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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절반이 도시에 살게 됐다. 그 절반의 약 8억 6000만 명은 불안하고 비좁고 비참한 도시 빈민가에 살고 있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도시 빈민가에는 기독교 선교사들도 있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도 스스로 빈민가에 정착한다.
그들이 지난 4월 방콕 근교에서 만났다. 주로 미국과 뉴질랜드, 호주에서 건너온 선교사 100여 명은 ‘새로운 수도사’(New Friars)라는 깃발 아래 모였다.
새로운 수도사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데는 흥미가 없는 듯하다. 여러 선교 단체가 하고 있는 거창한 일에 비하면 빈민의 고통을 위로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수도사에 귀를 열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사회의 변두리에 몰려 있는 빈민들의 고통과 희망을 나누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귀를 열어두는 그들에게는 특별한 게 있으니까. 그들은 오늘 선교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 어떻게 희생과 헌신과 희망을 실천할 수 있을지 몸소 보여준다.
나는 그런 선교사들과 알고 지냈다. 그런 선교사들이 쓴 책도 읽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이상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그들이 방콕에서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 어서 보고 싶었다. 그들을 만나는 데 예수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주말보다 더 좋은 때가 또 있을까.
세족목요일
예수가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긴 세족목요일에 돌아보는 소명
반짝반짝 빛나는 방콕 공항의 입국심사장. 그 앞에 환갑을 넘긴 듯한 노인이 서 있다. 성매매관광 실태를 파헤친 단편영화에 등장할 법하게 생긴 할아버지다. 어디 그 노인뿐이랴. 미국인들은 방콕 하면 홍등가부터 떠올릴 테니. 나는 태국 여자들이 노인에게 자신을 열어주지 않기를 기도한다.
약자가 당하는 고통. 생각하기도 싫다.
내 마음에는 또 다른 약자가 떠오른다. 내가 만나러 가는 선교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역하는 도시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 사역을 위해서는 스스로 약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스캇 베스네커 기독학생회 선교부 부대표는 빈민가에서 ‘성육신 사역’을 하는 다섯 단체를 소개했다. (그는 2006년, 수세기 전 탁발 수도회와 미국 도시 공동체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다섯 단체를 비교하는 「새로운 수도사」(The New Friars)를 썼다.)
새로운 수도사가 처음으로 모이는 세족목요일은 그들을 처음 만나기에 좋은 날이다(나는 이 모임과 내 여행을 후원한 재단 이사회의 일원임을 밝힌다). 그들의 사역은 권세와 섬김에 대한 발상이 뒤집어진 세족목요일, 예수가 친구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무릎을 굽히면서 한 말을 생각나게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그들의 사역 방식은 내가 10년 전 아이티에서 물도 전기도 나오지 않는 양철집에서 지내며 사역을 시작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보여준 행선지대로 공항을 떠난 택시가 146번 푯말이 서 있는 골목길에 도착한다. 내리고 보니 엉뚱한 곳이다. 태국 여자들이 나를 불러서 행선지 쪽지를 본다. “랏프라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택시!”
몸으로든 신학으로든 문화로든 사람은 자기 동네를 떠나면 길을 잃게 마련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이 열린다.
두 번째 택시는 미셸 카오가 있는 태국평화센터에 도착한다. 제대로 된 146번 골목이 맞다. 서른한 살 카오는 존스홉킨스대학 의예과 학생이었을 때 기독학생회 도시선교 사역을 통해 방콕을 처음 방문했다. 그녀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베스네커가 책에서 언급한 곳 중 하나인 서번트파트너스(Servant Partners)에 들어갔다. 그녀가 방콕에 온 지도 6년이 흘렀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빨간 고무슬리퍼를 신은 카오가 나를 맞이한다. 그녀는 다차니 아리쏘에게 나를 열심히 소개한다. 현지 협력단체에서 일하는 태국인 동료다. 아리쏘가 내게 무어라 말을 하자 카오가 통역해준다. 그녀는 자신이 태국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철거민이 땅을 찾아 새 보금자리를 짓는 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유엔에 의하면 철거민은 생활 형편상 빈민으로 분류된다.
나는 카오를 따라 주민 3천 명이 사는 동네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집은 작고 단출하다. 카오는 좁은 골목길에서 이웃을 만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날씨며 직업이며 학생회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빈번이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때때로 싸움이 벌어지는 길은 피한다. 나는 우리가 만난 이웃에 대해 물어본다. 카오는 병든 가족과 지역주민 교육사업 등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새로운 수도사’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순종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나타나신 게 아니라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 목수로서 노동하며 우리와 더불어 사셨던 그 예수를 따르겠다는 순종.
