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고 53회 60*80 기념 여행 후기-
“보고 듣고 걷고 수다 떨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더라”
★★
들떴던 마음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60*80여행 되돌아보기 위해 잠시 숙성기간을 가졌습니다.
자질구레한 에피소드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지요.
처음부터 글 쓸 생각 없었기에 당연히 일정표 외에 메모 한줄 없어
순전히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따라서 순서며 지명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흡이 짧으신 분이나, 혹 시비를 걸거나
꼬투리 잡기 위해 오신 분이라면
이쯤에서 나가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이는 오직 개인의 넋두리일 뿐이니까요.
★★
<첫째 날>
서력기원 2023년. 마음 푸른 모든 이의 달 초사흗날 아침.
봄인 듯 아닌 듯 바람 쌀쌀. 어떤 옷 입을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보성53회 친구들이 졸업 60주년 기념여행을 떠나는 날.
잠실종합운동장 앞. 만나면 좋고, 보고 또 봐도 실증나지 않는
얼굴들이 상기된 모습으로 모여듭니다.
‘동영관광’ 버스 앞 유리창에 쓴
‘보성53회 60*80’이란 글자가 살짝 가슴 설레게 합니다.
8시가 조금 지나자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
오순도순 수군수군. 할배들이 짝꿍과 입 맞추기 놀이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살 마주 대며 앉을 수 있는 것도 인연 아닐는지요?
그렇습니다. 천년 업보.
‘인연을 주는 건 하늘이지만 그것을 이어가는 것은 사람’ 이란 말 곱씹어 봅니다.
낙산사. 첫 일정이 시작됩니다. 짙은 초록빛 나무 사이로
육중한 바위가 힘찬 기를 내 뿜고 있습니다.
헐. 공연히 머리 쭈뼛 가슴 섬뜩합니다.
1351년의 긴 역사를 집어 삼킨 산불.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현재의 모습은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해서 지었다네요.
해돋이로 유명한 곳 의상대. 점점이 고기잡이 배라도 떠 있으면 좋으련만
보이는 건 전깃줄 닮은 수평선뿐.
언제쯤 그 장엄한 광경 마주할 기회가 있을는지....
홍련암에서의 필수 코스는 머리 바닥에 쳐 박고
밑을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
포말 일으키며 관음굴로 들이치는 파도가 일품이지요.
언젠가 바닷새 한 마리 사뿐 내려와 깃털 털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라고 늘 날고만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지요만.
아침 허술한 탓일까? 식후경, 식후경 하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립니다.
‘전주식당’. 간판을 보는 순간 벌써부터 침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해물전골. 새우 조개 게 소라 낙지... 보글보글 지글지글.
옥반에 가효라니 어찌 막걸리 한잔 외면할 수 있으리오?
다시 눈호강길. 설악동 권금성 케이블카 승강장입니다.
정원 50명에 10~15분 간격으로 운행.
붐비는 사람 중에 다른 나라 사람들 심심찮게 보입니다.
케이블카에서 보는 경관이 입 벌릴 만큼 장관입니다.
북새통에 사방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어쩌겠는지요?
뒤쪽 가장자리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예비 상식을 따르지 않은 것이 잘못인 것을요.
올라가는 길이 고약합니다. 숨 헐떡이며 걷다 쉬고를 반복합니다.
발걸음 가볍게 성큼성큼 올라가는 친구들 얄미워 애써 외면했습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중턱까지 올라와 주저앉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끝까지 오르는 ‘철인’도 여럿 있습니다.
‘땀 빼러 온건 아니니까’. ‘여우와 쉰 포도’ 이야기가 생각나 살짝 웃었습니다.
웃고 떠들고 사진 박고... 다시 수다로 여유를 즐깁니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조심 조심 발 내딛습니다.
우리 삶이 이와 다를까? 중요한 건 오름길이 아니라 내림길인 것을.
잠 잘곳. 스노캄 델피노(옛 대명콘도)란 이름이 왠지 세련돼 보입니다.
“조짜기”는 이미 차 안에서 정해졌으므로 방장 따라 쪼르르.....
저녁 먹기 전 잠시 달콤한 휴식 시간을 갖습니다.
은근히 기대했던 ‘영금정회집’으로 이동합니다.
도다리, 숭어, 방어가 대가리를 드러내놓고 있어
어쩐지 선뜻 살점 잡기가 망설여집니다.
어장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되 바닷가에서 먹는 맛이니
신선하다고 믿을 밖에요.
오늘의 하이라이트.
벽에는 ‘보성고 53회 60ㆍ80 기념여행’ 현수막이 걸려있고
케이크엔 ‘보성고 53회 팔순 기념’이란 글자가 양각돼 있습니다.
그 숫자의 의미가 사뭇 무겁게 느껴집니다.
강성구 회장을 비롯, 일행이 촛불을 끄자 할배들이 박수로 자축합니다.
후식으로 먹은 한조각 케이크 맛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배부르면 풍악 울린다던가요? 자판기 커피 들고 밖으로 나오자
친구들이 53회 대표 가수 송인성을 연호합니다.
지금도 국민가수 이기를 꿈꾸며 정진하고 있는 그가
쑥스러운 듯, 그러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나섭니다.
식당불빛을 조명 삼아 슬픈 곡조의 노랫소리가 밤하늘에 퍼집니다.
그 유명한 아리아 ‘카타리’를 시작으로 ‘남몰래 흐르는 눈물’
그리고 우리 가곡 ‘그대 있음에’를 연이어 부릅니다.
이럴수가. 웬만한 실력으로는 못 부른다는 클래식을 그것도 반주 없이 3곡씩이나.... 감동입니다. 천하의 파바로티나 도니제티 라고 한들 이보다 더 잘 부를 수는 없을 터.
미국생활 싫증나 친구들 품으로 돌아온 ‘열정의 구레나룻 사나이’ 김홍수가
노래값 받으려고 장을 펼쳤는데 얼씨구, 손에 쥔 건 달랑 동전 서넛닢.
이 친구들 “들었으면 지불하라”는 버스킹의 불문율을 아직도 모르는 갑다.
하지만 오늘의 ‘횟집 마당 버스킹’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터.
잠자는 일만 남았습니다. 자리에 들려니 아쉬움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쉬움 달래려 끼리끼리 판 벌리는 게 아닐는지요?
이 또한 단체 여행의 묘미이겠구요.
내 룸메이트는 김상규 정윤양 조항진.
소주잔 앞에 놓고 늦도록 이야기 나누면서 ‘친교’했지요만
특히 대한항공의 중흥기를 이끈 조항진의 내밀한 이야기에
큰 감동받았습니다.
그 공로 얼마나 대단했으면 퇴직 후에도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지...
장점 지닌 사람은 드러내지 않아도 보인다는 사실을 실증했습니다.
내일, 아니 또 다른 오늘은 어떤 모습, 어떤 의미로 다가 올는지....
벌서부터 가슴 설레네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