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도서관의 모양이리라
3월 27, 2010 by admin ? Filed under 도서관문화, 세계 도서관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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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광주 서양사학자, 인제대 명예교수 | 세계도서관기행⑥
보들레안 도서관과 렌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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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역사에서 12세기는 파리 대학과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탄생에서 보듯이 대학 성립의 시대로 기록된다. 13세기에 이르면 옥스퍼드, 캠브리지에도 대학이 생겨나고 그 뒤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태어났다. 이러한 사실은 수도원 중심의 학문과 문화의 시대에 종지부를 고하고, 학문 연구의 중심이 대학으로 옮겨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책 문화와 도서관의 역사에도 신기원을 초래했다.
지난 날 수도원과 대성당이 세운 도서관들은 성서와 신학 중심의 도서관으로 어느 고위 성직자가 말했듯이 지식과 학예연구는 필경 “성스러운 것을 배우기 위한 입문서” 일 뿐이었다. 그리고 왕후(王侯)의 궁정 도서관 또한 그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개인적 콜렉션, 문고(文庫)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러나 대학 도서관과 더불어 도서관은 진정 학문 연구에 뜻을 둔 연구를 위한 문헌의 보고(寶庫), 학문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옥스퍼드의 랜드마크, 보들레안 도서관
중세 대학은 모두 예외 없이 부속 도서실이나 서고를 갖추었으며 그것들은 대학의 발전과 더불어 독립된 도서관으로 탈바꿈 하였다. 당시 대학 도서관이라고 할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옥스퍼드대학의 보들레안 도서관(Bodleian Library)과 캠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렌 도서관(Wren Library)이다. 먼저 보들레안 도서관을 찾아가 보자.
보들레안 도서관의 창시자는 장서가이자 문예 애호가였던 로스터 공작이었으며 보들레안 도서관은 그가 기증한 기금과 그의 장서를 기본으로 1489년에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고 1598~1602년 동안 홀랜드 주재 영국 공사이자 중세 사본의 수집가였던 토마스 보들리(Thomas Bodley)에 의해 신관(여기에는 예술과 인문학 책들이 소장되었다)이 세워지면서 원래 신학부 3층에 부속된 도서실로부터 출범한 도서관은 면모를 일신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 그 뒤에 옥스퍼드대학 아니 옥스퍼드 시의 랜드마크라고 할 호화로운 돔을 떠받들고 있는 도서관의 상징적 건물인 랫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도 세워졌다. 서로 연결된 일곱 개의 호사로운 건축물로 이루어진 보들레안 도서관이 오늘날 소장하고 있는 약400만 부의 도서와 4만 부의 사본 중 특히 자랑하는 것은 오리엔트 전래의 사본, 영국 문학과 지방사(地方史) 및 초기 인쇄본의 방대한 콜렉션이다.
보들레안 도서관은 19세기까지는 국립도서관으로 여겨져왔다. 영국에서 인쇄 출판된 모든 도서는 그에 납본하도록 법적으로 정해져왔으며 전통적으로 관외대출을 일제히 금지하고 있다.
캠브리지의 렌 도서관, ?“천국은 도서관의 모양이리라”
“이탈리아의 도서관은 보통 회화, 조각, 그 밖의 장식으로 장치되어 있음으로 하여 볼만한 것 중 책은 마지막 것에 속한다.”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 궁정 도서관의 아름다움에 혹하여 근대 최초의 저널리스트라고 할 영국인 앤더슨이 한 말이다. 필자도 캠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렌 도서관을 찾았을 때는 그 고전적 양식미의 우아함에 매료되어 책을 찾아 내부에도 들어갈 생각을 한참 잊고는 했다.
