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원명정사
 
 
 
카페 게시글
* 직지심체요절 스크랩 월산화상, 장사경잠선사, 혜안국사, 아호대의 화상 좌선명
검산 추천 0 조회 32 14.12.24 18: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1.3월 24일. 원명정사 법문.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76. 월산 화상 (月山和尙)

월산화상이 처음에 설봉선사를 참배하였으나 玄旨에 물들지 못했는데 뒤에 민왕이 청풍루로 초청함으로 인하여 齊에 갔다가 앉아서 조만간에 눈을 들어 문득 햇빛이 찬란한 것을 보고 활연히 크게 깨닫고 게송을 읊기를

 

청풍루 위에서 관재에 나갔더니

이날에야 평생의 눈이 활짝 열리었네

普通해의 멀고 먼일이 믿어지니

총령으로부터 온 것만은 아니네

 

(현사화상이 “저곳의 허공과 이곳의 허공에 내 몸이 있지 않거니 통증이 어디로부터 왔느냐? 그만두고 그만두어라. 달마가 동토에 온것도 아니며, 2조가 서천에 간것도 아니다”라고 말한것과 같다)

 

강해: 현지란 조사의 깊은 禪旨를 말한다.

普通은 양무제 때의 연호이다.

양무제때 달마대사가 왔는데 뒤에 인연이 다해서 ?嶺으로 가셨다. 이런말이 있다.

달마대사가 입적하신 후 3년뒤에 송운이 인도에 갔다가 오는데 총령고개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다. 달마대사께서 가죽신 한짝을 메고 가시면서 “나는 중국에 인연이 다해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웅이 산에 장사지낸 지가 3연이나 되었다는데 이상하게 여겨서 달마대사의 무덤을 파보니까 빈 관안에 아무것도 없고 가죽신만 한 짝이 있는 것이었다. 한 짝은 놓아두고 한 짝은 짊어지고 가셨다.

현사화상이 산고개를 넘어가다가 발가락이 돌에 부딪혀서 발이 부어서 아팠다. 현사스님이 그때 통증을 느끼면서 “내 몸이 없는데 통증이 어디로부터 왔느냐?”고 자기 자신을 반성한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래서 현사스님이 “저쪽 허공이나 이쪽 허공에도 내 몸이 본래 없는데 발가락 아픈 고통이 어디로부터 왔느냐? 달마가 동토로 오신것도 아니고 혜가대사가 서천에 간것도 아니라”는 법문을 하셨다.

아픈 것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몸이 없는데 아픈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월산화상의 오도송이나 현사스님의 법문이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77. 장사 경잠선사

장사 경잠선사가 축상서를 보게되자 경잠선사가 상서를 부르거늘 상서가 곧 대답하니 장사선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상서의 본명은 아니도다”하니 상서가 말하기를 “지금 공손히 대답하는 것을 떠나서 제2의 주인공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하자 장사스님이 이르기를 “상서를 지존이라고 부를수 있소?”하니 상서가 이르기를 “이와 같은즉 모두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화상께서는 제자의 주인공이 아닙니까?”하자 장사가 이르기를 “다만 공경히 대답하는 것과 및 공경히 대답하지 않을 때만이 아니라 시작이 없는 겁으로부터 옴으로 그것이 바로 생사의 근본이오”하였다.

 

강해: 경잠선사는 마조계통의 南泉普願의 제자로 조주스님과 사형사제 관계이다.

축상서는 국방을 맡은 병부상서나 내무를 맡는 내무상서로 장관격이다.

우리가 본래 타고난 그 자리를 본명이라고도 하고 원진이라고도 하고 합쳐서 본명원진(本命元辰)이라고도 한다.

바로 본래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을 알지 못한 것은

다만 종래로 식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무량겁으로부터 생사의 근본이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의 사람이라고 말하네.

 

강해: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짜 본래의 주인공을 모르고 헤매는 것은 분별심(識神)을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명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윤회를 하는 근본이 본래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78. 혜안국사

혜안국사가 북종의 신수스님과 더불어 측천무후로부터 궁중에서 공양하는 초청을 받아서 목욕을 시킬때 궁중의 미녀로 시중을 들게함으로 인하여 오직 혜안국사는 태연하여 다른 이상이 없거늘 무후가 탄복하면서 말하기를 “물에 들어감에 비로소 긴 사람이 있는 것을 알수 있도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진원의 선녀가 백옥같은 뺨에

장미손으로 물 뿌려도 차가운 재에 뿌리네

가시풀 문에 자물쇠가 없으나

거창한 금방망이로 두드려도 열리지 아니하네.

