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근대 이행기 시문학의 전개 과정
2) 새로운 시형의 발견
(1) 창가와 최남선
가사와 시조형으로는 끝내 새 시대의 욕구를 다 담아낼 수 없음을 알고 새로운 유형의 시 양식 발견을 위해 노력한 이가 육당 최남선이었다. 8·5, 7·5. 6·5조의 ‘창가唱歌’로부터 시작해 소위 ‘신체시新體詩’에 도달한 그의 노력들은 그러나 끝내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실험이었다. 시에 대한 개념적 이해나 시의 형태, 심지어 시적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가 펼쳐 보여준 시적 실천들은 대부분 일본이라는 전범으로부터 별 고민 없이 옮겨온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다음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일정한 글자수를 반복함으로써 율을 만든다는 일본식 리듬의식의 도입이었다. 우리 전통시가의 경우, 가장 정형적이라 할 시조에서조차 동일 음절수를 반복함으로써 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이 지속되는 길이의 등량성에 의거해 리듬감을 얻는다. 그런데도 깊이 고민하지 않고 7·5조 등의 음수율에 마치 우리 시의 율격적 기초가 있는 양 강조함으로써, 그는 심각한 문학사적 에너지 낭비를 초래했다. 김억, 김동환을 거쳐 김소월에 이르는 에피고넨epigonen(아류) 그¹⁴⁾의 형성이 바로 그러한 낭비의 좋은 보기일 것이다.
우렁탸게토하난 긔뎍소리에
남대문을둥디고 ᄯᅥ나나가서
ᄲᅡᆯ리부난바람의 형세갓흐니
날개가딘새라도 못ᄯᅡ르겟네
늘근이와뎖은이 셕겨안졋고
우리네와외국인 갓티탓스나
내외틴소다갓티 익히디내니
됴고마한ᄯᅡᆫ세상 뎔노일윗네
-최남선, 「경부텰도노래」 부분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남방 편에 대한지리 지식을 갖게 하고 시취詩趣를 맛보게 하려는 계몽적 의도(「경부텰도노래」 머리말)로 썼다는 이 작품은, 바야흐로 우리 땅에 도래한 신문명을 아무 고민 없이 예찬하고 있다. 당대에 있어 기차 혹은 철도란 근대적 기계 문명의 총아로서 진보적 가능성의 표상이기도 했겠지만, 그것은 또 꼭 그만큼 수탈과 압제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것이 안겨다주는 강렬한 빛에 눈먼 나머지, 남녀노소와 내·외국인이 섞여 앉은 기차간의 그 어색한 풍광을 ‘조그마한 딴 세상’이라고 강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2음수율에 대한 육당의 집착은 일종의 형태과잉의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의식은 육당 스스로의 미성숙한 주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육당은 음수율에 얽매인 시를 쓰는 동시에 서슴없이 산문시형의 시를 남기기도 하는데, 이렇게 양극단을 쉽게 오간다는 것은 시에 대한 주관이 아직 서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서는 형태 과잉과 형태 무시의 측면이 동시에 발견되는데, 그 둘은 결국 같은데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명의 놀라움을 이토록 강렬하게 예찬하다가도 문득 조선심朝鮮心으로 돌아서고 그러다가 다시 친일의 길로 앞장서 나아간 저 날렵한 행보 역시 이 미성숙한 주체의 문제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근대적 내면이 없으니 역사의식도 자랄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시에서 에게는 그런 여러 문제들이 엉거주춤하게 뒤얽혀 있다. 시 「海에게서 少年에게」에는 그런 여러 문제들이 엉거주춤하게 뒤얽혀 있다.
텨……ㄹ썩, 텨……ㄹ썩, 턱, 쏴……아.
ᄯᅡ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태산 갓흔 놉흔 뫼, 딥턔 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 무어냐,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ᄭᅡ디 하면서
ᄯᅡ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턱, 쏴……아.
뎌 세상 뎌 사람 모다 미우나,
그 중에서 ᄯᅩᆨ 한아 사랑하난 일이 잇으니,
담 크고 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텨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다.
오나라, 소년배, 입맛텨 듀마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海에게서 少年에게」 1·6연
언뜻 보아 자유로운 율격형을 실험한 듯이 보이는 이 시 역시 새로운 정형률을 만드는 것이 근대시의 나갈 길이라고 믿었던 육당의 형태 강박증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각 연별로 동일한 행의 위치에 비슷한 통사구조를 가진 시행을 배열함으로써 완전히 그 형태가 같은 여섯 개의 연이 중첩된 것이 이 시다. 그리고 화자는 의인화된 바다인데 이때의 바다가 근대문명 그 자체나 그것에 닿을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바다는 일본을 등에 지고 한반도의 소년을 향해 계몽하고 있는 목소리가 된다. 이때의 바다가 하등의 고민이 없는 근대주의자의 낙천적 얼굴과 겹쳐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해海에게서’라는 일본식 조어가 그래서 오히려 매우 자연스럽다.¹⁵
--------------------------------------
14 7.5조시형의 형성과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뜻일 뿐 시의 수준에서도 그렇다는
15 한국의 근대시가 육당의 시를 뒤이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그의 오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오세영 교수의 지적은 따라서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16 권오만, 앞의 책, 정우택, 앞의 글, 김성윤, 앞의 글,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외 지음
2024. 4. 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