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 성지순례 (2)
3일 밤을 지냈으니 넷째 날 부터 본격적인 성지순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른 아침 일찍이 문이 개방될 시간에 맞추어 사르나트 초전법륜지((녹야원)로 우리 일행은 발길을 옮겼습니다.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탑돌이를 세 번하고 사시공양과 예불을 올립니다. 그 다음 재가자로써 여법하게 12일간의 단기 출가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삼귀의, 오계의 수계를 받고 노란 가사를 수합니다.
송, 수신기는 순례 시작 인천공항에서 부터 귀에 뽑고 다니며 안내 지시, 일정과 순례지 설명을 듣지만 이제 항시 가사를 바랑에 넣고 다니며 예불과 명상 등 순례지에서 필수 착용됩니다.
부처님은 6년간의 고행을 마치시고 부다가야 보리수(핍팔라나무)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들어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모든 번뇌를 조복 받고 바르게 아는 통찰력과 직관으로 지혜를 낳는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길을 깨달으셨습니다.
그 후, 바라나시 성 이곳 녹야원으로 250km 길을 걸어오셔서 같이 수행을 했던 5섯 수행자를 위해 처음 설법을 하신 곳입니다. 하여 초전법륜지이며 처음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를 설하셨으며 그 길은 여덟 가지(8정도) 거룩한 실천이 있다 하셨습니다.
또한 부처님이 있고, 설법이 있고, 수행자가 생겨 삼보가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야사가 첫 재가자 신분으로 오계를 받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곳 녹야원에서 다시 우루벨리로 전법의 길을 나서시게 됩니다.
최초의 초전법륜지
(아쇼카왕이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00년 후 부처님의 흔적이 있는 곳마다 모두 탑과 석주를 세웠다.)
두번째 설법 장소
영불탑
녹야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5섯 수행자가 부처님의 모습에 감복하여 마중 나와 맞이한 곳.
녹야원을 떠나 차량으로 7시간~8시간 이동, 오는 동안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들어서니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셨던 전정각산 바로 아래 수자타 아카데미 숙소에 도착합니다.
이미 어두운지라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숙소 앞 길가에 길을 밝히는 작은 불빛은 옛 부처님 당시 길을 밝힌 가난한 난타여인의 기름등불 같은 느낌을 연상케 하며 전광석처럼 뇌리에 와 닿게 합니다. 자신에겐 매우 인상적인 광경으로 연출됩니다.
준비된 저녁식사를 한 뒤, 예불을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세워진 설립배경과 20년 역사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인도 JTS 사업은 이 마을에 들어와 첫째, 문맹퇴치를 위한 교육, 둘째, 결핵, 질병의 의료 문제, 셋째, 가난한 마을의 지원을 위한 문제점 해결을 위한 고심 끝에 설립한 당시의 배경을 알게 합니다.
이 지역 둥게스와리 마을은 부잣집 농사를 거들어 주며 삶을 연명하는 천민집단 거주 지역 이며 인도에서도 가장 어렵게 산다 합니다.
5째날, 새벽 예불, 명상을 마친 후, 부처님이 성도하신 보드가야로 출발합니다. 날씨도 쌀쌀하고 짙은 안개, 새벽 어둠이 드리워진 밤길에 불을 밝히며 걸어서 갑니다. 그곳까지는 11km~12km 된다 합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 평생 길을 걸으며, 길에서 돌아가셨다. 그 체험을 조금 생각하면서 걷고 있다 하면 한결 짜증스럼은 덜 하리라 여겨집니다.
가는 길목에 (1).죽은 사람을 갖다버리는 시타림 숲에서 6년 고행하셨던 곳을 지나고 (2).네이란자 강변에서 목욕을 하시고 힘이 없어 쓰러져 수자타 여인의 유미죽 공양으로 원기를 회복하신 곳에서 우리도 준비해간 주먹밥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참고> 하루에 2끼로 삽니다. 아침은 부처님이 옛날 마을에서 걸식, 공양하신 시간 이후이니 우리네 아침겸 이른 점심.)
