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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 년의 숨결을 굽어보는 경주 남산
1. 일자 : 2011. 4. 2 (토)
2. 장소 : 남산 고위 산(494m), 금오산(468m)
3. 행로 및 시간
[용장마을(11:15, 고위봉 2.65km) -> 천우사(11:30) -> (이무기암릉/밧줄) -> 너럭바위(12:26) -> 고위산(12:32, 천불암 1.35km) -> (중식 12:46) -> (고위봉평지능선) -> 봉화대(13:09, 금오봉 3.55km) -> (봉화대평지능선) -> 칠불암 갈림(13:23) -> 칠불암(13:32) -> 칠불암 갈림(13:48) -> (봉화대암릉) -> 바위지대(14:01) -> 이영재(14:23) -> (순환임도) -> 연화좌대(14:38) -> 용장골갈림(14:44, 용장사터 0.55km) -> 금오산(14:56) -> 상사바위(15:14) -> 상선암(15:25) -> (불상지대) -> 삼릉(15:56) -> 서남산 주차장(16:00)(전체약11km)]
4. 동행 : 홀로, 산죽산악회
5. 산행궤적
t,d,35.776364,129.205757,03-02-2011,11:15:48,84,1 용장마을
t,d,35.775023,129.209603,03-02-2011,11:23:19,90,3 탐방센터
t,d,35.774039,129.214051,03-02-2011,11:30:05,132,1 천우사 부근
t,d,35.774230,129.217285,03-02-2011,11:38:07,180,0 바위 능선 초입
t,d,35.774045,129.217532,03-02-2011,11:41:32,204,0 천우사 전경
t,d,35.773947,129.219463,03-02-2011,11:50:27,299,0 전망바위 1
t,d,35.772048,129.222380,03-02-2011,12:05:23,398,0 전망바위 2
t,d,35.772010,129.222368,03-02-2011,12:07:15,392,0 너럭바위
t,d,35.769863,129.223440,03-02-2011,12:13:54,382,1 밧줄지대
t,d,35.768776,129.224927,03-02-2011,12:26:28,467,0 전망바위 3
t,d,35.767545,129.225257,03-02-2011,12:32:16,510,1 고위산
t,d,35.766972,129.234686,03-02-2011,13:09:14,447,0 봉화대
t,d,35.768380,129.234711,03-02-2011,13:16:50,458,0 칠불암 전망
t,d,35.768554,129.234646,03-02-2011,13:20:20,440,0 칠불암 갈림
t,d,35.771556,129.235389,03-02-2011,13:33:27,412,0 칠불암
t,d,35.770923,129.234348,03-02-2011,13:48:58,395,2 칠불암 갈림
t,d,35.772745,129.232409,03-02-2011,14:01:32,461,0 바위지대
t,d,35.780615,129.230028,03-02-2011,14:24:45,343,0 이영재
t,d,35.783172,129.225848,03-02-2011,14:37:22,394,2 고위봉 전망 포인트
t,d,35.783299,129.225580,03-02-2011,14:38:54,400,0 대연화좌대
t,d,35.784135,129.223570,03-02-2011,14:44:40,425,0 용장골 갈림
t,d,35.788734,129.222827,03-02-2011,14:56:30,483,1 금오산
t,d,35.795499,129.222528,03-02-2011,15:14:58,407,1 상사바위
t,d,35.795779,129.222254,03-02-2011,15:16:52,409,0 상선암 갈림
t,d,35.795504,129.221845,03-02-2011,15:18:45,402,0 마애불
t,d,35.795524,129.221801,03-02-2011,15:27:33,380,0 상선암
t,d,35.795305,129.218158,03-02-2011,15:38:53,242,0 석불좌상
t,d,35.796293,129.215987,03-02-2011,15:43:45,177,0 바위암각불
t,d,35.796997,129.214868,03-02-2011,15:47:55,168,0 석조여래좌상(목 없음)
t,d,35.797731,129.209590,03-02-2011,15:57:15,110,0 삼릉
t,d,35.798935,129.207630,03-02-2011,16:00:39,88,4 주차장
< 남산 산행을 준비하며 >
올해 초 산행 계획을 세우면서 경상도 산에 자주 오르겠다고 다짐했는데, 지난 주 상주에 있는 주흘산 산행을 술 때문에 취소하고는 마음의 짐을 진 기분이었다. 이를 만회하고자 이번 주 산행은 같은 경상도 땅 경주 남산으로 잡았다.
