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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회 수녀원
[쥐똥나무 숲]
[긴 들을 지나
포근한 숲 속에 다다르면
맑은 물소리와 새 소리 반기네,
이 넓은 숲 속에
안기는 푸른 하늘 보이면
그 곳에 가고 싶네,
아- 가자!
이 숲을 지나 가보자
아- 달려 가보자!
저 산 위로
저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네,
가자!
우리의 희망이 서리는 곳으로
오 나의 사랑아!
오 나의 축복이여!
그 대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자!
긴 들을 지나
정든 오솔길에 다다르면
쥐똥나무 하얀 꽃
환영 물결 넘치네,
넓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 사이로
그대 모습 더욱 그리워지네]
돌이가 수녀원에 찾아가도 복이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순이도 철이와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도 도무지 내 것은 어디도 없었다.
“다 떠나고, 아니 순이가 왔잖아”
돌이는 부리나케 맹탕개울로 가서 메기와 가물치를 밤새워 가면서 잡아서 남들이 안보는 새벽녘에 순이 집으로 향했다.
“순아!”
순이 방문 앞에서 불렀다.
“아니 이 새벽에 돌이 네가 웬 일이여?”
간난 네가 저쪽 안방에서 나왔다.
“물고기를 잡아 왔구먼 유, 순이도 주고 아주머니도 드시라고 유”
“뭘 또 가져와, 남들 보면 어쩌라는 겨”
간난 네는 손사래를 쳤다.
“엄마 놔둬! 나 먹을 기여, 돌아 고맙다.”
“집은 더운께 낮에 개울로 나와 내가 들일 끝나면 개울에 가서 시원하게 목욕을 해야 햐”
“그래 이따 봐”
“야는 아이 딸린 유부녀여, 돌이 네 앞길을 막을 일 있어!”
“아녀유 우리 친군 데유, 헤 헤 헤”
돌이가 웃으면서 도망갔다.
“짜식 하고는 ....,”
간난 네는 돌이가 언제나 참했고 안타까웠다.
돌이처럼 마음에 둔 친구라도 있으니 좋지만 만약에 친구가 한명도 없다면
목격자 없이 맞이하는 죽음처럼 참으로 쓸쓸하고 비참한 일일 것이었다.
92회 행복한 돌이
돌이는 우렁이가 놀고 있는 논에 개울물을 막아서 물을 대면서 노래 불렀다.
또 다른 해의 초여름이라 올챙이가 논에서 놀고, 논에서 멀리 끝자락에 황새가 날아와서 올챙이를 엿보고 있다.
벼는 이제 파란 싹을 티워서 3-40센티로 자라고, 그 속에 고개 숙인 두루미도 먹이잡이에 열심이다.
날씨가 더워지는 느릿한 여름은 벼 사이로 논우렁이가 걸어가다가 두루미의 만찬이 된다.
빨간 우렁이 알들이 논둑과 벼에 달려있어도 아무도 관심 없다.
우렁이 쌀은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반응이 좋아 좋은 값에 팔린다.
벼논에 수확이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고, 순이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돌이는 행복했다.
큰 논에 논물을 대며 금화산을 향해서 노래를 불렀다.
돌이는 금화산에 나무하려 오르면서 어쩌면 순이와 같이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요상한 생각도 했다.
순이가 참을 대바구니에 이고 왔다.
“철아, 아참! 돌아, 밥 먹고 해”
“철이는 또 뭐야? 그리고 밥을 가져오면 소문나지 서방도 집에 없는 데, 내 밥 챙겨다 준다고 말여”
“걱정 마! 이제는 너하고 지낼 겨, 철이는 안와”
순이는 돌이와 마주 앉아서 보리밥에 연한 뽕잎 쌈을 싸서 서로 먹여주고 웃었다.
“맛나지?”
“그럼 우리 순이가 해온 것인데 맛나지! 아 배부르다.”
그러면서 돌이가 산 바위 위에 누웠다.
순이도 나란히 누웠다.
“너 한참 그리웠어.”
“나도”
순이가 돌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돌이는 차마 입술을 가져다 댈 수가 없었다.
“철이는 언제 나와?”
“나도 몰라, 여러 가지 죄가 겹친다고 하네”
“대구에서 돈도 많이 벌었는데, 설 빙수 때문에 다 날리고 참 안됐다.”
“생각하면 뭘 해. 죄다 운이지, 돈은 한꺼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나가더라, 돈은 도둑 같아”
순이는 결혼하고 아이 낳더니 세상을 훤히 멀리 보는 듯했다.
“어여 가자, 나는 소 풀 베러 가야 해”“나는 나물 캐러 가야지, 많이 캐서 너도 좀 주께”
“아이고 귀여운 지지바, 아니 아줌마”
“싫어! 나 아줌마 아냐”순이는 일어서서 몸을 흔들었다.