옥스퍼드와 마찬가지로 캠브리지를 찾는 기쁨은 무엇보다도 800년에 걸쳐 고딕, 로마네스크, 혹은 고전주의, 바로크, 로코코 풍의 갖가지 양식으로 마치 유럽의 건축사를 담은 파노라마의 정경과 같은 고색창연한 칼리지의 건축물들을 대하는 설렘과 기쁨이다. 그런데 옥스브리지를 통 털어 최고의 백미는 단연 비할 바 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킹스 칼리지의 예배당과 트리니티 칼리지의 렌 도서관이다. 그리고 두 건물은 꼭 같이 크리스토퍼 렌경(Sir Christopher Wren, 1632~1723년)의 작품이다. 17~18세기 영국 최고의 건축가인 그의 작품으로는 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도 있다.
“그것은 크고 참으로 아름답고도 독특한 건물이었다. 도서관으로서 그 이상 아름답고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은 달리 없을 것이다. 대단히 키가 크고 긴 건물로서 그 위에 밝고 우아하다. 바닥이 흑백 대리석으로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서가(書架)는 모두가 떡갈나무로 만들어졌고 조각이 훌륭하게 새겨져 있다. 서가는 참으로 느낌이 좋아 마치 아담한 서재처럼 꾸며져 있다. 모두가 잘 배려되어… 독서 삼매경을 즐길 수 있다.”
18세기 초 유럽 여러 나라의 도서관 순례길에 렌 도서관에 들른 독일 귀족출신의 한 장서가의 기록이다. 길이 46미터, 폭 12미터의 도서관 홀에는 약 3.6미터 높이의 서가가 벽면을 따라 나란히 세워졌다. 그리고 의자와 책상이 여유롭게 자리 잡아 독서와 연구에 마음 편안한 서재가 갖추어졌다.
어느 시인은 “천국은 도서관의 모양이리라” 라고 도서관을 찬탄하였다지만 렌 도서관의 열람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서가 위에서 지켜보는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프리스키아누스 등 학문의 스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세기의 캔터베리의 사본이나 셰익스피어의 초판본 및 초기 인쇄본 등 도서관의 귀중한 컬렉션을 어루만지며 읽는 기쁨과 더불어 프란시스 베이컨, 마콜리, 바이런, 테니슨, 뉴턴, 드라이덴, 화이트헤드, 러셀, 비트겐쉬타인(그들은 모두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생들이었다)은 가히‘천국’의 희열을 맛보았을 것이다.
렌 도서관도 오늘날 유럽의 여러 저명한 대학도서관들처럼 몇백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지만 창립 당시에는 장서수가 얼마나 되었을까. 파리 대학의 소르본느 도서관의 경우 1320년대 작성된 재산 목록에 의하면 참고 도서실이라고 할 대도서실의 도서(그것은 희귀본으로 모두가 쇠사슬에 묶여져 있다)의 수는 330권, 복사본, 자주 읽히지 않는 도서, 대출용 도서 등을 소장한 서고라고 할 소도서실의 도서는 1,091권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에 비추어 유명도서관이라고 하여도 창립초기에는 몇몇 장서가의 기증도서가 대종을 이루었으니, 그 수는 대강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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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근대화의 원동력은 독서 문화
영국 최초의 인쇄출판인인 캑스턴(Caxton)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사본공방을 차려 영국 최초의 활자 인쇄본《철학자의 격언집》을 간행한 것은 1477년이었다. 그 당시 영국은 문화적으로 유럽의 변방이었다. 그리하여 영국의 학도들은 모두가 파리 대학에 유학했으며 영시(英詩)의 창시자인 초서의《캔터베리 이야기》(1393~1400년)도 프랑스 문학의 깊은 영향 아래 쓰였다. 그러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두 대학이 유럽 중세학문의 메카인 파리 대학과 맞설 만큼 발전하면서 영국은 차차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 바이런이 서거했을 때(1824년) 시인은 그가 평생 외경해 마지않았던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이 잠자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사원 측은 거절하였다. 그러자 케임브리지 대학은 바이런을 옛 그리스, 로마의 현인들을 받든 렌 도서관 대열람실에 흰 대리석상으로 새겨 모셔 경의를 표했다. 도서관 문화가 발달한 영국은 유럽에서도 제일가는 책과 독서의 나라였다. 세계 모든 나라에 앞선 영국 근대화의 원동력은 바로 독서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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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 2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