나는 방콕에 오기 전 뉴저지에 살고 있는 카오의 어머니 리 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들은 자기 딸이 그런 사역을 하겠다고 하면 한없이 현실적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엄마이기도 해요. 나는 내 딸이 하고 있는 일이 좋지만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딸이 일하는 곳에 가봤어요. 그 아이는 댕기열병도 앓고 사나운 개들한테 물리기도 했죠.”
나는 미국의 중산층 그리스도인들이 알게 모르게 계산하는 공식에 관해 카오의 어머니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내 관심
÷
예수의 생애와 빈민에 관한 말씀에 대한 내 해석
=
위험과 안락, 포부에 대한 내 결정
카오가 사나운 개들에 물린 이야기가 궁금한가? 나도 궁금했다.
이 동네에 온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카오는 변두리 작은 연못 주위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근방에 있는 한 부잣집 개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동네 개들이 카오의 ‘큰 몸집’을 무서워했던 터라 걱정하지 않았다. 개 세 마리가 나타났다. 그 개들은 큰 몸집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카오에게 달려든 개들은 다리를 물었다. 카오는 비명을 질렀다. 카오는 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도망쳤지만 무섭기보다 창피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선교사의 영혼을 위한 보양식’ 따위는 없다. 이웃 주민들의 위험과 불편을 나도 감수하는 것이다. 오늘 카오는 그 이야기를 웃어넘긴다.
12세기 부잣집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전도유망한 인생이 보장됐다. 그런데 그는 예수의 부름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따르는 제자들도 생겼다. 높은 이상을 품은 청년 프란체스코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톨릭교회 프란체스코회를 설립했다.
프란체스코에 관한 일화가 많다. 그가 새들에게 설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감상주의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다. ‘새들에 설교하는 프란체스코’를 ‘개들에 물린 카오’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개들이 얌전하게 앉아서 카오의 즉석 설교를 듣지 않았고, 농촌이 아닌 도시 선교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건이니까. 농가의 새들은 새들에게 돌아가면 그만이다. 오늘 선교사들은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양철 지붕을 올린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섬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카오를 따라 근처 식당으로 갔다. 칼집을 낸 후 바삭하게 튀긴 메기와 찹쌀밥을 먹으면서 카오가 말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좋아요. 하지만 전에는 내 소명에 확신이 없었어요. 나는 소명을 발견하면 ‘드디어 찾았다’는 만족감에 행복하게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전히 어렵고 불확실한 부분이 있는 거예요. 심지어 내가 하는 일이 다 부질없는 짓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 친구가 있을까 궁금했죠. 놀랍게도 친구들도 그런 불만족을 느낀다는 거예요. 다행히 궁극적인 만족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여기가 내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카오가 하는 사역들은 거창하지 않다. 카오는 고등학생 열일곱 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마을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작은 가정교회를 인도하고, 방과 후 학교를 열어 어린이 20여 명을 보살핀다. 의사가 됐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기쁨으로 능숙하게 일하는 카오를 보노라면 우리의 소명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의 절박한 필요를 채우고 있는가?’
오늘 세족목요일, 예수는 이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격하게 재우친다. 우리는 내가 섬겨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니 어쩌랴.
나는 카오의 명민한 동료인 태국인 청년이 머무는 작은 방에서 세족목요일이 저무는 밤을 맞는다. 그의 별명은 스프라이트. 우윳빛 같은 하얀 피부를 가지라고 할머니가 지어준 별명이다.
성금요일
예수가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성금요일에 돌아보는 희생
예수는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죽었다. 그리고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몇 걸음만에 판단하건대) 예수는 우리가 날마다 먹는 육지와 바다의 모든 생물을 위해서도 목숨을 버렸다. 가물치와 뱀장어는 흉물스럽게 몸부림치고, 회녹색 개구리는 심장처럼 펄떡거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개미와 애벌레는 천천히 꿈틀거린다.
우리를 데리고 시장을 안내하는 사람은 싸이윳 디웡이다. 폴로셔츠와 청반바지 차림에 네온운동화를 신은 디웡은 10만 명이 밀집한 클렁떠이 빈민가에 있는 자신의 식당 주방으로 가고 있다. 디웡의 별명은 ‘뿌’다. 태국어로 게란 뜻이다. 「뿌의 태국 요리 강좌」(Cooking with Poo). 그녀가 쓴 요리책 제목이자 요리 강좌의 제목이다. 빈민가에서는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한다(‘poo’에는 똥이라는 뜻도 있어 똥요리라는 말도 된다).
