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에 요절한 천재적인 낙서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Jean ichel Basquiat)는
중산층 회계사의 아들이었지만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온 세상을 화폭 삼아 거리를 활보하는 시인이다.
거리의 천재 화가인 바스키아는 대중의 눈에 띄게 되고
천재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의 주의집중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던 바스키아는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더 이상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된다.
각종 매체들과 미술 거래상들, 그리고 그의 작품을 헐뜯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고
이에 그는 점점 방탕한 생활로 빠져들게 되어 결국 비참하게 죽었다.
‘검은 피카소’ 라고 부르기도 하며 그를 총애했던 엔디 워홀은 그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림예술을 작업실과 화폭에 가두어 두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과 낡은 지하철 역을 화폭삼아 도배했던 수많은 낙서들을
<그래피티>라는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킨 바스키아.
한없이 자유로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그토록 자유를 갈구그했던 그가 당대 거장들과 친분을 갖고 교류를 하며
때로 총애를 받게되었고, 그의 예술이 사업 혹은 상업화되면서
바스키아는 더 이상 자유롭게 살지 못했다.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바스키아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가 왜 그토록 상업화를 싫어하는지 다시 깨닫게 된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음악 학습 없이 시도 때도없이 떠오른 노래들을 내 형제들과 친구들과 나누면 행복했고
당시 활동했던 흥사단 아카데미 행사나 학내가요제에 나가 입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아르바이트 삼아 업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부터 조금씩 부자유를 느꼈다.
그래서 우연히 나가게 된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후에도
나는 일체 상업방송이나 연예활동을 전면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유롭게 잘 살고있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누리고 싶다.
표현예술을 통한 삶의 자유를.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자유를 얻지못하고 27살로 죽어간 바스키아
그의 삶은 자유를 잃었지만 그의 그림은 여전히 자유롭다.
바스키아의 작품과 '민중의 삶과 희망'을 나무에 새긴 판화가 오윤의 작품이다.
오윤도 41 세때 간경화로 갑자기 죽었다.
김정식 사/곡 갈매기의 꿈
첫댓글 바스키아도 가고
오윤도 갔지만
우리의 천재 김정식만은 오롯이
남아있네~
오늘도 이 거리는 그대의 것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