 

강해: 혜안국사는 5조홍인대사와 사형사제로 도가 높은 분이다. 북종신수는 5조홍인 대사의 제자이다.

6조스님은 남방에서 법을 폈다고 해서 남종이라고 하고,

신수대사는 북방에서 법을 폈다고 해서 북종이라고 하였다.

慧眼은 不動心하고 혜안은 마음이 동하지 않고

神秀는 動心이라 신수는 마음이 동했다.

 

혜안국사께서 무후가 혜안국사의 나이를 물음으로 인하여 혜안국사가 대답하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니

무후가 말하기를 “어째서 기억을 못합니까?”하자 혜안국사가 이르기를 “나고 죽는 몸이 그 순환하는 것과 같아서 일어나거나 다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기억을 하리요? 하물며 이 마음은 흐르되 그 중간에 간단이 없나니 거품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이 망상이라. 처음 識으로부터 요동하는 모양이 다 없어 질 때까지 또한 그와 같거니 어찌 연월을 기억하겠습니까?”하자

이에 무후가 머리를 조아리고 믿어 받들었다.

 

강해: 측천무후가 혜안국사의 나이를 물으니까 혜안국사는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禪旨로 답한 것이다.

겁을 두고 나고 죽었으나,본래 나이는 항상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낸 스님이 “마음자리는 우리가 알수없을 정도로 굉장히 미세하게 흐르고 있기?문에 微細流注라고 한다.”하였으나 어림없는 소견인 것이다.

 

 

79. 아호 대의 화상 좌선명

아호 대의 화상의 좌선에 관한 글이라.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 것이 몇가지 모양이던고?

종요로운 것은 바로 공부하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있다.

다만 몸을 잊어버리거나 마음을 죽이지는 말 것이니

이러한 것은 치료하기 어려워서 그 병이 가장 깊도다.

바로 모름지기 앉아서 연운을 탐구할 것이니

이러한 도를 고금과 천하에 전해 왔다.

바로 앉아서 단정하기를 태산같이 하되

우뚝하여 종요로이 공함만을 지키지 아니할 것이니라.

 

강해:

몸을 잊어버리거나 마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재와 마른 나무와 같이 몸과 마음을 다 잊어버리는 그런식 참선학도를 가르키는 것이다.

성성적적 해야 하는데 성성하고 또렸함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외도들이 무색계천이나 무상정에 떨어지기 쉽다. 적적과 성성 두가지가 꼭 필요한 것인데 망형사심은 적적에만 치우친다. 거기에 떨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화두를 잘 택하거나 화두를 잘 들어야지 화두에 어둡고(昧)하지 않고 잘 드는 것이 바로 성성이다.

화두도 들지 않고 멍하니 무기공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금천하란 말은 동서와 같은 말로 시간적으로는 고금이고 공간적으로는 천하이다.

성성은 慧가 되고 적적은 定인데 정보다도 혜를 더 위주로 보는 것이 조사선이다.

단연(端然)이란 단정하게 몸과 마음이 요지부동인 것이다.

태산과 같이 부동자세로 앉아서 공한 것만을 지키지는 말라는 것이다.

 

바로 모름지기 취모리를 일으켜서

조사서래의의 첫째 가는 도리를 잘 해부하라.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추켜세워서

저것이 무엇인가를 반복하여 볼 것이니라.

 

강해: 취모리(검)란 유명한 보검의 이름으로 지혜검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그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화두에 집중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도적을 잡을 때 도적의 장물을 보려 하고

도적이 깊은 곳에 숨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이는 도적과 장물을 찰라경에 잡거니와

지혜 없는 이는 해를 지나도 그림자도 보지 못하네.깊이 슬프다! 우뚝하니 앉아서 항상 죽은 것처럼

천년 만년 동안 다만 그와 같이 하네.

만약 그렇게 해서 선종이라 한다면

염화미소하여도 그 가풍을 손상시키리라.

 

강해: 도적이 장물을 찾지 못하게 굉장히 깊숙이 숨겨 놓았다손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어코 찾아내겠다는 마음자세로 참선을 해야 된다.

영리한 사람은 눈깜짝할 사이에 도적도 잡고 도적의 장물도 획득하지만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1년이고 2년이고 도적을 잡으려고 해도 그림자조차도 못 본다는 것이다.

돌부처처럼 천년, 만년을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아무소용이 없는 것이다.

혜가 밝아야 된다. 졸면 혜가 밝을 수 없다. 혼침에 빠지거나 무기에 빠지거나 마음을 죽은 사람같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백은 이태백이다. 이태백이 술먹고 달밤에 강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물에 뛰어들어서 빠져죽었는데 그것을 후대의 시인들이 좋게 평해서 고래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 것이다.