호주인 선교사 앤지·애시 바커 부부는 11년 전 세 아이를 기른 클렁떠이의 자그만 집으로 이사 온 후에 뿌를 만났다. 디웡의 가게는 집 근처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노점 식당이었다. 두 사람은 디웡의 식당에 자주 들렀고, 디웡이 바쁘게 움직이며 음식 100그릇을 팔아도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란 것도 알았다.
두 사람은 클렁떠이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 밤에 매를 맞는 아이의 울음소리,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아이의 비명소리, 아이의 죽음 후에 감도는 뼈아픈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힘과 꿈에 귀를 기울이고 우정과 수고를 통해 그 힘이 강해질 수 있는 자원을 찾아냈다.
“태국인은 고추 다섯 개를 먹어도 끄떡없지만 미국인은 하나만 먹어도 눈물을 찔끔한다는 걸 앤지가 알려줬어요.” 디웡이 농담을 한다. 그녀는 새로운 수도사의 성공 스토리다. 디웡은 카오와도, 사나운 개들과도 잘 다닌다.
‘희망의 도시 이웃’(UNOH, Urban Neighbours of Hope)에서 일하는 애시와 앤지는 지난 20년 동안 빈민가에서 사역했다. 처음에는 멜버른에서, 지금은 방콕에서. 애시는 「내가 빈민의 이웃이다」(Making Poverty Personal)를 비롯해 책도 여러 권 썼다. 앤지는 실망도 희망으로 바꿔버리는 힘찬 익살을 부리며 영세 자영업자들의 창업을 돕는다.
「뿌의 태국 요리 강좌」는 1만 1000부 이상 팔렸다. 여덟 명이 정원인 디웡의 일일 요리 강좌는 일찌감치 몇 주 전에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 UNOH의 도움을 받아 창업한 가게들이 고용한 태국인 직원은 이제 100명도 넘는다.
세족목요일과 성금요일이 만난다. 디웡의 식당은, 사람들이 날마다 십자가 같은 고통을 겪는 곳에서 발을 씻기기 위해 몸을 낮춘 바커 부부로부터 탄생했다. 과장이 심한 것 같은가? 죄 없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도 그런가?
디웡이 레몬그라스와 라임을 넣어 향긋한 똠얌까이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동안 나는 벽을 올려다본다. 오른쪽 황금 선반 위에 분홍색 플라스틱 불상이 앉아 있다. 불상 왼쪽에는 코끼리 얼굴의 힌두교 신상인 가네샤가 있다. 그 사이에 십자가도 있다. 예수가 골고다로 올랐던 날, 불상과 신상이 두 죄수를 대신한 형국이다.
디웡의 황금 선반 위에 놓인 것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수도사를 구성하는 단체들은 다양하다. 애시와 앤지처럼 대다수가 빈민가에서 살지만, 그들이 모두 디웡 같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일은 ‘함께 사는 것’과 ‘도와주는 것’이 두 축이다. 새로운 수도사의 사역은 ‘함께 사는 것’ 쪽에 가깝다. 애시와 앤지도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사는 것’이다.
뿌의 태국 요리 강좌 같은 것은 다시 만들기도 어렵고 그것으로 세상의 가난을 해결하기도 역부족이다. 하지만 오늘 성금요일, 서구교회가 묻고 또 물어야 할 물음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는 도시의 이웃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뜻이 있는가?’
로널드 사이더의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같은 책들은 수십 년 전부터 복음주의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졌고, 지금은 「독약 같은 자비」(Toxic Charity)와 「해로운 도움」(When Helping Hurts) 같은 책들이 같은 물음을 던진다. ‘몸소’ 빈민가로 들어간 새로운 수도사는 자신의 생을 통해 정말로 경청하는 희생과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에도 웃음과 의미가 있지만, 십자가의 길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답도 있다.
성토요일
예수가 망자들에게 내려가고 만물이 멈춘 성토요일에 돌아보는 신앙생활
성토요일의 특징은 예수가 망자들에게 내려간, 죽음과 부활 사이의 멈춤이다. 어젯밤 팀 후페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들을 피해 방콕 시내를 가로지르는 싸톤따이 도로를 달리면서 망자들에게 내려간다는 생각을 자주 떠올렸다.
