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17회차 고운동재 – 삼신봉 – 영신봉
단성나들목을 슬그머니 빠져나온 버스가 내대리를 거쳐 묵계재 터널로 낙남정맥을 관통하고 청학동과 거림을 잊는 고운동재에 정차했다. 이른 새벽시간이라 조용하기 그지없고 달이 멀리서 방긋 웃어보인다. 오늘이 드디어 낙남정맥의 완결판을 내는 날이다. 간간이 별이 보였다가 구름사이로 숨는다. 고운동재의 샘물소리를 들으며 준비운동을 하고 새벽공기를 맘껏 들이마신다. 철조망 사이로 나 있는 문을 비집고 들어가니 바로 죽림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길에 산죽이 발을 걸고 넘어지고 얼굴을 때렸다가 살짝 비켜서기도 한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잔뜩 이슬을 머금고 있다가 넘어지게 해놓고는 바로 시치미를 떼고 모른채하고 서 있다. 이런 표리부동한 산죽이 너무 밉다. 그런데 어찌하랴 이들과 앞으로 서너시간을 같이 동고동락을 해야 한다. 가끔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허리를 감싸안기도 하는 이들이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달과 별들이 잠깐 내보이는 코스모스의 쇼가 펼쳐지고 작은 랜턴에 의지해서 앞으로 나가면 영신봉에 점점 가까워진다. 확실한 것은 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먼동이 트면 바로 나와 나무가 구별되고 산길과 산이 다르게 보인다. 지금까지는 모두 하나 였던 것들이 이제 갈라서는 시간이다. 그러나 서서히 일출이 시작되면서 모두 해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모두 밤을 아쉬워하지만 해가 비치는 것을 좋아한다.
외삼신봉을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어렵다. 이슬과 안개로 앞을 구분할 수 없는 길에 평균속도를 내어도 도착할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니 길을 잘못 들었는지 착각할 만하다. 지도를 보아도 고도표를 보아도 있어야 봉우리는 없고 계속 내리막길이다. 그리고 심마니길인지 나물길인지 너무 희미해서 확신이 서지 않는 길도 여기저기로 뻗어나간다.
그래도 날이 밝으니 상황파악은 되어간다. 위에서 내려온 밧줄이 보이면서 선답자들의 푸념을 떠올린다. 드디어 지리산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위험지역을 통과하니 외삼신봉이 가까이와 있었다. 그러나 안개로 가득차 있으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저 아래로 청학동이 있어야 할 것이고 저 위로 천왕봉과 영신봉이 있어야 할 터인데 외삼신봉만 홀로 서 있다.
그렇다. 이 길은 낙남정맥이 확실하다. 멀리 구름이 흐르면서 대성골이 섬진강위로 타 오르면서 발 아래 있다. 청학동 갈림길이 나온다. 이제 막 가을을 맞이하려는 지리산의 꿈틀거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삼신봉에 올라와서도 외삼신봉과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지리산 주능선 안내판을 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칠 뿐이다. 그러니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 여기서 삼신봉을 확인하고 영신봉을 향해 출발한다.
영신봉을 향하여 뻗은 낙남정맥을 걷자니 왼쪽은 대성골이요, 오른쪽은 거림골이다. 마치 걸으면서 물길을 갈라놓는 기분이다. 내 땀방울은 어디로 흐를 것인가?
대성골로 올라오는 이들이 힘겨운 듯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착하게 보인다. 그리고 세석산장으로부터 내려오는 이들의 가슴 뿌듯한 사연도 배어난다. 81년 이맘때쯤 지리산을 찾을 때 대성골로 올라와 세석산장에서 1박을 하고 천왕봉을 왕복했던 일이 그대로 떠오른다. 그 친구들은 아마 지금도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 친구는 아직도 다른 이들에게 천왕봉을 갔다왔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구례까지 목포행 완행 심야열차를 타고 구례구에 내려서 구례로 와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대성골로 들어와 길고 긴 계곡길을 헤치고 이 낙남정맥 끄트머리를 잡았다.
