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까부다, 가을까부다아, 임 따러서어 갈까부다. 바라암도 수여넘고, 구르움도 수여어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다 수여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따라갈까부다. 하날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맥혔어도 일년 일도 보려언마는 우리 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맥혔간디, 이다아지 못보는고,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동풍 연자(제비)되어 임계신 처마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님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여볼까. 어쩔끄나 어쩔끄나, 아이고 이를 어쩔끄나 아무도 모르게 설리 운다…”
어허, 춘향가 한 대목인디, 춤이 절로 나오네요...헛허
그렇군요.
전라도말이 아니고선, 이 한이 배인 판소리가락을 표현해낼 길이 없당께요.
판소리가 원래 전라도에서 생겨서 그런가? 암튼, 지금의 판소리는 전라도말로 해야 낭창낭창하게 제 맛이 납디다. 판소리허면, 고향 고흥 출신으로서 동초 김연수 선생이 계셨지요. 쩌그 광산의 임방울 명창과 쌍벽을 이루었던....
글고, 전라도말은, 순천 출신 배우 박노식씨(배우 박준규의 아버지)가 영화에서 아조 쌈박하게 한 걸로 기억헙니다만, 사실 우리 세대만 해도, 박노식 허장강 이런 사람 영화는 거의 못봤지요. 왜냐하면 시골에 극장이 없기도 하고, 가끔 논바닥에 가설극장이 들어서긴 했어도 전쟁영화나 보느라...
어쨌든, 전라도말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층민들이 주로 쓰는 말이 되어버렸는디, 참 맘이 애립니다. 말 자체에는 아무 계층과 신분의 상하가 없거늘, 전라도 사람이 이 나라 근현세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이것이 말에도 투영됨으로써, 전라도말에 대한 편견이 생겨나고야 말았당께요.
다시 말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깡패들이 보통 전라도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의 전라도 분들이 타지의 대도시로 흘러들어가 하층민을 형성하게 되는...이러한 배경과 관련됩니다. 단지 못 살았기 때문에, 험한 일을 하게 되고, 이래서, 전라도와 전라도사람이 오해되고, 전라도말도 오해되는데, 그래서 전라도사람 스스로 전라도말 쓰기가 거시기할 때가 있는데.. 아, 말에 무슨 죄가 있으리오 !
언어와 풍속엔 높고 낮음이 없는 것...호남이 만약 오랜 기간 정치적 중심이 됐다면, 전라도말이 중심 언어로 표준말 취급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거 유식쟁이들이 쓰는 말도 전라도말에 덧붙여질 수 있었던 것이지라.
암튼, 나는 전라도 말, 즉 고향 말이 참말로 좋소. 막걸리 한 잔 찌끌면서, 비록 형편없지만, 저런 판소리를 되작되작 흥얼거릴 맛이 있어서…
이른바, 근대화 이후, 표준말 사용을 강조하다 보니, 고향 말, 즉 사투리들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맘 뿐입니다.
사투리는 표준말보다 못한 비표준화된 말이 아니라, 그 지방에서는 그 지방의 삶이 녹아있는 전통어이며, 기막힌 정감의 언어입니다.
고향 말은, 또 객지에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원천이고요, 고향에 가면 괜히 고향말을 써야, 고향 친지들과 더 정이 쌓이는 듯 느껴집니다. 전라도 분들 뿐만 아니라, 경상도, 충청도,강원도 분들도 고향에 가면, 가능한한 고향 말을 쓰고, 사투리 어휘를 살려서 씁시다.
고향 말은 정겹습니다.
말 자체가 은근한 맛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표준말로 '저것 좀 보세요'는
일단 전라도말로 '저것 잠 보씨요'로 변형되는데...여기에서 그치면 맛이 덜하지요.
"완마, 저것 잠 보씨요잉" 또는 "저것 잠 보씨요예'로 찰기가 붙습니다. 여기서, ~잉, ~예가 붙어 말을 정겹게 한다는 뜻입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고향 말... 특히 고흥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낱말들이 떠밀려옵니다.
~갑네(~가 보네)
~당마(~단 말이여)
~(이)시(~이네)
~해싸다(~해대다)
긍가~(그런가~)
긍께(그러니까)
대차(그러게말야)
완마/웜머/음마(어머나)
금메~ (글쎄~)
~대끼(~듯이)
~맹키로(~처럼)
~잡다(~싶다)
재갰소?(계시오?)
