부담하라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나. 판매의 종말
- 고객의 관심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공급자는 고객에게 제품을 거저 제공해야 다가설 수 있다.
- 수익은 고객의 사업을 공동으로 경영하여 실적과 수익을 개선시키고 거기서 남은 차익을 공유하는 길일 뿐이다.
다. 인간관계의 상품화
-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던 불연속적 시장 거래로부터 시간위에 무한히 펼쳐진 관계를 상품화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상업활동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점점 이해 득실과 타산의 노예가 된다.
- 모든 기업은 고객과 항구적인 관계를 맺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평생가치(LTV)
- 고객 한 명이 가지는 잠재적 평생가치
․ 캐딜락자동차대리점의 경우, 32만2천불
․ 수퍼마켓의 경우, 1년에 3천8백불
- 중요한 것은, 평생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을 찾아내는 것
- 많이 기업이 평생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아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 평생가치에 기반을 둔 관계마케팅
․ 기저귀 회사가 회원제로 장난감, 분유, 이유식, 아기 옷을 제공
․ 장차 청소년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까지 확대 가능
R-기술
- 정보기술 대신 R-기술 (R=Relation)
- “기술이 정보를 관리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관계의 매개물이라는 쪽으로 과감한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MIT 슬론 경영대학원 협동과학센터의 마이클 슈레이지)
- 네트워크경제의 새로운 정보와 통신기술을 바탕으로 개인의 평생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은 고객이 무엇을 구입했는지 속속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식품과 의상, 건강상태, 여가활동, 여행패턴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면 고객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자세히 그릴 수 있다.
- 적절한 컴퓨터 분석기법만 개발되면 개인에 대한 이런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할지 예측하여 아주 정교한 마케팅 전략으로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 마케팅분야에서 R기술을 써서 장기적 상업관계를 상품화하는 것을 ‘소비자관리’라 부른다.
- 기업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에이전트가 되었다.
- 새로운 틀 속의 에이전트는 ‘시스템통합자’ 노릇을 한다.
- 공동체 형성
․1단계(각성기) : 고객에게 장래의 판매를 염두에 두고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리는 단계
․2단계(일체감형성기) : 고객은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친근감을 느끼고 그것을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특정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이제 그가 세상에서 자기를 차별화시키는 다양한 방법의 하나가 된다)
․3단계(관계형성기) : 회사와 고객은 서먹서먹한 관계에서 쌍방향관계로 이동한다. 이때부터 R기술은 중요한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고객친밀감 조성)
․4단계(공동체형성기) : 회사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관심이 비슷한 고객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회사가 이런 공동체를 만드는 이유는 긴 안목으로 상업적관계를 구축하고 개별고객의 평생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결속은 대단히 지속성이 강하다)
라. 생산에서 마케팅으로
- 새로운 세기에 소비를 조직하는 것은 지난 세기에 생산을 조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 소비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소비자가 갖는 생활경험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 상업에이전트는 일종의 보호자역할을 하는 셈이다.
- 접속의 시대에는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의 비중은 줄어들고, 신뢰할 만한 매개자에 의한 장기적 상업관계가 주류로 부각된다.
- 마케팅의 진화는 기업과 고객이 1:1로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준 새로운 정보와 통신기술에도 힘입는 바 크지만 소비자의 수요가 포화상태(즉 생산과잉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생산관점에서 마케팅관점으로)
- 마케팅과정이 전위로 떠오르고 생산이 마케팅과정의 한 기능으로 전락한 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생산공정에서 일어난 기술변화 덕분이었다.
소비자 주권?
- 이제 소비자는 서서히 주도권을 잃을 위험성에 직면해 있다.
- 소비자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업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편입되고, 자신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좀처럼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업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관계를 맺거나 끊을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나 고객에게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제공되는 서비스의 내용과 그 서비스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너무 복잡해져서 고객은 당혹감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다. 특히 아주 일찍부터 그런 업무를 제3자에게 위임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일을 전문대리인에게 맡기는 의존도가 높아진다.
- 소비자 한사람 한사람을 글로벌시장과 바깥 세상에 연결시키는 공급과 분배의 다양한 통로를 관리한다.
- 결국 제품이라는 것은,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서비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기관의 경우, 평생동안, 아니 사후까지도 고객의 자산관리를 책임진다.(금융기관은 고객의 대리인, 변호인, 대변인 역할을 한다)>
마케팅의 진화(물건판매->관계)와 새로운 세계
- 물건의 판매에서 관계의 상품화, 공동체의 구축으로 상거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사업방식에서 중요한 분수령
- 상업영역은 날로 세력을 확대하여 인간 존재의 사실상 거의 모든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21세기의 인간은 하루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경제하는 영역안에서 보내게 된다.)
- 이 새로운 세계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관계망, 취향의 공동체에 상업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 소속된다는 것은, 새로운 글로벌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는 뜻
- 사람의 지위도,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 되는 시대가 온다.
- 인간관계의 상품화는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개인이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요금화하려는 의도를 품고 사람들에게 평생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관계의 최종단계를 나타낸다.(모든 것을 삼키는 상업관계망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 빨려든다면 과연 인간은 어떻게 될까?)
- 인간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모든 개인의 삶이 24시간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의식, 형제애, 시민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더욱 걱정되는 것은, 내부에 상업적 덫을 가지고 있는 이런 사회적 대리영역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비판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 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
5. 삶으로서의 접속
- 사유재산의 장단점에 대하여는 많은 철학자들이 한번쯤 집고 넘어간 문제였고, 그 과정에서 떠들썩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그러나 접속은 거의 토론을 거치지 않으면서 어느새 정치 기구안으로 스며들었고, 개인 생활과 공공생활의 구석구석으로 비집고 들어왔다.(주택의 경우,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변화는 가장 대표적인 변화이다)
가. 폐쇄된 공동체 (CID : Common Interest Development)
- 미국 전체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3천만명이 현재 15만개의 CID에서 갈고 있다.
- 특징은 부동산은 공유하고, 주택소유인 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 CID는 매년 4, 5천개씩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
- CID는 단순히 집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을 사고 파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집을 산다는 것은 이미 완비된 생활양식에 접속할 수 있는 입장권을 산다는 뜻이다.
- 이에 거주하려는 사람은 기본적인 관리수칙과 계약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유권과 재산권을 교묘하게 박탈당하고 접속생활공간에서 장점을 누리는 반면, 그에 수반된 함정까지도 감수하면서 점점 단순한 점유인으로서 위상변화를 겪는다.
- CID는 사립정부 또는 준정부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세우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부동산개발업자이다.
- 자치과정에 이처럼 제한적으로만 접속할 수 있다 보니 부작용도 크다. CID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치관, 감수성, 라이프스타일이 엇비슷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끼여드는 대가로 개인 재산의 권리 일부를 기꺼이 포기한다.
- 비회원들이 CID안에서 자유롭게 선전, 판매, 배달을 할 수 없다. 공동체에 접근하는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포로처럼 꼼짝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고가에 얼마든지 팔아넘길 수도 있다.
- CID가 주택단지의 지배적 양식으로 정착할 경우, 이 새로운 시설은 ‘미국이 사기업이라는 사업소유형식을 채택한 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5)
- 기업적 가치관이 사회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를 CID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매킨지에 따르면, 문제는 ‘미국에서 CID가 아닌 주택을 발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CID가 갖는 이점의 하나는 가치관이 비슷하고 경제력이 엇비슷한 사람들과 모여살고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의 진입을 막음으로써 집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 라이프스타일의 임대
- 짧은 수명이 제품이나 서비스 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도 적용되는 네트워크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한 집을 끼고 사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못된다.
- 소유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젠 부동산의 소유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접속권을 사는 것이다.
다. 부동산이냐 時産이냐
- 소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집착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다는 뜻이다.
- 소유가 접속으로 바뀌면 소유에 수반된 개인적 책임감도 사라진다.(소유는 임대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낳는다)
- 재산중심의 사회에서 소유물과 심지어는 그 주변의 환경까지도 가꾸는 것은 자기의 인생을 가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재산을 나 자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묶어둠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투사하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부각시킨다.
- 헤겔의 세계관에서 일은 노동행위가 아니라 창조적 표현이다. 그리고 일이 만들어낸 생산물은 세계로부터 징발한 것이며, 일을 한 사람의 인격 안에서 세계를 통한한 것이다.(“인격은 스스로에게 현실을 부여하려는, 다시 말해서 외부세계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려는 몸부림이다.”)6)
- 헤겔은 재산은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재산은 개인적 자유를 표현한다. 재산으로 자기를 감쌈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인격성을 시공간 속에서 부풀리고 자기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사람은 세계 안에서 자기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유의 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별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유의 자부심’이었다.