(3).500명의 제자를 거느린 우루벨라가섭과 여러 가지 신통으로 경쟁하며 3형제들을 교화, 설법하신 터, (4).수자타를 기리는 탑을 참배합니다.
새벽 안개가 자욱한 시타림 숲 수행처.( 시체들이 즐비했고 춥고, 더움을 상상해봅니다)
이 길상초를 깔고 자리를 만드셨다 합니다~ 그 넘어로 동이 틉니다.
수자타 여인의 유미죽 공양터 (여기도 탑을~)
우루벨라가섭 교화 터와 보드가야 가는 길목 마을
마을의 연료용 소똥(매매용)과 밀밭길 밭두렁을 돌고돌아 갑니다
수자타 집터에 탑. 참배
길가 탈곡기, 오른쪽은 잘 사는집 이지만 다른 마을의 나무로 터는 가난한 소년과 비교됩니다.
보드가야 큰 길가 야채상들
보리수나무 아래서 무상정등각을 이루신 보드가야 대탑 앞에 도달하였습니다. 장엄하고 웅장합니다. 공양물을 올리고 사시예불, 명상을 잠시 합니다.
또한 스님의 법문은 이러합니다. 부처님은 본래의 실상 연기법을 깨달으셨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으며,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도 없어진다.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한 자기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을 쾌락이라 한다.
욕구의 반작용, 대응이 억압하고 절제와 억제이다 하신다.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중도(中道)의 수행이 된다. 욕망의 꼭대기는 타화자재천이다. 자재천왕은 쾌락, 욕계의 우두머리는 마왕이다. 사람은 마왕의 자손이라 본다! 이르십니다..
보드가야 대탑에서 1시간30분 자유 시간을 줍니다. 탑을 순례하며 기도를 원하는 분들을 위하고, 다른 분들은 잠시 쇼핑과 주변 먹을거리로 그 여가시간을 활용됩니다.
대탑 내부의 불상과 대탑 뒤, 보리수 나무아래 금강보좌.(그 앞의 기도객과 순례자들)
대탑을 배경으로 같은 팀끼리 함께
시내 버스와 오토릭샤
인도 순례객들이 넓은 주차장 공간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다시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오니 학교 아이들이 북을 치고, 꽃목걸이를 받으며 기쁜 마음의 환영을 받게 됩니다.
이어서 바로 전정각산으로 향합니다. 2km 정도 정상 등정을 하고 내려와 산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 유영굴을 참배합니다.
유영굴(留影窟)은 전정각 산을 오르내리며 부처님이 6년 고행을 마치고 성도를 위해 떠나려 할 때 섭섭해 하는 산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 동굴에서 부처님의 그림자를 남기고 떠나셨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산을 내려와 숙소인 수자타 아카데미로 와서 저녁공양, 예불이후, 아카데미 학교교장, 인도 JTS 사무국, 시설, 봉사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활동사항을 듣습니다. 모두 젊은 분들로 남을 위한 자발적이고 헌신의 봉사,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전정각 산에서 바라본 수자타 아카데미. 오른쪽 하얀 건물이 숙소와 병원, 왼쪽이 초,중학교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합니다. 항시 그렇습니다. 길가에 먼지도 이러합니다~)
가까이에서
전정각산 정상에서 따라온 아이들과~
마을에서 전정각산을~
6째 날은 조금 여유가 생깁니다. 아침, 수자타 아카데미 설립 당시 괴한들에게 피격을 당한 분의 추모제가 있은 후, 학교 개교 18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석합니다.
