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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7코스 역방향
임진강역-사목2리마을-반구정마을-
사목고개-당동2리마을입구-당동2로-
당동1로-당동유수지-당동근린공원-
방촌로-임월교-방촌교차로-안골입구-
대명골천교-내포교차로-내포리쉼터-
파주시환경관리센터-재활용장-
낙하나들목-낙하리아랫말버스정류소
20250122
1.코스 소개 : 두루누비
1)코스개요
- 낙하IC에서 임진각관광지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 황희가 세웠다는 정자, 반구정에서 쉬어가면 좋다.
- 대표적인 평화관광지 임진각에서 끝맺는 길
2)관광포인트
- 황희가 임진강 하류의 절경을 감상했다는 정자 반구정
- 수십 년간 실향민의 슬픔을 달랜 임진각관광지
- 평화를 주제로 조성된 임진각평화누리공원
3)여행정보(주의사항)
- 임월교 진입 전 도로확장공사(‘24년 연말까지) 구간은 보행로가 없으니 이용에 주의해야 한다.
- 주요 경로 : 낙하IC 4.3Km 임월교 4.6Km 반구정 3.2Km 임진강역
- 길이 12.1km, 소요시간 4시간, 난도 보통
- 시점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엘지로 732
대중교통) 문산역 인근 문산읍행정복지센터에서 034번 버스 이용, 낙하리아랫말 하차
- 종점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15
대중교통) 문산역에서 058A, 058B 버스 이용, 임진강역 하차
2.안개기행 - 자유로와 통일로, 문산천과 방촌로
DMZ 평화의 길 7코스 역방향 탐방을 위해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저 임진강역 뜰의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 시비 앞으로 갔다. 박봉우(朴鳳宇, 1934~1990) 시인의 '휴전선' 시비는 2001년 11월에 건립되었다. 시비는 바퀴 모양의 화강암에 박봉우 시인의 얼굴이 부조되어 있고, 시 작품은 신영복 선생의 글씨를 조각가 김운성 씨가 새겼다. '휴전선'은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전쟁이 멎은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되었다. 작품은 전쟁의 상흔, 휴전의 긴장, 통일의 갈망 등을 담고 있다. 탐방객은 시비 앞에서 국토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으로 숨을 골랐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박봉우의 '휴전선' 전문.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그 날이 언제일까? 선생의 아픔과 뜨거움이 가슴에 꽂힌다.
임진강역 앞을 달리는 임진각로 끝에 임진각관광지가 보인다. 임진각관광지는 "통일안보관광지로 각종 전적비와 미얀마 아웅산 추모위령탑, 망배단, 통일연못, 만남의 장, 철마는 달리고 싶다, 자유의 다리, 열차 카페, 평화의 종각이 있으며, 각종행사를 비롯한 인삼축제, 장단콩축제 등 세계평화축전이 개최되었던 평화누리가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평화의 길 탐방 전에 임진각관광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일행은 벌써 탐방을 출발한다. 임진각관광지 탐방은 뒷날 개별적으로 탐방할 계획을 세우고 평화의 길 8코스 시점의 이정목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반구정 방향으로 평화의 길 7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한다. 날은 찌푸려 있다. 풍경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와 불분명하다.
문산읍 마정리 들녘은 북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농로를 따라가며 마정리 들녘을 살핀다. 희부연 들녘 북쪽에 자유나들목이 가늠된다. 서쪽 임진강변을 달리는 자유로는 자유나들목에서 동쪽을 달리는 통일로와 만나고, 통일로는 임진강의 통일대교를 건너 판문점으로 달리는 풍경이 그려진다. 판문점에서 개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이름을 붙인다면 통일로가 좋을까? 자유로와 통일로가 만나는 자유나들목을 평화나들목이라 고치고, 임진강을 건너는 대교를 평화대교 또는 평화통일대교라고 개명하면 어떨까? 그래서 서울, 문산, 임진강, 판문점, 개성, 평양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평화로, 평화통일로가 명명하는 생각을 품는다. 자유, 통일, 평화의 사상이 문산읍 마정리 들녘의 부연 풍경을 풀어헤치는 것 같다.
