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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2~17(400)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 2024. 5. 26
중세시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를 빠트리고 논할 수 없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잉글랜드 왕국의 법률가, 저술가, 사상가, 정치가이자 기독교의 성인입니다. 1529년부터 1532년까지 대법관을 포함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한 때 종교개혁을 부정하고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를 적극적으로 탄압하였으며, 교황을 지지하며 기존 체제를 통한 평화와 사회정의를 주장하였던 수구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윌리엄 틴데일을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보급한 죄로 ‘모든 이단의 우두머리’라며 정죄하였고, 그의 저서들과 성경을 거두어 성 바울 성당 앞에서 불태울 정도로 철저하게 교황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왕은 헨리 8세였는데 여자 문제로 물의를 많이 일으키고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형수였던 케서린 왕비와 결혼하기 위해 교황 율리오 2세의 도움을 받으면서 무리가헤 결혼합니다. 그러나 캐서린이 후계자인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는 결국 캐서린 왕비의 시녀인 엘리자베스 블런트에게 매혹되었으며, 나중에는 앤 볼린(Anne Boleyn 1501~1536)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결국 앤 볼린과 결혼까지 이어나갑니다.
헨리 8세가 벌이는 행동을 더는 참지 못한 모어는 1533년 잉글랜드 왕비로서 앤 볼린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정면으로 반기를 들게 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사형을 언도 받고 런던탑에 수감됩니다. 모어는 수감되어 있는 여기서 《신앙을 위한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등을 저술합니다.
1534년 7월 6일 런던 타워힐에서 설치된 단두대에 올라간 그는 구경하려고 몰려든 군중을 향해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나님의 착한 종으로서 죽는다.”라고 말한 뒤에 죽임을 당합니다. 죽은 지 400년이 흐른 뒤 1935년, 교황 비오 11세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카톨릭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모어의 신앙을 본 받아서 성인으로 추대하기도 합니다.
비록 한 때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을 잡아서 처형하는데 앞장섰고, 대법관시절에는 6명의 루터교 신도를 화형에 처하고,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퍼뜨렸던 40명의 개신교도들을 교도소에 넣는 박해를 앞장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의로운 행동을 하다가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나는 순교를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초지일관되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때 잘못된 행동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와서 그 믿음을 지키고자 목숨을 내어놓았던 토마스 모어의 모습 또한 생각해 보아야할 부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본 본문은 소아시아 7교회 중에 버가모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버가모는 로마가 소아시아 지역을 다스리는데 매우 중요한 행정수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게 되었고, 교육과 학문이 발달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버가모에서 가장 높은 산 위에는 제우스 신전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는데, 여기에는‘아스큘레피우스(Aesculapius)’라는 뱀의 형상을 한‘의료와 치유의 신’있었습니다.
이렇듯 버가모 도시 전체가 엄청난 우상들과 악한 영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곳을 두고 13절에서‘사단의 권좌가 있는데라’. 다시 말해서 “우상의 제단이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버가모 지역은 황제 숭배가 가장 심한 지역이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가장 많이 받았고,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동화되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너무 열악하고 힘든 곳이었지만, 버가모교회 성도들은 세상 환경을 보지 않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칭찬 받는 믿음을 가진 교회와 성도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칭찬 받는 버가모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본 받아 따라갈 수 있을 까요?
1. 주님의 이름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13절,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중반절에 보면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라는 독특한 표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라는 이름이 어떤 물건처럼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더러 ‘십자가를 굳게 잡아야 한다’라고 말씀을 드렸다면, 여러분들은 그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눈에 보이는 형상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윗부분이 되었든, 또는 아랫부분이 되었든, 십자가를 붙잡는 것에 대해서는 헛갈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은 십자가처럼 붙잡을 수 있는 형태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내 이름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물체를 붙잡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의미의 속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라는 말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전 인격적으로 예수를 굳게 신뢰하고 믿음을 잡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쉬운 성경이라는 또 다른 한글 번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너는 나를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할 때에 ‘성도가 십자가를 붙잡는다’는 말은 십자가가 주는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주님을 믿고 따를 때에 주어지는 고난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순응하면서 받아 들이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것미 맞는 것이고 틀린 해석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는 것이 내 모든 것을 다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하고 신뢰한다는 의미도 충분히 올바른 해석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초두에서 말씀드렸듯이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지배력이 가장 강한 도시에 자리잡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믿으면서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는 내용이 중반절에 등장하는 순교자 안디바라는 인물입니다.