라. 인간관계 구조의 변화 :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문제점
- 재산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개인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접속만 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에게 훨씬 더 의존적으로 된다.
- 인간관계의 구조가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장단점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속단하지 못한다.
- 상호관계의 네트워크에서 교감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칼자루를 쥔 기업들의 막강한 네트워크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주소
지리적 주소는 이메일 주소에 의해 빠른 속도로 밀려나가고 있다. 사업이나 사회활동에서 지리적 주소의 사용빈도가 무섭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공간적 장소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화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원초적, 본능적인 저항
- 우리가 의식하는 생활의 상당부분은 겉에서 보기에는 태연자약하게 어느새 접속관계가 지배하는 시간 중심의 세계로 들어섰지만 우리 본능의 더 원초적인 부분은 아직도 여기에 저항감을 느끼며 땅의 영토라는 관념에 뿌리 박혀 있다.
- 전자네트워크의 세계에서도 대지는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연결고리이다.
-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렇게 포착했다.: “어머니 품 같은 대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땅에 드러누워 온 몸을 한번 쭉 뻗어봄이 어떠한가. 그대는 이제 확실한 반석에 올라서 있다. 대지처럼 단단한 그대를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
- 영토는 단순한 사회적 관습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존재의 상태이기도 하다.(사람들이 그토록 집을 갖고자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집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장소에, 영토에, 우리의 기원에 맞닿아 있다는 원초적 감정을 경험한다)
- 이런 의미에서 CID는 역사를 모르는 공동체이다.
- 집과 땅을 소유하는 것은 사람들을 대지라고 하는 존재의 뿌리로 연결시켜 주지만 한편으로는 분열과 배타성을 조장한다. 갈등, 수난, 전쟁은 영토지상주의의 어두운 측면이다.
-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점점 뒷전으로 물러나는 접속의 시대에는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생물학적 토대와의 깊은 교감을 잃어버리고 방향감각을 상실할 위험성이 있다.
6. 문화와 자본주의
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 문화란 수천년동안 반독립 영역에서 존재해 왔고, 때에 따라서는 시장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단 한번도 시장에 흡수당한 적이 없었다.
- 그런 ‘문화’(인간이 공유하는 경험)가 이제 새로운 통신기술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추세 속에서 점점 경제영역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 문화라면 ‘커뮤니케이션’(언어, 미술, 음악, 무용, 책, 영화, 음반, 소프트웨어)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인간문화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뜻이며, 어떤 인간 문화 안에서 있다는 것은 그 문화를 매일 매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보며 알고 세계와 소통한다는 뜻이다.”<미디어 이론가 리 데이어>
-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의 핵심, 아니 생명 그 자체의 핵심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인류학자 에드워드 홀>
- “문화는 소통이다”<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
- 정보전문가와 공학자 :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경향
- 인류학자 : 텍스트의 전달을 통한 사회적 의미의 생산으로 이해.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
-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인간이 가진 창조성을 표현하는 이런 기본적 요소들을 집단적 공동체적 기원으로부터 자꾸만 분리하여,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팔아먹으려는 시도가 파죽지세로 확산되고 있다.
-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1930년대에 독일의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이 문화산업이 글로벌경제에서 가장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 공동체가 공유해온 문화가 네트워크 경제에서 자꾸만 파편화된 유료경험으로 쪼개지면서 접속권도 자연히 사회적 영역에서 상업적 영역으로 이동한다.
나.현대문명
세 가지 영역
- 경제, 정치, 문화
- 3가지 영역의 핵심가치
․ 경제 : 자원이용의 효율화
․ 정치 : 참여
․ 문화 : 자기실현과 자기고양
- 20세기 들어와 정치 영역과 문화 영역의 가치는 경제영역으로 포섭되어 끊임없이 상품화되었다.
문화 - 예술
- 처음에는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보였던 소비윤리와 자기실현의 윤리가 20세기 자본주의 시장에서 서서히 공동의 토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업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하고 흥미있는 사건이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두 가치를 하나로 묶은 힘은 문화적 기준을 전달하는 핵심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이다)
- 예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정교한 수단으로 문화의 가장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 예술은 경제나 정치라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보다 인간 정신의 심층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사회적 경험을 조직하고 전달한다.
- 과거의 생산지향 자본주의가 창조성, 자기충족, 쾌락과 유희를 추구하는 욕망을 억누르기에 급급했다면 새로운 소비지향 자본주의는 이 억눌린 심리적 욕구를 예술이라는 분출구로 해방시켜 거대한 소비문화를 창출한다.
- 새로운 소비자 지향의 시장은 예술을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끌고 나왔다.
- 예술은 이제 광고회사와 마케팅전문가의 불모가 되어 ‘생활양식’을 파는 데 동원되었다.
- 예술과 예술가를 시장에 빼앗긴 문화는 공유하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목소리를 상실했다. 이런 문화적 고사상태의 의미를 사람들이 처음으로 절감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이다.
- 한 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다. 자본주의의 변신 = 문화적 자본주의
- 전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상품의 소비는 이제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다.
- 바로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는 완전한 문화적 자본주의를 향한 최후의 변신을 시도한다.
- 문화적 생활을 상징하는 기호, 그 기호를 해석하는 예술적 의사소통의 형식만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체험 그 자체를 우려 먹는 것이다.
- 미래의 기업은 사람의 생활전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점점 더 맡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미래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살아있는 체험은 상품 구체화의 최종단계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살아있는 체험은...자본 순환에서 최종상품이 되었다.”<일리노이대 사회학교수 노먼 덴진>
- 체험상품의 등장은 토지의 상품화(인클로저운동)에서 시작되어 주택과 공예의 상품화로, 나아가 가정과 공동체 기능의 상품화로 이어진 자본주의 체제 진화의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다.
라. 가장 오래된 문화산업 = 관광산업
- 세계 전체 노동인구의 10% 수준이 관광산업에 종사
※ tourist
19세기 초반,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견문을 넓히기 위해 3년동안 유럽을 유람하던 영국의 젊은 귀족을 가리키던 말7)
쿡과 관광산업
- 관광을 산업으로 발전시킨 주역 = 토머스 쿡.(관광을 패키지로 만들고 여행을 유료체험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인물)
- 쿡은 1856년 최초의 유럽 대유람을 시작했고 몇 년 뒤에는 미국과 팔레스타인 성지까지 여행상품으로 개발했다.
- 최초의 세계일주상품은 1972년에 판매되었다.
- 쿡은 체험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단순한 서비스의 판매와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정액요금을 받고 무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 쿡은 문화생산의 아버지로서, 체험자본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실천가로 당연히 인정받을 만하다.
마. 문화의 시장 도입
- 체험학습의 기회라고 요란하게 선전되지만 관광은 점점 공연물에 가까워지고 있다.
- 관광과 연예는 진정한 체험 그 자체라기 보다는 체험의 모방에 가까운 문화적 상품으로 융합되고 있다.
- 쿡의 사업은 계몽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지만, 체험에 바탕을 둔 새로운 관광회사들은 재미와 놀이와 모험까지도 제공한다.
바. 문화자본주의와 관광산업
- 자연적․역사적 복원, 주제가 있는 도시, 토속적 환경에서 쾌적하게 보내는 휴가는 모두 문화생산을 경제활동의 중심부로 끌어당기면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글로벌 관광산업이 가져온 결과이다.
- 한 때는 당당히 제 몫을 해냈던 역사적 유산이 이제는 그저 돈을 받고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무대나 소도구, 배경이 되어버렸다.(과거의 산업자본주의가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할 목적으로 자연과 노동력을 포획하고 이용했다면, 새로운 문화자본주의는 문화생산을 위해 문화자원을 징발한다.)
- 그들의 관심은 자연으로부터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자연 자체를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
- 대부분의 호텔, 항공사, 휴양클럽, 관광회사, 식당체인은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런 기업의 상당수는 G7에 속한 나라들에 본사가 있다.
- 21세기에도 관광산업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관광산업은 산업생산과 문화생산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에 걷잡을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오락산업
- 접속의 시대에는 메가몰과 대형오락센터들이 상품화된 새로운 문화의 문지기 노릇을 한다.
- 20세기말 미국을 이끌어갈 사업은 더 이상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오락이다.
- 총소비자지출 중에서 의료비를 제외한 총지출액 중에서 연예오락비의 비중이 9.43%(1993년 기준, 1979년 7.7%)에 달하며 고용인원은 5백만명으로 12%수준(1993년 기준)
- 이것은 물건을 만드는 데서 체험을 만드는 쪽으로 경제조류가 바뀌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오락산업이 급속히 부상하는 현상은 물건을 축적하고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온 세대가 체험을 축적하고 관계에 접속하는 것을 선호하는 세대로 바뀌고 있음을 웅변한다.