평화의 길을 따라 임진각로와 경의중앙선 철로를 횡단하여 마정리 남쪽 들녘을 지나서 문산읍 사목리로 넘어간다. 사목리는 임진강의 광활한 모래벌판(沙)에 매년 찾아오는 철새와 따오기(鶩)가 장관을 이루어 사목리(沙鶩里)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사목2리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에 대전차(對戰車) 방호벽(防護壁)이 설치되어 있고 동쪽에 해가 솟아 있다. 햇무리가 진 해는 밤하늘의 보름달처럼 은은하다.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어 주십시오. 백제 시대 정읍에 사는 아낙이 행상 나간 남편의 안전을 달에게 부탁하여 불렀다는 '정읍사' 노래가 떠오른다. 해님이시여, 햇무리를 물리치고 이 부연 풍경을 맑고 밝은 풍경으로 돌려 주소서. 해님에게 간절히 염원하며, 반구정로를 따라간다. '반구정로'는 '자유로' 동쪽에서 자유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반구정로에서 자유로 서쪽의 임진강이 보일텐데, 해님에게 소망한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임진강은 아침 안개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임진강 모래벌판에 철새들이 내려앉아 있거나, 물 위를 날아가는 철새 떼 풍경을 떠올린다.
평화의 길은 '반구정로'의 '황희 선생 유적지' 입구에서 '반구정로'와 헤어져 '사목로'를 따라 사목1리 반구정마을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다. 황희 정승이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반구정(伴鷗亭)이 눈에 어른거린다. '자유로'의 사목1교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황희 선생 유적지'로 가서 반구정(伴鷗亭)을 살피고 되돌아올까? 탐방객 일행 몇 사람은 사목1교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반구정으로 향하고 있지만, 길동무는 벌써 '사목로'로 들어섰다. 예전에 반구정을 탐방했다고 위로하며 탐방객도 '황희 선생 유적지' 탐방 마음을 접었다. 그럼에도 여유가 없이 평화의 길 완주 목적에만 열망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버릴 수 없다. 방촌(厖村) 황희(黃喜, 1363~1452) 정승이 애송하였다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 751-814)의 오언고시 '送柳淳(송유순, 유순을 보내며)'가 목덜미를 잡는다. "청산은 황하에 닿아 있고/ 그 아래 장안 가는 길이 있네./ 세상에서 명리를 좇는 사람은/ 서로 만나도 늙었음을 모르네. 靑山臨黃河(청산임황하) 下有長安道(하유장안도) 世上名利人(세상명리인) 相逢不知老(상봉부지노)" 세상 사람들이 명예와 이익을 좇아 다니느라고 늙어 가는 줄을 모르듯 탐방객은 탐방 완주 욕망에만 사로잡혀 탐방의 본래 뜻을 놓치는 본말전도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황희 정승의 호 방촌(厖村)이 품고 있는 크고 여유로운 풍요로움을 찾아야 한다.
'반구정로'와 작별하고 '사목로'를 따라 사목1리 반구정마을을 지난다. 반구정마을은 황희 정승의 가문 장수 황씨 집성촌이라고 한다. 사목로의 '반구정황가네' 음식점 왼쪽 언덕에 장수 황씨 사목종중 선조 묘역이 이를 증거한다. 사목1리 반구정마을에서 사목로를 따라 사목3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사목1리와 사목3리를 경계하는 것 같은 사목고개에서 평화의 길은 오른쪽 산으로 들어가 숲길을 통과한다. 군데군데 군사훈련 시설물들이 있는 숲길은 낙엽이 깔려 있고 그 밑은 얼어 있어서 미끄럽다. 방심한 탓에 결국 미끄러져 발목이 접히고 말았다. 응급 조치를 하고 탐방을 마쳤지만 다음날 병원에서 깁스를 하는 치료를 받았다.