예쁜 얼굴과 예쁜 몸매에 돌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며칠 뒤에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간난 네가 송이를 안고 잠재우려 하고 있었다.
돌이는 나무지게를 얼른 내려놓고 간난 네에게 인사 했다.
“안녕하세유? 송이 보세유?”
“돌이구먼 어서와, 송이가 더운 날씨에 자꾸 보채서 평상으로 나왔어”
“순이는 유”
“보은읍에 파마한다고 갔지, 올 때가 되었구먼!”
“송이 좀 안아볼게요.”
“살살혀 자 ”
돌이는 송이를 받아서 왼쪽 어께에 송이 머리를 누이고, 팔에 아기 등뼈를 얹어서 발을 만졌다.
“끄 응”송이가 한번 보체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야가 진짜 희한해, 어째 여자들 보다 아기를 잘 앉고 잠재우는 것 좀 봐”
간난 네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기가 귀엽잖아요.”
“장가가도 되겠다. 장가가서 아기도 낳고 키워보아야지”
“싫어요, 지는 안가요.”
“이렇게 송이 보고 있으면 되요.”
“야가, 뭔 소리여”
“이 보셔유, 눈매며, 입술 코까지 모두 제 엄마 닮았잖아요.”
간난 네는 그렇게 말하는 돌이의 눈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돌이는 가만히 송이를 삼베 수건이 깔린 평상에 누이고는 일어섰다.
“저 이제 가서 옥수수 밭하고 콩밭 매야혀유”
“그려 부지런해서 부자로 살껴”
간난 네는 행주치마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돌이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간난 네는 돌이가 송이 아빠 철이를 대신해서 아이를 보살펴주려는 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돌이는 순이를 보살펴주면 언젠가는 순이도 자기를 보살펴 주리라고 믿는 마음도 있었다.
[4부 사랑하는 죄]
93회 송 사리 차사고
석이는 아침 일찍 검은색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토굴에서 나와 반나절을 걸어서 속리산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오늘 따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석이는 쥐똥나무 마을의 희망이며, 배 강복의 뒤엎어진 인생을 북구해 줄 자식이었다.
그러나 석이가 벌써 3번이나 고시에 떨어지면서 석이는 사람을 피하고, 누가 물으면 먼 데로 가는 마을에 존재도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석이는 3번이 고시추락으로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누가 친절하게 말을 걸어와도 짜증이 났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속리산 가는 삼가천을 끼고 숲길을 지나 걷고 또 걸었다.
어느새 말티재 고개에 다다랐다.
12굽이 비포장도로를 따라 먼지를 마시면서 걷고 있었다.
석이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서쪽 보은 쪽에서부터 붉어오고 있었다.
고시를 그만 둘까!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런 마음이 석양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느꼈다.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도 아침의 태양처럼 불게 타오르니 석양이나 아침이나,
어쩌면 고시에 낙방하는 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타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법주사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고요히 마음을 정리하고 절을 했다.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 해지자 법고가 울리고 노스님이 촛불을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석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스님이 앞서나가고 철이가 법당을 따라 나갔다.
“거사님 저녁은 드셨습니까?”
“아니요, 아직입니다.”
“시장 하실 탠 데, 저를 따라 오시지요. 남은 공양이 있는 지 알아 봅시다.”
마침 앞으로 지나가는 늙은 보살을 보더니 스님이 불러 세웠다.
“보살님 공양 남은 것 있습니까?”
“있지유, 짠지하고 보리밥이라도 되는 가유?”
“괜찮아유”석이가 말했다.
“언능 지를 따라 오슈”
늙은 여자 보살이 앞서고 스님이 가고 석이가 뒤따라가는 데 강아지가 마지막으로 따라가서 석양에 시장한 그림자가 줄을 잊고 있었다.
보살은 스님들이 묵는 방으로 밥상을 내왔다.
쌀과 보리를 썩은 밥에 열무짠지와 가지 무침, 그리고 산나물 튀김을 내왔다.
석이는 꿀맛으로 저녁을 먹었다.
“허, 체 하겠오, 천천히 드시오, 그리고 잘 곳이 없을 것 같소”
“어찌 아셨습니까?”
“얼굴에 쓰여 있어요. 혹시 공부를 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좋은 배석이 될 거요.”
“배석이요? 제 이름이 배석인 데요. 어떻게 저의 이름을 아십니까?”
“이름 배석 말고 좋은 배석 말입니다. 이 방에서 잘 주무시고 아침 자시고 출발 하시오.”
“스님 감사드립니다.”
이튿날 아침에 스님을 찾으니 보이지 않고, 늙은 보살이 밥상을 들어왔다.