이~냐(오~냐)
잉~(응~)
가찹다(가깝다)
욕봤소웨(수고했소)
짐샌(김씨)
고담떡(화담댁)
겁나게/참말로(대단하게)
골마리(허리춤)
보깨떡(반달떡)
여수(여우)
나락(벼)
갱신(몸을 가누는 일)
고상(고생)
괴비(호주머니)
꼴랑지(꼬리)
빼깽이(말려서 만든 먹을거리)
끼대가다(낯짝없이 가버리다)
놉(일꾼)
감똥(감꽃)
솔나무(소나무)
달게다(달래다)
당글개질(고무래질)
당아(아직)
더터서(찾아서)
뜬금웂다(느닷없다)
말기다(말리다)
몬뎅이(꼭대기)
몰악시럽다(인정없다)
무담씨(괜히)
뻘로 듣다(귀기울여 듣지 않다)
뻣대다(개기다)
삭신(몸)
끄터리(끝)
살강(부엌의 그릇받이)
가시개(가위)
벌거지(벌레)
새살까다(이런말 저런말 늘어놓다)
솔찬허다(대단하다)
시장시럽다(같잖다)
보초사니웁다/느자구웁다(싸가지 없다)
상녀러자석(상놈의 자식)
시퍼보다(무시하다)
간내(여자애)
머시매(사내애)
엄니/엄마/어무이(어머니)
아짐(아줌마)
아재(아저씨)
아부지(아버지)
한애(할아버지)
할무니(할머니)
시숙(남편의 형제)
고숙(고모부)
이숙(이모부)
맹(매형)
색기들(아이들)
사우(사위)
애기씨(시댁 아가씨)
시엄씨(시어머니)
시압씨(시아버지)
성(형)
동상(동생)
암시랑(아무렇지)
역부로(일부러)
오지다(실속있다)
야물다(단단하다,똑똑하다)
이약(이야기)
이적지(여지껏)
째깐(작은)
잡지다(잡죄다)
장시(장사꾼)
자장궂다(짓궂다)
빠구리(땡땡이)
도시다(까불다)
조사불다(뾰족한 것으로 찍다)
징허다(너무하다)
짜잔허다(잘다)
창시(창자)
탁하다(닮다)
치깐(화장실)
토깽이(토끼)
포리(파리)
폴(팔)
폴다(팔다)
폴세(벌써)
허천들리다(걸신들리다)
홀테질(곡식을 훑어 떠는 일)
덕석(멍석)
샐팍(대문 밖)
매구(농악)
삐비(삘기)
깔(꼴: 소 여물로 쓰는 풀)
서숙(조)
감재(고구마)
하지감재/북감재(감자)
나락(벼)
무시(무)
올베쌀(찐쌀)
퐅죽(팥죽:새알죽,팥칼국수)
정재(부엌)
도구통(절구통)
도굿대(절구공이)
갱물(바닷물)
싱건지(동치미)
짐치(김치)
엿질금(엿기름)
절주(식혜)
괴기(생선)
기(게)
기장(간장게장)
새비(새우)
쭈끼미(쭈꾸미)
낙자(낙지)
고록(꼴뚜기)
포래(파래)
해우(김)
밀가리(밀가루)
복송(복숭아)
오돌게(오디)
시깽굿(씻김굿)
깨구락지(개구리)
쉬앙치(송아지)
염생이(염소)
도아지(돼지)
때까우(거위)
꽁(꿩)
달구색기(닭)
호랭이(호랑이)
사보(삽)
호멩이(호미)
꼴랑지(꼬리)
까끔(산)
둔벙(자그마한 저수지)
초꼬지불(호롱불)
지름(기름)
사네끼(새끼줄)
시한(지난 해)
쎄(혀)
됩데(오히려)
포로씨(간신히)
둔누다(눕다)
열웂다(부끄럽다)
짠허다(불쌍하다)
영님하다(명심하다)
감푸다(사납다)
문테다(문지르다)
아짐찮이(고맙게스리)
귄있다(복스럽다)
이 외에, 고향 말에서, 인상깊게 기억되는 것이 있는데, <전남방언사전>에서도 나오지 않는 낱말이지요. '샌'....이거시 어떤 어원을 갖는지, 짐작할 길이 없습니다. '선생'인지... '씨'인지..아님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예를 들어, 짐샌(김씨), 신샌(신씨), 맹샌(맹씨), 송샌(송씨)...
대강짐샌(안사람 택호가 대강댁인 김씨), 낙안맹샌(안사람 택호가 낙안댁인 맹씨)...이런 식이지요.
아시다시피, 이러한 고향(고흥, 벌교) 사투리가 가장 많이, 비교적 정확하게 드러난 곳은 조정래씨의 대하소설<태백산맥>입니다.
조정래씨의 아버지 조종현 선생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그 시조가 실렸던 시조시인인데, 고향이 바로, 남양면 월정리 왕주이고, 함안조씨로서, 본명이 용제(龍濟)고, 종현(宗玄)은 법명입니다.
조종현 옹은 순천 선암사에 출가한 대처승으로서, 거기에서 조정래씨를 낳았는데, 조정래씨는 순천과 벌교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 말과 그 정서를 소설 속에서 잘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고흥, 벌교 쪽에서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표현들, 즉 광주 쪽에서 주로 쓰는 말을 고향말(고흥, 벌교말)처럼 해놓은 것이 있긴 합니다.
