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나온 <뉘렘버그 크로니클>(Nuremberg Cronicle)의 세계지도 삽화에는 지구의 변경에 사는 기괴한 사람들의 그림들이 즐비하다. 여섯 개의 손을 지닌 남자, 육손이에다 털가죽을 한 사람, 켄타우루스, 눈이 네 개인 남자, 양성 인간, 칠면조의 머리를 한 인간…. 콜럼버스가 환상소설에 가까운 여행기록을 남긴 것도 따지고 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발견의 시대’가 100년이나 지난 뒤에 나온 책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아메리카의 실상이 제법 소상하게 파악된 이후에 나온 테오도르 드 브리의 <아메리카>(1590-1634)에도 여전히 식인의 장면이나, 벌거벗은 원주민들, 기괴한 동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드 브리가 이러한 기괴한 장면을 계속 담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뒤이어 ‘발견’된 아메리카는 새로운 세계지도 속에 위치를 잡아야 했다. 위치를 잡는 것은 지도를 그리는 자(cartographer)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의 관념과 위치를 ‘발명’(invention)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메리카의 ‘발명’은 곧 유럽의 ‘발명’에도 영향을 끼친다. 네 번째 발견된 대륙은 유럽이 통제하는 인식 세계 안으로 통합되어야 했고, 여기서 비교민족학이 탄생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이 학문과 더불어 ‘진보’의 관념이 탄생하고, 아울러 문화의 ‘공진화’(共進化:coevalness)는 부정된다. 이제 문화의 차이들은 연대기적 서열로 재배치된다. 그 기준은 유럽인들이 정한 알파벳, 역사서, 올바른 신앙의 존재 여부로 판가름난다. 드 브리의 판화집은 곧 아메리카 원주민의 낮은 문명을 표상하는 ‘하위’(inferior) 문명 내지, 문명 이전 상태를 발명하기 위한 유럽의 발명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639년 암스테르담에서 발행된 얀스준 비셔(Janszoon Visscher)의 세계지도는 비교민족학이 정한 문명의 위계를 비교적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지도의 왼쪽 상단에는 성장한 여인이 대지 위에 앉아 있다. 그녀의 이름은 유럽이다. 아시아란 여인은 성장을 했지만, 낙타를 타고 있다. 왼쪽 하단에는 악어를 탄 아프리카란 반라의 여인이, 오른쪽 하단에는 아르마딜로를 탄 아메리카란 반라의 여인이 각각의 대륙을 표상하고 있다. 비유럽 대륙은 모두 동물을 타고 있다는 점에서 덜 문명적이다. 문명의 위계는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이는 알파벳 문화에 정형화된 순서이다.
코넬리스 비셔가 그렸다고 하는 아메리카의 그림이 가장 기괴하다. 이 그림은 갑옷 투구를 입은 듯한 아르마딜로 위에 아래만 슬쩍 가린 풍만한 여인이 한 손에는 단창을, 다른 한 손에는 화살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아메리카 문명은 수렵어로와 채취 단계에 놓인 ‘역사 없는 사람들’이란 표현이리라. 비셔는 아메리카를 풍만한 육체의 여성으로 그려 식민대상을 여성화하는 남근중심적 정복 전략도 은연중에 드러낸다. 게다가 아르마딜로는 얼마나 기괴하게 그려져 있는가? 신세계의 문명 단계를 말이나 낙타와는 구분되는 아르마딜로로 표상하는 그의 회화기법은 당대의 비교민족학의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감수성은 곧 로크의 <시민정부 이론>에도,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에도 그대로 전수되고, 후일 서구의 진화론적 사회이론에, 정치발전과 근대화론에 족적을 남기게 된다. /1.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⑮ 공간의 정복: (상) 비교민족학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