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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강해(18)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3:13-15
교회의 일꾼? 하나님 나라의 일꾼!
지난 한 주간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의 삶의 중요한(사소한 것이라도) 선택이
달라지신 것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신실한 성도...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형제같이 권면하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좋은 소문이 난 교회였지만....,
성도들 중에는 일부 바울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곡해하여 잘못된 행실로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바울은 살후2:2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후 2: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예를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살후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재림의 그 날만
기다리며 먹고 마시고 방종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까지 찾아다니며 ‘믿음이 없다’고
몰아붙였습니다. 더욱이 자기들의 재물을 다 쓰고는
주님 재림하시면 아무 소용없는 재물이라며
다른 사람들의 것도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심각성을 우리도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공중에 들려 올라간다는
다미선교회의 휴거설로 나라가 온통 소동을
피웠습니다. 휴거 날에 대비한다며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바람에 실종자, 가출자, 집단 생활자로 인해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회사원, 교사, 공무원 등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활동을 하는 기현상도 벌어졌습니다.
거기에다 1992년 10월 28일에는
휴거의 현장을 생중계한다며....
다미선교회 본부에서 TV 생중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휴거는 없었고....,
신도들의 재산 34억 원을 헌납 받아 가로챘다는 혐의로 ....
1992년 12월 4일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장림이 구속됨으로 다미선교회의 휴거설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임박한 재림 신앙을 곡해하면
신앙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도 바울의 권면조차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면을 듣지 않으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교회 안에도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면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주장이나 고집을 꺾지 않고
영적 지도자의 권면을 무시한다면
그 신앙 공동체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교역자들은
속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목회자나 교회 안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습니까?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물론 목회자들이 진리에
먼저 바로 서야 합니다.
철저하게 말씀 위에 서 있다는 전제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의 종인 목회자들이 말씀에
바로 서 있다고 확신하신다면 그 권위에 순종하십시오.
교회의 질서를 세우십시오. 그의 책망하는 소리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교회가 바로 서는 일이요,
내가 사는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부 잘못된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인 바울의 권면에도 자신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다 강력한 명령을 내립니다.
3: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떠나라”는 말씀의 의미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오늘 본문 14-15절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14-15절>
14절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절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는 것은
깊고 친밀한 교제를 금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끄럽게 하라”는 원어,
엔트레포(ejntrevpw)는
.... ‘안에/안으로+돌다’의 합성어로,....
“방향을 자신에게 돌리다”를 뜻합니다.
곧 생각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한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수치를 느끼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그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혹시라도 회개하고 공동체에 유익한 사람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징계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18:15-17>
15절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절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할 수만 있으면 회개케 하여
돌아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이유가 바로 앞 절에 있습니다.
마18:14(잃은 양 비유)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무엇보다도 한 영혼을 천하보다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의 가르침이
모든 사역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교제를 금하지만,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앞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면서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5절)고 기도한 바가 있습니다.
그 영혼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쉽게 거두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권면을 해도 자기주장을 꺾지 않습니다.
애굽왕 바로를 보세요
모세는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더욱 걍퍅해져서
결국 더 많은 재앙을 당하게 되고...,
결국은 장자를 일게 되고....
급기야 그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 전멸하고
마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얼마나 못된 일을 많이 했습니까?
아버지 엘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었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제사를 제대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미리 착복하는 등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삼상2:17).
또한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등(삼상2:22) 문란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나쁜 소문이 퍼지자 그의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마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강퍅하여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에 나가서 한 날에 다 같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맙니다.
사울 왕도 처음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는
겸손하고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왕이 된 후 변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강퍅하여 사무엘 선지자와 계속하여
갈등을 빚었습니다.
결국 사울은 회개할 기회를 잃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 왕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었습니까?
완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도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그 범죄를 감추기 위해
완전범죄를 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는 다윗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 성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딸과 같이
귀한 암양 새끼 한 마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많은 동물들을 두고 ...
가난한 자의 암양 새끼 한 마리를 빼앗아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해 대접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크게 진노했습니다.
그런 못된 인간은 더 이상
살려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 부자를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하고 ...
부자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가난한 자에게는
그가 빼앗긴 것의 네 배를 갚아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삼하12:7).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다윗의 차이가 납니다.
다윗은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11절)고 회개하였습니다.
그의 장점은 회개하는 데 빨랐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내가 권면을 받아야 할 사람일 수 있음을 인정하십시오.
내 마음이 강퍅하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완고하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강퍅하게 됨을 면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
강퍅하면 망합니다.
주의 훈계를 받을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과 같이 자신의 죄(잘못, 실수)가
드러나거든 속히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권면을 하는 입장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권면하는 사람이 지칩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여기서 “선을 행한다”는 말은
형제와 같이 권면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잘못된 형제들에게 권면을 해서
바로 잡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반박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예, 낙심하게 됩니다.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두 가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면 거둔다는 것입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람들이 대부분 낙심하는 이유는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역사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둘째,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겠지요.
그러나 사람으로부터 보상을 기대하서는 안됩니다.
궁극적으로 갚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 예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31-46을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말씀을 보면 먹을 것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입을 옷을 줍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 다친 사람들을 돌봐줍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런 행위를 보면서
“여기에 있는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다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칭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에게 행하는 선은
예수님께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으신 후에는 몇 배의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10:42을 보면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한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낙심하는 것 보셨습니까?
오늘 열매가 없다고 탄식하는 것 보셨습니까?
때를 기다리며, 반드시 열매가 있음을 믿기에
낙심하지 않고 땀 흘려 수고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바라기는 바울의 중보기도대로
“주께서 너희(저와 성도님들의)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잘못된 길을 가는 성도라도
사랑으로 권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만져 주시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기억할 것은 우리가 행한 선한 일은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우리 금산교회 성도들은 !
피차 기도하며, 서로 권면하며,
피차 선을 행함으로 모든 성도들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흠 없이 티 없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