신라 천 년의 고도 서라벌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높이 494m의 고위봉(高位峰)과 468m의 금오봉(金鰲峰)이 솟아 있는데, 이 두 산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계곡과 능선과 봉우리들을 합쳐서 경주 남산이라 부른다. 남산에서는 돌부리에 채이듯 쉽게 유물들을 만난다 한다. 남산 내에 절터 117곳, 석불 100기, 석탑 72기와 다수의 왕릉이 산재해 있으니 산 자체가 문화재인 셈이다. 그래서 남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 산을 신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고쟁이라 부른다. 혹자는 ‘남산’이라는 말에는 “따스하고 환한 삶의 남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지향이 만든 꿈같은 산” 이라는 정서가 녹아 있다고 한다. 따스한 남녘의 봄 향기가 모락모락 솟아 나는 계절이라 더욱 공감이 가는 말이다.
경주 남산은 100대 명산임에도 산악 잡지에 소개된 사례가 드물다. 집에 소장중인 100여 권의 잡지와 단행본을 통해 등산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획득한 정보도 대부분 사진 위주이다. 그나마 ‘100대 명산 수첩’이라는 포켓북에 소개된 정보가 가장 풍부하다. 이를 바탕으로 길 사정의 대강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 용장리에서 계곡을 따라 걷다가 1시간여 만에 능선에 올라 붙고, 암릉지대를 30여분 걸어서 이산의 정수리 고위봉에 도착한다. 정상에서 칠불암 석탑까지는 능선 길로 30분, 이후 금오산까지는 1시간, 이후 바위와 암릉지대를 거쳐 삼릉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예상된다. 높이가 500m 이하이니 고도의 부담은 없으나, 이런 높이의 산이 명산이 되자면 분명 암릉이 많을 진데 길의 평면 지도만으로는 난이도를 가름하기가 녹녹하지 않다. 산행 거리 11km, 예상시간이 5시간이고, 오를 등산로가 ‘역 ㄷ’ 자 형태라는 정보를 머리 속에 담고 4월 첫 주말을 맞는다.
< 희망사항 >
내 또래의 한국의 중년 남자라면 살면서 경주에 서 너 번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고교 수학여행, 연인과의 데이트,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유적지 답사, 그리고 회사 세미나/학회 참석차 여러 번 경주를 방문했었다. 각각의 여행에서 보문단지, 불국사, 석굴암, 감포 바다 등 유적지와 행락지는 구경했지만 산에 오른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오로지 산을 오르기 위해 경주를 찾는다. 누구나 맛 볼 수 있는 뷔페 음식이 아니라, 정성스레 준비된 일품요리를 먹으러 가는 기분이다.
고위봉에 올라 신라 천 년의 자취를 굽어보며 고도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고, 유행가 가사에도 등장하는 ‘금오산 기슭에서 들려오는 신라의 노래를’듣고 싶다.
몇 해 전 4월 학회 참석차 방문했을 때 자투리 시간에 찾은 보문호수에서, 흐드러지게 핀 벗 꽃을 보며 아련한 그리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낯선 땅에서 홀로 즐긴다는 것은 나그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지번 주 수리산에 올랐을 때만 해도 눈 덮인 길과 매서운 바람에 겨울을 느꼈는데 이번 주는 날씨가 많이 따스해졌다. 경주 주변의 도로를 지나며 차장으로나마 흰 꽃의 향연을 엿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경주 가는 길에 >
봄 새벽 길, 버스 차창으로 바라다 보는 풍경. 관악이 희뿌옇게 깨어나고 있다. 하늘에 닿은 뒤 봉우리가 먼저 시선을 끈다. 앞산은 더 검게 다가온다. 정상 능선의 방송 탑들이 병풍 같은 모습을 한 체 실체를 드러냈다. 과천성당 종탑 사이로 여명이 밝아온다. 이 새벽에 나는 길을 나서고 있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산죽산악회 사람들은 별나게 부지런한가 보다. 이 신 새벽에도 버스는 여유 좌석 하나 없이 만원이다. 연무 낀 아침 옅은 황사까지 겹쳐 봄이 오는 남도 길의 정취는 감동적이지 못하다. 간간이 눈에 띄는 개나리만이 시선을 끈다.
