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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25-30(320) ‘성숙한 은혜를 가진 성도’ 2026. 4. 26.
몸이 약한 한 남자가 있었는데, 요양하면서 건강을 챙기고자 시골에 내려가게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집도 낡고 불편한 데, 설상가상으로 집 문 앞에 나무가 버티고 있어서 출입하는데 너무 불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기도의 한 가지 확신이 온 것입니다. 그것은 ‘날마다 집 앞에 있는 나무를 힘껏 밀어라.’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응답이라 생각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무를 힘껏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합니다. 1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나무가 시들지도 않고 도리어 더 성장해서 푸른 나무 가지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가 그동안 헛수고를 했네요. 나무는 옮겨지기는 커녕 전혀 움직인 흔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라는 볼멘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지금 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봐라’거울을 본 남자는 깜짝 놀랍니다. 1년 동안 자신도 모르게 변화된 몸이 나타난 것입니다. 몰라보게 건강해져서 근육도 생기고, 병약하던 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을 괴롭히던 끊임없던 기침도 어느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무가 없어지라’고 순종하며 움직였는데, 나무는 그대로 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건강한 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의 모습은‘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빌립보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던 목회자 에바브로디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고, 빌립보교회는 옥중에 갇혀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 에베브로디도를 보냅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원치 않은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병들었다’는 말은 며칠 아프다가 훌훌 털고 일어서는 감기 같은 병이 아닙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중한 중병(重病)이라는 의미입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에바브로디도이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희망이란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중병에 걸린 에바브로디도를 하나님은 모른 체 하지 않았디’는 말입니다. 이런 내용이‘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라는 문구에서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을 병에 걸린 에바브로디도가 살아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헌신하는 자가 받는 복인 줄 믿습니다.
더군다나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바울에게도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을 위해 먼 길을 찾아오다가 죽을병에 걸린 에바브로디도를 위해 하나님에게 기도한 바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으셨고, 결국 에바브로디는 건강하게 회복됩니다.
만에 하나 에바브로디도가 죽었다고 가정하면, 바울은 평생 가슴에다가 그 짐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건강한 에바브로디도를 봅니다. 그래서 바울도 기쁜 나머지 27절‘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바울의 마음과 생각, 에바브로디도,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성숙한 은혜가 우리 자신과 우리 <덕민 교회>에 필요합니다.
신앙적인 열심은 있으나, 성숙된 신앙 인격을 가지지 못해서, 상대방에게 심한 상처를 주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바울과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빌립보교회처럼 성숙한 은혜를 드러내고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1. 칭찬의 은혜를 가지는 성도.
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성숙된 은혜의 첫 번째 모습은 ‘칭찬의 은혜’입니다. 25절에 보면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다섯 가지 칭호로 부르고 있습니다. 1)나의 형제요 - 바울과 함께 신앙을 공유하며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랑을 나누는 자입니다. 2)함께 수고하는 자 - 동역자를 의미합니다. 복음 증거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자입니다. 에바브로디도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함께 사역자임을 증거하는 말입니다. 3)함께 군사된 자요 -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대적자들과 계속해서 싸우는 일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였음을 뜻합니다. 4)너희 사자(메신저) - 에바브로디도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권위를 부여받고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5)나의 쓸 것을 돕는 자 - 봉사자라는 의미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필요를 도와주기 위해서 보낸 자입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형제, 수고, 군사, 사자, 쓸 것을 돕는 자라고 인정하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성숙한 은혜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칭찬에 인색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넘치는 칭찬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어린아이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칭찬하지 않습니다. 아직 성숙되지 못한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다 큰 성인이라고 해도, 타인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분입니다. 성숙된 인격을 가진 분들은 타인에 대한 칭찬을 넉넉하게 표현하는 분들입니다. 성숙된 성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성도를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넉넉하다면, 그 분은 성숙된 신앙을 가진 분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의사들도 이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진단을 내립니다. 이 아이는 뼈와 관절의 심한 질환으로 언제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의사들이 우려하였던 영아기 때에 죽지 않고 힘들게 극복합니다.
하지만 심한 질환 때문에 늘 소외된 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이런 아이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버지의 칭찬과 격려였습니다. 아버지는 병약한 아이에게 ‘너가 받고 있는 상처를 찬란한 별로 만들라. 너는 뛰어난 아이’라고 말하며 꿈과 힘을 심어 줍니다.
결국 이 아이는 아버지의 칭찬에 어긋나지 않게 훌륭한 인물로 성장합니다. 성장하여서 의사가 됩니다. 그리고는 영국외과학회 회장, 국제외과학회 회장을 지내는 훌륭한 의사가 됩니다. 바로 현대 성형수술의 창시자인 해리 플래트 경(Harry Platt, 1886~1986)경입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해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합니다. 바울의 칭찬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할뿐더러, 칭찬하는 사람들조차 거짓으로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칭찬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칭찬이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칭찬이 되길 소망합니다. 에바브로디도처럼 칭찬 받을 만한 삶을 살아야 하며, 바울처럼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지 말고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성숙한 은혜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기쁨의 은혜를 가지는 성도
죽을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메던 에바브로디도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바울은 ‘무슨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였나?,‘어떻게 병을 고쳤는가?’말하지 않습니다. 병의 원인이나 치료 과정보다는‘병을 낫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의 병세 악화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걱정합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이 큰 수술을 받거나 건강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이 밝혀지면,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성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목사님이 아파서 병원에 있으니 걱정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빨리 쾌차하시라’고 기도합니다.