팀과 에이미 부부는 새로운 수도사 단체의 하나인 워드메이드플레시(Word Made Flesh) 방콕팀을 진두지휘한다. 두 사람이 네 살과 여섯 살 된 두 딸을 키우며 이곳에서 사역한 지도 5년이 됐다. 두 사람은 선교사, 태국인, 캄보디아인 지도자들을 모아 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을 위해 사역한다. 또한 홍등가에서 꽃을 팔지만 더 많은 것을 팔라는 요구를 받는 10대들을 위해서도 사역한다.
새로운 수도사의 선교 방식처럼 팀이 자전거를 타는 이유도 이상주의(자전거는 간편하고 검소하고 환경친화적이다), 실용주의(심각한 교통체증), 단순한 기호에서 출발한다. 더 안전한 교통수단도 있기 때문에 굳이 자전거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느긋하고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더라도 정체된 도로에서는 노란 람보르기니를 추월하기도 한다.
새로운 수도사가 사역을 하다가도 성토요일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멈추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들은 힘든 환경에서 영적 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베스네커가 말한다. “임부는 몸에 결핍이 생기면 그걸 보충하기 위해 식욕이 돋는다고 해요. 비타민이 부족하면 그걸 보충하는 음식을 먹는 거죠. 이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고단한 사역지에서 믿음을 살찌우는 영성을 갈구해요.”
새로운 수도사는, 질병에 취약한데도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기온이 37도나 되는 무덥고 비좁은 집에서 지낸다. 그들은 영혼과 몸으로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그들은 ‘성찰’과 ‘렉시오 디비나’, 침묵 수양 등 하나님과 성경에 귀를 기울이는 전통적인 기도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문화권 선교사로서 고통의 현장에서 사역하는 그들은 뿌리가 뽑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뿌리 깊은 영성을 갈구한다. 그들은 대회를 열면 오랫동안 기도하고 찬양과 떼제 성가를 부른다. 방콕 워드메이드플레시 기도실에는 십자가가 여덟 개 있다. 예수가 못 박힌 고상십자가만 여섯 개다.
둘째, 그들은 린 페인 작가가 했던 “우리는 묵상을 하거나 일을 한다”는 말을 이해한다. 특별히 국경을 넘어 문화와 힘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곳으로 건너갈 때는 더욱 그렇다.
새로운 수도사는 복잡하게 작용하는 문화와 힘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 힘을 모은다. 운동화를 신고 걸음을 걷든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든 선교사로서 자신이 있는 곳의 유산을 이해하는 태도와 경계하는 태도 모두가 중요하다. 현지인과 토착민에 대한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목청을 높이는 선교사들이 많지만 그걸 악용하는 데 동참하는 선교사들은 더 많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한 악행과 모순의 기록은 성토요일의 멈춤이 왜 필요한지 외친다. 그들은 ‘함께 사는 것’에서 꽃피는 사랑 없이 ‘도와주는 것’을 피한다.
500년에 이르는 복잡한 역사를 지닌 아이티에서 내가 만난 미국인들은 도착한 지 사흘 만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안다고 장담했다. 그런 자세를 버리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워드메이드플레시에서 멀지 않은 거룩한구속주교회까지 걸어간다. 아름다운 태국불교 건축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1732년에 창설된 구속주회가 빈민들에게 설교하고 봉사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실내 양쪽 벽에는 높이 3m, 길이 12m의 프레스코벽화가 그려져 있다. 비르질리오 마니폴이 아름답게 묘사한 그리스도의 수난 그림을 나는 30분 동안 감상했다. 생명에서 십자가, 또 생명으로 이어진 십자가의 길 열네 장면은 성육신의 레슬링 시합을 보는 듯하다. 그리스도를 위로하는 사람, 조롱하는 사람,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다. 평안한 얼굴은 하나도 없다.
새로운 수도사는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무던히 힘쓴다. 성금요일은 싸움이다. 성토요일은 멈춤이다. 멈추고 있는 그들의 생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분께 귀를 기울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믿음은 프레스코벽화에 묘사되어 있는 싸움이 지금 당장 영원한 변화를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토요일은 영원하지 못할 소망으로 성급하게 달려가지 말라고 일깨운다.