석이는 아침을 잘 먹고 아침 해가 불게 타오르는 곳을 향해서 차를 타고 내려왔다.
그런데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내리막 길에 차들이 꽉 막혀 있었고, 고개 낭떠러지 아래 차량 두 대가 넘어져서 부서져있었다.
한 대는 승용차이고, 또 다른 한 대는 트럭인데, 승용차 속에서 ‘사람 살리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몰려간 그 곳에는 트럭 한 대가 완전히 파손된 체 거꾸로 서있었다.
아직도 뒷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봐서는 사고가 난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승객 여러분 차 사고가 나서 잠시 차를 멈출 태니 차에서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 석이가 차에서 내려 보니, 부서진 트럭은 송 사리 아저씨의 차였고, 송 사리 와 간난 네 아주머니도 운전석 앞자리에서 나란히 누워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많이 다친 것 같았다.
“사돈어른, 아저씨! 아주머니!”
석이가 아무리 몸을 흔들며 불러도 말을 안 했다.
이어서 경찰이 도착했다.
“아는 분입니까?”
“예 사돈어른들 입니다.”
“알았습니다, 사돈께서 먼저 이분들을 앰뷸런스에 싣고 병원으로 모십시오, 다른 분들 조사해야 합니다. 무슨 원한이 있었던 건 아니지요.”
“글쎄요, 노름꾼들하고 다툰 일 외에는 요.”
“노름꾼이라니요?”“도박사 설 빙수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분은 돈 많은 사람인데요, 아직도 도박을 하나요?”“그 사람이 도박 빚 갚으라고 성가시게 마을 사람들을 들들 볶지요.”
“알겠습니다. 조사해보지요.”
경찰들은 바쁘게 사건현장을 떠나갔다.
석이는 앰뷸런스에 두 사람을 태우고 보은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5분 뒤에 보은 외과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고 의사들에게 보였다.
“두 분 다 운명하신지 1시간이 지났습니다, 영안실로 보내세요,”
석이가 쥐똥나무 마을에 연락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순이를 데리고 왔다,
94회 영안실
순이가 영안실에 와서 부모를 아무리 불러도 주검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순이가 넘어져서 기절하고 송이는 권 수인이 업었다.
송이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권 수인은 송 사리의 죽음 앞에서 철이를 생각했다.
“어짜! 이리도 닮다니”
철이는 교도소에 있어서 오지 못했다.
사망자들이 객지 사망이라고 장례식을 마을에서 치루지 못하고, 병원에서 발인했다.
운구차에 실려 가는 두 주검 뒤에서 순이와 마을 사람들이 통곡을 하고 따라 갔다.
순이 말로는 두 사람이 오랜만에 법주사에 짐을 실어다주고, 말티재 고개를 내려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고 했다.
경찰의 조사로는 건너편에서 마주오던 설 빙수 부하 승용차와 마주 부딪쳐서 큰 사고가 났다고 했다.
앰뷸런스가 싣고 온 주검을 내려 무너매 어미가 사는 언덕 아래 상여 집에 매고 나와, 마을 입구에서 순이네 집을 들리고, 돌이네 집까지 다녀서 맹탕개울 건너갔다가 돌아와서 금화산으로 상여를 날랐다.
처량한 상여꾼들의 노랫소리와 뒤따르는 순이네 식구들과 친척들이 걸음마다 눈물로 장식했다.
“살날이 많은 데”
“아직 젊은 데”
“순이와 송이는 어쩌고”“망할 자식 철이는 코빼기 안보이니 쳐 죽일 놈이지”
권 수인이 기어코 한마디 했다.
“그런 말하면 안 되야, 가도 지금 얼마나 힘들 텐데”
이 동주는 철이 말을 험하게 하는 권 수인에게 오히려 화를 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순이는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허탈감에 빠져서 마루에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돌이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그냥 집 앞으로 왔다 갔다만 했다.
드디어 석이는 토굴로 다시 들어갔다.
10월에 있는 고시에 합격해서 철이를 변호하고 구해 주어야 겠다는 목표가 확실했다.
철이는 송 사리의 사위인데도 참석도 못하고 교도소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설 빙수의 차가 앞서 질러가며 다른 차들이 엮여서 사고가 났지만, 정작 설 빙수는 법으로 처벌 받지 않고 더 건방지게 돌아다녔다.
“칠득이 형 내가 다 혼내 주께, 큰소리치면서 다녀 아니?”
“우리 동생이 최고다, 이거 다.”
칠득이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
칠득이는 그 다음날부터 동네 돌아다니면서 ‘까불면 내 동생이 혼낸다.’ 하면서 돌아 다녀서 분이와 우 민자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분이나 우 민자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살고 싶었다.
우 민자는 어렵게 칠득이와 살면서 사는 동안은 진실한 마음으로 비록 못난 남편과 가족이라도 온 정성을 다하며 살고 싶었다.
