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빌립보서 1장 1-11절
제 목 생각날 때마다 기쁜 사람들[1]
빌립보서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연금된 후에 빌립보교회를 향해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뻐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61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빌립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입니다.
바울시대에는 이곳이 지방 최대의 도시였으며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전파된 최초의 땅이었습니다.
빌립보에는 복음을 영접한 유대인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연약한 여인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더욱 충성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두아디라성 출신인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체재한 기간이 길지 못했으므로 루디아 외에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에 대해서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 증거로 여러차례에 걸쳐 성도들이 물질적으로 바울의 선교활동을 도왔습니다.
아무리 자신들이 복음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해도 그 감사를 잊지 않고 계속하여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을 편지를 통해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들의 사랑은 이어졌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갇혀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서 헌금을 모아 에바브로디도를 보냈는데 바울을 보살피러 온 그가 도리어 병이 들어서 거의 죽게 되자 바울과 빌립보교인들의 염려는 아주 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에바브로디도가 회복되었고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염려하고 있는 빌립보교인들을 생각하여 건강하게 회복된 그를 빌립보로 보냈습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보살펴줄 사람을 다시 돌려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관계가 사랑으로 돈독하다는 증거입니다.
연약한 자신을 돕고자 노력하는 빌립보교인들을 보면서 바울은 4-5절에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것은 복음을 받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변함없이 복음안에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복음을 받은 첫날부터 변함없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환경이나 감정에 의해 조금씩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빌립보교인들은 사도바울과의 관계를 복음안에서 아름답게 유지한 것입니다.
그들은 선교지에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해도 생명을 걸고 복음만을 위해서 사는 사도바울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봉사하였습니다.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때는 물론 옥중에 있는 자신을 향해서도 사랑이 식지 않는 빌립보교인들을 보며 사도바울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지금의 처지는 고통스럽고 두렵지만 복음을 위해서 고난중에 있는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는 빌립보교회의 사랑이 곧 믿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세상은 물론 교회들도 유명한 사람을 도와서 자신들이 그와 더불어 드러나길 원하기 때문에 바울처럼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빌립보 성도들은 늘 바울의 약함을 돕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 헌신은 서서히 믿음이 성장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굳건한 반석위에 서 있는 그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는 말씀위에서 헌신하는 성도를 보는 것처럼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빌립보교인들처럼 변함없는 믿음으로 성장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첫날부터 옥에 갇힌 이 날까지 동역자의 자리에서 복음 때문에 자신을 염려하며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는 빌립보교인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라는 인간을 물론 사랑했지만 바울이 옥에 갇히거나 병이 들면 선교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더욱 바울을 아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있을 때 루디아는 그런 바울을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교회로 드렸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 두아디라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씀을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루디아로 하여금 마음 문을 열게 하셨고 그녀의 집을 복음처로 개방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루디아가 말씀안에서 지혜와 총명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기 때문에 그녀는 기꺼이 빌립보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런 결단은 쉽지 않지만 빌립보성도들의 한결같은 헌신을 보면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이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었고, 마음속에서 충만하게 올라오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복음안에서 생각만 해도 웃음을 줄 수 있는 기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된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빌립보성도들이 변함없이 도울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믿었습니다.
빌립보성도들 역시 사도바울이 복음의 길에서 자신의 생명을 드려 헌신하며 희생할 것을 알기에 하나님안에서 봉사한 것입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그들을 위해 바울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고 성도들이 영적능력을 갖도록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관계가 바로 이런 관계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그와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는 사람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크게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을 알아보는 여러분 역시 영적으로 성장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빌립보성도들이 그만큼 믿음으로 성장했다는 증거이며 그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성도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누군가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며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절로 감사할 수 있고, 생각만 해도 기뻐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사셔야만 합니다.
어느 누군가 여러분을 생각하면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신뢰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의 삶을 마음껏 축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낮춰야만 생기는 신뢰이며 그런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도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이 쌓은 서로에 대한 신뢰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가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이고, 도울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단단한 사랑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믿음으로 삶을 살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낮출 때 도리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복음안에서 믿음으로 연결되는 인간관계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상대방의 믿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보다 상대의 믿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성도간의 관계가 더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의 힘이 없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빌립보교인들은 사도바울안에 있는 영적인 은사를 보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겉모습을 개의치 않고 사도바울을 섬겼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이렇게 세상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넘쳐 흐르는 생명력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빌립보교인들처럼 복음안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셔야만 합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동일하게 받았을 때 믿음으로 결단하느냐 아니면 내 감정으로 그 은혜를 쏟아버리느냐의 차이가 그 사람의 신앙상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셨을 것입니다.
그럴 때 양심에 조금 걸리더라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은혜를 덮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믿음으로 순종하실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은혜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으로 살 것인지 순간의 판단으로 결정짓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9절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지혜와 총명이 성장하기를 늘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10절의 말씀처럼 선함과 악함을 분명하게 하여 선한 것을 택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안에서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선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지혜와 총명이 성장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올바르고 정직한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날 그 성도가 구원받는데 허물이 없도록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을 사용하여 회개를 시키십니다.
물론 당하는 성도입장에서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영생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사람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거든 용서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가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빌립보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주안에서 한 형제이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고 복음을 위해서 한 길로 가는 이들의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었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다른 서신서와 달리 자신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라고 강조하기보다는 예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도전하지 않고 동역자의 입장에서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동역자로써 사명을 감당해주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굳이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임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뢰를 받지 못하면 복음까지도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사도입니다.
바울은 이미 빌립보교인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직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던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해 더 깊이 있는 영적인 말씀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큰 이득을 줄 수 있습니다.
11절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이 선과 악을 잘 판단하여 선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성도로 살아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흠없는 모습으로 서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빌립보교인들이 삶속에서 많은 상급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축복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옥에 있는 바울이 자신을 돕고 있는 빌립보교인들을 축복하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보기에 주제넘고 안타까운 상황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영적인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축복은 옥에 갇힌 바울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세상이 전부라는 생각을 했다면 절대로 빌립보교인들의 축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세상의 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의 힘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상대방을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음껏 축복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바울처럼 그 누군가 생각만 해도 기쁜 사람이 있거든 자신의 처지를 생각지 말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흠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는 축복받을 사람이 예수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날 허물없이 그 앞에 설 수 있는 능력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바울처럼 빌립보교인들처럼 서로의 믿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생각만 해도 기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