부활주일
예수가 살아나 생명을 주는 부활주일에 돌아보는 소망
미셸 카오의 교회는 146번가 서번트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모인다. 부활절을 맞아 서번트파트너스와 협력하는 세 교회가 모였다. 태국인은 23명, 카오를 포함한 서번트파트너스 사역자는 네 명이다.
싼야씬 짜른쑥쌉 목사는 한때 승려였다. 그는 승려였을 때 서번트파트너스의 영어 교실에 7년 동안 출석했다. 신뢰가 쌓이자 예수에게 끌렸고 결국 그리스도인이 됐다. 지금 그는 이사야, 로마서,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15장을 넘나들며 부활절 설교를 하고 있다.
내가 카오를 처음 만난 곳은 부활절 예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모임이었다. 지난 12월 세인트루이스에서 3년마다 열리는 어바나학생선교대회에는 1만 5천 명도 넘는 학생이 운집했다. 나는 넓은 전시장에서 카오가 한 여학생을 위해 기도하면서 손목에 붉은 실을 묶어주는 것을 보았다. 붉은 실은 태국불교에서 축복을 뜻하는 것으로 태국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들이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이 전하는 축복은 무엇이 다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전해야 할 축복을 전인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전도지 배포는 육체와 영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선교 시대의 주요 전략이었다. 이런 선교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방법을 찾는 데만 힘썼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선교를 인내와 성실로 삶을 나누는 것이라 여기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신실한 방법이다. 지금은 축복을 ‘삶’에 적용한다. 분리할 수 없는 삶. 예수는 죽음으로 끝나지도 않고 죽음에서 출발하지도 않는 풍성한 삶을 가지고 왔다.
복음은 육체적이다. 태아와 태반, 때 묻은 발과 치유, 진흙과 음식, 찢어진 휘장과 십자가. 또한 복음은 영적이다. 용서, 구원의 초대, 새 생명. 새로운 수도사는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된, 즉 기관마다 특유한 교회 개척과 지역사회 개발을 강조한다.
나는 바커 부부에게 디웡의 주방에서 보았던 불상과 신상, 십자가에 대해 물었다. 디웡은 불교도지만 매주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앤지가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서둘지 않으려고 해요. 그분은 강하신 분이니까요. 태국인을 서양 그리스도인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태국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어요.”
한편, 두 사람은 디웡과 협력해서 비즈니스 개발 사업을 진행한다. 두 사람의 방식은 개종을 목적으로 삼는 선교와 믿음을 경시하는 개발과 충돌한다.
애시가 말한다. “(황금 선반 위에 십자가) 하나만 남게 될 날이 올 거예요. 그게 소원이에요.”
카오의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와 점심식사를 마친 후, 나는 도시 건너편에 있는 역사적인 거리를 찾았다. 택시를 타고 178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왓포 사원으로 갔다. 사원은 대웅전에 있는 와상으로 유명하다. 고개를 살짝 들고 누워 있는 길이 46m, 높이 15m의 금불상으로 대웅전이 비좁아 보인다. 거대하고 평화롭다.
나는 불상을 보면서 어제 본 프레스코벽화를 떠올린다. 그리스도의 일생과 십자가, 부활. 벽화도 불상도 그들 각각의 신도에게 깊은 뜻을 전한다. 하지만 예수의 형상은 고통과 싸움의 현장에서 ‘함께 사는 것’을 웅변한다.
부활절 이야기는 고통과 싸움이 결국 끝날 것이라는 구체적인 소망을 전한다. 예수는 정원을 걸으며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다. 부활은 신학 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하는 사건이 아니다. 부활은 몸이다. 예수는 호숫가에서 생선을 구워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새로운 수도사는 미국 중산층에 복음이란 영적 싸움‘에서’ 받는 구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싸우는 싸움‘으로’ 초대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우리는 소망을 간절하게 찾는 사람들을 찾아가 부활의 소망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빈민가로 들어가는 것,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는 것, 쥐가 있는 곳에서 사는 것(정신이 온전한 고양이라면 후페가 살던 집에서 본 쥐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그리스도의 부활 소망을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다.
선교월요일
다시 시작하는 세족, 십자가, 멈춤, 부활
쌘쌥 운하의 흙탕물을 따라 지나가는 강배에서 보니 반짝이는 사원을 몇 개나 지나친다. 하지만 나는 도르래에 걸린 줄로 움직이는 파란 방수포를 둘러친 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지붕 옆에 팽팽하게 이어진 줄을 잡고 있는 두 승무원이 5분마다 정류장으로 뛰어올라 말뚝에 밧줄을 친친 감으면 승객들이 내리고, 다시 밧줄을 풀어 배로 뛰어오르면 강배는 강물을 헤치며 유유히 출발한다. 선장과 두 승무원은 말이 거의 없었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다. 배를 움직이는 세 사람의 동작은 아름다웠다.