95회 순이 마음
차사고로 졸지에 부모를 잃고 집으로 돌아온 순이는 송이를 앉고 안방에 앉아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열어둔 방문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뒤꼍으로 지나면서 마음도 썰렁했다.
“아- 외롭다. 송이 하고 어떻게 살라고 …….”
순이는 한숨을 쉬었다.
밥하기도 먹기도 싫었다.
조금 보채는 송이를 품에 앉고 자리에 누웠다.
“송이 애미야 일어나, 어여 밥 먹자”벌써 어둑어둑해지는 초저녁에 시어머니 권 수인이 밥 광주리를 집에서 이고 왔다.
“어머니 벌써 저녁때가 되었어유.”
“그래 어여, 넋 놓고 있지 말고, 밥 먹어! 송이 젖도 먹여야지 어서 일어나”
송이가 보채니까 권 수인은 송이를 안았다.
“어머니 고마워요.”
“철이 한태서는 연락이 있나?”
“아니요, 면회 한 번 가야지유.”
“그랴”
“석이 아주버님은 공부가 잘되시나요? 이번에 너무 고생이 많으셨어요.”
“마음 다 잡는 다고 법주사에 갔다가 운명적으로 수습을 잘했으니 다행이지,
무조건 너하고 송이가 건강해서 철이 나올 동안 집을 잘 지켜야 한다.
여자들은 그저 집을 잘 지키는 거야“
“네 어머니”
권 수인이 다녀가고 한 밤이 되었다.
순이는 적막한 집에서 송이를 재우고 더워서 부엌에 들어가서 나무 물통에 물을 길러다가 목욕을 했다.
달빛에 뽀얀 젖가슴이 물속에서 철렁거렸다.
선녀처럼 온 몸에서 빛이 났다.
삼베 수건으로 더운 몸에 찬물을 차르락 차르락 끼얹는데 뭔가 엿보는 낌새를 알아챘다.
그 순간에 어슬렁거리는 사람의 모습이 마당에서 보이고 동네 개들이 심하게 짖기 시작했다.
옆집 이 동주네 바둑이가 더 심하게 짖었다.
순이는 얼른 삼베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일어섰다.
눈앞에 남자가 스쳐지나갔다.
“누구야”
순이가 고함을 질렀다.
이웃집 이 동주가 남폿불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순이는 얼른 옷을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누가 왔다간 기여?”
이 동주가 물었다.
“글쎄요, 웬 남자가 마당에서 어슬렁거려서 유”
“자네나 나나 혼자 있으니까, 남자들이 엿보는 구먼, 서로 조심하세, 큰소리로 소리 질러 알았제”
“야 아주머니, 주무셔유”
“그려 잘 자”
순이가 송이 옆에 누웠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
순이는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옷 벗었다.”
칠득이가 마을 평상에서 말했다.
“누가 옷을 벗었다는 거여”
갑동 노인이 담배 재를 평상 모서리에 떨면서 물었다.
“여자 가유”“네 처가?”
“아니유 저그 순이가유”
“여자 혼자 산다고 그런 말 하면 안 돼, 날씨가 더우니 세수라도 했겠지 어험”
“봤는데…….”
“봤으면 너만 알고 있고, 다른 데 가서 말 하고 다니지 마, 아니?”
“야-....., 근데 봤는데”
“한번 만 더 봤다는 소리하면 팰 거야”
“아파 유 ”
“때리지도 않았는데, 어디가 아파 저리가”
칠득이는 갑동 노인이 휘두르는 담뱃대를 피해서 얼른 도망갔다.
저쪽으로 가면서 계속 씨불였다.
“봤는데, 봤어”
분이가 마주 오면서 소리쳤다.
“아빠 뭘 봤다는 거유”
“순이 옷 벋은 거”
“아빠 제발이지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내가 창피해서 못살아”
분이는 아버지 칠득이 때문에 부끄러워서 마을에 살 수가 없었다.
순이는 담 너머로 분이가 칠득이 한태 소리 지르는 것을 다 듣고 있었다.
기가 찰 일이었다.
아니 내 집에서 내가 등물 좀 하는 데, 동네서 저리 소문이 나고 간밤에 다녀간 사람도 칠득이라니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순이가 집에 들어가서 물을 한바가지 떠서 칠득이 머리에 싹 부어버렸다.
“어 시원하다.”
“고 봐, 좀 조용히 살자!”
“근데, 순아! 너는 우리 아베 한태 뭐하는 짓이야 어른한테”
분이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96회 봤다 구
“봐라,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 데 왜? 저 어른이 동네 다니면서 쓸데없이 내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 너 라면 좋겠냐구?”
