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스님
오래전 이야기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 안산언니가 서울로 이사해서 있던 아파트에 놀러 갔다. 그날 부산에서 ** 보살님이 오셨고, 이종언니도 왔다. ** 보살님을 친견하러 아는 언니부부도 왔다. 저쪽 방에서는 보살님을 친견하고 있었고, 나는 이쪽 방에서 이종언니와 중광스님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중광스님은 큰 종이 위에서 큰 마포(복도 닦는 걸레)에 먹인지 색감인지 뭍혀 이리 저리 마음껏 마포자루를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하여튼, 중광스님이 예술작업을 하시는 모습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은 것을 보았다. 그 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왜 눈물이 나오는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눈에서 마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면서도 나는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신기했다. 같이 보던 이종언니는 “엄마야, 주수야 왜 우니? 나는 눈물이 안 나는데, 나도 울어야 하는거니?”라며 우는 나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무척 민망했다. 나는 가끔 그 때 울던 일이 생각나는데 왜 울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나의 생각과 감정과는 달리 몸이 우는 반응을 해서 나도 무척 당황스러웠다.
3년 전 스님 열반하셨을 때, 스님은 통도사 다비장에서 다비식을 했었다. 통도사 다비장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가야지’ 했다. 스님오시는 길목에 서서 스님의 운구행렬을 맞이하는 모습이 머리 속에서 연상되며 영화처럼 보이는 듯하였다. 2002년 3월 13일, 안산에서 언니와 *** 언니가 오고, 나는 큰언니와 같이 갔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 큰 스님 돌아가시면 불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데… 상상하던 것처럼 스님을 맞이하지 못했다. 길이 구불구불하였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만장(輓章)도 몇 개 되지 않고 초라하게 보였다. 안산언니는 급히 시장에 내려가 포목점에서 비단으로 된 輓章천을 몇 개 사서 급히 글을 적어 다비식장 뒤 담에 세웠다. 나는 시장을 내려가고 올라 올 때 내가 운전을 했는데, 그 때 마음 속에서 ‘스님 스님 잘 가셨소, 중광스님 잘 가셨소, 스님 스님 큰스님, 스님 스님 중광스님, 스님 스님 사랑해요, 스님 스님 잘 가셨소 등의 말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그냥 무심코 지나쳤다. 스님 영결식 관계자 스님과 중광스님 상좌(우진이)는 “스님의 유골은 내일 새벽 5시 경에 수습할 것”이라 했다. 밤새도록 가만히 태워서 다음날 유골을 수습한다고 한다. 우리들은 다음날 3월 14일 새벽에 스님 마지막 모습을 뵈러 갔다. 조카들도 따라 나섰다. 스님들이 중광스님 유골을 몇 점 수습하여 서울로 가셨다. 나는 스님 유골을 태운 숯덩이를 몇 점 주워 담고는 강의가 있어서 먼저 내려왔다. 안산언니는 스님 다비장을 돌면서 ’어머니‘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안산언니와 *** 언니는 통도사 저녁 예불하는 모습 보려 급하게 내려갔다고 했다. *** 언니는 저녁예불 종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몸이 산화되어 우주와 하나 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 다음날 3월 15일 언니 두 분은 기차로 서울로 돌아가는데 내가 부산역에 배웅을 나갔다. 개찰 하는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곧 언니 둘도 들어가야만 했다. 그 시간에 나는 스님을 느꼈다. 엉엉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는 우진이가 되어 명치가 탁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얼른 언니에게 “우진이다”라고 말을 했다. 우진이 마음이 된 나는 역바닥에 마구 뒹굴고 싶었다. 엉엉 소리가 났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모자 달린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얼른 모자를 덮어쓰고 입을 막아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했다. 안산언니가 내 머리를 톡톡 쳐 주며 “우리 떠날 시간이다. 개찰했다. 그만 해라.”고 했다. 나는 어제처럼 마음 속에서 글이 나와서 오른손으로 글을 적는 시늉을 하니 언니가 얼른 종이와 볼펜을 주었다.
스님 스님 잘 가셨소
어찌 이리 잘 가셨소
맑고 맑은 우리스님
곱고 고운 우리 스님
정녕 정녕 잘 가셨소
해 맑은 미소 또렷한 눈동자
누굴 통해 본단 말고
스님 스님 우리 스님
스님 스님 중광스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중광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목탁소리 스님소리
사랑해요 사랑해요
중광 큰스님 사랑해요
스님 스님 중광스님
스님 스님 도인스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참으로 사랑해요
언니 두 분을 떠나보내고 나는 그 길로 바로 통도사 다비장으로 향했다. **이가 가는 것 같았다. 톨게이트에서 표를 뽑는데 **이의 마음이 되었다. 무척 외로웠다. 다비장 입구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몰래 걷어치우고 아무도 없는 산 속 다비장에서 서성이다가 화장실 옆에 차를 세워두고 운전석에 앉았다. 인적이 없고 바람 소리만 무성하다. 무서워 마음은 빨리 내려가야지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시동을 걸고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마음과는 달리 몸이 그냥 움직이지 않았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 때 안산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차 속에서 스님에 대한 시를 적느라 점심도 아직 못 먹었다.”며 시를 읽어 주었다. 언니는 나보고 “니도 많이 적어라”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순간 ‘시를 적은 경험이 없는 내가 어떻게 시를 적나’는 생각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마음에서 글이 나오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늘 가지고 다니던 기도 노트를 꺼내어 급하게 적었다.