산길을 내려오면 문산읍 당동2리 마을이 자리하고 그 북쪽은 문산읍 운천리(雲泉里) 지역이다. 마을 입구에서 당동2리 마을을 살피며, 운천리 지역의 풍경을 가늠한다. 문산읍 문산리를 통과한 경의중앙선과 통일로가 나란히 서쪽 임진강 방향으로 이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당동2리 마을 입구에서 평화의 길은 동남쪽 당동1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쪽의 낮은 구릉지 능선을 걸어 당동리 중심 시가지 외곽을 통과한다. 문산읍 당동리 지역은 고층아파트 단지들이 자리하고 있고, 현재도 개발 중에 있으며, 공사가 중단된 고급빌라가 흉물스럽다. 문산읍 당동리(堂洞里)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산의 중심 상업지구인 문산리 시가지의 변두리 지역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아파트단지 개발 및 당동 산업단지, 상업지구 조성 등으로 문산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구 밀집 지역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당동리 힐스테이트아파트 뒤쪽 구릉지 능선에 산안개가 피어난다. "나에게 길고 긴 머리카락이 있다면 저 산안개처럼 넉넉히 풀어헤쳐 당신을 감싸리라"(류시화의 '산안개' 전문) 사랑은 안개에 감싸이는 것, 사랑은 안개로 감싸는 것, 안개 속에 사랑의 그리움이 피어난다. 힐스테이트아파트 옆 당동리 어린이공원을 내려와서 당동유수지 울타리길을 걸어간다. 순식간에 안개는 몰려와 모든 풍경이 무화된다. 임진강으로 흘러가는 문산천이 저곳에 보일텐데, 안개에 휩싸여 오리무중이다.
유수지 제방에서 나와 당동배수펌프장과 고압송전탑 울타리를 지나면 문산천 북쪽의 넓은 들녘이 엷어진 안개 속에 펼쳐진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박현 작사, 이봉조 작곡, 정훈희 노래) 안개 노래를 불러본다. 추억의 그리움 속에 그녀가 보인다. 그녀가 뒷모습을 보이며 앞서간다. 방촌 황희 정승을 기리는 '방촌로'로 나왔다. 안개는 다시 자욱해져 풍경을 숨긴다. 방촌로 동쪽은 문산읍 중심가 문산리 시가지일텐데,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문산역이 저쯤일 것이고 경의중앙선과 통일로가 저곳을 통과할 것이다.
파주시 문산읍 문산리 지역을 개략적으로 살펴본다. "1905년 11월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문산역이 들어섰고, 문산읍 문산리에 파주군청이 이전하였다. 파주군청사는 1951년 1.4후퇴 때 금촌 지역인 현재의 파주시 아동동으로 이전되기까지 47년간 문산리에 있었으며, 파주시의 중심지였다. 비록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주 지역에서 가장 큰 전쟁피해를 입은 곳이었지만 문산읍 문산리는 옛 문산포(汶山浦)의 명성을 이어받아 여전히 파주시 북부지역 중심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경제중심지라 할 수 있다."(이윤희의 '파주시 북부지역의 경제중심지, 문산읍 문산리(文山里)' 요약) "문산(汶山)이라는 지명은 서해의 밀물이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 흙탕물을 이룬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1990년대 이후 큰 수해를 입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2014년 6월 20일 한자 지명을 문산(文山)으로 변경하였다."(파주시청)
파주 지역의 영화를 품은 문산읍 문산리의 안개 자욱한 풍경 속에서 방촌로의 임월교를 건넌다. 문산천을 내려보지만 짙은 안개가 바다를 이룬다. 문산의 명물이 안개일까? 김승옥(金承鈺, 1941~) 작가는 1964년 발표한 '무진기행(霧津紀行)'에서 무진의 명물은 안개라고 하였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문산의 명물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을 재요리한 부대찌개일 것이다. 그럼에도 문산천의 안개바다는 문산의 명물이다. 그러나 그 안개는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이나 계엄군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일깨움의 안개이다. 안개 속에서 탈바꿈하여 새 희망으로 솟아오르는 문산의 명물은 안개이다.
문산천의 임월교를 건너 방촌로를 따라 문산읍 내포리 지역을 통과한다. 여기서부터 평화의 길 7코스는 방촌로를 계속 따라서 내포교차로로 이어지며, 내포교차로를 지나서 방촌로와 작별하고, 자유로 옆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자유로와 평행으로 낙하나들목까지 이어간다. 안개는 끝없이 이어진다. 방촌로의 안개는 두터운 안개의 층을 이룬다. 문산읍 내포리에서도 안개는 그리운 사랑의 노래로 탐방객을 감싼다. 문산읍을 지나 탄현면 낙하리로 들어서며 안개의 두터운 껍질이 한꺼풀씩 벗겨진다. 안개의 껍질을 벗으며 탐방객은 새로운 존재가 된 느낌이다.