사. 모든 비즈니스는 쇼 비즈니스
-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 효율성, 생산성, 실용성, 납품가능성, 계산력 같은 기계적 이미지는 문화상품의 연극적 이미지에 의해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산출량이 중요하지만, 문화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연기가 중요하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신화, 상상, 환상 같은 단어가 먹혀 들어간다.
“사업의 성패는 고객의 머리에 감동적 드라마를 얼마나 많이 집어넣느냐에 좌우된다”<톰 피터스>
-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
※ 경영에 연극적 기법을 도입한다는 지적발상은 실은 사회학에서 상당부분 빌려온 것이다.8)
“만일 의사가 환자의 감정적 요구를 평가하여 그 요구에 명쾌하고 효과적으로 부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감정적 요구에 유효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전수하는데 초점을 맞춘 연기과목을 의대수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웨스턴 온타리오대 힐럴파이스톤 박사와 데이비드 콘터 박사>
“문화생산은 세계의 미국화를 주도하는 첨병”<킴 켐벨 - 전 캐나다 총리>
7. 문화 마케팅
- 문화마케팅이란 문화라는 공공재로부터 가치있는 문화적 의미를 캐낸 다음, 예술적 조작을 거쳐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화된 체험으로 변형시키는 수단.(문화적 규준, 관습, 활동을 상품으로 번역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술이다.
- 예술과 의사소통전략을 동원하여 마케팅전문가는 상품, 서비스, 체험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의 구매행위에 문화적 의미를 불어넣는다.
- 마케팅 전문가는 정서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주제를 찾아 문화의 숲을 누비고 다닌다.
가. 기업과 문화
이제 기업은 문화계 어디에나 얼굴을 내민다. 기업의 도장을 찍지 않은 순수문화공간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의 중개자
- 산업시대에 문화영역을 지배하고 가치관의 기준을 정한 것은 기업을 소유한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이제 자본주의가 문화의 생산단계로 이행하고 체험의 상품화가 진전되면서 새로운 엘리트계급이 정치영역과 시민사회에서 공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있다.
- 문화의 중개자로 불리는 이 새로운 계급의 실력은 지식과 창조성, 예술적 감수성과 기획력, 전문가적 식견과 마케팅 안목 같은 무형자산에서 발휘된다.(예술가, 지식인, 광고와 홍보의 달인, 기업이 동원하는 스타와 유명연예인 들이 바로 그들이다. - ‘유행사냥군’)
- 한때는 그들도 문화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활동했지만 이제는 상업영역안에서 순전히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인다.
- 접속을 통한 체험이 재산의 소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새로운 문화의 중개자는 개인과 문화체험 사이에서 문지기 노릇을 한다.
- 그들은 대중문화에서 새로운 경험을 추려내서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의 형태로 가공한다.
- 이들은 접속의 시대에 새로운 문지기이다. 이 문화중개자들은 철저하게 시장지향적인 소비자문화에 영합한다. 새로운 문지기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헤게모니를 영속화한다.
-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문화중개자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문화중개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접속이 체험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지기 노릇을 하게 된다.
나. 문화와 언어
- 문화상품의 세계무역규모가 불과 10년만에 3배로 늘어나면서 지구문화의 동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켜지고 있다. 이 동질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전세계의 많은 언어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있으며, 그 빈자리에 영어가 새로운 문화상품의 표준어로 밀고 들어가고 있다.
-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구어의 종류는 6천가지가 넘지만 1백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가진 언어는 3백개에 못 미친다. 6천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은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사라질 것이다.
- 반면, 전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영어를 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전세계의 문화상거래를 주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루브르박물관이 폭격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MIT언어학교수 켄 헤일>9)(언어는 한 문화가 공유하는 의미, 표현, 가치관, 이해를 전달하기 때문)
-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도 소멸한다
“이 세상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인류가 쌓아온 지적성취와 살아있는 지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웨이드 데이비스>
다. 새로운 소비지향의 자본주의시대
- 과거의 생산지향 자본주의가 창조성, 자기충족, 쾌락과 유희를 추구하는 욕망을 억누르기에 급급했다면
- 새로운 소비지향 자본주의는 이 억눌린 심리적 욕구를 예술이라는 분출구로 해방시켜 거대한 소비문화를 창출한다.
- 새로운 소비자 지향의 시장은 예술을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끌고 나왔다. 급기야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았던 예술은 이제 광고회사와 마케팅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양식’을 파는데 동원되었다.
- 예술과 예술가를 시장에 빼앗긴 문화는, 공유하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목소리를 상실했다.(이런 문화적 고사상태의 의미를 사람들이 처음으로 절감하게된 것은 1960년대에서 부터였다. - 엔디 워홀이 켐벨사의 수프 통조림 같은 상품을 그려서 예술작품으로 내놓으면서부터)
- 이제 한때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8. 소유는? 재산은? - 새로운 인간
- 물리학자들은 근대 세계의 딱딱한 물리적 현실을 해체하기 시작하고 있다. 힘을, 활동의 패턴을, 시간 속의 관계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경계선이라는 것이 사회적 허구로서만 존재하는 세계에 어떻게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 모든 것이 과정으로 운동으로 보인다. 경계를 가진 형체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뚜렷한 경계선을 가진 대상에 대한 우리의 평범한 지각마저도 실은 학습된 경험이고 인지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 새로운 물리학은,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틀을 조용하고도 단호히 세웠다. (오늘날의 카오스이론, 카타스트로피이론, 복잡성이론, 霧散구조는 모두 자연계의 우발성, 불확정성, 배태성, 다양성에 초점을 두는 과학의 새로운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 기호학자들은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지어내는 이야기, 우리가 세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에 의해 이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 이 새로운 세계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우발적이다. 진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과 시나리오로 엮여 있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창조된 세계, 합의되고 공유되는 의미와 은유로 결속된 세계다.(언어, 의미, 은유는 시간 속에서 달라 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달라진다.)
- 현실은 우리가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것, 소통을 지어내는 것이다. 결국 현실은, 우리가 현실을 설명하고 묘사하고 현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와 함수관계에 놓여있다는 뜻이 된다. 햄릿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은 ‘말, 말, 말’이다.
가. 탈근대화
계몽주의 세계관
- 소유관계에 기반, 자본주의 발달로 힘을 얻었던 새로운 사회질서의 원리를 설명하는 거대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제공했다.
- 과학은 객관적 현실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며
- 기술은 객관적 현실의 결과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 사유재산은 정복에서 얻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 자연은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총명함과 근면함으로 자연을 상품과 인공물로 변형시킨 사람이 그 동안 흘린 땀의 대가로 열매를 차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존 로크의 재산노동이론)
- 베이컨의 세계에서 모든 활동은 주변에 널린 객체를 소유하고 착취하기 위해 주체들이 생사를 걸고 벌이는 투쟁으로 귀착된다. 결국 주체의 의지만이 남는다. 주체의 의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것을 먹이고 살찌우는 객체로서 존재할 뿐이다.
- 대표적 철학자 (뉴튼)
탈근대성
- 소유에 대한 근대인의 가정을 허물어뜨리고 인간관계를 접속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다.(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그가 불확정성의 원리로 과학적 논쟁의 불길을 당기면서 계몽주의의 철갑에 처음으로 금이 감)
-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자연의 비밀을 냉정하게 기록하는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베이컨이 주장한 과학방법론의 핵심전제)는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다. 관찰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 인간은 초연하기는커녕 경기자로서 참여자로서 자신이 조작하고 입김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세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관찰자를 관찰대상에 연루시킨다면 독립성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다.
- 뉴턴의 법칙은 두 입자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입자는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면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는 지금까지 물리학에서 말해 온 그런 물질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힘들의 집합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상태에서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 새로운 물리학에 따르면 물질은 에너지의 한 형식이고 에너지는 순수활동이다. (공간관계의 정지된 틀안에 존재하는 딱딱한 실체하고 하는 양적 관념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탈근대의 특징들
- 근대가 목적을 추구했다면, 탈근대는 유희를 추구한다. 모든 것이 예전처럼 진지하지 않다.
-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질서는 답답한 것, 숨막히는 것으로 생각한다.
- 반면에 창조적 무질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권장하는 쪽에 가깝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질서는 ‘자발성’이다.
-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중요한 것은 순간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생활에서도 절정감과 카타르시스는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윗자리에 놓인다.
- 종교개혁부터 산업혁명까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해온 ‘현실원칙’은 폐위되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버림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쾌락원칙’이 군림한다.
- 다원주의와 이중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너그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사유가 지배하는 의식은 의심받고, 성적욕망, 몽상, 환영에 이끌리는 무의식이 전면에 나서서, 하이퍼현실이 된다.
- 이제 텔레비전은 세계를 해석하거나 극화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 바로 세계이다.