“하긴 내가 사과 할게, 네가 참아라. 좀,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말을 이고 다녀요. 아부지 집에 갑시다.”
“봤는데 봤다고”“에이 그만해요.”
분이는 칠득이 팔을 꼬집어 잡고 끌고 갔다.
“뭘 봤다고 저리 씨부렁거리고 다녀”
이 동주가 참견하고 나섰다.
“몰러 유”
순이는 귀찮아서 대답도 짜증났다.
돌이가 들에서 일하고 오다가 마주쳤다.
“순이 너 화났구나! 왜 그려”
“아니야 아무것도, 저렇게 땀을 많이 흘리니 우리 집에서 찬물에 씻고 좀 가라, 거지같아”
순이는 부아가 나서 돌이에게 물을 끼얹어 줄 참이었다.
돌이가 우물 옆에 엎드리니, 돌이 몸에서 하루 종일 찌든 땀 냄새와 소금 쩐 냄새가 팍 풍겨 나왔다.
“아이고 쉰내야”
“남자 냄새여, 뭐”
“엎드려 내가 등물 해주께”
순이는 두레박으로 길은 물을 돌이 등에 붓는데, 담장 너머 이 동주의 눈과 마주쳤다.
순이는 이 동주가 보거나 말거나 돌이 등에 찬물을 들여 부었다.
“어 차가워, 살살 부어라”
“엄살은?”
“자들이 뭐하는 겨, 외간 남자의 등을 다 밀어주고....,”
“아주머니는 웬 상관이유”
“저런, 바람둥이가 …….”
“흥”
순이는 한마디 내 뱉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돌이 등을 밀어주었다.
“아 아 ”
순이 입에서 소리가 났다.
얼마 만에 만지는 남자의 어깨던가!
넓은 등짝이며 굵직한 팔다리가 느껴지니 순이도 오금이 저려왔다.
그리고 어지러웠다.
비틀하자!
“순아 그만 혀, 너 지금 쓰러 질 것 같다.”
돌이는 순이가 구부러지면서 건네는 삼배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마루에 순이를 끌고 가서 앉혔다.
“많이 힘들지! 어른들이 한꺼번에 가시니 말여”
“그래서 힘들고 외로워”
“내가 도와 줄겨, 걱정 마”
“남의 식구를!”
“남이라니 너는 네 친구야”
“그래도 남들 보는 눈이 많아서, 조심해야지”
그러면서 이 동주가 아직도 보나 안보나 담 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끙 -”
지켜보던 이 동주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그냥 고개 돌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순이는 돌이가 고마워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돌이가 순이 뒤에서 손을 어깨에 얹으며 다가오자,
“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밥 잘 챙겨먹어”
“알았어.”
돌이가 걱정하면서 가고 난 뒤에 순이는 저녁을 지어서 혼자 먹었다.
외로운 밤 두견이가 울었다.
“송이야, 두견이 아나? 두견이는 새인데 말이다.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 인데, 두견이는 경상북도 성주군에서는 [두견노래]라는 민요가 전승된단다. ‘추풍화굴 빛나실 때 애벌 같은 저 두견아/허당공상 다 바리 놓고 내 창전에 니 왜 우노/밤중이면 니 울음소리 억지로 든 잼이 다 깨노라.’ 한단다”
순이는 외로운 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송이에게 부채질을 하면서 긴 밤을 꼴깍 꼴깍 세고 있었다.
순이는 송이를 위해서 또 못난 남편 철이와 행복하게 사는 길은 기쁠 일이 없어도 기쁜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97회 빨강 차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처럼 소식도 없이
철이도 사라졌다.
순이가 헛 밤을
보내고 마음을 담근 질 할 때
돌이는 미안해서
[술이 웬수여]
씨불이지만,
순이는 이제라도
바보 같은 돌이가
송이를 안아주니
그나마 고마웠다.
순이가 가끔씩
이물 없는 돌이에게
송이를 맡기며
장터에 다녀오는 길,
오호라!
빨간색 셔츠 입은
철이가 빨강색 자가용을 타고
빵빵거리며
순이를 다시 꿰어 차고 갔다. ]
철이가 빨강차를 몰고 쥐똥마을 들어서면서 카스테레오를 크게 틀며 나타났다.
원래 쥐똥나무 마을에 큰소리가 나는 때는 마을 행사가 있을 때, 풍악 패거리들이 괭가리와 장구 소리를 내거나 봄가을 운동회 때 아이들의 응원소리뿐이었다.
또 외지에서 영화나 서커스가 있으면 선전하는 악대들이 소란스럽게 동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데 오늘은 철이가 빨강차를 뽐내면서 고향을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큰 구경이 나서 집 앞에 모두 나와서 길을 바라보았다.
자동차는 비포장도로에 먼지를 날리면서 음악소리를 크게 냈다.