류시화 시인은 물안개를 이렇게 노래한다. "세월이 이따끔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 내 주위에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전히 나는/ 그 긴 벤치에 그대로였다.//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 류시화(1958~)의 '물안개' 전문.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 그러나 그 사랑의 인연은 물안개처럼 아주 쉽게 부서진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꼭 그렇게 보아야 할까? 물안개는 감싸면서 새로운 존재로 변모시키고, 사라진다. 사라지면서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물안개 같다. 그래서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인연이 현상적으로는 덧없는 것처럼 보여도 사랑의 인연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쉽게 부서지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이어져 있는 것이 인연이고, 그 인연은 이승의 끝까지 남으며, 저승으로 떠난 사람까지도 추억의 그리움으로 불러낸다. 안개 속 평화의 길 탐방이 반짝인다.
3.탐방 과정
전체 거리 : 12.1km
전체 소요 시간 : 2시간 44분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건너편에 DMZ 평화의 길 8코스 시점 이정목이 서 있고, 중앙 뒤에 임진각관광지가 보인다.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오른쪽 뜰에 박봉우(朴鳳宇, 1934~1990) 시인의 '휴전선' 시비가 2001년 11월에 건립되어 있다.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건너편 임진각로 북쪽 보도에 DMZ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으며, 8코스 시점이다.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서쪽 뜰에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 시비가 세워져 있다.
DMZ 평화의 길 이정목을 배경하여 평화의 길 7코스 역방향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DMZ 평화의 길 이정목에 8코스와 8-1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공중에는 자유로의 마정육교가 지난다.
자유로의 마정육교 아래서 DMZ 평화의 길 7코스는 오른쪽 방향, 8-1코스는 왼쪽 방향이다.
자유로의 마정육교 교각 옆에 DMZ 평화의 길, 경기둘레길,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각각 세워져 있다.
임진각로 북쪽의 농로를 따라 DMZ 평화의 길 7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한다. 임진각로에 제설자재비축창고가 있다.
파주시(坡州市) 문산읍(文山邑) 마정리(馬井里) 들녘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DMZ 평화의 길 8-1코스 탐방로이다. 중앙 뒤쪽에 통일로의 자유나들목이 가늠된다. 통일로는 자유나들목을 거쳐 임진강 통일대교로 이어진다.
마정리(馬井里)는 북쪽으로 임진강(臨津江)이 흐르고, 마을 전체적으로 넓게 농경지가 발달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꽃밭굴, 덤불말, 마정리, 마은골, 배미, 상배미, 새말, 샘말, 서답내, 장지말 등이 있다. 마정리는 옛날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자욱한 어느 새벽에 햇살 기둥이 우물에 꽂히자 그 안에서 갑자기 용마가 뛰어나왔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말우물, 마정이라고도 한다. 마은골은 말우물에서 나온 용마가 울다가 이곳으로 사라져 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밭굴은 꽃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덤불말 또는 참나무배기는 참나무와 덤불이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배미는 배가 드나들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서답내는 앞 내에서 서답(빨래)를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장지말은 장자(부자)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두산백과
자유로의 마정육교 아래를 통과하여 농로를 따라왔다. 더 오른쪽 자유나들목에서 통일로는 임진강 통일대교로 이어진다.
마정리 농로가 지선 통일로와 만나는 곳에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간다.
중앙 뒤 통일로에서 갈라진 지선 통일로가 임진각로와 만나는 곳에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지선 통일로에서 임진각로를 가로질러 경의중앙선 철로 건널목으로 이어간다.
임진각로의 경의중앙선 건널목 입구에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설명안내판과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디엠지 스테이(DMZ Stay) : 어릴 적 전쟁놀이를 하던 마을 뒷산 오솔길이 DMZ를 따라 걷는 대결과 갈등을 해소하는 구도의 평화누리길이 되었습니다. 이 길에 새겨진 당신의 발자국은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치유의 힘이 되고, 공존과 상생을 원하며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따뜻한 위로의 손짓이 될 것입니다. 그런 당신이 위대한 순례자입니다. DMZ STAY는 평화누리길을 걷는 위대한 순례자들에게 잠시 발걸음을 늦추고 쉬었다 가는 보금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경의중앙선 철로의 건널목을 횡단하여 둑방길로 이어간다.