나. 부르주아지의 사상, 생각들
-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이성이 자연의 비밀을 풀어 줄 수 있으며 인식 가능한 객관적 현실의 진리를 체계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현실주의자였다. 그들은 신학을 버리고 이념을 택한 계급이었다. 천국의 구원보다는 지상의 낙원을 추구한 계급이었다. 그들은 유물론이라는 복음을 사방에 전하고 사유재산의 미덕을 찬양했다.
- 서양역사에서 자아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서서히 전해왔지만 유독 부르주아지는 이 자아에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여왔다. 자기확신, 자기애, 자기연민, 자긍, 자중, 인격, 에고, 양심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담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 그들은 재산으로 자신을 에워쌌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모든 형태의 경계선을 만들어내었다. 소유라는 개념은 심지어 그들의 의식 안으로 철저히 내면화되었다.
-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열렬히 희구한 것은 ‘침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침착하다는 뜻마저도 ‘자기를 소유한 상태’(Self-possessed)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양식있는 사람
- 중세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세에서 안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량한 그리스도교도라면 누구나 덕을 쌓고 싶어했다. 그러나 근대로 들어와 사회가 점점 생산지향적으로 움직이면서 덕은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지는 덕보다 양식(良識)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 양식이 있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라는 관념을 연상시켰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에 담긴 정신을 세속화시키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체제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생산자정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말이었다.
매력있는 사람
- 그러나 192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 새로운 자아의 개념이 자아를 향상시키는 것에서, 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강조
- 1921년 오리즌 스웨트 마든「매력있는 인간」이라는 책을 써서. 개인적 매력을 발산하는 비결을 배우라고 촉구(“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고 강조. 또 “예의범절, 경우에 맞는 옷차림, 원만한 화술, 활력, 절도있는 생활, 바른 몸가짐만 익히면 누구나 만인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 19세기의 부르주아지는 재산과 부를 축적하기는 했어도 인생에 대해서는 금욕적 태도를 고수했다고 볼 수 있다. 소비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에서는 물건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 마케팅 전문가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적절한 조언을 제공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 그래서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전위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이것이 자기 주장을 하고 자기만의 매력을 가시적으로 발산하는 길이었다.
- 현대마케팅과 ‘매력예찬론’이 손을 잡고, 새로운 인간을 창조했다. 이 새로운 인간에게 자기 충족은 자기 제어 못지 않게 중요했다. 양식이 매력으로 바뀌는 기나긴 여정에서 사유재산은 여전히 사회에서 가장 으뜸가는 지위를 차지했지만, 강조점은 서서히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했다.
다. 새로운 인간형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서 체험의 소비로 전환하는 시점에서의)
-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변화무쌍한 새로운 인간형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판이하게 다르다.
- 지난 세대의 사람은 자신을 ‘양식있는 인간’으로, ‘매력있는 인간’으로 여겼다. 거기에는 생산중심의 가치관, 소비중심의 가치관이 각각 반영되어 있었다.
-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문화라는 장터를 이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하면서 각본과 무대 사이를 경쾌하게 옮겨 다니는 ‘창조적 공연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 철학자 게오르크 제멜은 20세기의 가속화하는 도시세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간형에 대하여 성찰하면서 삶 자체의 ‘본질이 불안정해졌다’고 말한다. 인간 활동의 속도가 워낙 빨라지다 보니, 고정된 형태가 자리잡기 어려워졌다.
자아개념의 변화
- 19세기만 하더라도 사람은 고정된 자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증식되는 상품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 그러나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인생은 무언가를 부단히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정’이 ‘존재’를 압도하게되었다.
- 누적된 노력을 통해서 차곡차곡 쌓여 가는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자아가 부단한 과정 속에서 각성되고 발견되고 실현되는 현재 지향의 자아로 변모.
- 이제 자아는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진다
소유라는 비유의 퇴색
- 소유관계라는 비유가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데 더없이 유효 적절하게 쓰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 이렇게 된 원인은 바로 자아관의 변화이고
- 둘째로, 역사의식의 붕괴와 심리치료의 부상이다. 20세기 들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사를 훨씬 비중있게 생각했다. 인생은 역사나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각성이 움텄기 때문이다.
- 역사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위해 살아가지만, ‘치료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위해 살아가며 거창한 역사적 사명감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라. 마음의 개조
인쇄혁명
-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요인에는 여러 가지 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기술이 인쇄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이다.
- 근대의 여명기에는 구두문화와 필사문화가 인쇄문화로 바뀌면서 이를 계기로 인간의식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변했다. 인쇄혁명은 사유재산관계와 시장교환이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사유의 길을 터 주었다.
- 인쇄매체는 사람이 지식을 조직하는 방식을 재정의했다.(좀더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국민국가가 성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책으로 찍혀 나온 세속어는 뚜렷한 집단적 소속감을 심어주었다)
- 인쇄는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협상을 조직하며 이 과정에서 직선적, 순차적, 인과적 사유방식을 장려한다.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다는 것은 논리적 연쇄에 따라서 하나의 관념을 또 하나의 관념으로 발전시키는 직선적 연결고리를 연상시킨다. 이런 방식은 대화도중에 내용이 중복되거나 끊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구술문화의 사유방식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 인쇄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 인쇄혁명은 차분히 성찰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책이란 것은 혼자서 조용히 읽는 것이 제격이었다. 이렇게 해서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관념이 싹텄다. 아울러 자기를 반성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풍토가 자리잡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기와 세계를 치료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 발전했다.
- 인쇄는 산업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어울리는 마음가짐과 세계관을 안겨주었다.
컴퓨터와 통신기술
- 컴퓨터는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혁명을 몰고옴
- 문화자원과 실체험의 마케팅. 접속관계에 바탕을 둔 경제를 운영하는 데 더없이 이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 이 과정에서 컴퓨터는 사람의 의식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다.
- 컴퓨터통신은 직선으로 전개되지 않고,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순서와 인과는 밀려나고 그 자리에 연속적이고 통합된 활동의 총체적 장이 들어선다. 인터넷 세계에서 주체와 객체는 접속점과 네트워크로 바뀌며 구조와 기능은 과정 안으로 흡수된다. 모든 층위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쇄신되는 역동적 문화의 관계망 안에서 모든 부분은 하나의 접속점이 된다.
- 전자통신은 인쇄기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조직한다. 각주와 출전이 무한히 확대되며 새로운 하위텍스트와 상위텍스트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책이 단선적이고 경계선이 분명하고 고정되어 있다면, 하이퍼텍스트는 연결지향적이며 원리적으로는 딱히 경계선을 정할 수가 없다. 책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며 독립된 형식으로 존재하나 하이퍼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분명치 않고 배타성을 거부하며 관계를 쫓는다. 하이퍼텍스트는 완성을 모른다. 계속 과정일 뿐이다. 책은 오래도록 소유하는 것이지만 하이퍼텍스트는 순간 순간 접속하는 것이 제격이다.
- 하이퍼텍스트는 인쇄문화의 중요한 특성 하나를 잠식한다. 그것은 바로 책에 씌어진 생각이나 단어는 개별 저자의 소유라는 발상이다. 하이퍼텍스트에서는 모든 자료가 한 사람의 창조적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시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서 형성되는 무한히 열린 과정 안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배타적 소유권을 누구에게 부여해야 할지 곤혹스러울 수 있다.
새로운 연극배우 = 탈근대 의식
- 자율성을 가진 자아라는 관념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지리적 거리가 멀었고 비교적 고립된 삶을 살았던 개척시대에는 잘 어울렸다.
- 자율성, 침착성,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중요한 생존전략이었다. 그 세계에서 내 것과 네 것은 명확히 구분되었다.
- 자율성과 경계선을 가진 부르주아 자아는 광대한 물리적 공간과 전인미답의 자연자원이 널려 있었던 세계를 헤쳐나가는 데는 더없이 요긴한 의식의 형태였다.
- 그러나 요즘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 더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시간의 비중이 늘어나는 세계에 그들은 깊숙이 몸담고 있다. 어디를 가도 그들을 옥죄어 오는 관계의 고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계에, 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훨씬 강도 놓게 참여하고 있다”(스완스모어 대학의 심리학교수 케네스 거건, p. 309)
-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붙들어 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온갖 종류의 관계가 우리의 생활의 한 가운데에 온다.
새로운 명제 =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관계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개인의 사회적 역량에도 변화가 온다..... 전통문화에 내재되었던 비교적 안정되고 통합된 자아 감각은 경합을 벌이는 다채로운 잠재적 자아들에게 밀려난다. 수시로 바뀌고 연결되면서 각축을 벌이는 자아들의 거센 물살 속에서 헤엄을 쳐야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는 윤곽을 가진 ‘진정한 자아’는 점점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완전히 포화상태에 이른 자아는 더 이상 자아가 아니다.”(케네스 거건)
무수한 접속점과 같은 새로운 개인
- 대신 차지하는 것은 무수히 연결된 관계망 안에 있는 하나의 접속점처럼 행동하는 새로운 개인이다. (탈근대 세계의 최종단계에 이르면 자아는 관계의 단계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자신이 파묻혀 있는 관계망에 독립된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서양역사에서 수백년동안 한복판을 차지해 온 자아는 밀려나고 그 빈 자리로 관계가 밀고 들어온다.)
