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5. 정신과 - 관리소홀로 인한 환자 사고
L원장은 입원실을 갖춘 정신과 의원을 서울 근교에서 개원하고 있다. 70세의 N할머니는 5년 전부터 지남력장애, 기억력장애, 인지장애 등이 있어 다른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왔는데 거동이 불편하고 증세가 악화되어 10월에 L원장의 의원에 입원하였다.
N할머니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던 중 여러 차례 넘어졌고 그때마다 복도나 바닥 등에 머리를 부딪쳤으며 11월 중순에는 자신의 병실에서 두 차례 넘어져 머리에 외상을 입었다. CT촬영을 해 보니 할머니의 머리에는 경막하수활액낭종과 만성 뇌경막하혈종이 생겨 있었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할머니가 입원한 후 머리를 다쳐서 오히려 증세가 훨씬 악화되었고 치매가 심해졌다며 L원장에게 피해보상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검사 결과에는 뇌좌상 후유증으로 생각되는 국소부위 뇌연화증 소견이 보이지 않았으며 특별히 뇌손상으로 인한 뇌실질 위축 등의 소견도 나타나지 않았다.
<윤리적 고찰>
위 사례에서 N할머니는 여러 차례 넘어졌고, 자신의 병실에서도 두 차례 넘어져 만성 뇌경막하혈종까지 생겼다. 이 외상과 할머니의 치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볼 때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졌다는 사실관계 보다는 L원장의 의원이 이런 사고를 예방할만한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었는가가 더 문제가 된다.
지남력장애와 인지장애가 있는 N할머니와 같은 환자는 특히 취약한 상태에 있는 환자(vulnerable patient)이며, 이런 환자에 대한 감시와 진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 윤리지침은 제18조 1항에서 “의사는 입원환자가 진료과정과 병실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이러한 의사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즉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환자가 나아지기는커녕 병원 환경에서 상해를 입는다면 이는 생명의료윤리의 “해악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비윤리적인 행위라 할수 있다.
지남력과 인지장애가 있는 노인들을 위해서 입원실을 갖춘 병원은 충분한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침대 난간과 지지봉의 설치, 벽과 바닥을 충격을 흡수하는 재질로 바꾸기, 안전요원의 배치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L원장이 이러한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도 환자가 넘어져서 다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며 그런 경우 L원장에게 윤리적인 책임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취약한 환자들을 주로 입원시키면서도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의사이자 의원의 관리책임자로서 책임을 다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입원실을 갖춘 의사는 다른 여러 시설과 기관의 책임자와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관리 책임을 가지고 있다. 특히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로서 의사에게 부가되는 관리의 책임은 일반적인 것보다 한층 무겁다고 할 수 있다.
<법률적 고찰>
의료행위의 고도의 전문성과 재량성으로 인하여 환자 측이 의사의 의료 행위상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따라서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상의 과실은 피해자 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면 인정된다.
일반적으로 치매는 상당히 많은 원인에 의한 광범위한 병변의 행동적 표현으로서 비교적 전체적인 인식기능의 손상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치매가 발생하려면 뇌질환 등에 의하여 광범위한 뇌의 손상이나 기능장애가 생겨야 하며, 일반적인 치매는 서서히 만성적으로 진행한다.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 받던 고령의 정신병환자가 병원 의사의 관리소홀로 넘어져 두부외상을 입고 그 후 치매증상을 보이게 되었으나, 그 환자의 치매 증세는 사고 훨씬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러 그 증세가 완전히 고착된 것이고, 위 사고는 이러한 치매증상의 발전 과정에 우연히 개재된 사고로서, 뇌 검사 결과에서는 뇌좌상 후유증으로 생각되는 국소부위 뇌연화증 소견이 보이지 않았으며 특별히 뇌손상으로 인한 뇌실질 위축 등의 소견도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위와 같이 발전하고 있는 치매증상에 병원에서의 사고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신병환자가 병원 의사의 관리소홀로 넘어져 두부외상을 입고 그 후 치매증상을 보이게 되었으나, 그 환자에게 사고 이전에 이미 치매를 표상하는 기질적 정신장애의 증세가 있었으므로 의사에게 진료상의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환자의 치매증세와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의사에게 관리상의 주의의무 소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대법원 2002. 8. 27. 선고 2001다19486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