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1985년 9월 12일, 북아현동 집에 사실 때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10년 후 95세의 어머니와 75세, 73세인 큰오빠 내외분을
장조카가 청주로 모시고 내려 갔다. 조카의 직장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98년도에, 오빠는 97년도에 청주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 청주에 계신 동안에는 언니들과 함께 자주 찾아 뵙고 제사 참례도 했지만
큰언니도 작은 언니도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고
막내인 나도 어머님 때문에 외출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죄송스럽게도 부모님 제사 때 참석을 한동안 못하며 살아왔다.
올해에는 어머님이 포천에 가 계시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의 의사를 타진했더니 갈 수 있겠다고 했다.
퇴원 후, 장거리 외출은 처음이지만 식사 하는 것이 웬만큼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내 생각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고,
청주 시내에서 살다가 오창으로 이사한 조카의 집을
남편은 한번도 가보지 못해 겸사겸사 해서 가기로 마음 먹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2시 20분 발 북청주행 버스를 타고
청주 성모 병원 앞에서 내려 ‘오창과학단지’ 행 시내 버스 713번을 탔다.
오창과학산업단지는 청주에서 10-15Km거리에 있는 곳으로
충북 청원군 오창읍 각리에 있다.
시내버스는 우리의 목적지인 중앙하이츠 아파트로 가는 도중에
산업단지 구석구석을 돌아서 갔다.
과학단지는 생각했던 것 보다 규모가 엄청 크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라 매끈하고 근사했다.
승용차로 갔다면 보지 못했을 구경이었다.
단지를 벗어나니 시원하게 뚫린 도로 양측에
고층 아파트들도 엄청 많이 들어서 있어
이 곳이 신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청주시 인구가 이곳으로 이동을 많이 하는 바람에
구 도심의 공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 했다.
제사는 일찌감치 5시경에 지냈다.
대전의 조카딸과, 서울에서 내려온 이 집의 큰 아들 내외와 작은 아들,
그리고 우리들의 돌아갈 길을 생각해서였다.
- 제상(祭床) 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다. 일반 식탁보다 폭이 넓다-
할아버지 제사 참례를 위해 휴가까지 내고 온 아들들을 보며
조카내외가 자식들 훈도를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조카는 우리 내외에게 근육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책 한 권을 주고 당장 가서 읽고 실천 할 것을 종용하였다.
본인 자신이 이대로 하여 효과를 보고 있다 하였다.
-이시이 나오키타 지음/ 윤혜림 옮김-
책과 함께 운동하는 순서와 방법이 그려져 있는 그림도 한 장 주었다.
얼핏 보아도 그리 어렵지 않은 운동인 것 같았다.
헬스클럽에 가는 것은 나도 남편도 싫어하는데
집에서 1주일에 한 두 번만 해도 효과가 있다니 맘에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장손인 시동이 내외가 차로 우리 집까지 태워다 주어
애당초 계획했던 시각보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였다.
3월에 결혼한 장손부가 신통하게도 임신 6개월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지하철교통이 좋아 출근하기는 편한데
아이가 태어나면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가 버릴 남편이 아니었다.
‘토평 전도사’인 고모부 할아버지(우리 남편)은
토평이 아이들 기르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귀가 솔깃해진 시동이 내외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찾아 뵙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