- 자신의 생각조차도 남들의 생각을 통해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심리적 성향을 나타낸다. (문장끝 올려 말하기=진술문보다는 의문문) 자율성을 가진 자아의 특징이었던 단정적 문장은 관계성에 치중하는 자아의 탐색적 문장에 자리를 내준다.
다중인격
- 다중인격 : 탈근대 시대가 낳은 처음 세대에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중인격’을 가진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MIT의 셰리 터클 교수)10)
“가상 공동체의 다양한 집단 안에서 온라인 인격체로 살아가는 가상 공간에서 만들어진 여러 개의 나는 현실 속의 통일된 자아관념을 허물어트린다.”
- “나는 내가 흉내내는 사람이다.”
- 새로운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사람은 평행선을 달리는 여러 궤도에서 복수의 역할을 맡는다. 각각의 창문은 새로운 가상현실로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또 하나의 인물을 연기하게 된다. 삶은 점점 탈중심화되면서 동시에 관계망으로 연결된다.
- 로버트 리프턴에 의하면, “복수의 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자아의 실종을 의미하기는커녕 좀더 유연하고 성숙한 의식의 단계에 올라섰음을 뜻한다”고 주장.
- 새로운 탈근대의 인간은 과거 부르주아 세대가 소유를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것처럼 새로운 체험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 내 것과 네것을 철저히 구분하고 엄청난 규모로 공간을 착취하고 재산을 축적하려는 집요한 욕망에 지배되었던 산업시대의 낡은 자율성은 부자와 빈자, 인간과 나머지 동물로 양분된 세계를 낳았고 그 과정에서 지구는 고갈되고 왜소해졌다.
- 시스템사고, 협동정신, 합의의 도출은 모두 네트워크 윤리의 일부분이다.
- 복수의 인격을 실험하면서 사는 사람은 남들에 대한 이해와 아량이 깊어질 것이고 남들과 어울릴 때도 상대적으로 개방적일 가능성이 높다.
- 변화무쌍한 의식은 존재를 파편화시킬 것이라는 일부 심리학자의 우려도 일리가 있지만 복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은 남들에게 쉽게 공감하는 능력을 배우기 때문에 문화 쇄신의 기초를 닦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비관적 견해 - 프레데릭 제인슨 같은 문화비평가 “문화상품과 체험을 파는 데 골몰하는 경제에서 개개의 영혼이 복수의 인격으로 파편화되는 것은 문화시장의 수가 앞으로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할 따름이다.)
세계는 무대, 인생은 연극
- 접속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연극성
-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persona)는 원래 ‘가면을 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존 로크는 자아가 개인의 사유재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지만, 인간행동을 연출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이제 자아는 더 이상 개인의 사유재산이 될 수 없다.
- 어빙 고프먼이 말한대로 자아는 ‘그가 공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에 의해 한 인간에게 부여된 감각’에 가까워진다.
- 데니스 브리셋 교수와 찰스 에질리 교수에 의하면 ‘자아는 실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소통이 야기하는 일종의 허구적이고 구성적이며 교감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는 특질’이라고 말한다.
- 이와 같은 견해는 ‘각 개인의 독특한 자아는 그가 평생에 걸쳐 획득한 소유물에 각인되어 있고 또 그것을 통해 나타난다’고 본 헤겔의 생각과는 크게 어긋난다.
- 연출적 관점은 이 새로운 사업방식을 이해하는 정확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연출적 관점은 통신을 인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자아를 관계의 중심으로 재정의하며, 체험 자체를 연극적 활동으로 만들고, 재산을 상징으로 변형시킨다.
- 세계를 연극무대로 보는 데 익숙한 새로운 시대의 남녀에게는 상업세계가 제공하는 대본, 무대, 다른 배우, 청중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사는 것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격을 살찌우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9. 접속, 접속권
가. 접속권의 중요성
- 다니엘 벨은 “통신서비스에 대한 지배가 권력의 원천이 되고, 통신에 대한 접속이 자유의 조건이 된다”고 예언했고,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새로운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는 누가 접속권을 소유하느냐가 핵심문제로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
- 문화자본주의를 향한 기업의 변신이 가속화된 것은 1996년 미국의회에서 통신법이 가결되면서부터였다.
- 전화회사, 할리우드영화사, 방송사, 케이블TV회사, 소프트웨어회사는 전략적 제휴를 활발하게 맺으면서 통신시장을 최대한 지배하기 위해 초대형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1997년 세계 60개국의 관리들이 WTO 주도아래 통신시장의 국가독점을 종식시키는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6천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전세계 통신시장이 개방되었다. 이는 자국 영토 안에서 통신의 구조와 접속양식의 기본적 조건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 제3세계 국가가 통신방송망을 외국사업자에게 내주면 결국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고스란히 잃게 되며 이익송금의 형태로 자본이 유출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될 경우 개발도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 속국으로 되돌아가는 꼴이 되어버린다.
- 방송주파수를 일종의 사유재산처럼 거래하자는 안이 대두되고 있다. 최초로 대두된 것은 1950년대에 시카고대학 법률평론에 기고한 글에서 레오 허즐이라는 변호사가 처음으로 내놓았다.11)
- 접속의 시대에는 주파수대역이라고 하는 부동산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부각될 것이다.(글로벌 주파수를 보유한 기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생활하기 위해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통신회로를 장악한다)
- 고도로 발달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문명에서 지금까지 공공재산으로 여겨졌던 주파수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거대 미디어기업의 그늘 아래 들어가게 된다.
나. 정부기능의 변화, 축소
- 사이버스페이스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주파수와 통신채널에 대한 관리권을 포기할 경우 정부의 역할은 더욱 왜소해질 것이다.
- 전문직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지리적 공간보다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리적 주소보다는 가상공간의 주소를 더 많이 쓴다.(영토에 기반을 둔 정부의 지위도 점점 흔들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 국제조약과 협약은 노동관행이나 환경정책에서 정부가 국내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 각국 정부는 무역자유화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주권을 갖는다.
-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뤄지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세금을 산정하고 거두기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조세당국이 모든 거래를 추적하기란 불가능하다. 설사 추적할 수 있더라고 거래가 어디서 이뤄졌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우므로 어느 나라에서 세금을 거둬야 하는 지도 애매모호할 것이다.12)
- 자국 영토 안에서 이뤄진 부가가치를 정확히 판별하여 세금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는 없다고 보아도 좋다. (네크워크 경제안에서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부가가치를 산정하고 세율을 차별화할 수 있겠는가?)
- 한나라가 통합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오래 전부터 여겨져 온 땅과 국토에 대한 애정과 집단적 연대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네트워크 시대에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가 시민이 국가 바깥에 세우는 무한히 많은 연합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제 정치가 사회생활을 조직하는 원리라는 소리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버린다. 정치는 현대 세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하기만 한 인위적 구성물로 전락했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아무튼 주변적 지위로 밀려난다”13)
다. 네트워크 바깥의 사람들
- 아직도 지구 위에 거주하는 인간의 대부분은 이 새로운 세계와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
- 그들은 전자네트워크로 들어가는 대문 바깥에서 가난과 절망이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 인생은 육체적으로 생존하기에도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다.
- 세계인구의 부유한 1/5만이 문화체험과 개인적 변신을 찾아 소유를 과감히 포기하고 있지만 나머지 4/5는 아직도 초라한 살림살이 속에서 더 많은 재산을 갈망하고 있다.
- 세계인구의 65%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고,
- 40%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 살고 있다.(맨하튼 한 곳에 있는 전화기 수가 사하라 사막 남쪽 전 아프리카에 있는 전화기 수보다 많다)
※ 통신보급율(인구 100명당 전화보급율)
홍콩 59대, 싱가폴 49대 한국과 대만 35대, 태국 3대, 인도네시아 0.6대, 중국 0.9대
“미래는 풍족하고 어디서나 살 수 있으며 교육을 많이 받은 우리 중의 소수에게만 기회의 낙원으로 다가올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 다시 말해서 대학을 나오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 소위 불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디지털암흑시대가 열릴 것이다”(데이비드 클라인)14)
- 전 세계 30억 노동자 가운데 1/3은 일자리가 없거나 생활비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1998 국제노동기구 보고서)15)
- 89개국은 소득이 10년전보다 떨어졌으며 35개국은 1930년대 대공황기보다 더욱 큰 폭으로 국민소득이 떨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가구당 평균소득 수준이 20년전보다 20%이상 하락했다.