음양수가 듣던 대로 수량이 풍부하다. 그러나 우리가 좀 부유한 마음인지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근처에 뭍이 많이 있어서 여기저기 작은 개울이 되어 흐른다. 한 여름이었다면 아주 시원한 샘물이어서 나그네의 목을 시원스럽게 해주고도 남겠지만 지금은 그런 계절이 아니라서 아쉬운 면도 있다. 음양수는 거림으로 흐른다. 거림에서 마시는 물은 세석산장의 샘물과 음양수가 원천인 것은 틀림없다. 음양수에서 세석으로 가는 길은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이고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낙남정맥이 아닌 낙남계곡길이라고나 할까.
세석산장에 이르니 벌써 많은 이들이 자리를 펴고 있다. 그리 늦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영신봉을 꼭 가야한다고 한다. 영신봉은 백두대간이 천왕봉을 마지막 목표로 정하고 흐르면서 멈칫거리는 곳이다. 멀리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 겹쳐보인다. 정상석이나 안내판도 없이 그저 큰 바위덩어리 몇 개가 산재해 있다. 그 위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다시 내려온 세석산장에는 식사준비가 한창이다. 산악회에서 공식적으로 회비를 걷어 차리는 회식을 마다하고 산장에서 김치와 고기를 구우면서 자축하는 멋이 일품이다. 잠깐 거들어주면서 한잔 받고 한 입 배어 물어본다. 너무 맛이 좋다. 낙남정맥을 완주한 기분이 이런것이다.
내려오면서 세석사장 물을 떠온다. 달리 기념품은 없고 집에 이 물을 배달시켜 볼 예정이다. 내려가는 길은 여전히 지리산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돌길이다. 거의 다 내려와서까지 돌길을 밟아야 한다. 거림의 계곡은 맑고 아름답다. 단지 백무동처럼 아름다운 폭포가 없고 뱀사골처럼 깊은 소가 없지만 낙남정맥을 옆에 든든히 끼고 영남지방의 젖줄이 되어 흐른다. 여기에 몸을 담그어 본다. 짜릿짜릿한 산행완료의 상쾌함이 배어난다.
내대리에 닿으니 햇빛이 너무 화사하다. 여름이 다시 왔는가 싶다. 낙남정맥을 출정을 완주로 수정한 배너가 펄럭인다. 그리고 삼삼오오 식탁에 앉아 있다. 아마도 세석산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내려온 산꾼들이 있는가보다.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올라오니 상이 차려져 있다. 아직 성원이 되지 않아서 졸업식을 좀 미룬다고 한다.
억새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구름이 지리산 정상부를 오고가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낙남정맥을 졸업하였다.
03:38 돌고지재
04:05 극심한 산죽
04:36 산죽과 어두움을 향하여
06:05 산죽 끝에 안개 시작
06:05 외삼신봉 오름길
06:11 외삼신봉
06:11 외삼신봉
06:30 청학동 갈림길
06:39 삼신봉
06:39 삼신봉
06:41 삼신봉 표지석
06:41 아쉬운 조망
06:42 삼신봉
06:44 삼신봉 야생화
07:25 아침 식사
07:55 다시 산죽이 시작되고
08:33 석문이 열리고
08:47 대성골 갈림길
08:54 아침을 맞이하는 고산식물
08:55 가을맞이 지리산
09:06 용담
09:07 빨치산이 이용했던 샘물
09:08 세석가는 길
09:13 음양수
09:13 음양수
09:26 샘에서 흘러 계곡의 원천
09:27 거림갈림길
09:42 영신봉 꽃길
09:43 영신봉 백두대간길
09:50 영신봉
09:50 영신봉
09:50 영신봉 꽃길
09:55 영신봉 정상
09:59 영신봉 내려가는 길
10:13 세석산장에서의 식사
10:53 거림골 시작
12:25 탐방안내소 앞의 낙락장송
12:30 하산길
12:30 거림탐방 안내소
12:30 하산길의 꽃길
12:49 완주 축하 프래카드
13:11 완주 축하 프래카드
13:25 식사
13:25 완주 축하
졸업장 수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