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お宅)란?
‘오타쿠’ 라는 말이 상대편을 지칭하는 대명사 역할이 아닌 사회의 일부 부류를 지칭하는 말로 처음 쓰일 당시에는, 일본의 특징인 ‘집단 속으로의 동화’ 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와 비슷한 의미로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것이 일본 버블 시기일 때, 풍요로워진 생활 속에서,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채우기 위해 자신만의 관심사를 찾고, 거기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점차 변해가게 되었다. 현재의 ‘오타쿠’ 라는 것은 정확히 번역할 수는 없지만, ‘일본식 매니아’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접근한 것이라 생각된다.
2. 애니메이션을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
일본 애니메이션, 즉 아니메야 말로 오타쿠 문화의 정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타쿠들과 함께 발전해온 아니메에는 오타쿠들의 정신이 녹아있고, 그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3. 애니메이션 속의 예전 오타쿠 특징에 대한 분석
이제부터 몇 가지 애니메이션의 예를 들어 예전에 이야기 되던 오타쿠의 일반적 특징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1) 같은 관심사가 없는 사람이나 사회와의 접촉을 거부한다.
같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비교적 가깝다고 느껴지는 사이임에도 불구 하고 겉도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로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내심으로는 설득되지 않는다. 이 것은 현대 일본 사회의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음의 클립은 ‘無限のリヴァイアス’ 라는 아니메의 시작 부분이다. 청소년들이 리바이어스라는 공간 속에 고립되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를 보여준 작품인데, 여기서 청소년과 오타쿠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고립된 상황이라는 설정 자체가 오타쿠들의 주류 사회와의 고립과 연결되고, 리바이어스 외부 세계로부터의 공격은 역시 마찬가지로 주류 사회로부터의 공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無限のリヴァイアス Clip
이 도입부는 주인공인 ‘아이바 코우지’ 의 성격을 단면적으로 나타내준다. 주변에 그럭저럭 적응하는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또한 동생과 같이 생활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주위의 삶에 적응하는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관심사에 몰두하는 오타쿠의 모습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사회와의 단절 현상은 다른 애니메이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Serial Experiments Lain’ 이라는 작품인데 Real World와 Weird의 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표현해낸 작품이다.
Serial Experiments Lain Clip
이 부분에서 주인공 레인과 주변과의 단절을 볼 수 있다. 서먹서먹한 가족 관계는 물론이고, 자신을 감추기 위한 인형복 같은 복장까지. 마지못해 속해 있기는 하지만 결코 어울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2)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을 느낀다.
오타쿠들은 사회와 타인과의 접촉을 거부함에 따라, 더욱더 고립되게 된다. 하지만 좋던 싫던간에 오타쿠들 역시 사회 구성원의 일부분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벗어나려 하면서도 속해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체성 혼란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이 클립은 ‘Cowboy Bebop - Knockin' on Heaven's Door’ 의 일부이다. TV 시리즈 ‘Cowboy Bebop’ 의 극장판으로, 다음은 빈센트 대사의 한 부분이다.
Cowboy Bebop - Knockin' on Heaven's Door Clip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한 듯 한 이 대사는, 현실과 꿈의 혼란을 보여준다. 이런 자아 정체성의 혼란은 극중 빈센트와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오타쿠들의 현실이다.
이번 클립은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이다. 오타쿠 공략에 가장 성공한 아니메로 손꼽히는 유명한 작품이라 따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Clip
여기서 신지는 ‘도망쳐서는 안 돼’ 를 반복해서 되뇌인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오타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신지가 에바에 타야 하듯이, 오타쿠들 역시 사회 속에 발을 내밀어야 한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 그 것은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가속화 시킨다. 이런 감정들은 결국 오타쿠들의 사회적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게 된다.
(3) 감각적인 것을 추구한다.
사회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혼란을 느끼는 반대급부 현상으로 감각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와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극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서 자극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얻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메 계열에서 이런 장면을 쉽게 찾으려 한다.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Clip
이 클립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오프닝인데 후반부 쪽으로 가게 되면 전혀 개연성 없는 영상들이 빠르게 겹쳐지며 지나간다. 처음 방송되었을 때 바로 이런 점들이 상당한 이슈가 되고, 이어지는 의미가 없는 화면의 나열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고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 하지만 오타쿠들에게는 이런 설정이 상당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져 그들의 기호를 만족시켰고, 가이낙스는 유래 없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4) 한 가지에 무섭도록 파고든다.
이건 굳이 아니메를 통해서 살펴 보지 않아도 오타쿠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한 번 예를 들어 보았다.
