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장15-22 부활신앙 베드로 회복시키다 원주희목사 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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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하신 주님의 세 번째 나타나심과 내면 치유의 섭리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22절에 이르는 말씀은 조반을 마친 후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던지신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세 번째 공식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은 부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자들과 교제하셨으나, 성경이 이 세 번째 만남을 특별히 기록한 이유는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구체적인 사역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풀어주시며 죄 사함의 원리가 온 열방에 전파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장 역점을 두신 세 번째 사역은 바로 제자들의 '마음'을 치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십자가 진리가 아무리 실재한다 할지라도, 그 진리를 담을 인간의 마음이 치유되지 못하고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복음의 사명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명을 잊고 밤새 고기잡이에 몰두하다 돌아온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친히 찾아오셔서 조반을 차려주시고 깊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주님은 만찬의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베드로의 깊은 내면을 만지시는 치유의 시작이었습니다.
2. 아가페의 질문과 필레오의 정직한 자기 고백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을 물으실 때 사용하신 단어는 '아가페(Agape)'였습니다. 이는 어떠한 조건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신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무조건 용납하시고 참아주시며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진실로 회개하며 나아갈 때 주님은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비록 주님께서 매를 드시거나 징계하실지라도, 그 안에는 자녀가 더 이상 타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아픈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회초리보다 그 매를 든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는 자는 죄에 대해 쉽게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생명과 삶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아가페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응답은 달랐습니다. 그는 '필레오(Phileo)'의 사랑으로 답합니다. 헬라어에는 사랑의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 부모 자식 간의 본능적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친구 간의 우정과 같은 필레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랑인 에로스(Eros)가 그것입니다. 과거의 베드로였다면 주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며 호언장담했겠지만,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지금의 그는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나는 주님을 아가페로 사랑할 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 그저 친구로서 사랑할 뿐입니다." 이는 비겁함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직면한 정직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3. 세 번의 질문을 통한 인격적 회복과 사명 부여
주님은 두 번째 질문에서도 아가페를 물으셨고, 베드로는 다시금 필레오로 응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눈높이를 베드로의 수준으로 낮추십니다. "시몬아, 그래, 네가 진정 나를 친구로서라도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3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한 우정의 사랑으로라도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베드로는 근심합니다. 주님이 자신의 수준으로 내려와 물으실 때,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했던 모든 부끄러운 과거를 다시금 대면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그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상처를 싸매어 주셨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완전한 아가페의 사랑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주님을 향한 그의 중심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인하신 후 그에게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사명을 팽개치고 생업으로 돌아갔던 베드로에게 다시금 사명을 맡기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중심 하나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양 떼를 돌보는 것은 고된 일입니다. 때로는 양들이 거칠고 고집스러울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내면을 치유하심으로써 그가 다시 사명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4. 순교의 예언 속에 담긴 위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순교를 예고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고통을 의미하는 끔찍한 예고였으나, 베드로에게는 오히려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때 순교의 자리에서 도망쳤던 그가, 이제는 진정으로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명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훗날 로마의 박해 속에서 주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매달릴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내면을 뜯어고치시고 성화시키시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승리자로 빚어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손길로 내면이 치유될 때, 진정한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5. 주님을 향해 온전히 집중하라.
베드로는 사명을 받은 직후 곁에 있던 요한의 장래를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요한은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께 의지했던 자요, 십자가 끝까지 주님을 따랐던 제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내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신앙의 본질은 다른 이의 형편이나 삶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영혼을 만지시고 사명을 주실 때, 우리의 시선은 자꾸 옆으로 분산되어서는 안 됩니다. 타인의 길에 상관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길에 온전히 집중하여 따르는 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6. 부흥의 키맨(Key-man)으로 부름받은 베드로
주님께서 이토록 공들여 베드로를 세우신 목적은 곧 임할 오순절 성령 강림의 부흥을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항상 부흥의 문을 여는 '키맨'이 존재합니다. 평양 대부흥의 길선주 장로님이나, 전란의 고통 속에 성령의 권능을 선포했던 용문산 기도원의 부흥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천은 영적으로 매우 치열한 곳입니다. 오랜 세월 유교와 불교, 무속의 영들이 얽혀 있고, 전쟁의 피가 흐른 두려움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용사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영적 전쟁을 치르며 부르짖었을 때, 저주가 끊어지고 축복의 문이 열렸습니다. 울릉도의 높은 복음화율 역시 이름 없는 사명자들의 헌신과 기도가 맺은 결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시대의 부흥을 위해 베드로와 같은 키맨들을 연단하고 계십니다.
7. 내면의 성숙한 사람이 제대로 쓰임받습니다.
진정한 부흥의 사명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면이 건강해야 합니다. 안으로는 주님의 평강이 흐르고, 밖으로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수용성이 넘치는 '내유외강'의 인격이 갖춰져야 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경작할 사람이 세워져야 하늘에서 폭포수 같은 비가 내리고 그 비가 강물이 되어 모든 것을 살려냅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가정과 교회에서 부흥의 키맨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경작할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옛사람의 허물이 남아있을지라도, 성령의 충만함과 주님의 치유하심을 통해 온전한 사명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온 열방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 속에서, 여러분이 정복하고 다스리며 지키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손길로 다듬어진 성숙한 인격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복된 생애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