11시가 조금 지나 경주에 도착했다. 길 가 벗 꽃 가로수는 꽃망울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한가한 경주의 도로는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 단체 사진 한 장을 찍고는 각자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은 특정 코스의 안내 산행이 아닌 자유 산행이다. 오후 5시까지 삼릉 주차장으로 모이면 된다. 대장은 산 길이 워낙 많아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코스를 정하라 한다.
< 용장마을에서 고위봉 >
기대했던 벗 꽃이 아직 피지 않았음에 봄 꽃에 대한 생각은 접었는데, 용장마을 어귀에 매화를 시작으로 능선 초입에 연분홍 진달래, 노란 생강나무 꽃들이 나의 경주 남산산행을 축하해 주고 있다. 특히 진달래의 수줍은 분홍빛 자태는 순수함과 요염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 고위산 가는 길의 봄 꽃 >
용장마을에서 고위산까지는 2.67km 거리다. 도로를 따라 굽이 길을 오르자 천우사라는 조금만 암자가 보이고, 이곳을 지나자 곧바로 ‘이무기능선’ 길이 이어졌다. 산 길 초입은 진관사에서 오르는 북한산 응봉능선을 연상시킨다. 그리 위험하지 않은 암릉이 이어지고 조금만 올라도 내려다 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체 10분을 오르지 않고도 지나온 길과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들리지 못한 천우사 절 집도 발 아래 보인다.
날씨가 꽤 차다. 하늘은 연무로 흐리다. 길을 오를수록 소나무와 어우러진 암릉의 모습이 멋지다. 가야 할 길 건너 바위 봉우리의 모습도 점점 가까워진다. 간간이 밧줄도 보인다. 시간의 여유가 많으니 천천히 진달래 구경도 하고 우보 산행을 이어간다.
12시를 지나며 부터 고위봉 정상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너럭바위를 지나며 잠시 발 길을 멈춘다. 바위
사이로 지나온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가야 할 길이 길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500m 산에서도
고산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 너럭바위 부근의 전경 >
암릉 길이 거칠어 지더니, 큰 바위 앞에 긴 밧줄이 매어져 있는 구간을 오른다. 부부로 보이는 일행이 앞 길을 막는다. 얼굴에 홍조를 띤 부인이 밧줄 길에 한숨짓는다. 내 집사람을 보는 것 같다. 남편에 꾀임에 속아 산에는 왔으나 위험한 길 사정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닮았다. 남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어서 오르라 하고는 뒤에 있는 나를 보더니 먼저 가라 한다. 걷듯이 바위를 오르며 아주머니에게 위험하지 않다고 위로하자 마침내 줄을 잡더니 이내 오름에 성공한다. 작은 성취에 얼굴은 더욱 붉게 물든다. 집사람이 더욱 생각나는 장면이다.
< 이무기 능선에서 >
< 고위산에서 >
밧줄 길의 긴장감이 몇 번 더 나타나긴 했지만 고위봉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 길을 걷는 재미와 시원한 눈 맛이 쏠쏠하다. 돌아 보는 길의 전경도 장쾌하다. 마지막 암릉을 돌아드니 고위산 표지석이 보인다. 가까이 와서 보니 ‘봉’이 아닌 ‘산’이라 되어 있다. 명명의 격을 한 단계 올려 존중해 주어야겠다. 정상석 뒤편으로 작은 초소가 있고 그 위 너른 바위 위에서 점심상을 풀었다. 눈 밑으로는 경주 시가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 년 고도 경주의 풍광을 굽어 보며 먹는 식사는 황제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 고위산에서 금오산 >
이정표는 고위산에서 칠불봉까지 거리가 1.35km라 한다. 올랐던 이무기능선과는 다르게 고위봉능선은 평지능선이다. 지나는 길, 잘 생긴 소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마을과 이웃 산의 모습이 멋지다. 고위산에서 봉화대까지는 20여분의 거리다. 소나무 숲이 우겨진 길은 걷기에 제격이다. 봉화대는 산봉우리로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밋밋한 평지여서 조금은 실망했다. 봉화대에서 금오봉까지는 다시 3.55km 거리다.