- 미국인이 화장품 구입에 쓰는 돈(연간 80억달러)과 유럽인이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데 쓰는 돈(연간 110억달러)은 학교교육을 못 받고 공동화장실을 쓰면서 살아야 하는 세계 20억명의 인구에게 기본교육, 깨끗한 물, 위생시설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돈 보다 많은 액수이다.16)
- 부유층은 점점 전자 대문의 안쪽으로 넘어가는 반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교도소로 들어가고 있다.
- 전화도 못쓰는 미국의 7백만 가구에게 빌게이츠가 구상하는 정보고속도로로 연결된 세계는 무의미한 소리이다. 극빈층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노동자층과 중하류층은 새로운 전자네트워크 세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금과 학식과 시간이 부족하다. 고립되고 소외된 채 점점 고달파지는 세상에서 점점 가난하게 살아갈 위험성에 직면해 있다.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접속의 시대에도 낙오된다.(전자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기 위한 필수적 능력’이 될 것이라고 타임은 내다보았다.17))
라. 접속을 둘러싼 좌우 대립
- 미 연방통신위원회가 라디오를 관장하기 시작하면서 방송허가를 따낸 사업자들은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 그러나 공익성은 얼마 못 가서 수익성에 무릎을 끓고 말았다.(RCA, GE 등은 새로운 방송매체를 상업스폰서를 위한 광고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탈바꿈시켰다.
- 진공관의 발명가인 리 디 포리스트는 라디오가 이용되는 방식에 울분을 금치 못하였다.(1946미 방송협회에 보낸 서한)
- 1940년대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대중교육과 지역사회의 이익에 기여하는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었고, 이에 대한 장치들이 명문화되어 있었다.
- 그러나 1980년대에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규제완화의 거센 추세 속에서 공정원칙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그랬던 것처럼 텔레비전을 대중교육과 공익을 위해 활용하려는 모든 노력은 영리추구에 밀려나고 말았다. 공영방송조차도 시간이 흐르면서 애초의 원칙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론상으로는 광고가 없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제작비를 대기 위해 협찬 명목으로 민간 부분에 기댈 수밖에 없다)
-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교육프로그램의 비중을 줄이고 오락프로그램 비중을 늘리라는 시장의 압력에 점점 말려들게 되었다.
- 케이블방송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탄생했을 때도 접속의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되었다.
- 앞으로는 매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이런 매체를 통해서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접속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문제는 다가오는 시대가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되었다.
마.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접속에 관한 근본적인 이해
- 접속의 문제는 새로운 문명의 핵심을 관통하는 문제이다.
- 시장거래가 복잡한 상업네트워크로 바뀐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접속의 의미란 무엇인가?
- 과거 소유의 시대에서는 소유의 목적이라든지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생리를 정의하는 데 소유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묻는 좀 더 심오한 철학적 주제는 인간존재의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포괄적 틀을 제공했다.
- 새로운 통신기술과 이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자체가 우리가 접속을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시대에 펼쳐질 인간의 행로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요 입구일 뿐이다.
- 접속 관계의 사회학적, 정치적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다.
새로운 권리이론
- 소유관계의 본질과 철학을 새롭게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접속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완전한 이론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접속관계를 규정하는 새로운 이론의 편린들이 아직 공론화되지는 않았어도 글의 형태로는 슬슬 나타나고 있다.
※ 크로퍼드 맥퍼슨 교수(토론토 대)의 주장
- 우리 머리 속의 소유개념은 대부분 17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
- 근대적 소유개념의 첫 번째 특징은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도 엄연히 소유개념의 일부였음에도 이를 망각.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공공소유라는 소유의 두 번째 범주를 만들어 이 안에 공원, 도시, 수로 등을 집어넣었다. 사유재산과 공공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 그러나 근대에 오면서 ‘공유재산’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공공재라는 개념은 정부에 남아있고, 권리와 배제의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이중 소유체계가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근대적 시장과 산업자본주의의 부상은 배타적 소유를 경제관계와 사회관계의 전면으로 부각시켰다.
- 상호의존성이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이다.
- 맥퍼슨은 산업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존재했던 옛날 소유개념을 원상복구하자고 주장한다. 소유개념은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18)
-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로서의 소유는 비중이 줄어들게 마련이라고 맥퍼슨은 지적한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모든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웬만큼 만족시킬 수 있으면 타인을 배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소유관계를 조직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이렇다할 의미가 없다.
- 물질의 희소성을 극복한 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며, 자기 실현과 자기 변신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런 사회에서는 ‘충만한 삶’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권리야말로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소유의 가치가 된다.
- 그러나 현재 전 세계 인구의 80%는 여전히 물질을 하나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서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 늘어나는 인구, 줄어드는 자연자원, 생물 다양성의 감소, 인간이 만들어낸 공해의 확산은 생명을 뒷받침하는 환경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물질적 풍요와 개인적 변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논의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
-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 다시 말해서 접속의 권리는 컴퓨터가 매개하는 상업적, 사회적 네트워크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세계에서 갈수록 중요해진다. 이제 이 권리는 심각한 사회적 화두가 된다.
- ‘자치’와 ‘소유’ 보다는 ‘포함’과 ‘접속’이 개인적 자유의 더 중요한 가늠자가 된다. 관계를 맺고 공조를 구축하며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자유의 많고 적음이 판가름난다.
- 한때는 개인적 자유의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자치’는 이제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네트워크 세계에서 자치를 고수한다는 것은 단절과 고립을 의미한다. 반면 배제되지 않을 권리, 곧 접속의 권리는 개인적 자유를 재는 잣대가 된다.
- 점점 확대되는 글로벌 네트워크세계에서 정부가 과연 누구나 접속의 권리를 누리도록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접속의 두 가지 유형
- 우리의 공공생활은 상업공간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문명의 미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 인간의 삶에서 이념성이 줄어들고 연극성이 늘어난다면, 거창한 줄거리나 웅장한 세계관의 비중이 줄어들고 수십억 가지에 이르는 개개인의 드라마가 상업네트워크와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자기 나름의 각본에 따라서 공연된다면, 그때 우리는 인간이 처한 조건, 인간이 추구하는 정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인생의 목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결국에 가서는 상업광고만이 난무하고 그 사이사이에 간헐적으로 ‘본방송’이 끼여드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 새로운 시대의 아킬레스건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일 것이다. 이런 전제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동질적이기는커녕 양립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 전통적 관계는 친족, 민족, 지리, 공유하는 정서로부터 탄생한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이런 전통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의미를 끊임없이 확보하고 재생산하며, 이렇게 공유되는 의미가 공동의 문화를 이루어나간다. 관계와 공동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 반면에 상품화된 관계의 핵심은 그것이 도구적이라는 데 있다. 이런 관계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결속력은 쌍방이 합의한 거래 가격이다. 이 관계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호혜성보다는 계약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이것은 쌍방이 계약상의 의무를 존중하는 동안 존속하는 공동관심네트워크에 의해 유지된다.
바. 사회적 계약과 상업적 계약
사회적 계약
사회적 계약은 더 오랜 시간적 지평을 가지고 있으며, 관습에 의해 또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내리는 평결에 의해 구속력을 가진다. 조상,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세,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온갖 피조물, 너그러운 신 등에 둘러싸여 있다는 일체감에서 출발한다. 전통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은 개인의 행동에 제약을 가져온다. 자기만의 변덕 보다는 타인에 대한 책무가 우위에 놓이며, 더 큰 사회적 유기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상업적 계약
상업적 계약은 일반적으로 그 유효기간이 짧다. 역사나 유산에 의해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실행이나 결과에 의해 구속력을 갖는다. 당사자 사이의 책무는 명시적이며 일반적으로 수량화할 수 있고, 합의한 계약내용을 법률용어로 분명히 표현할 수 있다. 복수의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빠른 시간안에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고객과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의식이 우선된다. 상품화된 관계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돈을 교환한다는 것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쌍방이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으면서 쌍방이 함께 겪는 체험은 피상적이고 정략적이며 일시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잠시 불신을 유보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모사된 체험의 전형이 된다.
- 인간활동의 대부분이 상업영역으로 옮겨짐에 따라 잃는 것 또한 적지 않다. 전통적 인간관계를 표현하고 기존의 공동체를 육성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0. 문화
가. 시장과 문화
- 시장은 중심기관이 아니라 파생기관이다.
- 시장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신뢰가 충분히 조성되어 있는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다.
- 모든 나라는 시장이라고 하는 제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2부문을 중심으로 공공정책을 운용하면서 문화라는 제3부문은 당연시한다. 사회자본을 수립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이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 한 사회의 문화기구(교회, 세속기관, 민간단체, 상조회, 스포츠클럽, 예술집단, 비정부기구)는 사회적 신뢰의 샘물이다. 문화기구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에 시장이 가능한 것이다.