Cowboy Bebop Clip
‘Cowboy Bebop’ TV판 중에 일부분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비디오광의 모습은 오타쿠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한 가지에 빠져든다는 점은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4. 애니메이션에 나타나는 변화된 오타쿠의 모습
위에서 알아본 오타쿠의 모습은 상당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이 많다. 하지만 오타쿠들은 이런 면들을 스스로 차근차근 개선해 나갔고, 또 그 것에 대한 욕망을 표현해 왔다. 그래서 현재에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1)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더 이상 사회와 격리된 자신에 헤매지 않는다. 이제는 솔직히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Clip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장면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직시로 자신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가 아닌 타인과 공존하는 세계로 나아가는 신지의 모습이다. 이 것이 오타쿠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주류와의 공존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얻은 엄청난 인기를 생각하면, 더욱더 그러하게 느껴진다. 공감대가 없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고, 생각이 같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無限のリヴァイアス Clip
무한의 리바이어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첫 화의 첫 장면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해서 만든 마지막 화의 첫 부분이다. 구조는 같지만, 대사에서 아이바 코우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것, 그 것이 오타쿠가 사회적인 힘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無限のリヴァイアス Clip
자신의 강함도 약함도 다 인정하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것을 위한 노력은 분명히 시도되고 있다. 단지 주류 사회를 거부한다고 해서 자신들이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오타쿠들은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충분히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인지하게 되었다.
(2) 감각화의 극한
오타쿠들의 특징이었던 감각화를 극대화하여 자신들의 장점으로 발전시켰다. 이 것은 오타쿠 문화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すごいよ!! マサルさん Clip
이 아니메의 내용을 보게 되면 ‘이게 무슨 말인가…’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처음 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이상함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타쿠들은 그런 점에 개의치 않고 그들만의 이런 문화를 계속 생산해 내며 꾸준한 활동을 전개 하였다. 그러자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점차 이해해 보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런 문화가 확산되면서 그들만의 문화였던 오타쿠 문화가 사회에서 인정 받게 되고, 그와 동시에 오타쿠들도 사회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 집념의 승화
자신들이 무엇 한가지에 파고 드는 집념을 문화화 하였다. 예전에는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에만 매달려 소비하려 하던 그들이, 직접 문화의 생산자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이 증가하면서 오타쿠들의 사회 진출 또한 가속화 되는 시너지 효과를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이낙스‘ 라는 초유의 상업화된 거대 오타쿠 집단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을 기점으로 오타쿠의 대중적인 양성화가 시작되었다.
5. 현 일본 사회에서 오타쿠가 가지는 의의
현재 일본 사회는 정체기를 맞고 있다. 경제 성장은 둔화되었고, 낮아지는 출산율로 사회의 활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유독 활기를 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니메 시장이다.
위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지금 현재 TV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아니메의 수만 37편에 달한다. 시간대도 우리 나라처럼 어린이 시간대라 불리는 저녁 타임이 아닌, 새벽부터 심야까지 다양하다. 이런 형식으로 아니메가 방송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오타쿠들의 힘인 것이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아니메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나 노골적으로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노렸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럴 정도로 오타쿠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고, 소비되어 지는 아니메는 이제 대중 문화에서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그걸 바탕으로 하여, 미디어 믹스 시장을 확대해서 대중 문화 전반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만화나 아니메의 드라마화나 영화화, 또는 게임화 등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으로 아니메의 활력을 전달 시켜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영향력의 확산은 다른 분야에도 오타쿠들이 활동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그런 오타쿠의 증가는 생산과 소비를 통한 피드백 효과를 강화시켜, 깊이 있고 다양한 대중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다. 그런 바람직한 현상들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의 비주류로 남아있던 오타쿠와 주류 사회의 연대가 강해졌고, 이제 아니메 계와 같은 부분에서는 오히려 오타쿠가 주류로 자리 잡아가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오타쿠가 대중 문화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6. 결론
오타쿠는 본래 부정적인 의미로 출발하였고, 또 얼마 전까지도 그런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돌아보고 사회와의 연계점을 찾아 나갔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들만의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무엇인가 한가지에 매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남들로부터 인정 받지 못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일본의 오타쿠들은 그들의 어두운 이미지를 스스로 극복해 내고, 사회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였다. 문화의 생산자로서의 위치, 소비자로서의 위치.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기 위해 그들은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화나 아니메 등등…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을 이런 문화들을 통해 스스로 표현해 나갔다. 일본이라는 집단을 중시하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집단에 속해 있지 않았던 이런 문화들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오타쿠들 또한 주류 사회와의 교류가 가능해지고 그들만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노력의 승리이다.
또한 이제는 이런 오타쿠야 말로 현대 일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세계화, 다양화 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 경직되고 동화되어 있는 일본 사회의 다양화를 가능하게 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 대중 문화의 매너리즘을 방지하게 된다. 실제로 아니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세계 시장을 양분하며 경쟁할 수 있는 토대는 바로 이 오타쿠들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일련의 성장 과정은 우리 나라의 현실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우리 나라는 일본과는 달리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경시하는 풍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고, 어쩌면 일본보다 더 심할 정도로 폐쇄적인 집단과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오타쿠 문화라 칭할 수 있는 것들은 역사도 짧고 뿌리도 깊지 못할 뿐더러, 참여 또한 현저히 낮다. 주위의 반대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그러하긴 했지만, 최소한 일본은 그들의 표현 창구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았다. 이런 현실 속의 우리 나라에서 오타쿠 문화가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아쉽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