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교육과 줄 세우기 교육을 추방해야 한다
김 귀 식
불행히도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계는 새로운 혼란을 몰고 온다. 먼 이야기는 그만 두고라고 바로 앞 장관 때는 Neis 문제로 찬반이 갈려 내내 교육계가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또 교사평가제가 불거져 역시 찬반 대립이 뜨워질 전망이다. 이러는 가운데 골탕을 먹는 것은 우리 아이들뿐이다. 졸속 정책의 병폐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죄 없는 새우들만 희생되고 있다. 특히 교육 정책을 수립할 때는 교육 주체들의 충분한 목소리를 먼저 듣는 과정이 절대로 중요하다. 교육 정책(학교운영)의 최후 결정자는 교육 주체들임을 명심할 일이다. 흔히 하향식(Topdown)을 버리고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모든 정책은 생산되어야 한다. 화초를 기를 때 무조건 물을 많이 주는 것도 안 되는 것이고, 반대로 물을 잘 안 주는 것도 안 되는 법이다. 연꽃은 물 속에 푹 담거 길러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고, 난은 거의 물을 주지 않아야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교육은 농사 짓는 원리와 화초를 기르는 원리와도 같다. 작물에 따라 화초의 종류에 그 재배법이 다르듯이 인간도 그 적성과 소질에 따라 교육 내용이나 방법이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하나의 정책으로, 하나의 교육 방법으로, 하나의 평가 방법으로 획일화하다 보니 계속 실패만을 반복할 뿐이다. 벌써부터 교육 단체들은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교사평가제에 대한 찬.반의 화살을 쏘아대며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있다. 신중하지 못한 태도들이다. 교육은 종합 예술과도 같다. 교육은 교사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학교 경영자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 교사들의 성실한 연구 활동이 종합되어 교육의 성과를 내는 것임을 안다면 함부로 교사 평가제만 가지고 교육의 질을 올린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 두고, 교육의 본질과 근본에 대해서 함께 고민할 때임을 강조하고 싶다. 공교육이 봉괴된 원인을 어느 한 부분의 문제만을 들추어 그게 전부인 양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이다. 흔히 학원 강사만큼만 학교의 교사들이 잘 가르쳐 달라는 요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투시하지 못한 경솔함과 편협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현재의 수능 제도와 학원의 선행 학습 풍토를 그대로 유지한 채 모든 학원 강사들을 학교에 배치하고, 학교 교사들을 학원에 가서 가르친다고 해도 여전히 공교육 붕괴 현상은 반복된다는 것을 확신한다. 물론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좀더 열심히 연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주문에는 전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나 교사의 질 문제는 잘못된 입시 정책과 교육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잘못된 구조 속에 누구를 앉혀 놓아도 교육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2월 17일 안장관이 발표한 사교육 경감마대책은 취소돼야 하고, 교사평가제 논란도 그만 두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교육활동총평가제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 모든 주체들은 평가의 주체도 되고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장관에서 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평가의 주체도 되고,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교육에서 제일 시급한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고 여기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그러면 그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빨리 빨리 교육과 줄세우기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빨리빨리와 줄세우기는 능률과 이윤만을 강조하는 반인간적인 21세기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긴 역사는 수직과 수평의 싸움이었다. 수직의 역사가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라면 수평의 역사는 더불어 사는 구조, 너와 내가 함께 하는 구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구조를 뜻한다. 그리고 수직의 역사는 물질(돈)을 최고로 삼는 사회이며, 수평의 역사는 인간을 최고로 삼는 사회를 뜻한다. 그리고 진정한 창의성은 수평에서 나온다. 수직으로 줄을 세우는 교육은 사고의 규격화, 인간의 규격화를 가져와 기성 문화의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한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듯이 교육은 끊임 없는 새로움의 추구와 변화와 창의성을 추구해야 한다.