선교라는 거대한 계획에서 새로운 수도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우리는 과소평가하기도 쉽고 과대평가하기도 쉽다.
과대평가하기 쉬운 까닭은 새로운 수도사를 이루는 선교사들이 200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젊은 백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든든한 후원을 받으면서 사역한다(그들도 인식하고 싸우는 부분이다). 전 세계 교회에서 진짜 큰 ‘운동’은 수백만 명의 부흥과 성장을 이끄는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미국인 목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약자들에게만 집중한다. 새로운 수도사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면 ‘백인의 책무’ 같은 영웅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잘못이다. 선교가 교회의 사명이라면 새로운 수도사에게도 그들의 역할이 있다.
부활절 이튿날 월요일, 나는 조 신부를 만났다. 그는 뿌와 바커 부부가 사는 빈민가에서 40년 동안 살고 있다. 그는 구속주회 사제이므로 ‘노수도사’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는 이곳에 훌륭한 학교를 세웠다.
그가 말한다. “나는 (빈민가에서 살기) 시작했어. 집은 좋은 데 있고 사역은…그래서 내려왔지.” 그는 무슨 효과라도 기대하는 듯 손을 쭉 뻗어서 손가락을 부드럽게 꼼지락거렸다.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해.”
‘정의’는 유행이 되고 ‘좋아한다’는 것은 페이스북의 숫자로 둔갑한 시대에, 우리는 신앙을 취미로 여기지 않는 동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단기선교팀, 교단, 국제 비영리기관뿐 아니라 신구 수도사 같은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수도사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새로운 수도사처럼 아이티에서 보낸 세월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사역의 보물이요 내 인생의 은혜다.
선교사는 부활을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소망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선교사들은 아무 데나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게 아니다. 공익을 위해 일하면서도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소망을 전하기도 해야 한다. 새로운 수도사는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받는 곳에서 하나님께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천대받기 일쑤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한다. 또한 그들은 특별히 서구 교회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내가 하루에 하나씩 했던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할 책임을 느끼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여기서 그들은 사막교부, 교모의 대열에 합류한다.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최초의 수도사, 순교자, 예술가, 시인들. 그들은 총성이 그치지 않는 미국 도시의 청년들 곁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들은 학자와 여성도, 상인과 수사, 최고의 관습과 풀뿌리 통찰, 신비주의자와 행정가의 대열에 합류한다. 우리가 힘을 모으면 더러운 수로도 아름답게 지나갈 수 있다.
월요일 늦은 밤, 나는 에이미, 팀, 태국 동료 남폰을 따라 가까운 홍등가로 간다. 팀은 10대 세 명과 인도에 앉아서 세븐일레븐의 불빛에 의지해 숙제를 도와준다. 그는 세 학생의 주간 학습 상황을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한다. 에이미는 주위 몇 블록에서 매춘을 하는 사람이 6천 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녀도 인도에 앉아 몇 년 동안 도움을 주면서 친구가 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자는 마약과 매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두 시간 후 자정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걸음을 옮겨 음악, 술집, 불빛, 여자들을 너무 많이 이용한 남자들, 곳곳에 있는 여자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간다. 내 옆에 있던 에이미가 ‘까터이’ 매춘부(‘레이디보이’라고도 한다)로 보이는 10대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인도로 올라가 기다린다. 이윽고 내 가슴을 스치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몸을 돌렸다. 다리가 긴 젊은 태국인 여자가 인사한다. “오빠, 안녕?”
밝은 네온사인만큼이나 당연한 몸짓이다. 그녀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무례하지 않게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아, 저기, 미안합니다, 그게…”
나를 본 에이미가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태국어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그 사람이 싫대요.” 에이미는 오른팔 팔뚝에 크메르어와 태국어로 요한계시록 22:2을 문신으로 새겼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당황한 그녀는 짓궂은 표정으로 내 가슴에서 손을 뗀다. 그녀는 에이미를 향해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며 존경의 인사를 보낸다. 팀이 멀리 있어서 에이미와 나를 부부로 여긴 듯하다.
젊은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린다. 우리는 서로 쳐다본다.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켄트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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