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산 휴양림은 요즘 보기 드물게 산과 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인접 서대산 능선을 타고 흐르다 우뚝 솟은 장용산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 사이로 왕관바위와 포옹바위 등 절묘한 모습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잔설이 덮인 천연림 사이로 기기 묘묘한 괴석이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산까치 들의 날갯짓이 마냥 평화롭다.
휴양림을 가로질러 흐르는 아랫녘 금천을 따라 걷다 보면 천연기념물 238호인 어름치가 한가로이 물살을 헤집고 있다. 도심 나들이객 들에게 생소한 탓인지 아직도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물줄기가 5㎞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1994년 6월 개장 이후 소리소문 없이 알려지면서 서울과 부산 등에서까지 가족 휴양객이 밀려든다. 1-3시간 코스로 개설된 3개 등산로는 어린이를 동반하고도 어렵지 않아 편안하며 정상에 올라 옥천 시가지 전경을 조망하는 맛도 느낄 수 있다.
● 교통편 : 경부고속도로 옥천 IC에서 금산쪽으로 가다가 장용산 휴양림 표지판 나오는 사거리에서 약 5.5킬로미터. 대전-진주 고속도로에서는 추부 IC로 나와 옥천쪽으로 거슬러 올라감. 대전 시내에서는 금산방면으로 가다가 산내(낭월동) 산내초등학교 앞을 지나 곤룡터널을 통과하면 장용산 입구 사거리가 나옴(낭월동에서 약12킬로미터)
● 산행기 : 2003. 8. 12(화)
올 여름은 날씨가 이상하다. 햇빛이 쨍쨍 찌는 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러다가 쌀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비 안 오고 일주일을 넘긴 적이 없던 것 같다. 햇빛 보기가 어려운 여름이라 피서를 갈 맛도 안 나고, 물놀이도 심드렁하다.
어제 8월 11일에 날잡아서 가까운 곳이라도 막내놈 데리고 물놀이를 갈 생각이었는데, 어제도 비가 와서 방콕했다. 오늘 8월 12일은 저녁에 모임이 있어서 낮에는 쉬려고 했는데 어제 쉬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오랫만에 날씨가 갠다고 해서 가까운 곳이라도 가기로 작정한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동학사 계곡, 남이 자연휴양림 등이 자주 가는 곳인데, 옥계동 사시는 장모님 모시고 효도할 생각이 들어서 옥천 장용산으로 택했다. 옛날 휴양림 만들어 놓은 초기에 길도 좋지 않을 때에 갔던 기억이 있는데 한번 다시 가보고 싶기도 했다. 몇년 전 산내에서 동쪽으로 곤룡재 터널이 뚫렸기 때문에 길도 훨씬 가까워졌다.
그런데 웬 일로 오늘따라 차가 이렇게 밀리는지 갈마동에서 옥계동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롯데백화점 앞에 섰는데 20분을 꼼짝을 안 한다. 웬만하면 짜증내지 않는 착한 마눌이 짜증이 날 정도였으니...... 은행에 돈 빼러 갔던 마눌 기계까지 고장나서 10분을 또 까먹었으니 사태가 심각해진다.
놀러 가는 처지에 시간에 쫓길 일은 없어서 일부러 느긋한 체 했지만 원래 성질 급하기는 내가 더 급해서 속으로는 나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함께 짜증이 나면 좋을 일이 없어서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서 맴도는데 참느라고 애를 쓴다.
옥계동에서 장모님 모시고 장용산휴양림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장용산에 도착하는 순간 마눌의 얼굴빛이 달라진다. 물소리도 요란하게 흰 거품을 내면서 물이 콸콸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짜증나던 마눌의 심기가 활짝 펴지니 이제야 나도 안심이 되었다.
막내녀석은 얼른 옷 갈아입고 튜브 타고 속으로 첨벙! 마눌과 장모님은 그늘에 터 잡고 고기부터 굽기 시작한다. 열두시 반이 넘었으니 밥부터 먹자고......
장모님이 찰밥을 지어오시고 마눌이 삽겹살 구워서 대충 대충 요기한다. 막내녀석은 튜브 타고 놀러 가자고 하여 따라다닌다. 올 여름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물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막내 녀석 노는 모습 봐주면서 한참 물속을 돌아다니다가 심심해지니 슬슬 다리가 근질거려서 산을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한다. 오랫 만에 날씨가 개어 산 그림이 깨끗하다. 하늘의 구름도 높아져서 산뜻하고.