경의중앙선 임진강역이 앞쪽에 보인다. 경의중앙선은 현재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 도라산역까지 갈 수 있다.
둑방길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자유로의 마정육교가 공중으로 지나가고, 그 뒤에 임진강역이 있다.
둑방길을 따라가며 오른쪽 들녘 뒤의 자유로를 가늠한다. 자유로 뒤쪽에 임진강이 흐른다.
둑방길이 끝나는 곳에서 반구정로가 이어지며, 위쪽에는 자유로가 달린다.
물이 얼어 있는 개천의 둑방길을 따라 왼쪽의 '반구정로'로 나왔다. 왼쪽 위는 자유로의 사목2교이다.
둑방길이 끝나는 곳에서 사목로141번길이 대전차방호벽으로 이어지고, 동쪽 하늘에 보름달 같은 해가 떠올랐다.
문산읍 마정리에서 사목리로 넘어와 자유로 동쪽 아래의 반구정로를 따라간다.
반구정로 동쪽 사목2리 마을에 피텍농장이 자리하고 부옇게 햇무리진 해가 중천으로 솟아오른다.
사목 2리 마을을 돌결이 또는 석결동(石結洞)이라 부르는데 예로부터 마을 앞 임진강 변에서 연결된 노루매봉에 돌이 많은데 이 산의 큰 돌은 다른 곳의 돌과 달리 모두 결이 나 있어 붙은 이름이다. 2리에는 마을 근방에 배밭이 많았던 곳으로 배를 우물에 모아서 깨끗하게 씻어 팔았다 하여 배우물이라 불리는 자연마을도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2.03.04
반구정로 서쪽 자유로 동쪽 언덕에 평화누리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서쪽에 자유로가 달리고, 그 동쪽의 반구정로를 따라 평화의 길을 이어간다.
오른쪽은 반구정 가는 길, 평화의 길은 왼쪽 사목로를 따라 올라간다.
자유로의 사목1교 아래를 통과하여 반구정로85번길을 따라가면 황희선생 유적지와 반구정(伴鷗亭)에 이른다.
반구정 및 황희선생영당 :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2호 및 경기도기념물 제29호(문산읍 사목리 190).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명상(名相)인 황희(黃喜)선생께서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 파주시청
반구정로에서 사목로로 들어와 임진강 반구정으로 나가는 반구정로85번길과 자유로의 사목1교를 돌아본다. 사목리(沙鶩里)는 모래 벌판(沙)에 매년 찾아오는 철새와 따오기(鶩)가 장관을 이루어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문산읍 사목리(沙鶩里)는 임진강과 자유로가 마을 앞으로 지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목리는 본래 파주군 마정면(馬井面) 지역으로 사목이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마정면 반장리 전부와 사목리 일부, 운천면(雲川面)의 하리 일부, 칠정면(七井面)의 당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사목리라 하였다. 사목리는 예로부터 임진강으로 둘러싸여 산수가 아름다우며 임진강 건너편 광활한 모래벌판(沙)에 매년 찾아오는 철새와 따오기(鶩)가 장관을 이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다른 이름으로 사모기, 사무기, 새모기, 새무기라고도 불린다. 사목리는 모두 3개의 행정리가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2.03.04
평화의 길은 사목로를 따라 사목1리 반구정마을을 지나간다. 오른쪽에 '반구정문화사랑방&경로당'이 있다.
파주시 문산읍 사목1리 시범문화 반구정마을이 나즈막한 구릉 아래에 자리한다.
사목1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방촌 황희선생이 말년에 임진강변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는 반구정(伴鷗亭)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반구동(伴鷗洞)이라 불린다. 이 마을은 현재까지도 방촌 황희선생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선조의 유지를 받들며 살아가고 있는 장수황씨(長水黃氏) 집성촌 마을이다. 반구동 마을 앞 임진강변에는 황희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는 황희선생영당(黃喜先生影堂)이 경기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영당과 마주한 언덕 위에는 황희선생이 87세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강에 날아드는 갈매기를 벗삼아 남은 여생을 보내셨다는 반구정(伴鷗亭)이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2.03.04
문산읍 사목1리 반구정마을 앞 사목로에 능이버섯백숙 '반구정황가네' 음식점, '가구업체 꼬마나무' 앞을 통과한다.