- 강한 공동체는 사회적 신뢰를 낳기 때문에 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경제의 조건이다.
제3부문
- 22개국에서 비영리부문의 지출은 GDP의 4.6%. 전체 서비스 종사자의 10%를 점하고 있다. 이를 별도의 국가경제로 묶을 경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시장규모를 가진 나라가 탄생한다.19)
- 제3부문의 종교, 상담조직은 시장이나 정부의 자장권으로부터 독립된 영역에서 인생의 영적 자원을 탐구할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한다.
- 제3부문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잡이로서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고 닦는 곳이다. 문화가 풍성하게 유지되는 놀이의 장이다.
- 건실한 문화는 경제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지 경제발전의 결과물이 아니다.
- 문화는 인간문명이 원활하게 기능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가치의 산실이다.
나. 공 감
- 사회는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 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친밀감과 예의 바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도 공감에서 나온다.
-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
- 체험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모의현실로 자꾸만 옮겨가고 그 속에서 체험을 문화상품으로 구입하는 추세가 일반화될 때 공감능력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 남들과 또는 다른 생명체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까? 모사의 세계에서 사람은 공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대부분의 체험이 문화로부터 떨어져 나와 상업영역으로 밀려들어갈 때 그것은 공감이라는 발상을 허용하지 않는 상품이 되어버린다.
- 상품화된 관계에서 타인은 지불한 돈에 상응하는 서비스나 실행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기를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새로운 세대에 있어서의 공감
- 모사된 세계에서 자라고 문화상품과 체험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산다는 발상이 낯설지 않은 세대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던지는 사회학자와 심리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 닷컴세대에서 개인의식의 파편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고 이들은 주장.
- 급변하는 탈근대 세계의 복잡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극복수단이라면서 신세대의 변화무쌍한 의식을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던 리프턴 마저도 이것이 인간의 행동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다. 문화체험 상품화가 초래할 희생
- 문화체험을 상품화하고 마케팅하는데 따르는 희생은 만만치 않다. 문화가 시들면 문화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와 공감은 어떻게 될까?
- 네트워크 경제와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다면 결국 인류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 사회적 신뢰와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우리는 상업과 교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 상업영역이 인간문화와 체험의 조각 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하여 제공할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문화의 부흥
- 산업생산이 자연에서 나오는 원료에 의존하는 것처럼 문화생산은 문화영역이 제공하는 재료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자연처럼 문화도 자꾸 캐내면 고갈되게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시장을 위해 황금달걀을 척척 낳아주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 그래서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 전세계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상업영역이 근시안적 영리추구를 위해 착취하기만 하고 순환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제는 결국 문화생산의 재료가 되는 인간 경험의 방대한 수원지를 잃게 될 것이다.
음악의 부흥
- 각국의 고유 음악이 모두 현대적으로 변형되어 세계적 음악으로 자리잡게되었다.
․켈트 음악 : 1997,1998에 리버댄스, 로드 오브 더 댄스 축제에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이후 국제적으로 사랑을 받게 됨
․그외 : 쿠바의 살사, 프랑스령 엔틸리스 제도의 주크, 그리스의 렘베티카, 알제리의 라이, 인도의 카왈리 등
- 이런 음악은 현지에서는 문화자본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한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사적 유산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 음악은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문화형태의 하나로, 사람들 가슴 속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을 움직인다. 그렇지만 적절하게 가공과 포장을 통해 상품으로 팔리는 음악에서 정작 핵심이 되는 메시지는 희석되거나 누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쿠바와 푸에르토리코의 가난에 찌든 도시 빈민가에서 출현하여 가혹한 현실과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연대와 자부심을 나타냈던 살사라는 음악장르는 제1세계 음악 팬의 입맞에 맞추는 과정에서 김빠지고 감상적인 음악으로 변질
․ 라이는 알제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오랑의 카바레에서 시작되어 알제리를 집어삼킨 경제적, 정치적 격변과 함께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라이 역시 상품으로 가공되는 과정에서 깊은 정치적 메시지는 제거되었다.(알제리 반체제 세력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은 위협받고 있다)
-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일차적 회로였던 음악을 판에 박힌 대중오락으로 변질시킴으로써 음악의 세계화는 지역문화를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시켰다고 비판한다.
․ 발리와 자바의 가믈란 음악 : 음악의 세계화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전세계 젊은이들(인도네시아 젊은이 포함)이 열광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던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망각하고 이것을 순수한 오락물로 취급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우려된다.
- 시장에 나와있는 문화상품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 못지 않게 지역문화를 소생시키는 데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유네스코 1998 세계문화 보고서의 우려
사회가 지역문화나 국가문화, 그리고 이것들을 지탱하는 창조성이 파손되지 않고 보존, 향상되는 방향으로 세계화의 충격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20)
라. 문화의 소생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이유
- 그것이 문화를 생산하는 데 원료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문화가 만들어내기 때문만도 아니다.
-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은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문화소생을 위해 - 지리적 공간에도, 사이버공간에서와 같은 관심을
-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컴퓨터 전송과 수신, 컴퓨터 인터페이스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깊은 인간의 교류는 언제나 지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
- 문화를 소생시키고 부활시키려면 적어도 사이버스페이스에 쏟아붇는 만큼의 관심을 지리적 공간에도 보여야 하고 채팅방에 들이는 만큼의 정성을 현실공동체에도 기울여야 한다.
마. 교육의 새로운 사명
새로운 교육혁명 : 시민교육
- 시민사회와 저변 문화에서 책임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데 목적을 둔 풀뿌리 교육혁명이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다, 이 운동에는 인성교육, 민주교육, 시민교육, 봉사학습 등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있지만 주로 시민교육이라고 불린다.
- 시민교육은 학생이 살아가는 동네와 지역사회에서 직접 체험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
- 시민교육은 학생, 교사, 부모, 지역사회에 있는 각종 기구가 힘을 합쳐서 커리큘럼을 짜고 체험학습을 이끌어나간다. 교실과 지역사회를 긴밀하게 엮어 모든 공부가 학생의 실생활과 연결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 시민교육은 전통적 도제훈련, 현장학습, 문제 해결, 시스템 중심의 개념학습을 정교하게 하나로 엮은 것이다. 그것은 교육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미 미국의 수천개 교육청과 수백개 대학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만약 성공을 거둘 경우 이것은 효율성과 추상성에 입각한 회사형 교육모델이 미국학교에 도입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혁신기 이후 가장 뜻깊은 교육개혁운동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시민교육의 내용과 목표
-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입수할 수 있는 지식에 접속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리적 공동체 안에 배태되어 있는 집단의 지식과 지혜에 접근하는 것을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인터넷에서 해당 정보를 클릭하는 것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
- 현실의 시공간에서 남들과 살을 맞대고 어울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배움의 일부분이다.
- 일차적 사명이 학생이 공동문화에 친숙해져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데 있다는 기본전제에서 출발
- 학생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학생, 부모, 공동체 안의 조직이 학습경험을 조성하는 데 모두 참여한다면 학업성취도는 일취월장할 것이다.
-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학생도 그 만큼 재미와 의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교육의 문제점
- 많은 미국학교가 오래전부터 핵심적 교육목표로 표방해 온 경쟁력있는 기술의 습득은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것처럼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라고 시민교육 이론가들은 비판한다.
- 시장에서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21세기 교육이념으로는 지나치게 옹색하다. 이런 교육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진 균형잡힌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남에게 팔아먹을 수 있는 재산쯤으로 치부하는 어른을 양산한다.
바. 제3부문의 정치세력화
제3부문
- 오늘날 현대사회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한쪽 끝에는 경제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정부가 있다. 문화라는 제 3부문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고려의 대상이 되더라도 우선순위에서는 한창 밀린다.
- 오늘날 문화부문은 시장부문과 정부부문 사이에서 일종의 새로운 식민지처럼 대우받고 있다. 문화는 독자성을 잃어버린 채 다른 두 부문에 기대여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 문화의 의존성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공연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거나 사업을 따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기업은 마케팅이나 홍보에서 유형무형의 이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문화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정부부문과 경제의 권력축소
- 정부의 많은 기능은 규제완화와 함께 시장으로 이양되었다. 지역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미미해지고 있다.
- 기업은 기업대로 지역색을 벗어버리고 자꾸만 세계화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지리적 공간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과 맺어온 전통적 유대관계가 느슨해지거나 아예 끊어지고 있다. 정부처럼 기업도 지역으로부터 점점 발을 빼고 있다.
