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이색체험 에세이】
어느 세차장에서 일하는 부부를 보며 느낀 것들
― 성실하게 일하는 ‘진짜 애국자 모습’에 감동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아버지, 오늘은 제가 <요일제> 지키는 날이라 승용차를 집에 두고 가요. 시간 나시면 세차장에 가셔서 세차 좀 해주세요. 어제 세차장에 들렀다가 순서가 너무 밀려서 세차하지 못하고 그냥 왔어요. 세차 요금은 선 결제를 했어요.”
아들은 자동차 열쇠를 아비에게 건네주면서 미안해했다. 아들이 아비에게 세차를 부탁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장거리 출장을 갔다가 눈길에 염화칼슘 뿌린 도로를 주행했으니 세차를 곧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퇴근길에 세차장에서 선 결제해 놓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손님이 너무 많아 취소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차장 주인은 환불해 줄 현금이 없다면서 다음에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아비에게 미안해하면서 세차를 부탁한 까닭이 이해가 됐다.
이 아비는 70이 훌쩍 넘은 노인이다. 웬만하면 운전하지 않는다. <칠십 대 운전자 교통사고 빈번>이라는 기사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승용차를 아예 없애고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니 자동차에 이런저런 돈을 들일 일도 없거니와 세차 걱정을 하지 않고 산다.
하긴 승용차가 있을 때도 세차 정도는 내 손으로 직접 했지, 세차장에 간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안다. 세차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내 손으로 자동차를 꼼꼼히 닦아 본 사람은 그 수고로움을 잘 안다.
세차장에 전화했다. 오후에는 손님이 많으니 오전 10시경에 오라고 했다. 아들이 선결제한 것도 잘 알고 있었다.
▲ 아들의 승용차를 몰고 인근 세차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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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장에 들어서니, 주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또 한 분이 상냥하게 인사했다. 같이 일하는 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안내하는 젊은 여성의 친절이 남달랐다.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대기실에 들어가시라면서 문을 열어줬다. 전기난로도 켜주었다. 따끈한 캔 음료수도 권했다.
▲ 세차장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친절하게 대기실을 안내했다. 전기난로를 켜주고 따끈한 캔 음료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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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추운 날씨에 대기실에서 혼자 난로를 쬐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세차를 주인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분주하게 움직였다.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일이었지만 물을 뿌려 대는 일이라 몹시 추워 보였다. 처음 보는 세차용품도 한둘이 아니었다.
먼지를 빨아들이는 전동 기구며, 작은 홈을 파내고 닦아내는 솔이며 부드러운 붓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누 거품이 잔뜩 일어나는 스펀지 세척기구를 한참 문질러 대더니, 부드러운 마른 수건으로 깨끗이 훔쳐냈다.
▲ 온갖 세차 도구를 동원하여 정성을 다하여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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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자동차 지붕의 물기를 제거하는 일은 혼자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합동으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세차 기술도 노하우였다.
대기실에서도 세차하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부 청소며 트렁크를 비울 때는 손수레까지 동원했다. 트렁크 물건을 물기 젖은 바닥에 내려놓지 않기 위함이었다.
▲ 세차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의 손길이 유난히 꼼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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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막 살균 소독도 했다. 왁스 세차도 했다. 세심한 손길은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허리 한 번 쉴 틈이 없었다. 차량 내부를 닦는 여성의 손길을 유심히 살펴봤다. 꼼꼼했다.
나도 자동차를 여럿 바꾸면서 수십여 년의 운전 경력을 가진 운전자지만 세차를 대강 대강하고 살았지, 저분들처럼 세밀하게 닦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일하는 두 분의 <관계>였다. 사장님에게 물었다.
“꼼꼼하게 정성을 다하시는 <저분 아가씨>는 혹시 <따님>이신가요?”
그러자 사장님이 말했다.
“저의 집사람입니다.”
아차 싶었다.
‘부인’인 줄도 모르고 ‘따님’이냐고 물었던 내가 적이 미안했다. 무안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집사람이 저보다 훨씬 젊지요? 제가 머리 염색을 안 해서 나이가 들어 보이지요?”
추운 날씨에 부부가 손 세차를 하면서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이곳 세차장 간판이 ‘명품 세차장’이다.
▲ <명품 세차> 간판을 <감동 세차>로 바꿔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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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곳 <명품 세차장>을 <감동 세차장>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정성을 쏟는 부부.
차 한 대 닦는 데 걸리는 시간이 45분. 추운 날씨에 땀 흘리면서 고객에게 주는 감동이 대기실 전기난로보다 따뜻하다.”
그러자 아들로부터 답이 왔다.
“15년 넘게 탄 차인데, 그런 분들로부터 <감동 세차>를 하니, 앞으로 10년은 더 탈 수 있겠네요. 하하”
뜻하지 않게 아들이 세차를 부탁하는 바람에 많은 것을 느꼈다. 요즘, 세상이 몹시 혼란스럽다. 걱정스러운 뉴스가 잇따라 터진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숨을 쉰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분들이 바로 저분들이구나!> 느꼈다.
묵묵히 세차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두 부부의 성실한 모습이 ‘진짜 애국자의 모습’이 아닐까?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생업의 현장에서 말없이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누릴 것 다 누리면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
2025. 1. 8.
윤승원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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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전수필문학회 단톡방에서 박영진 수필가님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에서 정구복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