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와 숨바꼭질하는 설악산 화채봉
진전사지-송암산-설악산 화채봉-매봉골-진전사지(陳田寺址)
20210918
추석맞이 특별산행을 하였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화채봉길 진전사터 아래서 산행을 시작한다. 생애 처음으로 이 골짜기에 와서 산길을 걸어 생애 처음으로 설악산 화채봉에 오르려고 한다. 생애 처음으로라는 말이 자꾸 되풀이된다.
진전사터에 생애 처음으로 와서 국보 제122호 3층석탑을 만났다. 통일신라시대의 불교 석탑은 3층으로 정형화하는데 그 대표는 경주 감은사터 3층석탑일 것이다. 진전사터의 3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석탑의 형식이다. 석탑 1층과 2층의 기단 네 면에 돋을새김된 天人과 八部衆像을 살피며 동쪽에 솟아오른 태양에 눈이 부셨다. 산길로 들어서 10여 분 뒤 중창복원된 진전사를 들렀다. 대웅전 동쪽 언덕에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 부도탑을 찾았다. 보물 제439호 진전사터 도의국사 부도탑은 단아했다. 고려시대의 화려한 부도탑에 비하면 단순하지만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산행을 시작하며 국보 문화재 불탑과 부도탑을 만나니 마음이 풍요해졌다. 산행의 어려움 생각은 멀리 날아갔다. 임도를 따라오르다 송림과 참나무 숲으로 들어가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며 땀을 비내리듯 쏟았다. 그러나 마음은 가벼웠다. 산행 시작했을 때는 햇볕이 쨍쨍했는데, 숲길에 들어 송암산 능선에 올라서니 운무가 감싸기 시작한다. 양양 바다는 숨어 버렸다. 송암산 오르는 능선은 쉽다. 송림에 난 숲길을 따라가면 해발 706m의 아담한 산봉에 서울마운틴 산악회에 설치한 노란 아크릴 표지판이 소나무 줄기에 붙어 있다.
송암산에서 능선을 따라가다 863m 산봉 산비탈 오르기가 어렵다. 863봉을 우회하여 왼쪽으로 내려가다가 조금만 더 가면 해발 800m 백호단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백호단과 망월단을 거쳐 설악저수지로 내려갈 수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설악산 화채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963m 암봉을 우회하지 않고 올라가 보았는데 정상 소나무 가지에는 신마포산악회에서 매단 표지기가 걸려 있고 구절초 하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서남쪽으로 열려 있는 전망은 운무에 가려 덮여 있다. 암봉에서 내려갔다가 1042봉을 오른 뒤 이어지는 1206봉 오르는 산비탈길은 엄청 가파르다. 비박하는 산객 일행이 대형 배낭을 지고 꿋꿋하게 오른다. 3일 동안 설악의 품에서 놀다가 갈 것이라고 귀띰해 준다.
1206봉에서 칼바위능선 조망대인 1216m 암봉은 지척이다. 조망바위에서 칼바위능선과 화채봉, 대청봉에서 이어지는 화채능선을 조망하지만 운무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운무 속에 숨어 있던 화채봉이 잠시 모습을 살짝 드러내고 숨는다. 운무와 숨바꼭질하는 화채봉을 감상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칼바위능선을 통과한다. 쉽지 않다.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다. 칼바위능선을 통과하여 화채봉 남쪽 암봉을 우회하는데 엄청나게 가파를 뿐 아니라 돌길이 미끄럽다. 어려운 구간을 힘겹게 통과하여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설악산 화채봉에 올랐다.
해발 1328m 화채봉 정상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고 소나무 몇 그루들이 자란다. 가장 건실한 소나무 줄기에 서울 마운틴산악회에서 화채봉 아크릴 노란 표지판을 설치해 두었다. 설악산 화채봉은 이 능선에 수많은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피어나기에 빛날華, 채색 彩를 써서 화채봉이라 이른다고 한다. 화채봉 정상에서 풍경을 조망하지만 만상의 존재들이 운무에 덮여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존재하는 만상들을 운무 속에서 상상한다. 생애 처음으로 밟은 화채봉 정상은 이런 추억으로 생애의 갈피에 남긴다. 다음에 너를 찾아올 때는 만상의 존재들을 너와 함께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안녕, 너와 작별한다.
화채봉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대청봉 방향으로 향하다가 왼쪽 매봉골 방향 급경사의 산비탈길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내려간다. 떨기나무들 가지들은 등산복을 뜯어놓고 정강이와 허벅지 그리고 팔을 할퀴어 생채기를 낸다. 고통스러웠다. 힘겨웠다. 겨우 매봉골로 내려와 골짜기를 이리저리 건너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면서 설악저수지 방향의 산길을 찾아 내려갔다. 설악저수지 위 시내에서 몸을 씻었다. 시큰시큰한 무릎을 찬물에 담그니 생채기들이 머리를 들고 쓰라리게 괴롭혔다. 그 쓰라린 생채기 고통 위에 화채봉을 산행했다는 환희가 솟아난다. 그 환희는 음력 8월 열이튿날의 둥근달로 하늘에 떠올랐다. 설악저수지 하늘 위에 둥근달이 밝게 떠올라 환하게 빛난다. 생애 처음의 화채봉 산행 모습이 달빛에 일렁거린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석탑으로 1층과 2층 기단의 네 벽면에 天人과 八部衆像이 각 2인씩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곳에서 왼쪽 산줄기를 따라가면
이 산줄기가 내려오는 곳과 만나서 조금 더 내려가면
963m 암봉을 우회하지 않고 올라서 진행한다.
화채봉은 수많은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여 빛날 華, 채색 彩, 화채봉이라 이른다고 한다.
화채봉 정상을 표시하는 아크릴 표지판을 서울마운틴산악회에서 설치하였다.
화채봉에서 대청봉 방향으로 화채능선을 따라가다가 왼쪽 매봉골 급경사 산비탈길을 따라 내려가 계곡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