< 고위봉 능선에서 굽어 보는 경주의 모습 >
출발 전, 하도 남산 주변에 유적지가 많다 하여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봉화대를 지나도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기야 불상이나 석탑이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세워져 있지는 않을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본격적으로 봉화대능선에 접어 들면서 우측으로 보이는 경주 시가지의 모습이 더욱 가까워졌다. 커다란 암릉 밑으로 아담한 절 집의 모습이 보인다. 참 예쁘다. 칠불암이다. 생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오르내리기에 힘겨워 보였지만 시간도 많은데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갈림 이정표에 닿으니, 능선에서 삼불봉까지의 거리가 0.35km라 한다. 왕복 30분이면
되겠지 하고 길을 나선다. 암릉 위에 서니 낭떠러지 밑에 또 다른 암자가 보인다. 신선암이다. 두 곳을 모두 다녀올 수 없어서 칠불암으로 내려선다. 위험한 돌 길이 이어진다. 밑을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그만큼 고도 차가 크다.
< 위에서 본 칠불암 전경 >
< 마애석불 전경 >
험로를 10여분 내려서고 조릿대 길을 돌아드니, 커다란 바위 위에 정성스레 양각을 한 석불이 온화한 얼굴로 나를 맞으신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이다. 앞 쪽에 서 있는 사방불의 전면과 좌우 면에는, 연꽃이 핀 자리에 앉은 모습으로 각기 방향마다 손 모양을 다르게 한 부처님의 모습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 뒤에 서 있는 삼존불의 가운데 부처님은 본존에 앉은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 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가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보여 주고 있다. 칠불암 주변으로는 인자한 모습의 부처님이 도처에 있는 형상이다. 비록 나와는 종교가 달라도 이 순간만은 감동이 뼈 속까지 전해 온다. 석굴 안에서 인공의 보호를 받으며 안치된 토함산 석굴암의 불상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석불이다. 천 년이 넘는 장구한 시절, 비 바람을 맞으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은 석불을 조각한 이는 어떤 사람일까 존경심이 인다. 뒷면은 확인한 길이 없어 모르지만 보이는 전면과 좌우에 새겨진 석불의 모습에서 ‘정성’이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했다. 분명 모든 정성 어린 디테일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석불 좌측에 불당과 요사체가 있고 그 앞쪽으로 키가 큰 소나무가 우뚝 솟은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칠불암은 석불 못지 않게 멋진 풍광을 자랑하다. 가람의 배치를 보며 명당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 ‘배산임수’ 만이 명당은 아닐 것이다. ‘배암임림(앞 쪽으로 숲이 있어 시원한 조망을 제공해 주고 뒤쪽으로 바위가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형상)’도 이에 못지 않음을 확인한다.
< 칠불암 마애석불을 배경으로 >
< 봉화대능선에 서서 >
문화해설을 하시는 어른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니 여러 장을 찍어 주시고 차도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한다. 그의 얼굴에서 부처님의 인자함을 느낀다. 온 길을 되돌려 오르며 만약 칠불암을 들리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 했다고 생각했다. 다리의 고생을 눈과 머리와 가슴의 감동과 맞바꾼 것은 잘 한 일이었다.
< 임도에서 본 고위봉 전경 >
칠불봉을 다녀 온 감동을 안고 다시 봉화대능선에 섰다. 잠시 완만한 평지 능선이 이어지더니, 2시경 바위지대를 지나며 길은 암릉으로 변한다. 일행들도 흩어져 길에는 적막감이 돈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호젓한 길을 걷는 기분이 한없이 평화롭다. 멀리 순환도로의 붉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암릉 길을 30여분 내려서 이영재 도착했다. 이곳 고개 위부터 순환도로가 이어진다. 도로라기 보다는 임도에 가까운 형상이다. 돌아 보는 고위산 주변으로 오전에 지나 온 이무기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시간을 잊고 길을 걸어서 인지 마음이 참 한갓지고 편하다. 스트레스란 놈은 분명 시간이라는 놈과 잘 어울리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이영재에서 금오산까지는 1.9km 도로 길이니 걷기에 걱정이 없다. 느릿느릿 걷다가 조망처가 있기에 다시 고위산을 돌아 보고, 그 옆에 솟은 ‘대연화좌대’라는 바위 구조물에도 눈 길을 준다. 바위 위에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다. 평소 같으면 사람을 피해 카메라를 눌렀을 터인데, 최근에 읽은 ‘똑딱이 사진기’ 책의 영향으로 소위 ‘사진의 구도’라는 것을 고려하여 바위 위 ‘연인’들을 포함하여 구도를 다시 잡았다. 찍고 보니 그리 근사한 사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배운 것을 실천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용장골 갈림을 지난다. 인도어 클라이밍에서 ‘용장골 3층 석탑’에 명성을 알고 있었으나, 현장에서 보니 이 석탑은 남산 전체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곳곳에 붙은 사진에는 어김없이 용장사 석탑이 보인다. 그리로 향하는 갈림에서 잠시 고민하다. 왕복 1km의 거리를 다녀올까 그냥 금오산으로 향할까? 마음은 그리로 달려 가고 있지만 몸은 다음을 기약하자 한다. 오늘은 칠불봉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다리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인다. 훗날을 기약하자.