같은 전라도말이라 하더라도, 전라북도(특히 전북 북부) 말이 전라남도 말과 좀 다른 면이 있고, 전라남도 말 안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요.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남 서부와, 순천을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고흥 보성 순천 여수 여천 광양 구례)의 차이지요.
예를 들어, 고흥에서는
~라. ~야로 끝나는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즉 “뭘 거까지 가고 그래라? " 대신 “뭘 거까지 가고 그래쌌소”,
"그 자석이 뻗대고 그랬담서야 ? 대신 "그 자석이 뻗대고 그랬냐? (그래부렀냐?)...이런 식으로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는겨?, ~혔제, 혔구만이라..이런 표현도 아예 쓰지 않는데..
조정래 선생이 <태백산맥>에서 벌교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건 틀린 것.....벌교에선, 그냥 ~하냐?, ~했제, ~했구마(잉)..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백산맥>에 '왕주댁'이 나오는데, 물론 여기의 '왕주'는, 조 선생의 아버지 조종현씨의 고향마을입니다. 보통 '왕주댁'이라고 하지 않고, '왕주덕(떡)'이라고 하는데, 조 선생이 무심코 '댁'이라 표기한 듯 합니다.
다음은 인용된 글은 <태백산맥> 안에 있는 구절들입니다.
첫번째는 소설속 인물인 염상구가 전라도말에 대해서 자평하는 말인데, 위에서 말한 대로, 그 표현에서, 벌교 말(고향 말) 답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두번째는 벌교‘꼬막’에 대해서 작가가 서술하는 말입니다. 고향의 말과 문화(식문화)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시 작가는 우리 말과 문화의 조련사요, 지킴이라는 생각입니다.
(1)
"서울말 고것이 워디 붕알단 남자들이 헐말입디여?.... 밥먹었니이? 잘잤니이?.고 간사시럽고 방정맞고 촐싹거리는 말이 워디가 좋다고 배우겄습디여. 서울말에 비허먼 전라도말이 을매나 좋소. 묵직허고 듬직허고 심지고. 대장님도 전라도에 온 짐에 전라도말 싸게 배우씨요.남자가 헐 만한 말잉께요.... 말 나온 짐에 한 마디 더 혀야 쓰겄는디, 대장님이 몰라서 허는 소리제, 전라도말맹키로 유식허고, 찰지고, 맛나고, 한시럽고 헌 말이 팔도에 어디 있습디여? 맞어, 어지께 밤에 술자리서 소리 들었제라? 그 소리에 고런 것들이 다 들었는디, 워쩝디여? 알아묵겄습디여?"
(2)
"..꼬막은 다른 조개들과는 달리 다루기가 꽤는 어려웠다. 모래밭에 사는 조개들과는 달리 뻘밭을 집으로 삼고 사는 꼬막은 온 몸에 거무스름한 갯뻘을 맥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씻는 것 부터가 다른 조개에 비해 힘과 정성이 몇 곱으로 들었다. 힘과 정성이 몇 곱으로 드는 것은 갯뻘이 묻어서만이 아니었다. 그 껍질의 생김 때문이었다.대부분의 조개는 그 껍질이 매끈거리게 마련인데, 꼬막의 껍질은 수없이 많은 골이 패어 있었다. 기와 지붕과 똑같은 골이 쥘부채의 살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골마다 갯뻘이 끼여 있으니 씻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다음이 삶는 일이었다. 솜씨는 이 때부터 필요한 것이었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 해버리면 꼬막은 무치나 마나가 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 그 슬쩍이라는 것이 말같지 않게 어려운 것이었다.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양념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 격이었다.
그래서 어느 잔칫집에나 삶은 꼬막이 큰 광주리에 그득하게 담겨있게 마련이었다.술상머리에 한 사발씩 퍼다 놓으면, 제각기 필요한 만큼 까먹는 것이다. 콩나물이 그러하듯 꼬막도 잔칫집의 흔하고도 소중한 반찬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편법이었다. 제대로 꼬막 맛을 갖추려면 고추장을 주로 한 갖은 양념의 무침을 거쳐야 한다. 이 단계에서 꼬막 맛은 제각기 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꼬막맛도 제각각이었다. 벌교포구의 갯뻘이 끝이 없듯 벌교에서 꼬막은 흔해빠진 물건이었다. 그러나 감칠맛 있는 꼬막무침을 맛보기는 흔한 일만은 아니었다.
꼬막무침을 제대로 하는 처녀라면 다른 음식솜씨는 더 물을 게 없다는 말이 상식화된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흥 쪽 해변에서도, 보성만 일대에서도 꼬막은 났다. 그러나 벌교 꼬막에는 그 맛이 미치지 못해 옛날부터 타지 사람들이 먼저 알고, 차등을 매겼다. 벌교에서 물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