쥐똥나무 향기가 마을 울타리에서 솔솔 풍겨 나왔다.
철이는 노래를 했다.
“철이 아녀?”
귀 밝은 칠득이가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노인들 앞에서 소리쳤다.
“어디 나는 눈이 잘 안보여 서리…….”
병동 노인이 말했다.
“맞네 뭐, 좋은 차다.”
갑동 노인이 말하면서 부러워했다.
“무슨 일이여 지놈이 교도소 갔다가 왔는데, 무슨 재주로 저리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거여?”
을동 노인이 말했다.
“원래 타지에서 돈 벌면 고향에 와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 마음 아니겠어? 그래도 용타”
노인들은 모두 부러웠다.
“안녕들 하시지유? 철이에유”
철이가 차를 세우고 노인들에게 인사했다.
“성공했구먼!”
“암”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철이 인사에 대꾸했다.
“어여 가 봐, 순이가 기다린다.”
순이는 동네의 요란한 소리에 집 밖으로 송이를 안고 나와 있었다.
“여보, 잘 있었어? 내가 왔다.”
철이는 선물 보따리를 차에서 꺼내 양손에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보고 싶었어, 송이야 아빠다.”
송이는 아빠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철이가 송이를 안고 어르면서 말했다.
“어여 선물 펴봐, 당신 빨간 치마도 사왔다.”
“응 우선 아버지 엄마 산소부터 다녀와야지”
“참 그렇지 차에 타라. 졸지에 사고를 당하셔서 속이 많이 상한다.”
철이와 순이는 부모의 산소에 가서 인사를 했다.
“아부지! 엄마! 내가 왔어유, 배 서방과 송이도 왔어요. 어여 일어나 보세유.
엄마“
순이는 산소에 엎드려 몸부림 쳤다.
“가자, 이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줄기여”
철이는 송이를 안고 순이를 일으켰다.
98회 자동차 자랑
철이는 순이와 송이를 차에 태우고 마을을 돌아서 집으로 갔다.
“아부지 지가 다시 부자가 되었어요.”
집 앞에서 아버지를 만나자 뻐개면서 말했다.
“지금 오냐?”
“네 어머니는 요.”
“몸 아프다고 누웠다. 들어 가봐라”
“엄마 철이”
철이는 권 수인이 누워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오냐?”
“아니요, 순이와 송이도 ....”
“어머니 언제부터 편찮으세요.”
순이가 송이를 할머니에게 넘기면서 물었다.
“사돈댁이 돌아가시고 그런다. 너는 이제 완전히 풀려났냐?”
“그럼요, 상대방이 합의를 해주어서 다행히 일찍 나왔어요. 그간 돈을 많이 벌었어요. 차도 사고요. 엄마 뭐 해 드릴가요.”
“뭘 해서 금세 돈을 벌어, 하여간 다행이다. 해주기는 뭐 너희들이나 정신 차리고 잘 살아라.”
“야 근데 형들은”
“오늘 고시 시험 친다고 네 형 둘이 다 서울 갔다.”
“이번에는 꼭 붙어야 하는 데, 벌써 몇 번이야?”
철이가 비웃듯이 말했다.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맘을 독하게 먹고 갔다. 잘될게야, 그래야 너한테도 좋지”
“석이 형은 맨날 공부 공부 하면서 돈 한 푼 못 벌어 오고 참네......,”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다. 두고 봐라”“제가 백만 원을 드릴 태니 필요 한 데 쓰세요.”
“오냐, 수고 했다.”
“제가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읍내로 가서 맛있는 것 사드릴 태니, 제 차에 타세요.”
“아버지 모시고 가자”
권 수인은 쥐똥나무 울타리 나무를 정리하고 있는 배 강복이와 같이 철이 차를 탔다.
“차 좋다.”
배 강복이는 차꼬리가 하늘로 치든 케디락을 타고 흐뭇했다.
보은 읍내 불고기 집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부모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순이네 집으로 갔다.
순이 집이 사람들로 부산했다.
분이, 돌이, 돌이 엄마 서 영은 이 동주가 몰려와서 잔치가 벌어졌다.
“차도 좋고 철이도 좋네”
이 동주는 부러워했다.
“글쎄”
늦게 온 복이 엄마는 의심쩍어 했다.
돌이는 무슨 일인지 신경질이 났다.
마루 끝에서 술만 마시던 돌이가 슬그머니 돌아갔다.
복이 엄마는 그러는 돌이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아 사는 게, 정말 뭔지 몰라, 엄마 아빠 다 돌아가시고 말야”철이가 돌아와도 순이는 탄식을 했다.
“대구로 가자 거기서 다시 일어서는 거야”
철이는 순이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으 응”
순이도 동의 했다.