3시가 다 되어갈 무렵 금오산에 도착했다. 경주 남산의 주인 봉우리에 걸맞게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주변은 너른 공터가 그 뒤편으로 경주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 금오산 정상에서 >
< 금오산에서 삼릉 >
금오산을 지나며 길은 근교 뒤 산 산책로 길로 변한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아진다. 상사바위에서 경주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 아가씨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이번에도 소위 구도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조리개 값, 초점거리 등을 떠오르면 실제는 아니겠지만 마치 내가 사진을 조금 아는 것처럼 기분이 붕 떠 다녔다.
삼거리에서 상선암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서자, 암벽 위에 부처님을 새긴 석불좌상이 나를 반긴다. 바위 난간에 자리잡은 앉음새가 훌륭하다. 한참이나 석불의 모습을 살피고 주변 경관도 즐긴다. 이리 훌륭한 문화재와 조망이 있으니 이 나즈막한 산이 100대 명산 반열에 오를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상선암의 절집 지붕이 보인다. 이제 30분 정도면 삼릉에 도착할 수 있겠다.
상선암은 생각보다 멋진 절은 아니었다. 이후 내려 가는 길에는 불상의 전시장이라고 만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불상들이 길가에 새워져 있었다. ‘선각여래좌상’, ‘선각육존불’, ‘마애관음보살상’, ‘석조여래좌상’ 등 돌을 조각한 것과 바위에 새기어져 있거나 목이 다라나 흔적만 남은 불상 등 수 많은 불교의 흔적들이 발 길을 흥분되게 해 주었다.
< 상선암 석불좌상 부근에서 >
< 여러 형상의 석불 >
석불을 찾아 다니느라 정신 없이 돌아 다녔더니, 어느덧 삼릉 부근에 도착했다. 소나무가 양 옆을 호위하고 바닥에는 카펫마냥 나무로 발 판을 만들어 둔 편한 길을 내려서니, 좌측으로 커다란 무덤이 서 있다. 삼릉이다. 멀리서 보면 풍만한 여인의 유방처럼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가니 무덤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를 확인하기 보다는 소나무에 어우러진 주변 경관을 살피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이 역시 천 년의 세월을 겪은 것이라 생각하니 바라보는 시각에 존경이 묻어난다.
시계 바늘이 4시를 향해 간다. 5시간 가까이 지속된 유희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오늘은 산뿐만 아니라 불상과 무덤이 있어 더욱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 삼릉 주면 소나무 길 >
< 삼릉의 모습 >
< 에필로그 >
흔히 이맘때의 산은 삭막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산 끝자락에는 물오른 가지마다 색색의 봄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지만 산의 품 속은 봄의 싱그러움이나 연두빛의 산뜻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남녘의 산도 마찬가지였다. 들/날머리에서 잠깐씩 꽃의 화려함도 볼 수 있었으나 산 속은 아직 겨울이다. 그나마 솔의 푸르름이 있어 삭막함이 조금 덜 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흥준 선생은 사람은 아는 만큼 본 다 했고, 알고 나서 보는 것은 그전과는 다르다 했다. 오늘은 그간의 경주여행에서 눈 여겨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한 소중한 하루였다. 봉화대능선에서 내려다 본 칠불암의 전경과 직접 찾아 확인한 마애석불의 인자하고 당당한 미소는 마음 속의 등불마냥 새겨질 것이다.
지나는 능선 길 내내, 천 년 고도의 흔적을 머리에 그렸다. 장구한 세월의 풍상을 이겨낼 수 있는 조각품을 완성한 장인의 정성에 감동하고 무생물의 미소에도 생명을 불어넣은‘디테일’을 보면 성공의 비결을 읽어본다.
넉넉한 시간 덕분에 오랜만에 한갓진 산행을 했다. 남산의 후미진 곳곳을 넘나들며 산이 꼭 높아야 명산이 아님을 오늘도 확인하고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