13절 다시 한번 더 살펴 봅시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안디바(Antipas)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경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 관련된 문서에 나타난 기록은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 성도로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으로만 나타나 있습니다. 안디바가 어떤 가문 출신인지, 그의 가족이나 배경에 대해 자세히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유일한 기록은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에 의하면, 안디바는 아주 뛰어난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망치와 정만 있으면 그 어떤 돌이라도 생명을 불어 넣을 정도로 돌을 잘 다듬는 석공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로마의 관리들이 안디바에게 ‘황제신상’ 조각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안디바는 우상을 금지하는 말씀을 따라서 자신은 황제신상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로마관리들은 안디바가‘황제 숭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극형을 내립니다. 그것은 철판(놋가마) 위에서 안디바를 올려 놓고 불을 지펴서 살아 있는 사람을 산 채로 구워서 죽게하는 형벌을 내립니다. 안디바는 그렇게 순교한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로마 관리에게 당당했던 안디바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라고 대답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안디바는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권력 앞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죽어간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안디바를 가리켜 ‘내 충성된 증인’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증인’이 원어로 ‘순교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안디바는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믿음을 지켰다고 주님은 칭찬을 하고 계십니다. 버가모 교회를 둘러싼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협이 있었지만, 안디바는 환경을 뛰어 넘는 믿음을 지킨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환경이 좋으면 누구나 다 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인정을 받고 뛰어난 신앙인의 모습은 신앙생활 하기가 힘든 조건과 환경일지라도 굳건하게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는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신앙인들은 현실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악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비록 사단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예수가 주 되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믿음으로 주를 붙잡는 자들을 반드시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루마니아가 공산화되고 차우세스코 정권이 집구너하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하루는 붙잡혀 온 기독교인들을 두고 공산당 간부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조롱을 합니다.“너가 이토록 모진 고생을 하는데, 너가 믿는 목수 나사렛 예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길래 너를 도와주지 않는가?”.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성도는 이런 말을 합니다. “목수이신 나사렛 예수는 지금 하늘나라의 목공소에서 당신의 관을 만들고 있다”.
자신을 살려둘 마음이 조금도 없는 공산당 간부임을 알기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응수핬던 이 사람은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음이 후대까지 루마니아 교회에 귀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외부로부터 몰려오는 핍박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붙잡고 믿음을 굳건하게 지킨 멋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신앙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었을 때, 그것을 제대로 몰아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무너지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외적인 핍박은 잘 이겨냈지만, 안에서 파고드는 변질된 신앙의 유혹은 이겨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14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절,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훈을 지킨 것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킨 것을 책망합니다. 14절에 등장하는 발람에 대한 사건은 민수기 2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예언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사건의 전개는 출에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 광야 여정을 거의 끝 마치고 모압 광야에 진을 쳤을 때 발생합니다. 당시 모압 왕이었던 발락은 이스라엘의 세력과 그 수효에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쳐 오면서 많은 부족들을 격파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락은 한 가지 해결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발람에게 자신의 조국인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재물을 포함하여 발람에게 사신들을 보내 회유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 결과에 대해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모압을 축복하러 길을 가는 발람선지자를 가로 막고자 타고 가던 나귀가 입을 열어서 발람을 책망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돈으로 발람을 매수하려고 하였고 여기에 선지자인 발람이 넘어간 것입니다.
나귀가 입을 열어 가로 막을 정도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일인데도 신앙이 변질된 발람선지자는 멈추지 않습니다. 발람은 이번에 방법을 바꾸어서 모압 여인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게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혹에 빠져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저지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염병으로 2만 4000명이 죽는 참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의 길로 이끄는 사람들이 버가모 교회 안에 있었는데, 바로 니골라 당이었습니다. 수리아의 안디목 사람으로 알려진 니골라라는 사람은 ‘율법무용론을 주장하면서, 구원은 영으로 받는 것이므로, 육체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육체적으로 행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음행을 하던 우상 숭배를 하던 문제가 되지 않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심판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이단적 사고방식을 따르던 사람들을 두고 ‘니골라 당’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성도들이 죄를 짓더라도 은혜로 사해 주시고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악을 미워하고 심판한다’는 점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라면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버가모 교회 안에는 물질을 따르는 발람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있었고. 또한 율법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은혜를 방종애서 생활하는 니골라당에 속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있는 이런 발람과 같은 사람들과 니골라 당과 같은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 교회 안에 존재하는 모습과 많이 흡사합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돈이 좋아서 물질을 따라가는 맘모니즘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니골라당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속적인 문화를 그대로 따라갈 때에 무섭게 책망합니다. 버가모 교회도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그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으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16). 회개란 죄를 고백할 뿐만 아니라 죄를 끊는 것입니다.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는가? 나도 온 세상을 반대하노라”고 말하였습니다. 발람의 길을 가는 사람이나 니골라 당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비성경적인 세상의 것과 타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과 타협하고 비성경적인 것과 쉽게 타협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디바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신앙을 지키며 칭찬듣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6월의 남아 있는 시간을 말씀으로 잘 보내고 하나님이 이끄심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6월이 되도록 늘 기도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모든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