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면 삶은 역설이다. 인생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걸 받아들인 사람에게 인생은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생에 관해 스스로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예전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난리다. 이것을 두고 '행복한 고민'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래는 몇 가지 책에서 골라 뽑은 '고통'에 관한 문장이다. 그 자체로 지혜롭고, 치유적이다. 그럼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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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經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마련한 일이었다. 조이스가 말한, ‘참으로 엄연하고 항시적인’ 인간의 고뇌에서 캠벨은 바로 고대 신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읽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모든 고통의 씨앗은 가장 중요한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유한성이랍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 이것을 부인할 도리는 없는 것이지요.”
언젠가 고통이라는 주제를 놓고 대담할 때 그는 조이스의 이름과 함께 ‘이그쥬가르쥬크(Igjugarjuk)’라는 말을 꺼냈다.
“이그쥬가르쥬크가 뭡니까?”
나는 발음을 겨우 시늉하면서 물었다. 캠벨이 대답했다.
“아, 이그쥬가르쥬크 말이오? 북부 캐나다 카리부 에스키모의 샤먼이었소. 이 사람은 유럽 손님들에게, ‘참 지혜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아득히 떨어진 채 절대고독 속에 은거(隱居)하는데, 이 참 지혜에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을 했지요.”
- 신화의 힘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청춘 시절에 당한 불상사 때문에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던 어떤 여자에게서 희한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여자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자기의 고통은 기왕에 지은 죄에 대한 징벌, 혹은 장차 지을 죄를 경계하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이 여자에게 정신적인 고통까지 안겼지요.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설명하기가 약간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그 여자에게, 고통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그 고통을 비롯되게 했다, 이런 믿음을 갖게 했어요.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지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가 말했듯, 우리가 우리 삶의 어떤 한 측면에 대해서만이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면 만사는 해결됩니다. 더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동화시키기가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이것을 성취한 인간은 그만큼 더 위대해지는 거랍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삼켜버리는 악마가 그런 우리에게 권능을 부여합니다.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돌아오는 상(賞) 또한 그만큼 큽니다.
앞에서 말한 내 여자 친구는 늘,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준 겁니다.
“천만에,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설사 하느님이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하느님은 당신 안에 있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창조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게 한 것이 당신의 내부 어디쯤인지 알아야 한다. 이걸 알아내면 당신은 이것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당신 삶의 일부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가능하다.”
- 조셉 캠벨
정신이 불건강하다는 것은 망상에 사로 잡혀 있다는 의미고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어 지금 여기 이 현장에 충실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정신치료를 하다 보면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지 모든 환자가 망상의 바다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고통은 이 망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 마음의 고통을 다 느끼므로 모든 인간은 다 망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1960, 70년대에 선풍을 일으켰던 청담선사는 ‘인간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필름을 돌리면서 인생을 산다. 필름 돌리는 것을 끊어야 대자유함을 얻는다.’ 라고 일갈했다.
필름을 돌린다는 것이 망상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고, 필름 돌리는 것을 끊어라는 것이 망상을 멈추고 진여眞如, 즉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것이다. 이를 정신분석에서는 투사投射를 멈추고 지금 ․ 여기에 집중하라고 표현한다. 망상, 투사를 멈출 수만 있다면 성인, 군자고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도 사랑과 미움을 해결하면 부처가 된다는 글이 나온다.
- 정신과의사 김종하
나는 가장 중요한 젊음의 특성은 바로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라고 생각하네. 지나고 보니 인생은 결국 아주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로 짜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계획대로 되어 기쁜 일도 있고, 오래 준비하고 바라던 일이 무산되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삶에 당황하고 고통스러워 하며 세월이 지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건들이 곧 인생의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네. 누군가의 삶이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가 되려면 그 사건들이 흥미진진해야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커다란 사건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든 그것을 훌륭하게 재해석해 낼 수 있는 힘에 달려있네.
-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이 현자들은 경험을 통하여(그들 자신의 삶의 열정의 힘을 사유함으로써) 삶이 그 존재들 각각의 내부에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을 먹고 살아가는 괴물 같은 것임을 안다.
바이라바난다는 지식, 목적, 가치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으로, “이 돌아가는 세계의 정지점에서” 무시무시한 기쁨을 느끼며 배우게 되는 것이다─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 식으로 말하자면 “지나침의 길은 지혜의 궁전에 이른다.” 또는 이것이 십자가에 걸린 그리스도의 방식이기도 하다. 등에 세계를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의 방식이기도 하다. 계속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뱀의 독으로 괴로워하는 로키(북유럽 신화의 신/역주)의 방식이기도 하다.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욥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바퀴에는 두 명이 있다고 알려질 것이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측면으로, 탄생과 재탄생, 병, 노년, 죽음이라는 영속적인 순환의 슬픔의 바퀴이다(모든 삶이 슬픈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기쁨”이라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더 깊고, 더 어둡지만 더 환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를 황금 연꽃 세계로서 깨닫는 것이다. 재탄생의 고통스러운 바퀴인 삼사라와 바퀴 중심의 정지 상태인 니르바나를 똑같은 것─무시무시한 칼날을 견디어낼 용기와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으로서 깨닫는 것이다.
그런 칼날의 경험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견디는지 알고 싶은 독자는 빅토르 E. 프랑클 박사(현재 빈 대학에 재직중이다)의 『인간의 의미 탐구(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신의 음식과 같은 책을 펼쳐보라. 프랑클 박사는 나치 포로 수용소에서 끝없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머리에 그 바퀴의 온 무게를 이고 있었다.
- 신화학자 조셉 캠벨
김신웅 심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