순이나 철이는 운명을 탓하지 않고 안타깝게 일순 즐기고 있었다.
99회 고시 합격
“참 형이 있던 토글에 잠시 들렀다, 가자”
“왜 그래?”
순이는 석이에게 음식을 싸다주고 청소를 해주었던 지난 시절을 기억하고 행여나 무슨 의심이라도 할까봐, 짜증스러웠다.
“그냥”
철이가 토굴 속에 들어가더니 그냥 나왔다.
“제길 쓰레기통이잖아, 이래 놓고 무슨 공부야! 그러니까 맨날 떨어지지”
“그런 말 마, 우리는 아주버님이 잘 되길 바라야지”
“개똥이나 나처럼 돈 좀 빨리 벌어 봐, 맨날 공부 공부하더니 잘한다.”
그러면서 철이는 발 앞에 있는 광석 돌부리를 습관처럼 발로 차다가 앞으로 넘어졌다.
“아이구 재수 더럽게 없네, 아이구야 아파”
“거봐, 호호 내가 남이야기 나쁘게 하지 말랬지!”
그 모습을 보고 송이가 장난하는 줄 알고 깔깔 웃었다.
“니들은 재미 나냐? 가자, 근데 저거 뭐지?”
굴 안쪽 벽에 빤짝이는 것이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철이가 말했다.
“글쎄, 뭐 같으면 그냥 두었겠어.”
“뭐라니? 금 말여”
“그렇지? 금 같으면 형이 고시공부나 했을까, 가자”
철이 자동차는 이미 낙동 나루를 지나 한참 가고 있었다.
한편, 고시 시험을 치고 아쉽게 생각하고 서울에 있던 석이는 드디어 고시에 합격하였다.
집으로 합격 전보를 보냈다.
배 강복은 보은 군수에게 전보를 치고, 마을에도 알렸다.
마을에는 [경축 배석 사법고시 합격, 쥐똥나무 마을에 경사 났다.] 라고
플래카드도 걸었다.
이어서 충청북도 도지사와 보은 군수의 플래카드도 마을에 걸렸다.
석이가 내려오는 날 마을에는 돼지 잡고, 지짐 부치고, 군수가 보내준 막걸리로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석이는 마을 어른들과 도지사 군수를 만나서 인사드리고 사법연수원으로 들어갔다.
토굴에는 꽃장식이 앞에 걸렸다.
최근에 토굴에서 같이 공부하던 배욱이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이 저 절로 갑니다.”
“공부하려?”
“아니요, 머리 깎고 중이 되려고요.”
“아니 야가 뭔 소리여, 형이 고시 합격해서 복이 들어와서 집안이 평안해지고 행복한 데, 너는 거다 찬물을 끼얹는 겨! 뭐여?”
“맘을 바꿔라.”
배 강복이도 한 마디 했다.
“그럼 안녕히 계셔유”
“너 절로 간다 구? 도망가는 거지? 한번 도망 다니면 끝까지 도망 다녀야 한다. 제발 인생 앞에 맞서 싸워봐라, 이놈아!”
권 수인은 울면서 말했다.
욱이는 늘 석이 뒤만 따라 다니더니, 어려움을 못 이겨내니까 도망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욱이는 봇짐 하나를 짊어지고 터덜터덜 법주사 절로 들어갔다.
부부는 망연자실 마루에 앉아 있었다.
“아들 고시 됐는데, 왜 마루에 넋 놓고들 앉아 있을까?”
이 동주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고개를 꺄웃했다.
“몰러”
권 수인은 착잡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배 강복이는 기침만 해댔다.
“원 싱겁긴……. 언니 정신 차려요.”
“정신 있어, 한 녀석이 고시 합격하니, 또 한 녀석을 절에 합격하는 구먼”
“그럼 철이가? 아니 욱이가 중이 된다구요? 저런”
“그라니께, 내가 복장이 터지지, 중은 뭔 얼어 죽을 중이야”
“무너매 어미한태 물어 봤슈”
“물어보나 마나지! 둘이 오랜 전 부터 말이 오갔겠지, 물어보나 마나 잘했다고 하겠지”
“언니 그러면 좋지! 잘했다고 한다면 말여”
“남은 부아가 나는 데, 너는 언제나 부채질만 하는 겨?”
배 강복이가 화가 나서 휭하니 나간다.
“어디 가셔유, 점심 드셔야지요,”
“내가 밥이 넘어가? 막걸리나 한 잔 혀야지”
“언니 더 좋은 일이 있을 껴, 자식들 맘대로 하는 부모 있우? 참아”
“별수 없지!”
권 수인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상을 들고 나와서 마루에 놓았다.
“때가 되었으니 자네 밥이나 먹게, 나는 물에 말아 먹을 겨”
“그래 언니 찬물에 밥 말아 짠지 하고 먹으면 잘 넘어간다.”
