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려고 하는 것들
김 성 진
지난 모임(12/1)에서 미국의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의 ‘IMAGE’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자리에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대할 때 뭔가 해묵은(IT시대에 맞을까?) 이미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막상 책을 펼쳐보고서는 부어스틴의 논리에 고분고분한 자세로 시종일관 재미있게 책을 읽었습니다.
모임이 마치면 되새김하듯 오갔던 이야기를 곱씹어 생각하고 경험해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IMAGE’에서 몇 가지 언급된 것 중에 저의 일상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함께 이 시대(이미지의 기술이 예전보다 더욱 발달된 시대)에서 느낀 바를 정리했습니다. 근데, 글이 요약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서 굳은 백설기를 먹는 느낌이 들까 걱정입니다. 찜통에서 데우면 다시 몰캉몰캉해서 맛이 있을텐데 그러지 않아도 잘 봐주세요! (갑자기 가래떡을 구워서 조청에 찍어 먹고 싶어집니다..)
먼저 사회과학의 정의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책에서는 ‘가치관을 한 사회가 사회유지를 위해 만든 특별한 기준’이라고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픽혁명 전의 사고방식(이성적 사고)은 가치지향적이고 진실한 사고방식으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뭔가를 하게끔 능동적인 삶을 만들었지만, 사회가 시대를 거듭하면서 이상이 이미지로 대체되고 인공적이고 환상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으로 바뀌면서 뭔가를 요구하게 되는 수동적인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예로 중산층의 기준에서 프랑스의 1970년대의 기준은 ‘삶의 질’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자신의 소중한 가치에 시간과 공간을 할애하고 땀과 열정으로 아름다운 자신을 가꿀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겠죠. 최근 영화 레미제라블이 원작을 뛰어 넘는 대작이라고 평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 혁명의 시기도 프랑스가 간직한 크나큰 땀과 열정의 삶이라고 봅니다. 그럼 우리는 2010년대의 우리의 기준(비록 직장인이라는 제한적 범위지만)은 단지 ‘돈’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로서 더 나은 삶보다는 상대보다 내가 더 나은 삶을 요구하는 것이라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와 뒤지지(꿀리지) 않으려는 심보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예전에(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증인의 성장배경을 고려할 때 1930~40년대로 추측이 됩니다) 평양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개인용 스케이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학교마다 피아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물질적인 것만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시대는 독립이라는 가치지향적이고 능동적인 삶이 물질적 풍요로운 삶보다 더 중요하였기에 일본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정신을 팔지 않고 뜻을 이룬게 아닐까요? 현재 오키나와는 독립하지 않고 일본에 예속되었으며, 대만 또한 일본의 식민지 시대가 오히려 기반시설 등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었다고 생각했기에 비록 지배를 받았어도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삶의 질’에서 제시)>
△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 ‘공분’ 에 의연히 참여할 것
△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우리나라의 한 언론에서 발표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
△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 월 소득 500만원 이상
△ 2,000 CC 이상급 중형차 소유
△ 예금액 잔고 1 억원 이상 보유
△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나섬
다시 위 설문결과에서 보듯 중산층의 이미지가 수의 통계치에 의해서 환산된 것이라면 결국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그런 설문 결과가 나올 것이고 중산층의 가치가 그 구성원의 본연의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면 프랑스처럼 저런 기준이 나올 것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부어스틴의 이미지가 유효한 것이 인간도 생태계의 구조에서 같이 얽혀서 돌아가는 부속품과 같기에 그 어마한 구조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재생되어야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EBS 다큐프라임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방영했었습니다. 바로 ‘킹 메이커’입니다(총 3부작 중 1부 네거티브 전쟁은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오후 9시 50분에 방영되었고, 손석희 교수가 스토리 텔러로 참여했습니다). 1988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19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부시와 옐친이 지지율의 열세에서 네거티브 전략으로 역전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끝임없이 전략가들은 상대의 있지도 않은 네거티브 이미지를 심어놓고 그 네거티브 이미지를 부각시켜 결국 유권자들이 전략적인 대통령에게 지지하게끔 만들어 놓은 사건입니다. 저렇게까지 해야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면서 동시에 권력을 유지하려는 모략이 이미지를 통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지가 나비효과처럼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도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수도 없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인터넷, 방송을 통한 언론보도에서, 각 정당의 대통령만들기에서, 지자체의 관광명소 만들기에서, 획일적인 상호교환적인 예술, 문학 등에서 진품이 아닌 이미지들로 말이죠.
더 접근해보면 등록상표(trademark)나 제품이름(brand name)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인상을 심기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의도되기도 하고, 기업의 이미지나 사람의 이미지에서 신뢰를 갖게 되어 상품의 구매나 호감을 갖게 되고, 기업이나 사람들은 만들어진 이미지에 부합되게 겉모습을 열심히 맞추려고 적잖은 노력을 하게 되고, 이미지를 단순화해서 인식하는데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전달되게끔 우리의 삶의 행태를 몽땅 바꿔 놓습니다. 이것은 가짜 사건이 사실의 세계와 관계가 있고, 이미지는 가치의 세계와 관계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미 이미지는 가짜 이상(pseudo-ideal)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데 회의감을 느낍니다.
지난 11월에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에서 PLOSone(www.plosone.org)를 통해 발표한 재미난 논문(Eye Movements to Natural Image as a Function of Sex and Personality)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성별에 따라 개인에 따라 여러 장의 이미지를 주고 눈동자의 움직임을 관찰한 것입니다. 아래 그림에서는 파랑색이 남성, 빨강색이 여성입니다. 남성은 눈을, 여성은 입을 주시하는 것을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감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재미나지 않습니까? 성별에 따라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 말입니다.
<아래자료입니다.> journal.pone.0047870.pdf 그림1.png 그림2.png
영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을 볼 때 남자는 눈을, 여자는 입을 관찰하게 된다는데 이유는 음양의 이론상 남성은 양, 여성은 음에 해당하는데, 눈은 양성의 정기를 뜻하고 입은 음성의 정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눈으로 보는 부분이 다르면 인식하는 것도 다르게 되고 그것이 미치는 행위도 차이를 보일겁니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을 분석하는 것이 과학에서 해야 할 일이겠지만, 나라는 존재는 기계가 아닌데 마치 기계처럼 과학이라는 도구로 분석한 범주에 내가 끼어 있다는데 좀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미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지는 기계화된 인격체에서 뽑아낸 데이터 안에 있겠지만 우린 이런 틀을 벗겨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보려고 하는 것들이 뭘까?
이미지에 감춰져 있는 껍질을 벗겨내고 그 속에 있는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일까?
포스트에 그려진 핀율의 안락한 의자의 이미지보다 겨자색으로 칠해진 작은 방에서 기우는 해의 볕이 드리울 때까지 함께한 그 길쭉한 의자에서의 경험이 더 좋은 것은 내가 보려고 하는 것들을 나는 아는 것일 겁니다. 바로 "그것" 이겠죠!
첫댓글 김선생이 섭섭하게 아무도 댓글을 안 달았네요. 김선생, 댓글달지 않아도 모두들 열심히 읽은 것 아시지요.
예~^^
ㅎㅎ김선생님 글 부지런히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여러번 읽었습니다.^^ 멋진 댓글 달고 싶어서 망설이다가 ^^
참 부끄러운데 이렇게라도 정리해야겠기에 늘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읽고 있습니다.^^ 사진 인물들 중에 줄리 앤드류스도 있네요.ㅎㅎ 이것도 '보는 것'의 문제인가요? ㅋㅋ
'보는 것' 의 재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