지역의 스님들, 마을 주민들, 학생들로 많이 붐빕니다. 행사가 끝난 뒤, 인도식으로 야외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다시 6개 조로 나뉘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며 둥게스와리 지역 마을 탐방에 나섭니다. 이곳저곳 16개 마을 중에 13개 마을이 천민이 산다 합니다. 밖으로만 보고 느꼈던 모습을 실제, 열악한 삶의 현장을 체험해 봅니다, 기후의 조건, 척박한 땅, 굶주리고 모두 지저분스럽고 어수선합니다. 문이 없는 흙벽돌집, 소가 들어와 인명 피해가 생기고, 바닥엔 깔개도 없이 닭이나 염소들과 동숙하기도 한답니다.
비가 안오니 물 부족, 공동 핸드펌프 시설에 모두 의존합니다. 그들에게도 돼지가 많고 소가 많은 집이 부자입니다.(돼지 한 마리, 인도 3000루피이니 우리 돈 60,000원 조금 넘습니다.
<연료사용: 소똥 5개가 1루피 20원>) 볏짚 깔개도 돈을 주고 사야 되는 실정입니다. 가난에 배를 굶고 밤엔 추위에 떨고 낮엔 더워 못 견디고 진퇴양난으로 심히 삶이 고달픕니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지배를 받고 산다지만 역겹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은 배고파 살지만 우리네는 배 아파 사는 경우가 많지 않나 되돌아보게 합니다. 많은 욕구 불충족에 이기심, 남이 잘되는 것에 시기 질투심입니다.
그래도 이곳 마을에선 구걸을 안 하게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지원도 해주며 교육을 시킨답니다. 아이들은 가난하고 모습이 추해도 티없이 웃는 표정들은 왠지 우리네 보다 더 맑고 밝게 보입니다.
탐방에 돌아와 저녁식사 후, 각자 보고 느낀 소감문을 작성하여 조별로 서로 검토, 의논 종합하여 한 사람의 대표자가 여러 느낀 점과 그들을 위한 생활개선 방법에 대한 소견 발표가 있었습니다.
물론 자원봉사자 부족과 후원금 확충이 주된 생각들 이겠으나, 쓰레기 소각장, 지저분한 하수처리 시설, 관광 상품개발로 일손 도움, 주택개량 문제 등, 많은 문제 제시가 있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자립성, 생활 의식구조 노력이 중요함으로 결집된다 하겠습니다.
개교기념일, 행사장
초대 된 지역스님들과 아이들이 꽃다발 증정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초대된 양민 대표 사람들의 모습. (빈부의 격차를 많이 실감합니다)
아이들의 축하 공연
스님의 메달 증정식. 이 장면은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으로써 전 인도 태권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장한 모습을 스님이 재연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은메달.~~정말 대단합니다. 이 마을의 희망입니다..
(세계태권도 대회에 출전 자격이 부여되어 모두들 감격해 했고 우레와 같은 축하의 함성은 전정각산의 산신도 놀라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통 인도식 식단, 나뭇잎 그릇에 유미죽(쌀과 우유) 밀빵, 과일, 감자 소스(그들은 손으로 먹습니다.)
마을 풍경, 둥게스와리 16개 마을만 해도 1800가구가 살며 인구는 많고 행정력은 부족하다. 주민증 같은 것이 없어 천민 아이들은 나이도 모르는 것을 한국 JTS에서 많이 일깨워 주고 있다 합니다.
알이 작은 토마토 밭과 유채꽃
첫댓글 부처님의 발자취를 주욱 따라 가는
듯 합니다,..
'나는 가수다' 이건 아니죠...
'나는 부처다' 이런 맘으로 살아가면...
인도라는 나라를 가지는 않았어도 고향이 그곳인양 합니다...
그저 나쁜 마음 안 휘들으면 그것이 하느님이고, 성자고, 부처고, 공자고, 소크라테스고..
멀리 가고 보고 느끼면 뭐하고~^^
산에 가서 즐겁게 막걸리 먹고
조심조심 내려오며 사는게
최고의 기분 좋은 삶 아닌가요~~^^.
ㅎㅎㅎ 맞습니다...맞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