장어구이, 메기매운탕, 참게매운탕 맛집 '반구정자유로운집' 음식점 앞을 지나 사목로 고개로 올라간다.
사목로를 따라 사목1리에서 사목3리로 넘어가는 사목고개로 올라간다.
사목고개에서 평화의 길은 오른쪽 산길로 넘어간다. 고개 너머는 사목3리 지역이며 '나무그늘아래바베큐장'이 보인다.
사목3리 마을은 반쟁이, 반장동, 반재이 또는 반정이(盤井洞)라고 불리는데 예부터 마을 산기슭에 소반같이 생긴 큰 돌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소반같이 큰 우물이 삼태기 안말 산기슭에 있어 샘물이 많이 나온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2.03.04
산길을 올라서면 왼쪽에 캠핑 야영장인 '나무그늘아래바베큐장'이 있다.
반구정 1.3km, 성동사거리 19.3km 지점으로, 평화의 길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군사훈련 시설이 곳곳에 있다. 산길은 낙엽이 덮여 있고 낙엽 아래는 얼어 있어 미끄럽기에 조심해야 한다.
군사훈련 시설들이 곳곳에 있는 산길을 걸어 임도로 나와 걸어온 산길을 뒤돌아 보았다.
문산읍 사목리에서 당동리로 넘어왔다. 임도에서 다시 왼쪽 산길로 이어간다.
낙엽 깔린 산길에서 얼음에 미끄러져 발목을 다쳐 응급치료를 한 쉼터의자를 뒤돌아본다.
산길에서 율곡로123번길로 내려가서 오른쪽 당동1교로 이어간다. 산길 입구에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율곡로123번길을 따라 당동1교로 이어간다. 오른쪽은 국도37호선 율곡로로 진입하는 출구이다.
산길에서 율곡로123번길로 내려와 당동1교로 이어가다가 산길 입구와 오른쪽 당동2리 마을을 돌아본다.
왼쪽 뒤 산길에서 내려와 걸어온 율곡로123번길과 당동1교를 뒤돌아본다. 당동1교 아래는 국도 제37호선 율곡로가 지난다.
당동1교를 건너 당동2로를 따라 직진한다.
당동2로 남쪽 보도를 따라가다가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 산길로 이어간다.
산길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문산읍 당동1리 지역에 파주한양수자인리버팰리스아파트 고층빌딩이 솟아 있다.
산길에서 당동1로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산길로 이어간다.
당동1로 동쪽에 아파트들이 솟아 있다. 왼쪽은 파주한양수자인리버팰리스아파트, 오른쪽은 파주힐스테이트2차 아파트이다.
당동2로에서 낮은 구릉을 넘어 내려와서 당동1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파주힐스테이트2차 아파트 뒤 산길을 따라간다. 산길 바로 옆에 신축하는 고급 빌라단지의 공사가 중단되어 흉물스럽다.
산길을 내려오면 파주힐스테이트2차 아파트단지 옆에 당동리 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당동리 어린이공원을 거쳐 지선 당동1로를 건너 당동리 어린이공원 출입구를 돌아본다.
지선 당동1로를 건너 당동리 유수지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당동리 920번지 일대 유수지 제방의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따라 돌아나간다.
당동리 유수지 울타리를 돌아 지선 당동1로 앞으로 나와서 걸어온 유수지 제방길을 돌아본다.
당동리 유수지를 돌아나와서 혜준빌딩 앞 당동배수펌프장 울타리를 따라 방촌로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에 고압송전탑이 솟아 있고, 왼쪽에 당동산업단지4호 근린공원이 있다.
'방촌로'로 나가는 길가에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당동리에서 문산리로 넘어와 방촌로 서쪽 보도를 따라 현대오일뱅크 앞을 지난다. 방촌로 건너편의 건물 오른쪽은 임월교교차로이다. 이 지역은 문산읍 문산2리 하동마을이다. 문산1리 문산역 주변을 옛 문산포 위쪽에 있다 하여 상동(上洞)이라 하고, 문산역 쪽에서 볼 때 아래쪽에 있는 문산2리 마을을 하동(下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산읍의 중심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문산리(文山里)에는 조선시대까지 문산포(文山浦)가 위치해 수 많은 상선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문산포장(文山浦場)이 대시를 이루었다. 문산포는 교통수단이 없었던 당시에 유일한 대량 수송수단인 선박이 임진강을 통해 들어와 정박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로서 서해 또는 한양으로부터 파주는 물론 장단, 개성, 연천, 포천 그리고 강원도의 철원과 평강 등지까지 화물을 공급하는 각종 물자의 중간 집산지였다. 일제강점기 파주의 6개 정기시장 중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던 대시중 하나가 문산포장이었다. 현재는 문산자유시장이 옛 문산포장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1.12.17.