제3부문과 제4부문의 싸움
- 제4부문은 비공식경제, 암시장, 범죄문화로 이뤄진 대담한 문화를 말하는데,
- 거대한 제도의 진공상황이 연출되면, 이 진공은 되살아난 제3부문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제4부문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 정부와 기업이 떠나간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제3부문과 제4부문이 세계 각지에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정치세력의 또 하나의 축
- 글로벌 네트워크,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상거래, 문화생산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한 축을 맡는다면, 심도깊은 사회적 교류의 재구축, 사회적 신뢰와 사회자본의 재창출, 강한 지역공동체의 회복은 정치세력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한다.
- 일시적이지만 손쉽게 맺을 수 있는 관계, 가상현실, 상품화된 체험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반기를 드는 후자는, ‘지리’와 ‘문화’가 중요하다고 외친다.
11. 새롭게 열어야 할 시대
가. 내재가치와 효용가치의 갈등
- 접속의 시대에는 좌우가 대립하는 정치가 내재가치와 효용가치가 갈등을 빚는 새로운 사회구도에 흡수된다.
- 문화와 상업의 갈등은 바로, 내재가치와 효용가치의 갈등
내재가치
- 내재가치는 가장 깊은 의미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하는 데,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절대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 문화자원, 의식(儀式), 활동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價値)이다. 그것들은 수량화된 기준으로 환원하거나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가치에 돈을 결부시키는 순간 그 가치를 낳은 상호관계는 훼손되어 버린다. 문화가 공동의 거점을 잃고 상업적 오락물로 변질되는 순간, 내재가치는 증발한다. 오로지 효용성만이 시장을 지배한다.
- 최근 내재가치가 효용가치에 점점 밀려나고 있는 실정. 사회의 준거틀이 자꾸 효용성으로 치우치는 것은 상업영역이 점점 득세하고 문화영역이 점점 퇴조하는 시대 추세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내재가치의 핵심
- 문화라는 것은 결국 대지와의 친밀한 결속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모든 문화는 자연에 공동의 뿌리를 두고 있다.
- 식물, 동물, 풍경, 하루의 주기, 변화하는 계절은 모두 문화적 형식을 만들고 문화적 표현을 낳은 데 영감을 주었고 은유로 활용되었다. 문화는 자연을 이루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한결같은 외경과 헌신에서 탄생했다.
- 문화는 대체로 생명을 긍정한다. 문화는 자연에 우리가 진 빚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더 큰 생명의 힘으로 이끈다.
- 이런 생명의 긍정이 바로 내재가치의 핵심이다.
- 문화는 모든 현상이 효용성으로 환원되고 편의와 징발이 행동의 표준으로 수용되는 상업영역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정치적으로 자각된 지역문화의 패러독스
- 정치적으로 각성된 지역문화는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저항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의 존립에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상업과 무역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회적 신뢰와 사회 자본이 고갈되어버리기 때문이다.
- 이런 일이 생기면 그나마 알랑하게 남아있는 자본주의 체제도 제4부문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다.(지금 러시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 따라서 글로벌 사이버스페이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먼저 다양한 지역문화를 되살려 놓아야 한다.
나. 지역문화 회복과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근본주의 운동
- 문화의 다양성을 되살리기 위해 문화의 복원을 부르짖는 것은 좋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고약한 형태의 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 근본주의 세력은 불건전하고 사악하다고 판단될 경우 세계로 향하는 통신창구를 봉쇄하는 조치도 불사한다. 그들은 지역문화에서 외부세계의 더러운 오염원을 말끔히 지워내려고 한다.
- 근본주의 운동은 늘 지리적 공간과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 이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경없는 세계에 맞서겠다는 필사적 의지를 볼 수 있다. 시간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세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장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배타적이어서 접속은 무조건 불순한 영향력으로 간주한다.
시민사회조직의 운동
- 근본주의운동의 이런 정서는 대다수 시민사회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과 충돌한다. 시민사회조직은 지역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 자기만의 문화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 그것이 시민사회조직 운동의 특성이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21)<마하트마 간다>
- 다른 문화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을 내주면서도 자기 문화의 색깔과 개성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조직이 되었건 근본주의 세력이 되었건, 앞으로 지역문화를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동원하는 데 성공하는 집단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다. 놀이의 변증법
누가 통로를 관리할 것인가?
- 글로벌 경제를 옹호하는 세력과 제3부문을 옹호하는 세력은 결국 앞으로 급부상하게 될 ‘놀이’라는 새로운 정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문화적 범주에 접속하는 통로를 누가 관리할 것이냐를 놓고 대립할 것이다.
노동정신에서 놀이정신으로
- 노동은 자연을 부리고 자원을 캐고 물건을 만드는 활동이다. 재산은 자연이 분해되고 가공되고 상품화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재산은 자연을 재처리하여 내 것과 네 것으로 분할하는 방법이다. 산업시대에는 노동정신을 장악한 집단이 재산분배방식을 결정했고 계급의 구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 산업자본주의가 문화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오늘날 노동정신은 놀이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호모 루덴스
- 놀이는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는 놀이가 세계경제의 전면에 등장한다. 문화체험의 상품화는 놀이의 모든 차원을 식민화하여 순전히 사고 팔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 접속은 누구를 놀이에 참여시키고 누구를 배제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방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거: 놀이가 사회를 만드는 데 맡았던 중요한 역할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호모사피엔스(사유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와 동렬에 올려놓자고 제안. 다른 생물도 놀이를 좋아하지만 인간은 그 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호이징거는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 “사회생활은 ‘한없는 게임’이라고 말함.
- 일이 인간생활을 지배하고 놀이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산업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놀이의 전제와 규칙
- 놀이를 지배하는 전제와 규칙은 ‘일’을 지배해온 전제와 규칙과는 크게 다르다.
- 놀이는 신나고 즐겁다. 그리고 놀이는 자발적이다. 자기가 선택해서 자유롭게 끼여드는 활동이 놀이다.
- 물론 일도 자기가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이 일 저 일 골라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 노동인구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일은 ‘생존의 문제’이다.
-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은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 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좋아진다.
-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 개방과 포용은 놀이환경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 놀이공간은 보복을 염려할 필요없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안전한 낙원이다. 그러나 이런 장소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 놀이가 그치면 놀이공간은 내재가치를 상실한다. 놀이공간은 사람이 보유하거나 소유하는 영토가 아니라 일시적으로만 공유하는 무대이다.
놀이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다시 일 비중이 줄어드는 세상
- 근대로 넘어오면서 일과 놀이의 비중이 뒤바뀌었다. 일은 인간활동의 주역이 되었고 놀이는 일과 잠 사이에 잠깐잠깐 끼여드는 조역으로 밀려났다. 문화영역과 상업영역의 관계가 바뀌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 그러나 다시 일의 비중이 줄어드는 세상이 돌아왔다.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은 시장의 올가미로부터 서서히 풀려나고 있다.
-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력은 크게 증대되었으나, 구매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생산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상위 20%의 인구는 더 이상 살 물건이 없지만)
- 이제 노동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현격히 감소할 것이다.
시장에서의 놀이?
- 산업경제에서 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그러나 여기서의 놀이는 일종의 계약경험으로 다가온다. 순수한 놀이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얽힌 관계이다. 시장에서 누리는 즐거움은 능동적, 집단적 체험이 아니라 수동적, 개인적 체험에 가깝다.
- 시장의 힘이 놀이를 점령하면 놀이의 문화적 의미는 평가절하되기 십상이고 놀이 활동에서 탄생하고 자양분을 얻는 문화영역도 존립근거를 잃는다.
-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놓은 수준의 표현형식이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프리드리히 실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하여, 1795>
- 문화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놀이에 참가한 모든 사람은 잠시 동안 경계심을 접어두고 자기를 내던지면서 남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을 경험한다. 진정한 놀이는 혼자 할 수 없다.
- 자유와 놀이는 토대가 같다.
- 사람은 문화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 성숙한 놀이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 모은다. 그것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인간 교류의 형식이다.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던 상업적 성격을 띠었던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것이다.
- 자본주의체제 스스로도 앞으로 가장 유망한 사업영역으로 꼽고 있다.(테마파크, 종합오락센터, 스포츠 영화, 가상세계 등)
- 상업영역에서 오락형식의 놀이를 돈내고 즐기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문화영역에서 성숙한 놀이는 씨가 마르고 그 빈자리를 온통 유료놀이가 차지할 때 문명은 심각한 와해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라. 21세기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
새로운 문명의 위기
- 컴맹을 극복케 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 제약없이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하거나, 입장료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수입과 생활수준을 보장한다고 해서, 이리하여 21세기 전자네트워크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돌아가게 만든다고 해서 새로운 문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 적절한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힘은 문화영역을 집어삼켜 상품화된 파편들로 변질시킬 것이다.
- 수천년을 살아온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가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 출처: 관동대학교북한학과(http://www.kwand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