“픽 – 웃자, 너 때문에 못 살아”
“그래도 내가 최고지유?”
늦여름이지만 바람이 살살 불었다.
권 수인은 어린아이처럼 닥치는 어려움에 단순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100회 노름 중독
순이는 대구에 도착해서 사글세방에 살면서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철이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빨강 차타고 포항으로 동해안으로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흥청망청 돈을 쓸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돈을 없다고 순이에게 밤낮으로 돈을 달라고 하거나
빌려오라고 까지 했다.
“내가 여기 누구를 안다고 돈을 빌려 오래 돈을 !”
순이가 망연자실해서 철이를 말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안집에서 빌려와”
“벌써 몇 번째 빌렸는데, 이제는 돈이 없다고 빌려주지 않아! 차라리 나를 팔아서 노름해라”
“시발, 더럽게 지랄하네, 팔라면 못 팔까”
철이는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까지 했다.
“망할 자식 나를 망쳐 놓고, 이제는 나를 팔아먹겠다고? 이 더러운 놈아”
그 말에 철이가 옷을 주워 입고 나가려 했다.
“이 밤에 또 어딜 가?”
순이가 밤마다 나가는 철이를 향해 한마디 했다.
“일 하려 가”
“일은 무슨 일, 맨날 노름이나 하고”
“자꾸 잔소리 할래? 그러니까 돈을 못 따지! 시발 시끄러워”
철이는 노름을 해서 돈을 조금 딸 때는 흥청망청 돈을 쓰고, 돈이 없으면 여기저기 돈을 빌리려 다녔다.
쥐똥나무 마을에도 가끔 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며, 이 동주 집에서 자고 오고, 돌이에게도 다녀왔다.
돈 많이 벌었다고 큰소리치며 빨강 차 다니다가 어려울 때는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쥐똥나무 마을에 빨간 차만 나타나면 모두 들로 나가서 집집마다 모른 체했다.
철이와 꿀 맛 같은 정을 나누던 이 동주도 이제는 시들해졌다.
“자주 오지 말어,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이모, 한 번만 더 빌려주어요.”
“하이고 참 나! 혼자 사는 데, 누가 날도와 줄기여, 네가 도와줄래? 아니면 같이 살아주던가?”
“순이 …….와 송이 때문에.....,”
“그러니까 갸들이나 잘 챙겨 줘, 아니면 나하고 먼데로 도망가서 살던가?”
“순이가 ......,”
“가버려, 여기 지갑에 있는 돈이 다여,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마”
“돈? 고마워 유,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게유”
“아, 은혜를 안 잊기는 뭐여, 시끄러워 가지고 썩 나가”
철이는 돈 몇 푼 얻어서 대구로 돌아왔다.
“또 어디 갔다 오는 겨? 나 못 살아. 정말 쌀도 떨어지고, 송이 우유 값도 없어”
순이는 울면서 철이에게 생활비를 달라고 했다.
철이는 돈 몇 푼을 던져주고 집을 휙 나갔다.
그날 밤에 철이는 술에 잔뜩 취해서 모르는 여자 하나를 끼고 들어왔다.
“들어와 우리 집이야”
웨이브 파마머리에 눈만 동그란 작은 키의 술 취한 여자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나란히 누웠다.
“누구야 안 돼, 나가”
순이가 소리치면서 여자를 끌어내려 했지만, 철이는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
“나가지마! 저년 저러다 잔다, 우리도 자자”
그러면서 철이는 작은 여자 배위로 올라갔다.
순이는 울면서 송이를 안고 한 밤에 집을 도망쳐 나왔다.
순이가 울면서 대신동에서 북부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한밤의 정류장에는 청소하는 남자와 술에 취한 남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벽에 첫차로 쥐똥나무 마을로 올라가서 배 강복이 집으로 들어갔다.
“아가 아니 웬일이여?”
“저 왔어요.”
순이는 이 말을 하고 마당에 그냥 쓸어졌다.
송이가 울면서 할머니 품에 안기고, 배 강복이가 며느리를 업어서 방안에 눕혔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나서 순이가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예, 송이는 요?”
“밥 좀 먹이고, 저기 재웠다.”
송이는 홋 삼베 이불을 덮고 곤히 자고 있었다.
“철이가 노름해서 돈 많이 잃어서 먹고살 수가 없는 데, 거기다 여자까지 집에 끌고 들어와서 같이 자니, 옆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네가 옆에서 지켜주어야지, 여자는 그냥 참고 사는 거란다, 얼른 몸 추스르고 다시 가봐라”
“뭘 지켜 줘, 그냥 여기 있어라, 그 놈의 새끼는 언제 정신을 차릴는지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배 강복이가 빽- 하고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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