방촌로 서쪽 보도를 따라 현대오일뱅크 앞을 지나 초록 신호등이 있는 임월교교차로를 건너간다.
방촌로 건너편에 블랙박스·네비게이션 자동차부품점이 있으며, 방촌로와 중앙 뒤 개포래로가 교차하는 임월교교차로가 오른쪽에 있다. 개포래로는 문산역 앞 제방 옆에 유엔 군속들이 건립한 3층 건물 외기노조外機勞組 아파트로서 옛 개포래가 있어서 개포래로라고 명명되었을 것이다.
방촌로와 왼쪽 개포래로가 임월교 앞에서 만나는 임월교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임월교를 건넌다.
맨 오른쪽 뒤 문산천 제방의 '개포래로'가 임월교 앞에서 방촌로와 만나는 임월교교차로를 임월교 입구에서 뒤돌아본다.
예전에 문산천 북쪽은 임진면(臨津面), 그 남쪽은 월롱면(月籠面), 이 두 지역을 잇기에 임월교(臨月橋)라 명명되었을 것이다.
문산읍 문산리(文山里)에서 임월교를 건너 문산읍 내포리(內浦里)로 넘어와 방촌로를 계속 따라간다.
문산읍 10개 법정리 중 내포리(內浦里)는 가장 늦게 문산읍에 편입된 법정리다. 내포리는 본래 오리면(烏里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내동리, 굴촌리 전부와 장포리, 당산리의 각 일부, 칠정면(七井面)의 문산하리, 당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내포리(內浦里)의 ‘內’와 장포리(長浦里)의 ‘浦’자를 따서 이름 붙이고 월롱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3호로 문산읍에 편입되어 문산읍 내포리가 되었다. 마을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포리는 마을 앞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임진강의 지류하천인 문산천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1.07.02.
방촌교차로 왼쪽은 휴암로, 문산읍 내포리를 거쳐 월롱면 능산리로 이어지며, 평화의 길은 방촌로를 계속 따라간다. 휴암로는 조선 중기의 문신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1497~1579) 선생을 기리기 위한 도로명이다.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출생으로, 월롱산 자락의 덕은리 용주서원(龍州書院)과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파산서원(坡山書院)에서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한다고 한다.
방촌(厖村) 황희(黃喜, 1363~1452) 선생을 기리는 방촌로(厖村路)는 지방도 제359호선의 일부이다.
방촌로 도로표지판이 300m 앞에 문현말길 진출입로와 자유로 진출입로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방촌로의 내포3리 교차로에는 '문현말길'과 '자유로 진출입로'가 있다.
안골입구 버스정류소가 있는 내포3리 교차로 왼쪽은 문현말길, 오른쪽은 자유로 진출입로이다.
내포리(內浦里) 4개리 중 내포4리 마을은 골이 깊고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안골 또는 내동(內洞)이라 불린다. 또한 창녕 성씨의 집성(集姓) 마을로 예로부터 창녕 성씨 문중에서 많은 학자들이 배출돼 문현말(文賢村)이라고도 불린다. 내포4리 문현말에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0호인 용재 성현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1.07.02.
내포3리 교차로 앞쪽에 서울-문산고속도로 내포나들목이 방촌로 공중을 지나고 있다. 내포3리 교차로 왼쪽길은 내포4리 안골(문현말)로 이어지는 문현말길, 오른쪽은 자유로 진출입로이다. 내포4리 문현말(文賢村)은 창녕 성씨 집성촌으로,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0호인 용재 성현(慵齋 成俔, 1439~1504) 선생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용재 성현(慵齋 成俔)은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호는 용재(慵齋), 부휴자(浮休子), 허백당(虛白堂)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염조(念祖)이고 성임(成任)의 아우가 된다. 조선시대 음악을 집대성하여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으며 1504년에 《용재총화》를 저술하였고 청백리에 녹선된 창녕 성씨 문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 파주시청
대명골천교를 건넌다. 말랭이국수집 앞 방촌로 내포교차로는 서울-문산고속도로 내포나들목 진출입로이다.