 

흑산 아래에 앉아 있으면 죽은 물에 잠기나니

대지가 길고 먼 것을 어떻게 없앨수가 있겠느냐?

만약에 쇠로 된 눈과 동으로 된 눈동자를 가진 놈일진대

마음을 착수해서 능히 스스로 판단한다.

바로 착수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가약할 것이니

크게 울부짖는 한 소리를 내는 사자이네.

 

해: 검은 산이란 철위산 같이 해와 달의 광명이 비치지 않는 곳이다.

죽은 물은 썩은 물인데 죽은 물속에 잠겨 있으면 안 된다.

효후(표호)란 사자가 산천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울부짖는 소리이다.

 

그대가 보지를 못했던가?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는 비유가 까닭이 있음이라.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소를 쳐야 한다.

또 보지를 못했던가?

바위앞의 맑은 물이 만 길이나 맑아서

침침하고 고요해서 아무 소리가 없더니

하루 아침에 어룡이 물을 요란시키고 요동시키면

파도가 뒤집어지고 물결이 솟구쳐서 참으로 거창하다.

만일 고요히 앉아서 공력을 쓰지를 아니하면

어느 해에 급제하여 마음의 빈자리를 깨달을 것이냐?

 

강해: 미전작경(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은 남악 회양선사가 마조에게 한 말이다.

몸을 구속해서 마음을 깨치려고 하는 것이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나 같다고 비유하였다.

소가 수레를 끌고 갈 때는 소를 쳐서 소가 가야 수레가 가는 것이다. 수레는 몸에 비유했고 소는 마음에 비유하였다.

급제란 장원급제이다. 선불장에서 장원을 한다는 것은 곧 마음깨쳐 대오견성을 뜻하는 것이다.

 

급히 하수하고 눈을 높이 붙여서

금생에 꼭 마쳐 끝장내어야 한다.

만약에 묵묵하여 어리석게 하면

그대는 공부를 짓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유의하여 잘 보아라.

형체도 그림자도 없지만 깨닫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네.

이것이 십분 마음을 참 잘 쓰는 것이니

용맹한 대장부는 곧 모름지기 기억할지어다.

도를 듣기만 하고 참구할 필요 없다고 하지 말라.

옛날 성인들은 못내 지남이 되었느니라.

 

강해: 하수란 착수한다는 것으로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화두를 든것인지 놓은 것인지도 모르게 지내서는 않되는 것이다.

관취란 취득한다는 것이다. 득취(취득), 용취와 같은 뜻이다.

두수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다.

십분이란 말은 만족한다는 의미이다. 100%를 십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십분이면 하나에서 열까지 숫자가 원만구족된 숫자이기 때문에 [화엄경]에서는 법문이 열가지로 많이 나온다.

십분도 그와 같은 의미이다.

 

비록 옛날 집의 방치한 전지이기는 하나

그냥 한번 방치해서 되겠느냐?

좌선의 부동존을 알고자 할진댄

바람이 감에 풀이 쓰러지는 것을 모두 말한다.

지금 사해가 거울과 같이 맑으니

두두물물이 다 나를 따르는 것이로다.

 

강해: 한전지란 놀리는 밭, 유림전지를 말한다.

一度란 한차례이니 一回와 같은 말이다.

그것을 풍행초?으로 비유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 따라서 솔린다. 바람이 남쪽에서 불면 풀은 북쪽으로 쏠리고 북풍이 많이 불면 남쪽으로 풀이 쓰러진다. 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풀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으니

풀위에 바람이 가면 반드시 쓰러진다.

군자는 나라 임금을 말하고 소인은 백성들이다. 백성들은 나라 임금이 하는대로 따라간다. 상, ‘윗상’자이다. 그와 같은 내용을 풍행초라고 간단히 말한 것이다.

두두물물, 모든 삼라만상이 나의 마음의 명령에 따라 듣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다 마음의 그림자라고 하였다.

 

길고 짧고 모나고 둥근것을 다만 스스로 아나니

본래부터 털끝만치라도 일찍이 옮기지 않았다.

좌선하여 어떤 일을 이루느냐고 묻는다면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석양에 서쪽으로 진다고 하리라.

 

강해:

‘여인음수(如人飮水)에 냉난자지(冷暖自知)라’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물이 차가운지 더운지를 스스로 아는 것처럼 방원장단을 스스로 안다는 것이다.

 

사대명리 여몽중

대진심식 본래공

욕식불조 회광처

일락서산 월출동

 

사대가 각각 흩어지는 것은 꿈과 같고

육진의 알음알이는 본래 비었다.

불조의 회광처를 알고자 할진댄

해가 서산에 지고 달은 동쪽에서 뜬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