스님 스님 우리 스님 스님 스님 어디 갔나
여기 있네 까꿍 저기 있네 까꿍
여기서 까꿍 저기서 까꿍
까꿍 까꿍 소리에 정신이 번쩍
까꿍 까꿍 소리에 벼락이 치고
까꿍 까꿍 소리에 소낙비 후두둑
엉엉 울면서 오만 생각들이 다 지나갔다. 참으로 불쌍한 중생들이다. 나도 그 속의 하나이고.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큰언니, 큰언니 식구들, 우리 자매들, 조카들, 찬호, 찬호아버지, 친척들, 아는 사람들 모두, 우리 농아인들, 장애인들, 이회창, 한나라당, 경순(6촌 언니인데 교통사고로 목 디스크로 입원 중이었다)… 엄청나게 우는데 또 글이 생각났다.
스님 스님 우리스님 스님 스님 어디 있나
솔바람 강바람이 내 아님이 없으며
산하대지 모두가 내 몸 아님이 없으니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모두
계속해서 소리내어 엉엉 울면서 오만 사람들이 다 생각났다. 모두 불쌍하고 가련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대신 참회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일체중생 이락하게 살펴주시길 있는 지성 기우려서 권청합니다…’하며 억수로 울었다. 108참회문(?)에 나오는 문장, 내가 이날까지 기도 때마다 주문 외우듯이 외우는 ‘일체중생 이락하게 살펴주시길 있는 지성 기우려서 권청합니다.’ 진실로 내 마음이 그러했다. 부처님, 부처님을 수 없이 불렀다. 그러면서 한 쪽 마음에서는 노래를 불렀다. ‘♬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 간다…’ 그러는데 또 마음에서 글이 생각났다.
스님 스님 우리스님 스님 스님 중광스님
너무 커서 못보았고 너무 작아 못보았네
빛 속에서 빛 찾았고 광 속에서 광 찾았네
빛이 중광 광이 중광 중광인줄 내 몰랐네
어이할꼬 어이할꼬 내 가슴 어이할꼬
어이할꼬 어이할꼬 타는 가슴 어이할꼬
**이 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얼마동안을 그렇게 울었는지… 또 마음 속에서 글이 생각났다.
스님 스님 중광스님 스님 스님 도인스님
내 몰랐네 내 몰랐네 내가 잘나 내 몰랐네
중광은 중광인데 내가 잘나 내 몰랐네
명치가 탁 막히고 숨이 막혀 못 쉬겠네
스님 스님 우리스님 스님 스님 도인스님
스님 손길 안아주오 스님 눈길 훑어주오
**이가 몸부림을 치면서 우는 것 같았다. 핸들에 엎드려 몸부림을 쳤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겉 모습에 속은 것 같았다. 그 속에는 우리 모두가 포함되는 것 같았다. 또 글이 생각났다.
스님 스님 중광스님 스님 스님 큰 스님
어쩌다가 이리되고 어쩌다가 이리 됐소
나도 속고 너도 속고 우리 모두 다 속았네
세인들이 스님 보고 걸레라 해서
까막눈 나도 따라 걸레라 했네
걸레가 금덩이고 걸레가 참 내 모습
스님 가신 뒤에야 이제야 눈이 번쩍
내 울음은 계속되었고 글도 계속해서 나왔다.
스님은 오고 감이 원래부터 없건마는
돌대가리 내 눈에는 오고 감이 분명하니
스님 없는 벙어리 절간
개미하나 얼씬 없어
스님 모습 내 안에서 피가 통통 살이 통통
아니 스님 언제부터 내 속에 있었나요?
내가 니고 니가 내고 내가 우진 니가 중광
우진아 우진아 내 자식 우진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내 자식 우진아
일어나서 걸어라 어서 어서 걸어라
내가 닌데 내가 닌데 니가 중광 니가 중광
니가 낸줄 알면 된다 니가 낸줄 알면 된다
엄마 말씀 잘 듣고 똑 바로 걸어라
앞을 보고 걸어라 반듯하게 걸어라
이 자식아 내 자식아 반듯하게 걸어라
아장아장 걷는 모습 이쁘기도 하는구나
터벅터벅 걷는 모습 참하기도 하는구나
그래 그래 그래 맞다 그래 그래 그것이야
오늘에야 내가 있고 오늘에야 니가 있네.
스님이 돌아가신 것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스님이 대신 가신 것 같았다.
(중략)
시계를 보니 저녁예불 시간이 가까웠다. 그저께 *** 언니가 저녁예불 종소리에 자신이 산화되었다는 기억이 나서 나도 오랜만에 저녁예불 종소리 들으러 서둘러 내려오는데, 그 시간까지 점심도 안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가 아침에 서울 가는 이모 두 분에게 김밥을 사서 주고, 나에게도 하나를 줘서 차 속에 있었다.
늘 아프고 몸이 약했던 내가 그 시간까지 물 한모금도 먹지 않았는데도 위가 아프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김밥을 하나 입에 넣었는데 도저히 힘이 없어 씹을 수가 없었다. 이가 솟아오른 것 같았다. 단무지가 매우 단단했다. 겨우 설렁설렁 대충 씹어 삼키고는 너무 이상하여 또 하나를 입에 넣었다. 마찬가지로 씹기 힘들었다. 김밥이 맛은 없었으나, 잘 씹을 수 없는 것이 하도 신기하여 실험하느라 또 하나 먹고 또 먹고 하다보니 부산까지 오면서 두 줄이나 먹었다.
통도사 종각 앞에 서서 종소리를 들으며 ‘♬ 사랑도 부질 없어, 미움도 부질없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네…’ 노래를 마음 속으로 부르는데 우진이 노래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날 이후부터 중광스님과 인연이 깊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