수직 사회에서는 한번 낙오된 자는 인간의 대우도 받지 못한다. 대학에 못 들어 가면 인생은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의 노예가 된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끊임 없이 빨리빨리와 줄서기를 강요받으며 꿈이 없는 점수 따기의 기계가 되고 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잘못된 자녀 사랑에서 오로지 점수라는 이윤을 좇아 아이들을 학원으로, 고액 과외로 내몰고 있다. 이 잘못된 자녀관, 이 잘못된 교육관으로 우리 사회는 병들어 간다. '공부 = 출세'라는 등식이 우리 사회를 인간 사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공부 = 출세' 가 아니라 '공부 = 봉사와 희생'의 등식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봉사하고, 많이 배울수록 더 많이 희생하는 정신을 교육을 통하여 길러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독점하려 하고, 많이 배운자들이 출세하여 줄줄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 않는가. 우리 사회의 지도급들은 빨리빨리 교육과 줄서기 교육으로 배출된 인물들이다. 이제 빨리빨리 교육과 줄세우기 교육을 철저하게 추방해서 지금처럼 많이 배운자들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망쳐 놓치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일등 국민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빨리빨리 교육과 줄세우기 교육은 폐기해야 한다. 입시를 위한 보충 수업, 학원의 선행 학습, 성적 부풀리기, 전국의 학생을 일렬로 세우는 수능 시험, 이 모두가 줄세우기 교육이다. 줄세우기 교육은 아이들의 적성과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으로서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일렬로 줄 세워지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음악을 잘 아는 아이와 미술을 잘 하는 아이를 어떻게 일렬로 세울 수 있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수직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의 관계이다. 미술 전공을 지망하는 학생이 수능 시험 점수가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자살을 하는 사회, 우리 나라 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빨리빨리와 줄세우기 교육은 속성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파스트 푸드(Fast food)가 질 높은 음식이 아니듯이 빨리빨리 교육(Fast education) 또한 질 낮은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슬로우 푸드(Slow food)가 몸에 좋듯이 교육 역시 '천천히 정신'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읽는 시간,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 스스로 토론하는 시간, 스스로 정보를 수집할 시간, 스스로 써 보는 시간, 스스로 고민해 보는 시간, 스스로 체험해 보는 시간-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 시간이 많을수록 창의성은 더 많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13조원의 사교육비를 들여 결국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셈이다.
21세기의 유능한 교사는 많이 알아서 많이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을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학습 지도 능력을 가진 교사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요즈음 문제되고 있는 교사 평가제도도 수직적 사고의 산물이다. 교사만을 딱 떼어서 평가 운운하는 것은 교육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모든 교육 활동은 반듯이 평가되어야 한다. 차제에 평가의 개념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생을 지도하는 교육 활동은 그 평가 방법도 수평적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학생 따로, 교사 따로가 아니라 학생을 교육하는 모든 주체들이 한 자리에 앉아 대화와 토론을 하면서 교육 활동에 대해 기탄 없는 의견 교환을 하는 동안 평가와 반성과 새로운 계획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통합적 평가에 기초한 방식이 시스템화될 때 교사의 질, 교육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교사만을 따로 떼 내어 평가한다면 요령주의 교사만 양산되고 말 것이다. 전국의 학생과 전국의 고등학교와 전국의 대학을, 전국의 교사를 한 줄로 세우는 이 수직화의 줄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수직화의 줄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는 영원히 그 후진성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교실의 수업에서부터 학교 운영, 교육 행정 모두가 수직화에서 수평화로 나아갈 때 우리 교육은 드디어 정상을 회복하게 되리라 믿는다.
요즈음 뜨거운 쟁점으로 되고 있는 교육 자치와 지방자치의 통합, 특목고 설립, 교사 평가제 등은 모두 수직의 줄 세우기 사고에서 유래한 것임을 생각할 때 만약 그러한 방향으로 우리의 교육 정책이 결론지어 진다면 공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황폐화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빨리빨리 교육과 줄세우기 교육으로 더 이상 아이들을 학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