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 남녀 앵커의 나이를 서로 바꿔놓으면 어떻게 될까? 40~50대 유부녀와 20대 청년이 진행하는 뉴스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에서 말했듯이 남자들이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해야 하는 시대가 곧 온다면 이런 발상이 엉뚱하지만은 않다.
현재의 남녀 앵커 배치는 영계 찬양문화의 반영이다. 문제가 있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무감각해졌다. 남성 앵커는 중후한 40~50대 유부남을 기용하는 반면 여성 앵커는 젊고 예쁜 미혼 아나운서를 짝으로 붙인다. MBC 뉴스데스크의 엄기영(53)-김주하(31) 커플은 거의 부녀 수준의 나이 차다. KBS 뉴스9의 홍기섭(44)과 정세진(31)의 나이 차는 13년. SBS 8뉴스의 경우 이영춘(43)-곽상은(28)도 15년의 나이 차가 났으나 이달부터 박상규(40)-김소원(31) 커플로 교체돼 9살 차로 좁혀졌다. 젊고 예쁜 여자 아나운서나 여기자를 앵커로 뽑아놓고 앵커의 생명은 신뢰성이라고 하면 안된다.
남성 앵커의 시간 비중은 여성 앵커의 두 배에 가깝다. 중요한 뉴스는 남자가 진행하고 주변 뉴스는 여성이 내보낸다. 남자는 사회의 주도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여자는 이를 보조하는 현모양처형 지식만 있으면 된다. 남성 앵커는 자신만의 독특한 뉴스 진행 방식으로 기억되는 반면 여성 앵커는 미모로 기억된다. 그러니 남자 앵커들은 정계로 진출하고 여자 앵커는 시집을 잘(?) 가는 것이다. 나이 든 남자와 젊은 여자 앵커의 배치를 룸살롱표 뉴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최고의 엘리트를 뽑아놓고 뉴스 원고를 읽는 일을 시키는 건 인력 낭비다. 정세진은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지만 뉴스에서는 무색무취가 지나쳐 무미건조하다. 김주하는 대어급임에도 정형화된 남성 위주의 시스템 속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들은 100이라는 자신의 역량을 50밖에 발휘하지 못한 채 매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정으로 뉴스 원고를 챙길 것이다. 그런데도 여대생이 닮고 싶어하는 인물 1·2위가 매번 여성 앵커다. 여성 앵커는 ‘그림용’이 아니다. 미모가 아니라 신뢰를, 젊음이 아니라 관록을 보여줄 여성 앵커가 필요하다. 프랑스 국영방송인 TF1의 오후 8시 메인 뉴스를 혼자 진행하는 클레르 샤잘은 50대 여성이다. 차분하고 무게 있는 그의 목소리는 원숙하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 미국 ABC의 간판 여자 앵커인 바버라 월터스(74)는 여전히 현역이다.
앵커에 대한 선호도는 뉴스 시청률과 비례하지 않는다. 차세정씨의 서울대 석사논문인 ‘시청자의 뉴스채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2003)에 따르면 앵커 선호도에서 MBC의 엄기영과 김주하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했지만 K1TV 뉴스9의 시청률이 MBC 뉴스데스크보다 훨씬 높다.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앵커의 비중은 미미하다. 이는 앵커들이 무늬만 앵커지 사실은 뉴스 캐스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외모로 앵커를 택할 수 없을 정도로 뉴스의 수준을 높이고 앵커의 본래 기능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외국의 방송뉴스처럼 즉석에서 현장 기자와 의견을 주고받고, 전문가나 정책담당자들과 토론을 벌이자. 앵커는 머리로 승부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