대명골천교에서 소하천(小河川) 대명골천 하류 방향을 살핀다. 대명골천은 자유로 지하통로를 통해 임진강으로 나간다.
문산읍 내포3리 '장어명가 지중해' 음식점 앞을 지나 방촌로를 계속 따라간다.
방촌로 왼쪽 풍천뻘장어 음식점 앞에서 방촌로와 헤어져 방촌로와 자유로 사이에 있는 보도&자전거길로 이어간다. 임진강변 지역이어서인지 이곳에 장어 음식점이 많다.
자유로 옆 보도&자전거길을 따라오다 뒤돌아본다. 당동나들목은 문산 진출입로이다. 도로표지판 '文山'의 한자를 바꿔 적은 표시가 난다. 2014년 6월 20일 파주시지명위원회에서 문산의 한자 표기를 ‘汶山’에서 ‘文山’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오른쪽에 자유로가 달리고 평화의 길은 평화누리 자전거길과 동행한다. 자유로 건너편에 낙하리 진출로 2km를 알린다.
왼쪽에 평화누리길 내포리쉼터 정자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들르지 않고 계속 진행한다.
오른쪽 자유로 건너편 도로표지판에 낙하나들목 1km가 적혀 있다. 평화의 길은 자유로 옆 보도&자전거길을 파주시환경관리센터 울타리 옆으로 이어간다.
문산읍 내포리에서 탄현면 낙하리로 넘어와 파주시환경관리센터 울타리 옆을 지난다. 파주시환경관리센터는 소각장, 매립장, 재활용선별장, 스포츠센터를 갖추고 있으며 그 옆에 탄현체육공원이 있다고 한다.
자유로 동쪽에 조성된 보도&자전거길은 뎈길로 조성된 곳도 있다.
평화의 길은 대규모 재활용 처리장 앞 주차장으로 이어간다.
자유로 동쪽의 대규모 재활용 처리장 앞 광장&주차장과 폐업한 LPG 주유소 앞을 통과한다.
대규모 재활용 처리장 출입구는 차도와 보도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내려간다.
자유로 지하통로 앞을 지나 자유로의 낙하나들목 도로표지판을 살피고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는 자유로 옆의 소로를 지난다.
탄현면 낙하리 아랫말에 화장품 향수업체 주연코퍼레이션이 앞에 있고, 그 오른쪽에 건축자재업체 세원판넬이 있다.
오른쪽은 낙하나들목 진출입로인데, 엘지로 왼쪽은 자유로 문산 방향 진출입로, 그 오른쪽은 자유로 서울 방향 진출입로이다. 평화의 길은 왼쪽 동오리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간다.
엘지로는 위쪽으로 월롱면 덕은리 LCD일반산업단지(LG디스플레이단지)로 이어진다. 엘지로 건너편에 평화의 길 6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는 종주자들이 앞서가고 있다.
동오리길 북쪽에 낙하리편의점과 할머니손두부 음식점이 있다.
동오리길이라 명명된 유래가 궁금하다. 동오리길 오른쪽을 따라 해장국&돼지국밥 음식점 앞으로 이어간다.
동오리길 왼쪽에 낙하리아랫말 버스정류소, 그 앞에 낙하리아랫말 표석이 서 있다. 평화의 길 6코스 역방향 탐방은 오른쪽 엘지로 횡단보도를 건너 낙하나들목 방향으로 이어간다. 위쪽은 낙하리 윗말이다.
낙하리(洛河里)는 본래 교하군 탄포면 지역으로 임진강 옆에 낙하원洛河院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낙하리와 금승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낙하리라 하였다. 장단을 거쳐 개성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낙화라고도 한다. - 파주시청
동오리길 오른쪽에 낙하리아랫말 표석, 왼쪽에 낙하리아랫말 버스정류소, 그 옆에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서 있다.
DMZ 평화의 길 7코스 시점에 서 있는 평화의 길 이정목 기둥에 7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