몇주전에 부활주일을 가지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기뻐 찬양하였습니다. 저는 고난주간과 부활주일 기간이면 빠지지 않고 성도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며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나의 고난과 부활이 되듯이, 내가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순종과 헌신은 하나님에게 기쁨의 선물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기뻐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 상황도 같은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런데 몸을 추스린 에바브로디도가 건강한 모습으로 빌립보 교회에 다시 돌아옵니다. 이에 빌립보성도들은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28절입니다. 28절 보십시다.‘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바울이 서둘러서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로 다시 보낸 것은 ‘빌립보 교인들의 근심을 덜게 할 뿐 아니라, 기쁨을 주기 위한 큰 배려’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 또한 더 쉬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빌립보 교회로 돌아갑니다. 이 또한 자신이 누린 하나님의 기쁨을, 빌립보교회 성도들 역시 누리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 기쁨 보다는 타인의 기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은혜를 가진 성도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남을 칭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내 기쁨보다는 타인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고 챙겨주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남의 기쁨을 파괴하거나 빼앗게 되면, 반드시 내 기쁨도 사라진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서운 내용이지만 이런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타인의 기쁨을 빼앗으면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온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장례식장에 공교롭게도 세구의 시체가 동시에 들어옵니다. 장의사는 시체를 염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시신 세 구가 모두 한결같이 웃는 모습입니다. 항상 인상 찡그리고 고통 중에 죽음을 만난 사람들의 시신만 보다가, 만면의 웃음을 띄고 있는 시신을 보니 정말로 궁금합니다. 나중에 유족들을 통해서 웃으면서 죽게 된 상황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사람은 로또 복권을 샀는데, 로또 복권이 당첨된 것을 확인하고 너무 기뻐서 펄쩍 뛰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정작 본인은 로또 복권으로 인한 세상 즐거움은 누리지도 못하고, 로또 복권 때문에 도리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도 웃고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집에서 하나뿐인 4대독자 귀한 아들이 대학시험을 재수, 삼수 낙방합니다. 그런데 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대학이 서울대학인 것입니다. ‘아들이 서울 대학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사대독자가 잘 풀리는 것이기에 웃고 죽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사람의 죽음입니다. 처음에는 로또 복권 당첨, 두 번째는 아들의 명문대학 입학이란 인정될만한 사연이 있는데, 세 번째 사람은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어떻게 죽었느냐?’하면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벼락에 맞아 죽는데 왜 만면의 웃음을 띄고 죽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랬답니다. 번개가 번쩍하자, 사진 찍는 줄 알고, 입을 크게 벌리고 ‘치즈’하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신앙적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로또로 죽던 벼락에 맞아 죽던, 그 어떤 죽음이라도 ‘죽음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찾자 온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기쁨이라고 해서 모든 기쁨이 다 같은 기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사라져 버리는 기쁨이 아니라 참된 기쁨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아울러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것인데, 나를 부르실 그때에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띄고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제 부름에 응합니다’라는 멋진 신앙고백을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은혜
30절‘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30절은 에바브로디도의 열성적인 헌신과 충성을 칭찬하는 말입니다. 에브로디도는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열성적으로 일합니다. 이렇게 충성스런 인물이 내 곁에 있으면, 그 사람은 인간관게에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충성스런 일꾼이 교회 안에 있으면, 그 교회는 복 받은 교회입니다. 이런 충성스런 교인이 목회자 곁에 있으면, 그 목회자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힘있게 일할 수 있는 복된 목회자입니다. 우리 모두는‘에바브로디도의 이런 충성과 헌신을 본받고 섬겨야 한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열성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교회는 바울과 같이 선두에 서서 헌신하는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에바브로디도처럼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헌신자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해 물질로 도와주면서 크게 조력해주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같은 헌신자들도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물질로 조력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성숙한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일까요? 어떤 교회가 은혜가 넘치는 교회일까요? 구호만 거창하게 내 걸고 외치는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만 크게 지어 놓는다고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넘치는 교회는 바울과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역자와 이들을 위해 믿고 헌신하며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미국 시카고에는 휘튼 칼리지라고 하는 명문 기독교 대학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브랜차드 홀(Blanchard Hall)과 빌리 그레이엄 홀(Billy Graham Hall)이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 2층에는 그 학교가 배출한 약 5천명 선교사들의 명단과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몇 사람의 사진에는 십자가가 붙어 있는데, 그것은 선교사의 삶을 살다가 순교를 하였다는 표시입니다.
1956년 에콰도르 아마존 정글에서 미국 선교사 5명이 와오라니 부족과 접촉 시도 중 살해당합니다. 남미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짐 엘리엇 선교사가 바로 이 학교 출신입니다.
찬송가 213장(나의 생명 드리니)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생명 드리니, 손과 발을 드리니, 나의 음성을 드리니, 나의 보화를 드리니, 나의 시간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두 뜻대로 살고 봉사하게 해 달라’는 고백의 찬송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나의 생명을 드리고 나의 손과 발을 드리고, 나의 음성과 나의 물질과 나의 시간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드립니다. 다가오는 5월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길 소망합니다.
저는 어디에 가서나 저희 교회 성도님들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항상 자랑합니다. 연약한 가운데지만 최선을 다해 물질로 헌신하고 사랑으로 나누며 보듬어 가는 모습을 자랑합니다.
제가 왜 자랑할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보여주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모습이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만드는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만 여러분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또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을 그렇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더 많이 받도록,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더 성숙된 신앙을 가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