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온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ID)가 '나무'라고 했습니다. 식물 나무가 아니라 '나 무(無)'
라는 것입니다. '나는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비우고 무화(無化)하는 것은 무아(無我)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온전히 무화(無化)하시어 거룩한 몸(성체)
이 되셨듯이, 우리 자신이 없어지고 온전히 그분과 하나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비움'과 불교의 '비움'은 이런 의미에서 다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비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려는 비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처럼 우리를 비운 자리
에 주님께서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결국 비움은 단순히 집착과 탐욕을 끊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 것을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비움의 의미는 사랑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그냥 비운다고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내 것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냥 비워서는 곧바로 다른 것이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도 누구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일을 할 때 비움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