X개는 X 보고 그냥 못 가고 고양이는 쥐 보고 그냥 못 가는 법. 요새 며칠 기운이 빠져 만사 귀찮았는데, 그럴수록 더 움직여 컨디션을 측정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먼산 못간 것에 대한 찜찜한 맘을 가라앉히기도 해야겠다.
그래서 물먹으러 간다고 말하고 샌달 신은 채로 산책로를 찾아 나선다. 산책로를 따라서 가다보니 등산 안내도가 있어서 살피니 정상이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슬슬 임도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다.
임도 포장부분이 마을로 내려가고 산쪽으로는 자갈이 깔린 갈림길에서 자갈길을 따라서 몇 발짝 더 가니 알탕하기 좋은 물이 있다. 거기서 바위길로 등산로 1코스가 나 있다. 위험하지도 않은데 줄이 매달려 있다. 계곡으로 조금 올라가니 피난처가 있고 여기서 길은 왼쪽으로 굽어 계곡이 아닌 볼록한 부분을 따라 오른다. 그래서 전망이 좋다.
등산화도 신지 않고 맨발에 샌달을 신은 채라서 적당히 산보하다가 험한 길 나오면 돌아올 생각을 했는데 바람도 솔솔 불고 길도 험하지 않아 마냥 걷는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바위와 어울린 모습이 마치 칠보산의 한쪽 모습과 같이 느껴진다. 한참 가다가 왕관바위쪽을 바라보니 영락 없이 칠보산 바위와 소나무들을 닮았다.
산바람도 적당히 불고 그늘과 햇빛이 적당히 교대를 하여 심하게 덥지 않다. 그래서 야금야금 걷다보니 능선 나무들 사이로 저쪽 하늘이 보인다. 거의 다 온 것이다.
일단 능선 위에 다다르니 바람이 더 시원하다. 전망대 쪽으로 난 오솔길은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낙엽이 쌓인 흙길에 비가 온 지 얼마 안되어 땅이 물렁하니 3중으로 쿠션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능선에서 200여 미터를 가면 전망대 정자가 나온다. 장용산 해발 650미터라는 옥천군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다. 이 높은 곳에 정자를 만들어 놓은 정성이 대단하다.
정자에서 잠시 전망을 살펴보고 나서 진짜 정상 (해발 654.X 미터라고 안내도에 나와 있다)까지 다시 능선길을 따라간다. 이 길은 나무들로 덮여 있어서 햇빛이 따가운 날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좋은 산책로이다. 약간의 오름과 내림이 있기는 하지만 그냥 쉽게 갈 수 있는 산보길이다. 도덕봉에서 금수봉까지 능선길을 걷는 기분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정상 못미쳐 2코스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일단 정상까지 가보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정상까지 갔더니 대성산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보이는데 길이 없다고 막아놓았다. 강산에 님을 비롯한 전문 꾼들은 이길을 따라서 대성산을 거쳐 천태산까지 오고 갔겠지. 멀리 바라보면서 님들의 자취를 머리 속에 그려보기만 한다.
되돌아 서서 2코스로 내려가려는데 서쪽으로 작은 능선이 보이고 뚜렷한 길이 나 있다. 오던 길 되돌아가기 싫어 그 길로 따라간다. 건너편 서대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거의 직선으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나 있다.
나무하러 다니던 우리 고향 뒷산의 길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적잖이 다닌 것처럼 길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참 내려와 거의 도착할 무렵부터는 마른 개울을 건너고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길이다. 등산화를 신지 않은 것이 잘못임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이리 저리 나무가지를 붙잡고 내려와 보니 위치가 어디쯤인고 하면 휴양림 도로가 끝나고 막힌 지점이 건너다 보이는 송전철탑 바로 밑이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북쪽으로 오니 출발한 지점, 숲속의 집이 있는 곳이다.
시계도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고 속도도 매우 느긋하게 다녔기 때문에 시간을 재보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전망대에서 진짜 정상까지 가는 능선길에서 애견과 함께 내려오는 사람 하나를 만났을 뿐이다.
내려와서 보니 4시 50분 경. 냇물은 벌써 높은 산에 가려 해가 졌다. 한 시간 가량을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니 시원하다 못해 추운 느낌이 든다. 오늘은 요산(樂山)과 요수(樂水)를 한 자리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남은 밥과 김치, 쑥떡으로 요기를 하고 6시 30분 경 길을 떠나 대전에 오니 여기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아침 일찍 장용산휴양림에 가서 자리를 잡고 오전에는 서대산을 뒤통수를 따라 오르고 오후에는 장용산을 오른다면 적당한 산행의 맛과 물의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